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맛

[인천 맛] 유재석 예명 아닌 진짜 ‘유산슬’ 이야기

발간일 2020.04.06 (월) 14:04


한국속 중국요리 식과 설 ∥
한국에만 있는 중국요리 ‘유산슬’


유명 연예인의 예명이 된 중국요리 ‘유산슬’이 명실상부한 한국을 대표하는 중국요리 반열에 올랐다. 한국의 중국요리들은 100년이 넘은 한·중 문화교류의 상징이다. 한국속 중국요리는 오랜 교류의 역사를 증명하듯이 현지인들의 기호, 선호도에 맞게 재료, 조리법, 먹는 방법 등이 변했다.


쉽게 말하면 같은 요리라도 한국에 들어오면 또 다른 맛과 형태로 ‘현지화’가 이뤄진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중국의 짜장면과 한국의 짜장면이 다르고 중국의 탕수육과 한국의 탕수육이 다르다.

특히 한국에서는 탕수육의 경우 탕수소스를 ‘부먹(부어 먹기)’하느냐, ‘찍먹(찍어 먹기)’하느냐에 따라 선호도가 더해져 먹는 재미까지 느낄수 있다. 때문에 한국의 ‘중국요리’를 ‘중국 이외 지역에서의 중국요리’라고 정의한다.


▲유산슬


한국에는 지리, 문화, 역사적 특징 때문인지 중국에는 없는 중국요리가 있다. 대표적인 요리로는 중국식 청포묵인 양장피(兩張皮=拉皮)가 들어간 잡채요리인 ‘양장피 잡채’와 중국에서도 그 이름도 찾아볼 수 없는 ‘유산슬(溜三絲)’이다. ‘류산슬’은 중국 교동(膠東)지역의 이름을 한국어로 옮겨 만들었지만 두음 법칙 때문에 유산슬로 불린다.


유산슬이란 요리는 중국의 어시(魚翅)에 나온다. 뜬금없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만 ‘산슬어시(三絲魚翅)’라는 상어지느러미 요리로 불린 마른 상어지느러미를 뺀 요리를 말한다.


‘산슬어시’에서 ‘산슬’은 불린 마른 해삼 채, 채 썬 닭다리 살, 채 선 겨울 죽순을 가리킨다. 이 세 가지 채 썬 재료를 볶은 후 불린 마른 상어지느러미를 소스와 함께 ‘모자를 씌우는(蓋帽, 개모)’ 조리법이다.


이 요리는 불린 상어지느러미의 톡톡 터지는 식감과 꼬들꼬들하게 해삼 그리고 육류의 부드러움과 겨울 죽순의 아삭함이 조화를 이루는 고급요리다. 중국 산둥요리 루차이(魯菜)를 대표하는 최고급 요리 중 하나로 중국에서도 일부 최고급 식당에서만 맛 볼 수 있고, 한국에서는 호텔급 중식당에서만 그 맛을 즐길 수 있다.


산슬어시는 한국어로 ‘산슬샥스핀’이라고 불러야 맞지만 ‘삼선샥스핀(三鮮魚翅)’으로 잘못 부르고 있다.


유산슬은 ‘산슬샥스핀’에서 샥스핀을 뺀 ‘산슬(三絲)’을 ‘유(溜, 류)’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 맛과 형태 그리고 식감까지 살린 조리법이다. ‘유(溜, 류)’는 루차이에서도 손꼽히는 조리기법 중의 하나로 ‘물에 녹인 녹말가루를 볶은 재료에 끼얹어 솥의 굴곡에 따라 흐르듯 솥을 돌리고 이어 볶아내는 기술’이다.


이때 소량의 국물과 녹말가루가 새로운 조합을 일으켜 요리 전체가 걸쭉해지면서 요리가 ‘목으로 술술 넘어’가는 것처럼 부드럽다.


유산슬은 ‘산슬샥스핀’과 요리모습이 매우 흡사하다. 한국의 중국요리 종사자들도 헷갈린다. 유산슬은 값비싼 최고의 고급요리지만 재료를 시민들의 입맛에 맞춰 변경하면서 대중화 될 수 있었다.


유산슬은 중식당을 대표하는 요리다. 정확히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지만 경제 성과 대중성을 갖춘 것으로 보아 중식당이 대중화하기 시작한 1960년대로 보인다. 이 시기는 화농(華農)이라 불리는 농업에 종사하는 한국 화교들이 대거 화상(華商)으로 전업한 그 시기와 맞물린다.


단지 값비싼 최고 재료인 마른 상어지느러미를 뺐다고 해서 경제성을 갖춘 대중 요리로 탈바꿈 한 건 아니다. 유산슬에는 최고급 재료인 불린 마른 해삼과 중국 황제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는 ‘유(溜, 류)’라는 조리기법이 들어가기에 고급요리의 재료나 기법은 그대로 살아있다.


▲유산슬 재료


중국 산둥 옌타이(山東煙台)의 푸산(福山)은 ‘루차이의 고향(魯菜之鄕)’이다. 중국 명·청 시대 황제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는 요리사가 이 지역 출신들이 많다. 특히 명나라의 목종황제(穆宗皇帝)가 이곳 요리사에게 천자의 수레까지 보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그때 황제를 매료시킨 요리가 바로 생선살을 유(溜, 류)한 조리법을 적용한 ‘조류어편(漕溜魚片)’이다.


중국 근대에도 이러한 명성에 힘입어 산둥 요릿집이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베이징, 텐진, 다롄 등에서 성행했고 대부분 다 옌타이 출신 요리사들이 운영했다. 특히 옌타이의 푸산 출신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근대 한국에서도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주요 도시에서 요릿집을 운영했다.


한국의 오래된 중국요리집인 인천 공화춘(共和春), 중화루(中華樓), 서울의 아서원(雅敍苑)의 조리장들이 모두 옌타이 출신이었고 이 중 중화루와 아서원은 옌타이의 푸산 출신 화교가 운영했다. 손으로 국수를 뽑는 기술인 이른바 수타면(拉麪)은 옌타이 푸산이 원조다.


신태범(愼兌範,1912~2001)의 <개항후의 인천풍경>에서는 “인천 사람은 가장 먼저 백간(白乾), 노주(露酒), 황주(黃酒) 같은 청국 술을 마시고, 해삼탕(蔥燒海蔘), 짜바께(炸八塊), 양장피(兩張皮) 같은 처음 보는 청요리를 맛볼 멋쟁이가 되었다.”고 적고 있다.


이 책은 1883년부터 1936년에 이르는 반세기 인천의 풍경을 가벼운 수필체로 기술한 책이다. 여기서 말하는 ‘멋쟁이’는 ‘모던 보이(modern boy)’를 가리킨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최초의 1호, 2호 서양식 호텔이 당시 모두 중국 요릿집으로 전업하기도 했다.


진유광(秦裕光, 1916~1999)이 쓴 <여한육십년견문록- 한국화교사화(旅韓六十年見聞錄-韓國華僑史話)>에서는 당시 중화루를 “시설이 웅장하고 화려해서 특히 부유층과 부잣집 귀공자들의 유락 장소가 되기도 하고 홀 안에는 프랑스에서 구입한 명품 그랜드 피아노 배치되어 있다.”고 적고 있다.


한국의 중국 요릿집은 이후 독립운동가나 문인들의 출판기념회, 단체들의 모임 장소로 사용됐고 조선공산당 창당대회의 비밀 회합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중국 요릿집은 1960년대에 들어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유산슬은 현재 한국의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닭다리 살 대신 돼지고기를 사용하고 겨울 죽순 대신 식감이 매우 떨어지는 통조림 죽순을 사용하면서 가격을 낮추었고 일반요리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지금은 채 썬 갑오징어 살과 새우살 그리고 불려서 채 썬 마른 표고버섯과 팽이버섯을 넣어서 요리를 더욱 풍부해 보이도록 하며, 값비싼 마른 해삼을 빼거나 소량으로 사용함으로써 단가를 낮췄다. 마른 해삼은 상당한 고가의 재료이기 때문이다.


유산슬은 한국에만 있는 중국요리다. 유산슬의 탄생을 통해 한국의 중국요리 탄생과 중국요릿집의 사회적 위치, 기능, 상징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루차이는 독창적으로 발전해온 중국 북방의 요리다. 중국요리 계보에서도 최고의 요리로 손꼽힌다. 루차이의 발원지는 중국 산둥이다. 유가사상(儒家思想)의 발원지답게 요리의 색과 향, 맛과 멋을 고르게 갖추었고 산(신맛, 酸), 첨(단맛, 甛), 날(매운맛, 辣) 함(짠맛, 咸) 오미(五味)가 조화를 이룬다. 유가사상의 중용지도(中庸之道)를 드러나고 포용하고 있는 요리다.


한국의 중국요리 또한 루차이를 기초로 한다. 21세기인 지금 ‘중용지도’를 가슴에 품고 중국요리를 먹는 21세기의 멋쟁이가 되는 것 또한 괜찮지 않을까 싶다.


글· 사진 주희풍 서울대학교 중국어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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