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맛

[인천 맛] 인천 텍사스가에 있던 광둥요리집 ‘의생성’

발간일 2022.01.12 (수) 14:36

 

피망, 파인애플 넣고 서양인 입맛에 맞춘 광둥식 탕수육

한국의 중국요리는 대부분 산둥요리인 루차이(魯菜)를 기반으로 하는 북경요리나 산둥요리로만 이루어졌다고 알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제일 흔한 짬뽕(炒碼麪, 초마면)도 그렇고 양장피(兩張皮, 양장피), 유린기(油淋鷄, 유림계), 깐쇼새우(乾燒蝦仁) 등등. 북경이나 산둥요리가 아닌 것들도 많다. 특히 깐풍기(乾烹鷄, 간팽계)와 유산슬(溜三絲) 등은 한국에서 탄생한 중국요리다. 깐풍기는 한류를 타고 ‘한국의 중국요리’로 역수출하고 있다.


한국의 중국요리 탕수육(糖水肉)은 북경식, 광동식, 사천식으로 나눈다. 북경식 탕수육은 중국의 ‘탕추리지(糖醋裏脊)’와 리우로우두안(溜肉段)이 한국에서 변형된 형태로 1930년대부터 ‘탕수육’으로 불리다가 1980년대 부터 일본에서 사천요리의 바람이 불자 매콤한 사천식 탕수육으로 개발된다. 이때부터 탕수육을 구별하기 시작했다.
 


▲ 피망, 파인애플 넣고 서양인 입맛에 맞춘 광둥식 탕수육


그 무렵 새로운 이름으로 등장한 탕수육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광둥식 탕수육으로 중국 개항기 요리를 대표하는 ‘구루로우(咕嚕肉, 고로육)’다. ‘구루로우’는 ‘구라오로우(古老肉, 고로육)’으로도 부르고 ‘咕咾肉(로고로육)’이라고도 쓴다.


고종실록에 따르면 1882년 11월 27일 중국과 〈중조상민수륙무역장정(中朝商民水陸貿易章程)〉 맺고, 1884년 4월 2일 중국과 다시 〈仁川口華商地界章程 (인천구화상지계장정)〉을 체결한다. 이후 ‘화상(華商)’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중국 상인’들이 개항기 인천을 통해 각 지역에 점포를 차리면서 무역을 시작한다. 이들이 오늘날 한국 화교 역사의 시초다.

20세기 초반까지 중국 내에서 활동하는 상인들은 출신 지역에 따라 ‘상방(商幇)’을 조직했다. ‘상방’은 쉽게 말해서 비즈니스 그룹(Business group)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 중국 상인들이 개항기 인천으로 들어오면서 광방(廣幇), 남방(南幇), 북방(北幇), 경방(京幇) 등을 조직하고 세력과 규모가 큰 광방, 남방, 북방을 가리켜 ‘삼방(三幇)’이라고 불렀다. ‘광방’은 광둥성(廣東省) 화상들을, ‘남방’은 화남(華南, 중국의 남쪽) 지역 상하이(上海), 안후이성(安徽省), 저장성(浙江省), 후베이성(湖北省)과 장쑤성(江蘇省), 푸젠성(福建省), 후난성(湖南省) 등의 화상들을, 북방(北幇)은 허베이성(河北省), 둥베이(東北), 톈진(天津), 산둥성(山東省) 등의 화상들을 말한다.

광방은 한국에서 그 세력과 규모가 상당했다. 1933년 자료에 따르면 인천의 광방은 1889년 광동회관(廣幇會館)을 설립한다. 광동회관의 설립 취지는 남방회관(南方會館), 북방회관(北方會館)과 마찬가지로 “고향과의 지속적 교류를 통해 가난을 구제하고 재난 구원을 하는 동시에 본방(本幇) 실업 상인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교민의 귀국과 매년 선우(先友, 먼저 사망한 동지들)의 제사와 벌초”로 하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인천의 광동회관의 주소는 인천 중화가(中華街) 의생성호(義生盛號) 내(內)로 되어 있다.

의생성은 일본 나가사키에 유화성(裕和盛)을 본점을 둔 무역회사의 한국 총판으로 인천 개항기에 개점해 서구의 잡화, 양주, 식료품, 화장품, 아코디언, 페인트, 중국산 직물과 잡화 등을 도·소매하는 상점이다. 의생성은 당시 경성에 한국 총판으로 두었고 목포, 인천에 분점을 두었다. 인천 분점은 지금 선린동 11번지와 18번지 두 곳에서 영업을 했다.
 


▲ 출처: 구글코리아 https://www.google.com/

1921년 2월 18일 의생성에서 신문광고를 낸다. “인천의 의생성은 건물 2층을 전부 서양식으로 개조하고 2월 13일부터 지나(支那, 중국) 광동식 요릿집을 개업하여 특별할인을 한다”는 내용이다.

 


▲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21년 2월 18일 조선일보 3면 사회


한편, 인천 선린동에는 화교들이 ‘텍사스 가(Texas 街)’라고 부르는 길이 있다. 이름의 유래는, 선린동에는 1960년 전후에 설립한 인천화교천주교(仁川華僑天主敎, 지금의 해안성당) 성당이 있다. 화교천주교에서는 화교 양로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양로원은 성당 왼쪽 지하에 있었다. 화교 노인들은 지상 성당 옆 돌난간이나 계단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다. 거기서 식사도 하고 한가히 잡담도 나누면서 시간을 자주 보냈다.

당시는 미국의 원조가 한창일 때라 화교 노인들은 미국에서 원조한 의류품을 이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에서 원조한 의류품에는 미국 서부 텍사스 쪽 옷들이 많았다고 한다. 화교 노인들이 미국 서부 텍사스의 옷을 입고 영화 ‘석양의 무법자’의 처럼 모자를 쓰고 중국 사람들이 아침에 즐겨 먹는 요우티아오(油條)과 더우장(豆漿)을 먹었다고 한다. 마침 양로원 옆에 건물이 의생성의 서양식 건물인지라 그렇게 ‘텍사스 가(Texas 街)’라는 이름이 붙었다.


▲ 화살표로 표시한 건물이 1960년대 선린동 18번지의 의생성 건물이다.
출처: 인천화교 부극정(傅克正) 제공


의생성은 쌍둥이 건물이다. 선린동 11번지에 하나가 있었고, 화교성당 옆 18번지에 쌍둥이처럼 하나 더 있었다. 광동요리를 운영하는 의생성은 지금 선린동 11번지 위치한다.
 


▲ 화살표로 표시한 건물이 1943년 선린동 11번지의 의생성 건물이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현재 한국의 중국요리는 1902년 황성신문(皇城新聞)에서 언급한 경성 남서(南署) 공동(公洞)의 모 ‘청요릿집(淸料理家)’이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그렇다면 2021년 기준 한국 중국요리의 역사는 120년 이상 된다.


광동식 탕수육인 ‘구루로우(咕嚕肉)’는 광동요리에서도 매우 특색있는 요리다. 당시 중국 광동에 있는 서양사람들이 이 요리를 좋아했다. 구루로우의 유래로는, 청나라 때 광동에 있는 서양사람은 돼지 등갈비에 탕수소스를 한 ‘탕수 등갈비(糖醋排骨, 탕추파이구)’를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서양사람들이 뼈를 발라 먹는 것에 익숙지도 않고 뼈를 뱉어내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아 어느 광동의 한 요리사가 서양사람들이 먹기 편하게 뼈를 미리 발라 한입 크기로 만들었다는 유래가 있고, 서양사람들이 구루로우가 너무 맛있어서 삼키기도 전에 맛있다고 우물우물 중얼중얼한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 역사가 긴 탕추파이구(糖醋排骨)의 변형된 고기요리라고 해서 구라오러우(古老肉)이라는 이름이 붙였다는 설 등이 있다.


광동식 탕수육인 구루로우는 서양인 입맛에 맞춰 탄생한 요리다. 파인애플 구루로우(菠蘿咕嚕肉), 피망 구루로우(靑椒咕嚕肉), 탕수 구루로우(糖醋咕嚕肉), 토마토캐찹 구루로우(蕃茄醬咕嚕肉), 사과 구루로우(蘋果咕嚕肉)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케첩에 피망, 파이애플, 과일 등이 들어가는 구루로우가 대표적이다. ‘구루로우(咕嚕肉)’는 1980년대 광동식 탕수육이라는 이름이 붙고 나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다.


▲ 1920년대 동흥루(同興樓)의 지나요리 간판과 특등요리 간판 그리고 의생성(義生盛)의 광동요리 간판이 보인다. 출처: 인천 화도진 도서관


한국 화교들의 기원은 화상(華商)들로부터 시작했다. 당시 한국의 화교사회는 삼방(三幇)으로 이뤄졌다. 이 삼방의 요리가 지금 한국의 중국요리의 대부분이다. 당시 개항기 인천은 개항기 중국 광동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 한국의 문화에는 서양, 일본, 그리고 중국의 문화가 융합했다. 그 시기 광둥요리를 전문적으로 하던 고급 중국요리점 의생성(義生盛)이 있었고 광둥요리를 대표하는 구로로우는 당연히 서양사람들이 즐겨 먹던 제일 맛있는 요리였음이 분명하다.


이 의생성 건물은 현재까지도 비교적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개항기 인천의 삶과 모습을 함축하고 있는 이 건물을 최근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내부 공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글·사진 주희풍 인천중산학교 행정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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