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서쪽 해안가 마을과 시인의 공원
강화도 서쪽 해안가를 달린다. 한참을 달리다가 바닷냄새가 물씬한 외포항길에서 우선멈춤. 강화 본섬의 서쪽 끝 외포항은 언제나 짭조름한 바람이 분다. 저만치 진득한 갯벌 위로 물이 차오르면 건너편 마주한 나지막한 산이 물에 잠기고 산그림자가 잔잔하게 반영을 이룬다. 닻을 내리고 정박해 있는 어선 위로 갈매기의 자유로운 날갯짓에 비로소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 갈매기 나는 고즈넉한 갯벌과 다양한 해산물 먹거리 가득한 외포항의 여름
외포항 젓갈은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새우를 바로 그 자리에서 국내산 소금으로 젓갈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강화 연안 일대에서 잡아 올리는 새우로 만들어지는 새우젓은 인천시에서 인증하는 RY마크를 받는 최고 품질을 자랑한다. 말 그대로 새우젓 일번지다.
현대화된 모습으로 깔끔하게 정돈된 수산물종합시장 안의 젓갈 냄새가 자연스럽다. 제철 해산물을 맛보거나 양손 가득 구입해서 나오는 강화 서쪽 여행의 재미가 시작된다.
천상병 시인을 기억하는 시간
외포항을 나와 5분 정도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바다 쪽으로 작은 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는 일부러 찾아가기도 하는 곳이지만 더러는 얼핏 모르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규모가 크거나 멋지게 잘 꾸며진 편은 아니다. 그저 소박하다. 건평항과 함께 어우러진 천상병귀천공원은 건평포구의 푸른 하늘과 바다와 노을을 사랑한 시인을 기리고 보전하기 위해서 조성된 공간이다.
▲ 강화 여행길에 천상병귀천공원에서 순수한 영혼의 시인을 만나보는 시간은 의미 있다.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누구라도 한 번씩은 읊조려보았을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가 새겨진 시비(詩碑) 옆에 시인이 앉혔다. 이 세상에서의 삶을 아름다운 소풍에 비유한 순수한 영혼의 시인 양손엔 막걸릿병과 잔을 들고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해맑은 표정으로 웃고 있다. 어깨에 얹힌 새 한 마리와 함께 지금은 자유롭게 하늘로 날아간 것일까.
▲ 시를 떠올리고 시인의 맑은 문학정신을 기리며 자연을 누려본다.
한없이 천진하고 티 없는 영혼의 천상병 시인에게 동백림(東伯林) 사건은 빼놓을 수가 없다. 동베를린 사건(東Berlin事件)이라고도 부르는 간첩단 사건은 독일과 프랑스 등지에 사는 교민이나 유학생들이 간첩활동을 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때 윤이상 작곡가와 이응노 화백 등과 함께 천상병 시인도 이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보고 갖은 고초를 당했다.
결국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하여 확대했음이 밝혀졌으나 아무런 죄도 없이 옥고를 치른 시인은 엄청난 고문 후유증으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 후유증으로 폐인이 되어 떠돌다가 무연고자로 정신병원에 감금되는 사건이 생겼다. 이 무렵 행방이 묘연해진 시인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친구인 박재삼 시인이 그의 시 '귀천'을 유작으로 발표해서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천상병 시인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해안 도시에서 태어나 해방과 함께 한국에 돌아와 경남 마산에 정착했다. 이후 서울 생활을 하면서 고향 바다를 늘 그리워했다고 한다. 마산은 멀었고 여비도 없으니 고향친구 시인 박재삼과 강화도 바닷가를 자주 찾아 향수를 달랬다. 그 어느 날 강화 건평 나루에서 친구와 막걸리를 마시다가 쓴 시가 바로 '귀천'이다. 알고 읽으면 뭔지 다르다. 시 전 편으로 건평 나루의 풍경이 느껴지는 듯하다.
▲ 가슴이 탁 트이게 건평항이 보이는 공원에 어린왕자 뒷모습이 인상적이다. 강화나들길 4코스다.
바다 쪽을 향한 공원벤치에 어린 왕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동화 속의 왕자가 강화도 건평항에 와서 앉아 한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니. 이 자리에 앉아 어린 왕자와 함께 서해로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보는 것도 빠뜨리지 말아야 할 즐거움 중의 하나다. 강화 나들길 4코스 해가 지는 마을 길이다.
공원 안에는 우리의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강화도 출신 작곡가 최영섭 님의 노래비도 세워졌다. 또한 조선시대 효종이 가장 좋아하던 명마 '벌대총'의 말발굽자국을 볼 수 있다. 당시 강화는 말을 키우기 좋은 목장의 입지 조건이었다고 한다. 전설로 남은 벌대총의 말발굽 자국에 어제 내린 빗물이 고여 있다.
▲ 강화 마을 속에 보존되고 있는 역사 유적, 조선 후기의 대문장가 이건창 묘와 조선 숙종 때의 건평돈대
이건창묘와 건평돈대·굴암돈대
천상병 공원 맞은편 마을을 통해 언덕길을 오르면 이건창(寧齋 李建昌) 묘가 있다. 건평항을 중심으로 몇 군데 가볼 곳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대문장가였던 이건창 묘가 있으니 기왕이면 잠깐 들러봄 직하다. 성품이 매우 곧아 서양과 일본의 침략을 철저히 배격한 구한말 지식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다는 안내문을 읽어본다. 묘지로 오르는 길옆으로 옥수수가 익어가고 마을 어르신이 텃밭에서 채소를 따고 계신다. 이건창 묘가 어디 쪽인가 물었더니 '바로 요기여' 하며 손짓하신다. 동네 뒷산에 특별한 석조물이나 유난한 장식 없이 소박하다. 이렇게 강화의 인물을 또 한 분 알아간다.
마을 건너편으로 몇 걸음 옮기면 건평돈대로 향하는 언덕이 보인다. 여기까지 왔으니 들러봐야겠다. 발길 따라 마음 따라 걷는다. 좁은 산길이 울창한 숲으로 이어져서 햇볕을 가려준다. 다만 오름길이 있어서 숨차게 올랐다. 10분 정도 걸으니, 건평돈대가 나타났다. 건평돈대는 조선 숙종 때 설치되었다고 하는데 석축 일부가 붕괴한 모습이다. 적의 움직임이나 공격에 대비한 초소인 돈대답게 산을 등지고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그 옛날 이런 곳에 몸을 숨기고 국토방위 임무를 수행했을 모습을 상상해 본다. 또 한 번 역사와 연결해 보는 오늘이다.
▲ 적의 외침을 막아내기 위해 긴장감이 감돌던 그 옛날의 굴암돈대는 온통 푸르르고 평화롭기만 하다.
건평항을 지나오면서 5분 이내로 또 하나의 돈대를 만난다. 굴암돈대는 완만한 길을 따라 오르기도 좋고 산 아래로 바다가 탁 트여 훤하다. 포좌를 통해서 바라보이는 너른 바다가 더위를 식혀준다. 적의 외침을 막아내기 위해 긴장감이 감돌던 곳이었을 텐데 이제는 돈대 언덕배기 위에 편히 서서 이토록 평화롭고 멋진 경관을 누린다. 굴암돈대는 하늘에서 찍으면 딱 반달 형태다. 포 안에서 내다보이는 일출과 일몰은 서해안 최고의 풍경이다. 바다도 푸르고 돈대를 에워싼 산도 푸르다.
밴댕이 마을, 후포항
선수포구가 후포항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선수포구 마을이다. 강화해협의 맨 아래쪽이다. 마을 입구의 '추억이 모이는 항구'라는 안내판이 맞아준다. 바다에 떠 있는 어선이 제법 큰 걸 보니 조업의 규모가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 작은 어촌마을의 잔잔한 풍경을 볼 수 있는 후포항에 밴댕이회의 별미가 기다린다.
후포항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다 보니 펄이 기름져서 후포항에서 잡히는 밴댕이가 고소하고 맛이 좋다고 알려졌다. 밴댕이는 전어와 비슷한 생김새로 철분과 칼슘이 풍부한 건강 식재료다. 마을로 들어서 포구 쪽으로 가다 보면 밴댕이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밴댕이는 성질이 있는 물고기라서 그물로 잡아 올리자마자 죽어버린다고 한다. 성질이 고약한 사람에게 '밴댕이 소갈딱지 같다'라고 하지만 밴댕이는 죄가 없다. 섬세하고 약한 어종이다. 부드러운 육질의 밴댕이 별미 요리를 이곳에서 맛볼 수 있다.
글·사진 이현숙 i-View 시민기자, newtree14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