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그때 그 시절] 스토커 김영준, 월미도 사건으로 교수형

발간일 2023.11.14 (화) 16:52
야사(野史), 인천이 더 재밌다 ㉛
120년 전 ‘스토킹’ 사건의 전말

사진 한 장이 아쉽다. 관련한 사진이 전해져 온다면 인천 ‘역사’에 틀림없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지역에 떠돌아다니는 믿거나말거나식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항간에 사사로이 전해져 오는 이른바 이 ‘야사(野史)’는 인천 스토리텔링 확장성에 한몫한다.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이 야사를 시리즈로 모아 보았다. 상상력을 보탠 재미있는 삽화(그림), 팩트와 픽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이야기를 따라 인천의 시·공간을 여기저기 기행한다.

120년 전에도 스토킹이 있었다. 이로 인해 끔찍한 살육이 벌어질 뻔했다. 1900년 11월 19일 황해도 해주에 갔던 언더우드 선교사가 서울의 에비슨 의사에게 다급하게 전보 한 통을 쳤다.

“Omnibus pracfecturies mandatum scerets mittns est In mensis decima Idibus omnes Chretienes occident“ 영어가 아닌 라틴어로 전했다. 번역하면 ”10월에 모든 기독교인들을 죽이라는 비밀 명령이 지방 현감들에게 보내졌음.”


▲ 삽화 김종하

여선교사 조세핀 캠벨은 1897년 10월 한국 선교를 위해 제물포항에 도착했다. 한국 여성복음화와 교육 그리고 계몽에 앞장섰다. 서울 사대문 안 배화여대, 자교교회 등이 그로부터 시작됐다. 캠벨은 중국 쑤저우 선교 때 얻은 중국인 양녀 ‘여도라(余慈度)’와 함께 조선에 왔다. 통상 ‘도라유’라고 칭했던 양녀는 미국 남감리회 해외여전도회가 중국에 세운 중서여숙 의과대학 최초의 졸업생이었다.

도라유는 대한제국 시기 서자 출신의 친러시아 보수파 김영준을 알게 되었다. 그는 고종의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해 경무사(경찰청장)에 올랐다. 김영준은 서자 신분상 양반가의 딸을 맞이할 수 없자, 고등교육을 받은 신여성 중국인 도라유에게 관심을 보이고 구애했다.


▲ 캠펠 선교사의 양녀 도라유

도라유는 세속적인 권력가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완강히 거부하자 김영준은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고종 황제의 칙령을 날조하여 기독교인과 선교사들을 양력 12월 9일 일요일에 모두 살육하라는 통문을 지방 관청에 보냈다.

이 날조된 내용을 해주에 있던 언더우드가 알게 된 것이다. 전보를 보낼 때 한글이나 한문, 또는 영어로 쓰면 전달 도중에 김영준파 관리의 손에 들어갈 것을 우려해 조선인들이 읽을 수 없는 라틴어로 보낸 것이다.

전보를 받은 에비슨 의사는 급히 조선 주재 미국 공사 앨런에게 전달했다. 앨런은 바로 고종을 알현했다. 고종은 살해 금지 칙령을 내렸다. 이것이 스토커 김영준이 꾸민 ‘기독교인 박멸 음모사건’이다.


▲ 개항기 월미도 전경

후에 김영준은 인천과 얽힌다. 1899년 8월 인천 월미도 일대가 요시카와 사타로(吉川佐太郞)라는 일본인에게 불법 매각된 사건이 터졌다. 요시카와는 ‘일-미-러 3국 석탄 저장고와 민가 53호 외 빈 땅은 대일본인 요시카와 사타로 소유’라는 팻말을 네 군데 걸어놓고 자기 땅이라 주장했다. 수사 결과 비서원경이란 관료인 민영주가 요시카와에게 뇌물을 받고 벌인 일이었다.

민영주의 아들 민경석은 이를 수사하던 평리원 재판장 김영준에게 사건 무마를 청탁했다. 김영준은 민경석에게 “민영환을 죽인 뒤 러시아 공사관에 총을 쏘면 일이 덮일 것”이라고 사주했다. 그러나 곧 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고 김영준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도라유는 어찌 됐을까. 그는 김영준의 끈질긴 스토킹에 시달리다 조선에서 꿈을 펼치지 못하고 중국으로 귀국했다. 당시에는 주변에 “건강상의 이유”라 하고 돌아갔다.

글 유동현 (전 인천시립박물관 관장), 그림 김종하 (서해문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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