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탐방] ‘실천하는 지식인’을 추구한 강화학파의 향기

발간일 2021.07.26 (월) 14:23



➇ 화도·양도면(상)

강화학파의 거목 정제두와 이건창

한반도 역사의 축소판. 강화도는 선사 시대 이래 우리나라 역사의 아이콘을 모두 품은 ‘보물섬’입니다. 고인돌, 고려궁지, 외규장각, 광성보, 천주교성지에 이르기까지 강화도엔 지금 반만년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뚜껑 없는 박물관, 역사의 보고. 강화도를 얘기할 때면 언제나처럼 거창한 수식어가 붙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죠.

봄맞이 개편과 함께 i-View가 새 연재를 시작하는 ‘길 위의 강화도’는 5000년 강화도의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에피소드(episode) 중심으로 전개해 나갈 강화도의 신비로운 유적과 유물의 속삭임에 귀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평생 쌓은 학문의 깊이만큼이나 정제두(鄭齊斗, 1649~1736)의 무덤은 높은 곳에 위치했다. 2개의 석상과 2개의 망주석이 ‘강화학파’ 비조(鼻祖)의 무덤을 호위하고 있었다. 용미가 긴 봉분 앞에 혼유석 상석 향로석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문인석과 망주석은 윤곽이 선명했다.


▲강화학파를 발전시킨 이건창(1852~1898)의 생가(인천광역시기념물 제30호)은 강화군 화도면 해안남로 1114번길 6에 위치한다. 이건창 생가 앞을 한 노인이 걸어가고 있다.


강화군 양도면 강화남로 769번길 52. 하곡(霞谷) 정제두의 묘는 강화읍에서 마니산 방향으로 가다 하우고개 중턱쯤에 위치한다. 그의 묘 앞에 있는 또 다른 묘는 아버지인 정상징과 그의 부인 한산 이 씨의 합장묘이다.

정제두는 강화학파를 세운 우리나라 ‘양명학’의 거장이다. 주자학(성리학)이 주류였던 시대, 그는 주자학이 양반들의 출세를 위해서만 써 먹는 학문이라 비판하며 새로운 학문을 창안하였으니 바로 ‘강화학’(江華學이)다. 중국 송나라 때 주희가 집대성한 주자학은 도덕과 인격, 학문의 성취를 지향하던 학문이었다.


▲정제두(1649~1736)는 양명학을 바탕으로 한 강화학파의 비조이다. 강화군 양도면 하우고개 중턱에 있는 정제두의 묘.


‘사농공상’이라 하여 양반과 선비를 최고로 여기고 상인과 같은 서민들은 무시하던 주자학은 정권을 잡고 있던 노론세력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는 붕당정치가 극에 달하던 시기. 민생보다는 정권만을 위해 공허한 논쟁을 벌이는 위정자들에게 신물이 난 정제두는 서울에서의 명성을 접고 조상들이 대대로 살던 고향 강화도로 1709년(숙종35) 귀향한다.

정제두는 아는 것은 실천해야 한다는 ‘지행합일’과 사실을 바탕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양명학을 깊이 있게 연구한다. 그렇게 탄생한 강화학은 양명학을 바탕으로 한 열린 학문을 지향하며 인간과 사회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개척한다.

정제두가 강화로 귀향한 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좇아 강화도 들어온다. 원교 이광사는 1732년(영조8) 정제두를 찾아와 ‘실심실리’(實心實理)를 배웠으며 그의 아들 이영익은 정제두의 손녀딸과 결혼해 사돈지간이 된다. 완구 신대우와 그의 아들 신작 또한 정제두의 학문을 배웠는데, 신작은 정약용과 친분이 두터워 양명학에 실학을 절충했다.
 

 


▲정제두의 묘 앞, 양 옆에서 묘를 지키는 문인석.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은 양명학을 바탕으로 한 객관적 역사관을 수립한 책이며 이면백의 <해동돈사>도 강화학의 학풍을 따르고 있다. 정제두는 조정의 배척을 받았지만 워낙 학식이 깊어 영조 임금의 보호를 받으며 88세까지 벼슬을 하다 양도면에서 눈을 감았다.



지행합일, 실사구시 추구하며 인간과 사회를 새로운 틀로 재정립


정제두의 학문을 본격적으로 계승한 학자가 영재(寧齋) 이건창((李建昌, 1852~1898)이다. 이건창은 정제두의 제자인 이광명의 후손이다. 프랑스가 조선을 침략한 조불전쟁(1866, 병인양요) 때 순국한 충정공 이시원의 손자이기도 하다.



▲이건창 묘는 양도면 건평리 마을 한 가운데 위치한다. 무덤 주변에 아무 것도 없어 표지석이나 비석을 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15세이던 1866년(고종3년) 문과에 급제했으나 19세가 되어서야 홍문관직으로 일하게 된다. 이후 23살 때 청나라로 건너가 이름을 떨친다. 조선의 안핵사(按覈使, 암행어사)이기도 했던 이건창은 <당의통략>이란 저서에서 당쟁의 원인과 전개과정을 지행합일, 즉 강화학의 관점으로 파헤친다.


임금이 지방관을 파견할 때 “그대가 잘 못 하면 이건창이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건창은 강직한 공직자였다. 그는 관리들의 비행을 많이 적발했는데 이 때문에 많은 모함을 받았고 귀양까지 가야 했다. 청국과 일본이 조선에 들어와 가옥이나 토지를 사들이자 국민들의 부동산을 외국인들에게 팔아넘기지 못 하도록 금지령을 내려야 한다는 상소문을 올렸다가 청국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보성으로 유배되기도 했다.


이건창은 조선정부가 일본의 강압에 밀려 갑오경장(1894, 고종31)을 단행하자 벼슬을 버리고 강화 사기리에 정착한다. 갑오경장 이후 새로운 관제에 따라 여러 벼슬을 제안 받았으나 모두 거절한 터였다.



▲이건창 생가는 ‘명미당’이라 부르며 입구에 350년 된 측백나무가 있다.


1896년 임금이 해주부관찰사 벼슬을 내렸으나 이마저도 사양하다 결국 또다시 유배된다. 유배가 풀린 이후 고향인 강화로 귀향한 지 2년 만인 47세에 눈을 감는다.


2021년 여름에 찾은 이건창의 묘는 양도면 건평리에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했다. 묘비도 망주석도 보이지 않았으나 묘와 주변은 깨끗하게 정비돼 있었다.



정제두-이건창-조봉암으로 이어지는 강화학파의 계보


강화학파의 정신은 면면이 이어져 죽산(竹山) 조봉암(曺奉岩)의 사상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1948년 이승만 정부 때 제헌의원·초대 농림부장관으로 농지개혁과 농업협동조합운동을 전개한 조봉암의 ‘농지를 농민에게’ 돌려주는 토지개혁, 봉건잔재를 혁파하는 농촌계몽운동 등의 혁명적 개혁정책은 실사구시를 지향하는 강화학파와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정제두, 이건창의 묘를 돌아보면서 죽산 선생이 떠오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글·사진 김진국 본지 총괄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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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지는 마을길

​모두가 평등하고 인간답게 사는 길 따라 걷는 길​

▲해가 지는 마을길은 고려 원종의 왕비인 순경태후의 무덤 가릉에서 시작해 외포리까지 걷는 길이다. 외포리선착장에서 갈매기가 쉬고 있다.


태자 ‘전’(고려 원종)의 왕비인 순경태후는 강화에서 결혼한 지 1년 만인 1236년 충렬왕을 낳고 스무 살도 안 돼 요절한 비운의 여왕이다. 가릉은 순경태후의 무덤이다. 장익공에 추봉된 김약선의 딸이자 최우의 외손녀인 순경태후는 원종이 태자이던 시절 입궐, 경목현비였으나 남편 원종이 왕이 된 뒤 뒤늦게 정순왕후로 추존된다. 아들 충렬왕이 임금이 된 뒤엔 다시 순경태후로 추존됐다.


여러 빛깔의 야생화가 울긋불긋한 가릉을 출발, 숲길로 들어서면 개울을 건너고 오솔길을 따라 걷게 된다. 30분쯤 걷다보면 도로 옆 야트막한 산 위 무덤이 눈에 들어온다. 정제두의 묘이다. 하우고개 중턱에 위치한 정제두의 묘에 인사를 올리고 2차선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하우약수터가 나타난다. 하우약수터에서 건평나루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마을이 나타나는데 이 마을 한 가운데 이건창의 묘가 있다.


마을을 빠져나와 외포리로 향한다. 외포리 선착장에 닿으면 파닥거리는 활어처럼 생명력 넘치는 바닷가 사람들의 삶이 펼쳐진다. 천천히 움직이는 여객선과 포구를 날아오르는 갈매기들은 운치를 더해준다. 저녁에 닿아 붉은 노을을 ‘놀멍’하면 세상의 온갖 근심이 사라진다.


■ 해가 지는 마을길(가릉~망양돈대 11.5km, 소요시간 3시간30분)​

가릉 -> 정제두묘 -> 하우약수터 -> 건평나루 -> 건평돈대 -> 외포여객터미널 -> 외포어시장 -> 망양돈대
○ 문의 032-934-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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