선재도의 작은 섬을 걷다
▲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위로 잠수도로가 나타나고 측도가는 길을 안내하듯 전신주가 줄지어 서 있다.
물속 길 따라 박혀있는 전신주/
그 기둥에 새겨 넣었던 돌의 말/
하루에 두 번 물이 길을 낳을 때마다/
상처를 열어 말리며/
달을 향해 푸르게 웃었을까/
밖으로 드러난 불안을 어루만지며/
흔적을 수장할 물때를 기록 중일까/
-박선희 시인의 '측도 가는 길' 중에서
섬을 향해 달리면서 측도에 먼저 들어갔다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때 시간을 확인해 보니 여유롭다. 섬 속의 작은 섬 측도 가는 길은 물이 완전히 빠져 있다. 언제 물이 들어올지 알 수 없을 만큼 바닥은 뽀송하고 걸을 때마다 조개껍질과 메마른 모래와 자갈들이 달그락거린다.
▲ 머릿돌이 알려주는 측도이야기를 먼저 읽어본다.
측도는 선재도 남서쪽으로 1km 남짓 떨어진 작은 섬이다. 밀물 때는 세상과 뚝 떨어진 섬 같지만 물이 빠져나간 넓은 바닷길 위론 자동차가 마음 놓고 오간다. 물속에 잠겨있던 전신주 기둥들이 갑자기 불쑥 솟아 나온 듯 줄지어 서서 길을 안내하는 모습으로 맞는다. 바닷길 옆으로 꼬물거리는 바다생물들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온다. 갯벌이 드러나는 밀물 때면 조개나 낙지 등이 간혹 보인다. 갯벌 위로 바다 새들이 많이 나는 건 바로 이런 이유라고 한다.
다시 물이 차오르면 맑은 바닷물이 바다 속 깊이를 눈으로 측정할 수 있어서 측도라 부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섬이다. 물이 맑아서 고기가 노니는 걸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어서 측도라는 설이 있을 만큼 물 맑은 바다였다. 섬마을 입구의 안내판에는 '한때 선재도 곁에 있다 하여 곁 측의 측(側) 자로 되었다가 다시 맑을 측자 측도(測島)로 고쳤다'는 내용이 덧붙여져 있다.
그 옛날 이 섬에는 봉화대가 있었다. 마을의 급한 일이나 적의 침입 등의 위급한 일이 생기면 주변의 선재도 일대와 영흥도 쪽으로 연락을 취했다 하니 측도라는 길목의 지리적 특성이 요충지 역할이 된 듯하다.
▲ 물이 빠지면 퇴적층 앞으로 펼쳐진 갯벌위로 움직이는 생태계의 모습도 들여다볼 수 있다.
섬 입구의 안내판 따라 바로 섬마을 길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우측의 작은 산 옆으로 난 해변길로 잠깐 들어섰다. 생각지 못했던 암석층으로 형성된 바위의 세월을 눈앞에서 본다. 무수한 해풍으로 켜켜이 생겨난 주름과 구멍들로 이루어진 화산섬의 신비도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이다.
한 걸음 발길을 바꾸니 또 다른 풍경이 있었다. 세상의 북적임에서 벗어나 파도와 퇴적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암반층 앞에서 이렇게 태곳적 시간을 마주하기도 한다.
▲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인 고요한 섬마을의 초가을 풍경 앞에서 작은 힐링을 얻는다.
섬마을에 드니 한적하기만 했던 바닷길만큼이나 마을은 인적조차 드물다. 마치 섬에 숨어든 듯 가만가만히 다니게 된다. 산으로 둘러싸인 어촌 마을은 조용한 시골마을이다. 한없이 편안하다.
가을을 맞은 마을 뒷산은 여전히 푸릇하고 마을 앞 논에서는 벼가 익어가고 있다. 세상과 뚝 떨어져 잠시 머물러 쉬고 싶을 때 딱 좋겠다 싶다. 섬 안에 펜션이나 쉼터공간이 보이고 입구의 갯벌체험장과 돛배도 보이는 걸 보니 마을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있는 듯하다.
▲ 바닷길이 열리면 자동차가 오가고 사람들은 걸어서 측도를 왕래하기도 한다.
자연의 섭리대로 길을 열어주는 바닷길을 따라가야만 하는 아주 작은 섬 측도, 어쩌다 한 번씩 바닷길이 열리는 신비한 동화 속의 섬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경험은 어쩐지 짜릿하다.
갯벌 저편으로 멀찍이 떨어진 영흥대교 위로 자동차들이 줄지어 달려도 세상 소음 한 점 들리지 않는다. 고요한 자연 속으로 빠져들던 산책길도, 풀벌레소리와 바람 소리도 복잡한 머릿속을 개운하게 한다. 더없이 평온하다.
▲ 사람들은 하루 두 번 나타나는 바닷길을 걸으며 섬을 향해 자유를 꿈꾼다.
측도를 벗어나 인근 또 하나의 작은 섬 목섬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선재대교 초입이다. 선재도에 딸린 목섬은 사람이 살지 않은 무인도다. 모세의 기적처럼 섬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신비의 섬, 물이 빠진 500m 정도의 모래길을 걷기 위한 커플들이나 여행자들의 느릿한 발걸음이 여유롭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가벼운 외출 삼아, 또는 연인들의 데이트로 적당한 로맨틱 코스다.
2012년 CNN이 선정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33 중에서 1위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인다. 단번에 눈길을 끄는 섬이다. 바다 위에 동그랗게 떠있는 섬을 중심으로 물이 빠지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모래바닷길의 곡선도 유려하다. 섬 주변으로 남아있는 푸른 바닷물 위로 반짝거리는 윤슬은 목섬에서만 볼 수 있는 눈부심이 있다.
▲ 바다를 내다보며 잠깐 가져보는 쉼도 즐겁다.
목섬을 앞에 둔 이국적인 감성카페 위로 하늘이 푸르다. 바닷가에 자유로운 풍경으로 자리 잡은 화려하고 선명한 색상의 분위기가 경쾌하다. 창가나 야외 테이블에 앉으면 섬을 누리는 기분이 든다. 카페 처마 위로 쓰인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Hakuna Matata(하쿠나 마타타) 걱정하지 마, 잘될 거야.
▲ 소박한 어촌마을 골목을 걷다보면 과꽃이 피어나고 봉긋해진 국화위로 가을햇살이 쏟아지는 행복한 풍경 속에 빠져들게 된다.
선재도 해안마을은 여전히 조용하다. 어민들의 텃밭인 앞바다엔 쉬고 있는 고깃배가 떠 있고 오가는 이 없는 마을엔 가을이 내려앉았다. 물이 맑고 아름다운 마을이어서 선녀가 하늘에서 춤을 추던 곳이라 하여 선재도라 했다는 섬이다. 조용하기만 한 한낮이다. 안 마당의 빨래가 마르고 있는 마을 골목에는 그나마 알록달록하게 풍경을 담은 벽화가 무료함을 달래준다. 걷다 보니 군데군데 여행자들에게 휴식과 여가공간을 제공하는 공간이 보인다. 바닷가 쪽에선 어촌체험마을 프로그램 진행을 하는 마을 주민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 넛출선착장 주변 해안산책로는 짭쪼롬한 바닷바람 맞으며 산책하기 좋다.
선재마을에서 조금만 돌아 나가면 금방 넛출선착장이 바로 보인다. 나루터에서 바위가 바다 쪽으로 너출너출 뻗어나간 모양새 그대로 불리어 너출 나루터였다. 고깃배들의 통통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바다새도 끼룩끼룩 소리 내며 나는 걸 보니 어민들의 일터임이 단번에 느껴진다. 제법 수심도 깊어 보인다. 선착장 저편으로 낚싯줄을 던져놓고 한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강태공의 모습이 정지화면인 듯 아련하다.
글·사진 이현숙 i-View 시민기자, newtree14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