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섬

[인천 섬] 황금조기 넘쳐나는 연평바다로 “돈 실러 가세”

발간일 2022.08.02 (화) 15:15

② 연평도(상)

인천은 누가 뭐래도 바다를 품은 해양 도시입니다. 인천 사람들은 대대로 바다에서 삶을 길어 올렸습니다. 때로 카키, 때론 코발트블루 빛깔로 반짝이는 눈부신 인천의 바다 ‘황해’.
그 황금빛 바다 위로 168개의 보석 같은 섬이 떠 있습니다. 그 가운데 100개가 옹진군에 속한 섬입니다.
옹진 섬에 대대로 터전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점박이물범, 저어새, 대청부채와 같은 동식물이 공존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7월 ‘i-view’가 옹진 섬으로의 여행을 떠납니다. 두 발로 걸어 옹진 섬들을 찾아가는 ‘섬 깊고 푸른 그리움’을 연재합니다. 가슴 설레는 옹진 섬 여행. 즐겁고 행복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돈 실러가세 돈 실러가세, 황금 바다 연평바다로 돈 실러 가세”(연평도 뱃노래)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 연평바다에 어 얼싸 돈바람 분다”(군밤타령) “연평도 물이 말르면 말랐지 내 주머니 돈이 마르랴”(연평도 니나나 타령)

저만치서 황금빛깔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거대한 황금물결은 연평도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석수어(石首魚, 조기)의 등이 수면 위에서 퍼덕거릴 때마다 황금빛깔로 반짝였다. 알이 꽉 차 통통한 조기 떼가 일으키는 물보라에 크고 작은 무지개가 피어났다.


▲ 지금은 꽃게와 새우가 많이 잡히는 연평도는 1960년대 말까지 조기파시로 유명했던 섬이다. 연평도의 밤하늘에 그 옛날 조기파시 때 몰려왔던 황금조기 같은 별들이 총총 떠서 은하수로 반짝이고 있다.

“꾸르륵 꾸꾸!” “부걱 부걱!” 수십만 마리의 개구리들이 한꺼번에 우는 소리 같은 조기 떼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3000여 척의 배 여기저기서 만선의 노래가 터져 나왔다.

“연평바다에 널린 조기, 양주(암수 한 쌍)만 남기고 다 잡아 들이자, 나갈 적엔 깃발로 나가고 들어올 적엔 꽃밭이 되었네, 에헤야 에헤 어하요~”

뱃사람들의 ‘배치기소리’와 조기떼의 울음소리가 오케스트라의 음악처럼 연평도에 울려 퍼졌다. 조기 떼는 안목어장은 물론, 당섬을 넘어 수km 연평도 앞바다를 가득 메웠다. 선원들도 마을주민들도 조기를 ‘퍼 담기’ 시작했다.

‘물 반, 조기 반’ 개도 돈을 물고 다니던 ‘조기파시’의 기억

매화꽃이 필 무렵, 연평도엔 거대한 황금빛을 띤 ‘참조기 떼’가 찾아들었다. 산란을 위해 밀려든 수억 마리의 조기 떼를 잡으려고 수천 척의 배들이 연평도 서쪽에 광활하게 펼쳐진 연평어장에 배를 댔다. ‘사리’ 때엔 조류가 약한 조금에 조업하던 유자망 어선(투망배)들이, ‘조금’때엔 물살이 센 사리에만 조업을 하는 안강망 어선(중선)들이 각각 자리를 잡았다. 조기 한 바가지, 물 한 바가지. 황해도, 경기도, 평안도 등지에서 온 어선들은 조기를 잡으려 애쓰지 않고 닥치는 대로 ‘퍼서’ 담았다.


▲ 드론으로 촬영한 연평도 전경

조기 떼가 들어올 때마다 바다 위의 시장인 ‘파시’(波市)가 섰다. 해안선은 꾸득한 조기와 두릅, 갈가마와 간통(조기절임탱크)이 넘쳐흘렀다. 갓 잡은 조기는 네모난 수조 같은 간통에 2~3일 정도 절인 뒤 해안가에 널어 말려졌다. 배들이 항구에 정박하면 동네 여인들은 물을 팔기 위해 물동이를 이고 줄을 섰다. 동네우물이 마를 때도 있었다.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 아이들은 지천에 널린 알 밴 조기 한 마리를 들고 와 찐빵 1개와 바꾸어 먹기도 했다.

조기파시가 시작되면 한적한 섬마을은 왁자지껄, 흥청망청한 도시로 변신했다. 어획물을 사고파는 어선과 상선은 물론 선구점과 음식점, 목욕탕에서부터 여관, 술집, 대서소까지 들어와 섬 전체가 들썩였다. ‘물새’라고 불리는 여인들이 ‘한 물 뜨러온’ 사내들을 유혹하는 모습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수만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개도 돈다발을 물고 다닌다’는 얘기가 돌아다녔다.


▲ 연평도는 고생대 지질, 해안절벽, 자갈해변, 갯벌에서부터 동백나무 군락지에 이르기까지 생태계의 보고이자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섬이다. 가래칠기해변의 풍광이 눈부시다.

1960년 말까지 조기파시로 1년 먹고, 남은 돈으로 논밭과 송아지도 사

지금은 꽃게로 유명한 연평도는 1960년대 말까지 조기파시로 이름이 높았다. 섬사람들 전부가 조기잡이로 1년을 먹고 살고도 남은 돈으로 논밭을 살 정도였다. 연평도에서 꽃게 등 수산물을 판매하는 토박이 단춘하(54) 씨는 “어렸을 때 어머니 말씀이 조기파시 때는 돈을 세어 보지도 않고 궤짝에 담았다고 들었다”며 “지금은 조기의 수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여러 종류의 수산물이 잡힌다”고 말했다. 단 씨는 연평도 앞바다에서 잡은 꽃게, 조기, 깡치(조기새끼), 장대, 박대, 갑오징어, 밴댕이 등 싱싱한 해산물을 연평여객터미널 수산물판매장과 인터넷을 통해 판매 중이다.

8도에서 ‘배 좀 부린다’는 사람들은 4월~6월이면 연평도를 찾아 ‘한 그물을 뜨고’ 떠나갔다. 많게는 한물에 수백 동(1동=1000마리)씩 떠가는 사람도 있었다. 문화공보부가 주관하는 위문공연(1964)이 열렸고 경기도지사와 수산청장이 방문(1966)했으며, 1967년 정일권 국무총리가 다녀갈 정도로 연평도는 전국적인 주목을 끄는 섬이었다. 1964년엔 ‘눈물의 연평도’란 대중가요가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가수 최숙자가 당시 우리나라를 휩쓴 태풍 ‘사라’에 희생된 연평도 어부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노래였다.


▲ 연평도 토박이 안칠성(65), 단춘하(54)씨. 안칠성 씨는 공무원 출신으로 정년을 마치고 연평도 해설사로 일하며 연평도를 찾는 사람들에게 연평도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해주고 있다. 어려서 어른 팔둑만한 조기를 보고 먹고 자랐다는 단 씨는 지금 연평도 앞바다에서 잡은 꽃게, 조기, 깡치(조기새끼), 장대, 박대, 갑오징어, 벤뎅이 등 싱싱한 해산물을 연평여객터미널 수산물판매장과 인터넷을 통해 판매 중이다.

조선 초기부터 ‘석수어’ 천국, 전라도 칠산·평안도 용암과 더불어 전국 3대 조기어장

연평도 조기잡이 역사는 조선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종실록지리지>는 ‘해주 남쪽 연평평(延平枰)에는 석수어가 나서 봄과 여름에 여러 곳의 어선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그물로 잡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임경업 장군이 연평도에 도착, 안목어장에서 가시나무를 이용해 조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면서 조기잡이가 시작됐다는 이야기는 임 장군에 대한 민중적인 바람이 그를 황해의 조기잡이 신으로 신격화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연평도는 전라도의 칠산어장, 평안도의 용암어장과 함께 조기의 3대 어장으로 불렸다. 신문에서 연평도는 ‘석수어의 천국, 전조선의 찬장, 서조선의 대보고’로 묘사된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을 통해 밀려온 퇴적물들은 조기들의 먹이인 새우와 같은 동물성 플랑크톤을 충분히 공급해주었다. 동중국해에서 겨울을 난 조기들은 2,3월이면 흑산도로 북상하고 3,4월에 안마도와 위도를 지나 4월 하순 연평도로 와 3,40일 동안 산란을 했다. 이때쯤이면 알이 꽉 차 연평도 조기들은 칠산 앞바다 조기에 비해 크기가 컸다.

1910년~1950년 연평도 조기 어획량은 꾸준히 증가했다. 그러나 1946년 2만2500t으로 정점을 찍은 뒤 1950년~1960년대엔 1만t 정도로 줄었고 1968년 이후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춘다. 1969년 정부가 서해어로한계선을 덕적도(37도25분)까지 남하시켜 연평도 어장에서 조업이 불가능했던 데다 유자망·기선저인망 등의 장비를 갖춘 동력선들의 남획, NLL(북방한계선)으로 인한 어업한계 등 복합적인 원인에 따른 것으로 사람들은 추정하고 있다.


▲ 충민사(忠愍祠)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건물로 ‘연평 조기잡이의 시조’ 임경업 장군을 모시던 사당이다. 꽃게잡이가 시작되는 봄이면 연평도 사람들은 충민사에 모여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올린다.


▲ 연평도 고지대에 위치, 2001년에 문을 연 조기역사관에선 연평도 조기파시의 역사를 잘 볼 수 있다. 조기역사관 앞으로 연평도의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지금은 꽃게와 새우로 유명, 가래칠기해변, 구리동해수욕장 등 천혜의 생태계 눈길

연평도에서 조기파시의 역사를 잘 볼 수 있는 곳이 ‘조기역사관’이다. 연평도 고지대에 위치, 2001년에 문을 연 조기역사관에선 연평도 조기파시의 역사를 잘 볼 수 있다.

연평도 토박이로 섬을 찾는 사람들에게 연평도의 역사문화를 설명해주는 안칠성(65) 씨는 “대나무를 꽂아 꾹꾹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잡았는데 1968년까지 조기로 먹고 살았다”며 “지금은 닻자망으로 잡는 꽃게와 안강망으로 잡는 새우가 주 어획물이고 조기는 소량만 잡히는데 대부분 치어를 방류했다 잡는 수준”이라고 말해줬다. 연평도는 바람이 거세다. 안 해설사는 “조기역사관 앞엔 백건우가 연주했던 피아노 모형이 있었으나 2019년 상륙한 태풍 링링 때 날아갔다”고 덧붙였다.

연평도는 고생대 지질, 해안절벽, 자갈해변, 갯벌에서부터 동백나무 군락지에 이르기까지 생태계의 보고이자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섬이다. 조기역사관에서 해안을 따라 북쪽방향으로 가면 가래칠기 해변, ‘빠삐용절벽, 구리동해수욕장을 만난다. 빠삐용절벽은 영화 ’빠삐용‘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탈출하기 위해 바다로 몸을 던진 절벽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구리동해수욕장은 물이 맑고 백사장이 깨끗해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가 높다. 바다를 정면으로 왼편은 해병대가 훈련을 하고, 오른 편은 피서객들이 휴가를 즐길 수 있다.

구리동해수욕장은 물이 맑고 백사장이 깨끗해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가 높다. 바다를 정면으로 왼편은 해병대가 훈련을 하고, 오른 편은 피서객들이 휴가를 즐길 수 있다. 이곳은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백령도의 사곶해변처럼 수송기도 앉을 정도로 모래가 단단했지만, 1970년대 초 판유리공장에서 모래와 자갈을 채취해 가면서 지반이 예전 같지 않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건물인 충민사(忠愍祠)는 본래 ‘연평 조기잡이의 시조’ 임경업 장군을 모시던 사당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당에 충민사란 현판이 걸렸고 유교식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꽃게잡이가 시작되는 매년 봄이 오면 연평도 사람들은 충민사에 모여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올린다.

글 김진국 본지 총괄국장, 사진 홍승훈 포토그래퍼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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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05 10:24:34.0

    글과 사진이 조화롭고 알차지만, 서사가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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