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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웃 간 정이 몽글몽글 피어나던 굴포천 주변 동네

발간일 2023.03.15 (수) 15:53
응답하라! 인천 추억 ㉒ 부평 신촌

소래철교, 수봉공원, 자유공원, 월미도 등 인천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간엔 저마다의 추억이 넘쳐 난다. 잊지 못할 첫사랑을 만난 장소, 개구쟁이 시절 친구들과의 모험담이 숨겨진 곳을 생각하면 빙그레 미소 지어지는 기억들이 소환된다. 인천시민들의 내밀한 추억이 숨겨진 그 곳을 찾아가는 기억 여행을 시리즈로 연재한다.

우리집 바로 앞에 굴포천이 흘렀다. 굴포천에 푸릇푸릇 봄이오면 봄의 전령인 개나리가 피어 88정비대 담장 옆 축대를 노란 개나리로 주변을 화사하게 만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했다.


▲ 봄이되면 굴포천 주변엔 봄의 전령인 개나리가 피어 88정비대 담장 옆 축대를 노란 개나리로 뒤덮혔다. 사람들은 굴포천을 환하게 빛내던 개나리를 보면서 마음이 즐거워졌다. 사진은 ​ 복개되기 전의 굴포천변 신촌의 모습.

굴포천변 동네에는 자전거 바람 넣는 소리와 망치질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이화오토바이 자전거포, 한여름 수많은 꽃을 키워내던 독립군 아저씨네 집 마당, 형광등을 사러 다니던 5평 남짓의 영남 전파사, 된장찌개 맛이 끝내주던 대원식당, 그 옆 반찬가게 할머니집, 상씨네 담배가게, 오가네 식당, 장순일 음악연구소, 우리동네 작은 병원 같았던 보건당 약방, 수정미장원, 희양품, 마지막 클럽 송도홀과 그린도어홀 등 40여년을 울고 웃으며 함께 살았던 동네 이웃들이 있었다.

동네 전체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허름한 주택이다 보니, 옆집에서 뭘 해먹는지 냄새만 맡아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아내가 임신 중이던 어느 날 앞집의 된장찌개 냄새가 구수하다고 지나가듯 얘기를 했었는데 냄비째 먹으라고 주시던 그 아름다운 마음을 잊을 수 없다.

기상나팔 소리

게다가 우리 가족들은 88정비대 기상나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일과를 시작하고 취침나팔 소리에 하루를 마무리하고 아이들 잠을 재웠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훈훈해진다. 시끌벅적 아이들 노는 소리에 골목은 늘 활기찼다. 가내 수공업을 하던 은하네와 나래네 그리고 우리 아들과 동갑내기 현태네, 시누 올케가 옆 옆집에 살며 가운데 쪽문으로 소통하고 있던 홍씨 아주머니댁, 지금도 남아 있는 ‘우리세탁소’, 많이들 떠났지만, 어린시절 이곳에서 자라 오늘도 신촌을 지키며 지역 주민으로 따뜻한 이웃들이 생각난다.


▲ 자전거포를 닫는 날 가게 주인은 모든 공구세트를 넘겨주고 떠났다. 자전거포 각종 공구.

자전거포 아저씨의 훈훈한 마음

아들과 함께 굴러가지 않는 자전거를 끌고 찾아가면 말끔히 수리해주고 바람도 넣어 주었지만 값을 제대로 받지 않던 훈훈한 자전거포 주인장 아저씨의 마음 따뜻한 기억은 오늘도 아름다운 추억의 공간 신촌을 기억한다.

간판을 내리던 날 1965년산 혼다 오토바이를 우리에게 주었고 그 외에 아저씨가 쓰던 모든 공구세트를 넘겨줘서 간판과 함께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언젠가는 다시 아저씨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공구들을 보며 자전거 고치기 봉사를 하겠다던 아저씨의 말이 다시금 생각난다. 이미 동네 문화학교를 운영할 때 자전거 바람넣기 등의 수리 봉사활동을 한 경험이 있다.


▲ 이화오토바이 자전거포 아저씨는 아들과 함께 굴러가지 않는 자전거를 끌고 찾아가면 말끔히 수리해주고 바람도 넣어 주었지만 값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 간판을 내리던 날 1965년산 혼다 오토바이를 우리에게 주었다. 사진은 1965년산 혼다 오토바이를 탄 필자.

꽃밭에서

우리 동네는 다닥다닥 붙은 좁은 집들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어 꽃밭은 꿈도 못 꿨는데 개천 옆 독립군 아저씨네의 여유 있는 땅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자 아이들이 즐겨 찾고 사진을 찍는 장소가 됐다. 분꽃으로 귀걸이도 만들고 봉숭아꽃을 얻으려고 아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던 아저씨네 꽃밭은 아이들의 꿈도 피고 꽃도 피던 유일한 동네 화원이었다.


▲ 독립군 아저씨네 꽃밭에서 포즈를 취한 우리 아이들.

복개된 굴포천

당시는 굴포천 개천 방향은 집의 뒷편으로 생활 동선과는 잘 연결되지 않았지만 물이 흘러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오히려 추위를 녹여 주던 지금 말하면 온도조절기와 같은 역할을 했다.


▲ 복개된 굴포천의 모습. 예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지금은 굴포천이 복개되어 차가 다니고 오래된 집들이 거의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고층건물들이 들어서 버렸고, 개나리 가득한 담장들은 부평공원의 경계석이 놓여 있으며, 부대안의 연병장은 주차장으로, 안에 남아 있던 공장건물들은 사라지고 지역 주민들을 위한 광장과 동산 그리고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으며 신촌에는 옛 그림자를 찾기엔 가뭄에 콩 나듯이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아 아쉬움을 더한다.

지금이라도 신촌 각각의 장소 이야기를 모아 스토리텔링을 한다면 새로운 이야기가 있는 거리가 될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꿈을 키워왔던 이곳을 잘 가꾸고 남겨 신촌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오래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글· 사진 소병순 문화예술비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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