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흥도 노가리해변의 일출과 해식동굴
인천은 대도시지만 사방으로 섬과 바다와 갯벌, 산과 들판이 고루 이어진다. 이런 환경 속에 역사가 담겨있고 자연생태가 살아 숨 쉰다.
날마다 붉은 해가 떠오르고 다시 노을이 빛나는 시간이면 신비로운 그 빛으로 꿈을 꾼다. 다가가면 갈수록 더 깊고 깊은 태곳적 흔적이 남아있어서 한없이 경이롭다. 이 모든 것들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깊은 사색과 여유로움을 주고 풍요로움을 전한다.
▲ 인천 섬의 새벽에 만나는 갯벌 위로 떠오르는 일출
어스름한 새벽길을 달린다. 온 천지가 조용한 어둠 속에서도 섬을 향한 불빛이 반짝인다. 인천의 섬들은 접근이 쉽다. 노가리해변은 인천 영흥도에 숨은 듯 자리 잡았다. 그 바닷가에서 아침을 맞는다. 노가리 해변을 향하는 길옆의 바다 위에 줄지어 선 송전탑이 어둠 속에서 얼핏 보인다.
줄지어 선 철탑을 바라보다 보면 철탑과 함께 신비로운 서해의 일출을 만날 것이다.
▲ 서서히 일출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노가리 해변의 일출
흔히 인천을 생각하면 서해 바다에 내리는 일몰을 주로 떠올린다. 그러나 영흥도 바닷가에선 일몰만큼이나 환상적인 일출도 만날 수 있다.
옹진군 영흥면 노가리 해변 앞에서는 새벽이면 신비로운 일출의 시작을 볼 수 있다. 바다 갯벌 위로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만나기 위해서는 일출 시간을 확인하는 건 필수다.
노가리 해변은 한동안 용담리 해변으로 불리던 곳으로 영흥도 남단에 위치했다.
이곳에는 많은 염벗(소금가마의 움막)이 있었는데, 소금을 만들어 볏짚으로 엮어 만든 섬[俵]에다 넣어 곡식을 쌓은 것처럼 높이 쌓았다 하여 노가리라는 지명이 됐다.
▲ 고요한 시간이다. 곧 마주할 일출의 신비로움을 두근거리며 기다린다.
노가리 해변 해식동굴 바로 직전의 마을 길에서 멈춘다. 새벽이 짙푸르다. 세상은 온통 고요하다. 물 빠진 바다는 끝없는 갯벌을 드러내고 갯골을 따라 몇 줄기 물길이 이어진 게 보인다. 어둠 속으로 송전탑이 뿌리내린 땅이 섬처럼 봉긋 솟아올랐다. 짙푸른 어둠 속에서 일출 시각을 확인한다.
어슴푸레 날이 밝아온다. 갯벌 저편으로 붉은 기운이 번지고 송전탑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숨죽여 기다리던 시간, 벅찬 두근거림을 경험한다. 크고 작은 군도 사이로 손톱만 하게 얼굴을 내밀며 빛나는 아침 해의 붉은빛에 조용한 탄성이 나온다. 갯벌과 하늘, 온 우주가 순식간에 붉게 물드는 마법의 순간이다.
▲ 짧은 순간 온 세상을 뒤덮는 일출은 세상을 일깨우는 시간이다.
점차 빛 번짐으로 퍼져가는 장엄한 아침 해가 온 세상을 일깨운다. 가슴속 깊이 스며든 감동이 한동안 압도한다. 웅장한 송전탑 사이로 서서히 올라오는 일출이 만들어 내는 풍경이 시시각각 달라진다. 매 순간 깃드는 설렘도 다르다. 가끔씩 하늘 위로 비행기가 날아간다. 소박한 시골마을 영흥면 외리 어촌계의 하루가 시작됐다.
▲ 물 빠진 노가리 해변을 걸어 해식절벽으로 다가간다.
영흥도의 숨겨진 힐링공간, 해식동굴
바다 위 즐비한 송전탑의 풍경과 함께 현재 노가리해변 부근의 숨겨진 명소 해식동굴이 관심을 모은다.
노가리해변과 해식동굴은 곧바로 이어진다. 마을의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걸으면 10여 분 지나 해식 절벽이 나타난다. 모래 길과 울퉁불퉁 곱지 않은 작은 자갈길이 이어진다. 편안한 운동화는 기본이다. 노가리 해식동굴을 가려면 반드시 물때(간조시간)를 확인해야 한다.
▲ 해식절벽 주변으로 꼬물거리는 바다 생태를 살필 수 있어서 여유로운 시간이다.
바닷길을 걸어가는 동안 갯벌 위로 개불이나 칠게 같은 갯벌 생물이 그려놓은 올망졸망한 그림들을 보게 된다. 꼬물꼬물 뻘 구멍으로 들락날락하면서 그들만의 놀이를 한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 속의 한가로운 풍경이다.
발밑으로 밟히는 조개 껍질이 바스락거리고 독특한 모양의 바위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위모양이 범상치 않다. 겹겹이 지층을 이룬 이국적인 기암 절벽이다. 파도에 의한 침식작용으로 생겨난 바위의 놀라운 자연현상을 눈앞에서 본다.
▲ 노가리 해식동굴은 조붓하고 길다. 동굴 속에서 바라다보는 바다는 힐링을 불러온다.
해식동굴은 해안선 가까이에서 파도나 조류, 바람 등의 침식으로 해식절벽이 형성된다고 한다. 억겁의 시간을 건너오는 동안 동굴이 형성되고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붉은색의 퇴적층은 태곳적을 연상시킨다. 암벽 위에 피어난 참나리가 예쁘고 바위틈 자잘한 식물들 사이로 소나무 한그루 독야청청하다.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해식절벽의 기이한 현상을 인간이 어찌 흉내 낼 수 있을까만 수억 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이렇게 찾아와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고마울 따름이다.
▲ 해식동굴 앞에 앉아 바라보는 하늘과 바다는 아득한 태곳적 고요함을 맛보게 한다.
지층이 수없이 겹쳐 만들어 낸 해식절벽 사이로 숨어들 듯 들어가 내다보는 바다와 푸른 하늘, 이색적인 프레임은 이뿐이 아니다. 현대인들이 찾는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힐링포인트가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이 바다였고 푸른 하늘이다. 누군가는 서해안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했다던가.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세상의 소음 한 점 없이 쉴 수 있는 곳,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을 피하고 싶다면, 일상에서 멀찍이 벗어난 느낌의 이색적인 공간을 찾는다면 바로 이곳이다.
▲ 억겁의 시간을 건너 온 해식동굴을 벗어나면 어촌마을의 일상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가끔씩 갯바위로 파도가 철썩이며 다녀가고 느린 날갯짓으로 바다 새가 한가로이 날아간다. 태곳적 순수한 자연에 파묻혀 보는 시간이다. 잔잔한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쉴 수 있는 여유로운 바닷가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더께가 가득한 해식동굴을 벗어나니 바다 저편으로 현대인들이 만들어 낸 송전탑 행렬이 멀리 보인다.
글·사진 이현숙 i-View 시민기자, newtree14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