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섬

[인천 섬] 그들이 있어 백아도가 더 아름답다

발간일 2022.09.21 (수) 15:26

백아도 ②

인천은 누가 뭐래도 바다를 품은 해양 도시입니다. 인천 사람들은 대대로 바다에서 삶을 길어 올렸습니다. 때로 카키, 때론 코발트블루 빛깔로 반짝이는 눈부신 인천의 바다 ‘황해’.
그 황금빛 바다 위로 168개의 보석 같은 섬이 떠 있습니다. 그 가운데 100개가 옹진군에 속한 섬입니다.
옹진 섬에 대대로 터전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점박이물범, 저어새, 대청부채와 같은 동식물이 공존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7월 ‘i-view’가 옹진 섬으로의 여행을 떠납니다. 두 발로 걸어 옹진 섬들을 찾아가는 ‘섬 깊고 푸른 그리움’을 연재합니다. 가슴 설레는 옹진 섬 여행. 즐겁고 행복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백아도에는 현재 30여명의 주민이 산다. 그들 대부분은 60대 이상의 노년층이다. 한때는 5,600명의 주민이 섬을 빼곡히 채우며 살아간 적도 있었다. 백아도에 고기가 마르면서 사람들은 섬을 떠났다. 고기가 안 잡히자 섬은 생기를 잃었고, 젊은이들은 육지로 일거리를 찾아 떠났다. 섬의 아픈 현실이다. 현재 백아도를 지키며 살아가는 주민들을 만나 인터뷰 했다.


▲ 백아도의 백미를 즐기려면 남봉을 올라야 한다. 남봉은 공룡능선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곳에서 백패킹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남봉을 오르다 백배커를 만났다.

자타가 공인하는 백아도 낚시왕
황명규씨

“국민학교 졸업장을 받고 바로 낚싯배를 타기 시작했어요. 처음 배를 탈 때 배멀미를 굉장히 심하게 했는데 그때 어르신들이 쇠로된 노 부분을 빨면 멀미를 안 한다며 농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황명규(70)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백아도의 낚시왕이다. 그는 평생을 바다에서 살았기에 장비가 없어도 어디를 가면 우럭을 잡고, 어디에 놀래미와 장어가 사는지를 안다. 첨단 어군 탐지기보다 정확한 ‘인간GPS’로 불린다. 안개가 자욱히 끼여 사방 분간이 안 되는 바다 한가운데서도 닻의 깊이에 따라 배가 어디쯤 가는지를 정확히 짚어낸다. 어부였던 아버지한테 경험과 실전으로 배운 노하우다.


▲ 백아도 낚시왕 황명규씨

황씨는 섬을 떠나고 싶어 1~2년 정도 인천에서 직장 생활했으나, 직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다시 백아도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배를 탔다. 우럭과 장어를 잡는 어선을 타다 배사업을 시작했지만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쓰러져 반신마비가 오기도 했다. 배를 타다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었다. 전마선을 타고 가덕도를 가다가 사고가 났는데 배에서 밀죽을 끓여먹으며 버티다 살아났다.

황씨의 기억에 옛날 백아도는 고기가 많은 섬이었다. 조기가 바다에 둥둥 떠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그랬던 백아도에 고기가 마르면서 사람들이 하나둘 섬을 등졌다.

그는 백아도에서 공공근로를 하고 시간이 나면 틈틈이 동생과 함께 낚싯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그가 바다에 있는 한 고기를 못 잡는 일은 없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 바다에 나가 낚시하며 고기잡는 게 저의 삶이죠. 모든 게 다 때가 있듯이 고기를 잡을 때도 기다려야 해요” 한 평생 바다와 함께 살아온 ‘백아도 강태공’의 삶의 철학이다.

100여년 이은 고된 섬 생활, 자식들 잘 키운게 큰 행복
백아도 최고령 김영금 할머니

김영금(95)할머니는 백아도 최고령이다. 김 할머니는 19세에 덕적도에서 백아도로 시집왔다. 남편의 나이는 24세였다. 시집올 때는 ‘면배’를 타고 노를 저으며 왔다. 지금의 행정선 같은 배였다. 시댁의 생활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할머니는 갯바위를 넘어다니며 오봉 근처 산에 가서 매일 나무를 지게에 싣고 와 아궁이에 장작을 지펴 밥을 지었다. 궁핍한 생활에 고된 시집살이였다.

할머니는 딸 다섯에, 아들 하나를 낳았다. 계속해서 딸을 낳자 시댁어른들로 부터 핀잔을 많이 들었다. 할머니는 아이들과 살기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만하면서 살았다.


▲ 백아도 최고령인 김영금 할머니와 아들, 며느리.

남편은 배사업을 하면서 꽃게와 민어를 주로 잡았지만 집안을 잘 살피지는 않았다. 밖으로만 떠돌았던 남편을 대신해 할머니는 시각장애인 시어머니 모시고, 애들 키우며, 농사를 지으며 고된 섬 생활을 헤쳐 나갔다.

95세의 고령인 김할머니는 지금도 유모차를 밀고나가 농사를 살핀다. 호박이 잘 익어가는지 직접 보고 밭에 들어가 풀도 뽑는다. 아들과 며느리는 말리지만 평생 해온 일이기에 재미삼아 하는 소일거리다. 김 할머니는 섬에서 100년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제대로 허리한번 펴보지 못하며 일만 하는 고된 삶을 살았지만 자식들이 잘 성장한 것을 인생의 제일 큰 기쁨으로 여기고 있었다.

친정에서 배사업 크게 해 보릿고개는 모르고 살았어요
신풍금(81) 할머니

“고향은 백아도 큰말인데 친정집이 배 사업을 크게 해서 우리는 보릿고개 그런 것은 모르고 살았어요. 친정아버지가 배를 3척이나 부리셨고, 민어와 새우를 많이 잡았는데….”

신풍금 할머니는 9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학교도 못가고 7살때부터 동생들 밥 해주고 집안일하며 살았다. 남편은 친정집의 배사업을 도왔던 사무장이었다. 남편은 결혼 후 독립해 배 사업을 시작했다. 남편은 꽃게와 갈치를 주로 잡았다. 4남매를 둔 신 할머니는 백아도에선 아이들 교육시키는 게 여의치 않자 인천 송현동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 신풍금 할머니는 공공근로를 하며 혼자 살고 있다.

그는 송현동에서 22년간 살면서 아이들을 결혼시키고 손주들도 돌보다가 1996년 다시 백아도로 돌아왔다. 은퇴후 돌아온 고향에서는 낚시꾼들을 상대로 민박과 주낙낚시로 돈을 벌었고 그런대로 잘 됐었다. 남편은 71세에 눈을 감았다. 고향에서 이장을 하면서 해안도로를 만들고 나래호 선착장 조성을 위해 10억 예산을 따내는 등 백아도발전을 위해 동분서주 하다 갑작스레 쓰러진 돌연사였다.

신 할머니는 “예전엔 통통배 타고 덕적으로 가서 하룻밤을 자고, 덕적에서 인천으로 가는 객선을 탔다”며 “아이들 공부시킬 때 그런게 너무 힘들어 인천으로 가게 됐다”고 말한다.

신 할머니는 “지금도 배를 갈아타야 인천을 가는데 노인이 되니까 힘들다며 하루빨리 인천을 직통으로 가는 배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 백아도 선착장 앞 바다는 너무 깨끗하고 아름답다. 관광객들이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글 이용남 i-View 편집위원, 사진 유창호 자유사진가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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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21 20:40:24.0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섬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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