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야기

[인천 이야기] 바다의 도시 인천 DNA 지켜온, ‘찐’ 선구·그물장인들

발간일 2022.05.25 (수) 16:02
인천역 앞 항미단길, 협성상회 천춘식 · 대성그물 유종대 대표 이야기

국철 1호선 인천역은 항구도시 인천의 역사가 깊게 베인 공간이다. 인천역 뒤편은 인천의 바다가 펼쳐진다. 1974년 경 인천항이 연안부두로 옮기기 전까지 인천항은 인천으로 오고가는 여객선, 소금배, 원양어선, 외국배, 고깃배들의 집결지였다. 수많은 배, 사람들, 생선, 물자들이 이곳에 모였다 떠나갔다.

인천바다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밴댕이, 민어, 간재미, 병어 등 생선들은 인천어시장을 거쳐 팔려나갔다. 어시장이 한창 잘 나갈 때는 아낙들이 고무다라에 생선을 가득넣고 인천역에서 전철을 타고 서울로 생선 행상을 다녔다. 인천경제의 살아 숨 쉬던 심장부였던 셈이다. 인천역 앞은 지금 항미단길(港美團)로 불린다. 인천역 앞에서 한중문화회관 까지 구간으로 항구의 아름다움이 살아있는 거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 국철 1호선 인천역은 항구도시 인천의 역사가 깊게 베인 공간이다. 1974년 경 인천항이 연안부두로 옮기기 전까지 인천항은 인천으로 오고가는 여객선, 소금배, 원양어선, 외국배, 고깃배들의 집결지였다. 사진은 인천역앞 항미단길에 위치한 선구및 어구점 사진.

지금 항미단길로 불리는 이 길은 어업과 배 용품을 파는 어구·선구점들과 한지, 도예, 가죽공방이 어우러져 있다. 항구도시 인천의 DNA를 간직한 어구상가는 대여섯 곳 정도만 남아있을 뿐이다. 예전엔 부두와 가까워 어업과 항만관련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했지만 부두가 이전하면서 어구거리는 쇠퇴했다. 대신 빈 가게에는 문화예술인들의 공방이 들어왔고 거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선구점들의 황금기는 7,80년대였다. 인천항에 들어오는 화물선, 고기잡이 배 뿐 만 아니라 전국의 배들을 상대로 어업도구, 배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팔았다. 상인들은 밀려드는 주문에 납기일을 맞추느라 항상 바쁘게 움직였다. 밤을 새가며 그물을 만들고 선구를 제작했다.


▲ 항미단길에서 가장 오랫동안 선구점및 항만용품들을 판매하고 있는 협성상회 천춘식 대표. 협성상회는 50년 넘게​ 이곳을 지키고 있다.

지금 항미단길 선구·어구점 중 가장 오래된 곳은 협성상회이다. 2대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천춘식(66) 협성상회 대표는 유도선수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선구판매일을 도왔고 10년 정도 아버지 그늘을 벗어나 독립해 상점을 운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집안의 장남이기에 다시 돌아와 아버지의 가게를 지켰고 오랜 세월 잔뼈가 묻어있는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

천 대표는 “아버지한테 선구일과 항만일을 배우며 50년 넘게 이 거리를 지켜왔다”며 “배를 고정시키는 고박줄, 꽃게잡이에 쓰는 스트랑, 그물, 줄, 후크, 와이어 등 수천가지 어업, 선구, 항만에 필요한 물건을 팔았고 장사가 잘 될 때는 직원으로 신문기자를 채용할 정도로 잘 나간적도 있었다”고 말한다.


▲ 협성상회 천춘식 대표.

그는 “예전엔 선구나 항만 물품 등은 이곳에 와야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송림동 공구상가에서도 팔고 있을 정도로 다양해졌다”며 “지금은 물건을 사러오는 사람도 많지 않아 인천선구의 역사를 간직한 살아있는 박물관이라는 생각으로 가게를 지키고 있다”며 번성했던 옛 시절을 그리워했다.

그는 부두가 떠나면서 인천역과 신포동의 상권이 생기를 잃었지만, 이 동네가 앞으로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한다.


▲유종대 대성그물 대표는 45년 넘게 항미단길에서 그물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못 만드는 그물이 없어 그물장인으로 통한다.

대성그물 유종대(79)대표도 항미단길 어구상가들의 흥망성쇄를 지켜본 산증인이다. 그는 이곳에서 45년 넘게 그물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고기잡는 그물부터 체육시설, 어린이놀이시설. 가두리양식장 등 다양한 용도의 수백가지 그물을 제작해 판매한다.

그는 충남 서산이 고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집안의 뱃일을 도우며 그물 만드는 일을 익혔다. 그는 못 만드는 그물이 없고 수십년간 다양한 그물을 만들어왔기에 ‘그물장인’이라 불릴 정도다. 그는 숭어잡는 초코그물, 꽃게잡는 유자망 등을 더 발전시켰다.
유 대표는 예전에는 항미단길에 그물집들이 엄청 많았다고 한다. 안강망, 저인망 등 다양한 고기잡이 그물들이 팔려나갔다.

“제가 처음 이곳에 왔을때만 해도 그물 주문이 엄청 많았어요. 올봄에 쓸 그물을 전년 가을부터 주문을 받아 만들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삼치잡는 그물을 만들려고 가게 지하실에서 날밤을 새며 작업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 대성그물 유종대 대표가 부인과 함께 그물작업을 하고 있다.

고기잡이용 그물은 국내 바다에 고기가 안잡히면서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한다. 단가를 맞추기 힘들기 때문이다.

유 대표는 고기잡이용 그물대신 가두리양식장, 골프장, 실내놀이터, 출렁다리, 낚시터, 엘리베이터 안전망 등에 사용하는 다양한 그물을 만든다. 지금도 그물의 쓰임새는 무중무진하다. 그의 가게에는 그물을 만들 때 쓰던 옛날 대나무 그물바늘부터 지금의 플라스틱 바늘까지 수북했다.


▲ 대성그물 유종대 대표는 그물을 만들때 사용하는 옛날 대나무바늘부터 요즘 나오는 플라스틱바늘까지 다양한 종류의 그물바늘을 보여줬다.

유종대 대표는 80이라는 고령에도 일손을 놓지 않고 있다. 지금도 가두리양식장이나 학교놀이터 등에 설치할 그물 주문이 쏠쏠하게 들어온다.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그물을 필요로 하는 곳이 아직도 많다는 증거다. 그물장인의 여문 손끝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 항미단길에는 오래도록 이곳을 지켜온 선구, 어구점들과 문화예술인들의 공방이 함께 하고 있다. 

글 이용남 i-View 편집위원, 사진 이정미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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