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야기

[인천 이야기] 놀이동산 추억하며 수봉공원 아래 동네로 깃들다

기간 2021-05-10 ~ 2021-05-31 발간일 2021.05.12 (수) 14:32


임기웅 영상감독, ‘동구 밖 숨바꼭질 수봉展
이것은 왜 집이 아니란 말인가’


미추홀구는 인천의 오래된 역사를 품은 동네다. 중구, 동구 원도심과는 달리 70~80년대 풍경을 간직한 곳이 많고, 인천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다. 이름도 정겨운 숭의, 도화, 주안, 용현동 등 그 한복판에 수봉산(壽鳳山)이 솟아 있다.


▲현재 수봉산 아래 동네.  단독주택과 저층 연립주택이 섞여 있는 동네다.


원래는 ‘서해에서 떠돌다가 지금의 자리로 흘러들어 왔다’라는 전설 때문에 ‘물 위의 봉우리’란 뜻의 ‘수봉산(水峯山)’ 이라는 뜻이었는데, 지금은 목숨 ‘수(壽)’에 봉황새 ‘봉(鳳)’자를 쓴다. 숲이 우거진 이곳을 수봉산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수봉공원이라 말한다.
 

100m가 조금 넘는 나지막한 수봉공원은 1979년 놀이시설이 들어서면서 인천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소박한 놀이기구들이었지만 휴일이면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나들이객으로 작은 놀이단지는 북적였다.
 


▲수봉공원 옛사진​. 놀이공원은 지금 중년의 인천시민들에겐 유년의 추억이 깃든 장소다.


아쉽게도 놀이단지는 30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2007년 인근 주민들의 민원과 안전상의 이유로 철거되었다. 여전히 많은 인천사람이 수봉공원에 놀이기구가 돌아가던 시절의 풍경을 기억한다. 유년시절 놀이기구를 탔던 기억과 부모가 되어 자녀를 놀이기구에 태우며 행복해하던 지난 시간을 추억한다.


‘산이라기는 뭐한 뒷동산에서 회전목마를 타는 꿈을 꾸었네

놀이기구가 있는 풍경 속에서 나는 벅차는 맘을 숨길 곳 없네’ (노래 ‘수봉공원’, 이권형)


연인들을 태우고 큰 원을 그리며 돌던 허니문카와 아이들로 하여금 함성을 지르게 했던 놀이기구는 사라졌지만, 70년대 세워진 수봉공원의 상징물인 현충탑, 학도의용군 참전비, 인천 지구 전적비, 자유 평화의 탑, 반공회관 등은 여전히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반공을 주제로 사생대회를 열곤 했던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수봉공원 옛사진


수봉공원 기슭을 따라 사방으로 뻗은 경사지에 저층 주택이 옹기종기 들어선 동네들이 자리한다.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되거나 곧 아파트단지로 바뀔 곳도 있지만, 아직 동네 모습이 남아 있어 수봉공원 자락에서 바라보니 정겹다.


수봉공원 꼭대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1973년 숭의초등학교 용정분교로 개교한 용정초등학교가 ‘우뚝 솟은 수봉산 아늑한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용정초등학교 주변에는 단독주택과 저층 연립주택이 섞여 있는 햇살을 담뿍받고 있는 동네가 있는데, 이곳에서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인천에서 영상물을 창작하고 동네 이야기를 담은 전시를 꾸준히 이어온 임기웅 영상감독은 ‘동구 밖 숨바꼭질 수봉展_이것은 왜 집이 아니란 말인가’라는 이색적인 이름의 전시를 열고 수봉공원에 대한 추억과 자신이 살았던 집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임기웅 감독. '동구밖 숨바꼭질 수봉전'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10년 동안 이사를 참 많이 다녔어요. 세입자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했는데, 부동산 시장에서는 세입자가 마치 건물에 껴있는 상품처럼 거래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러웠죠.” 그래서 산꼭대기에 있는 낡은 빌라지만, 월세보다 싼 원리금을 낼만큼의 융자를 내서 ‘내 집’을 마련했다. 제물포역에서 걸어 15분 거리의 역세권이고, 너구리를 가끔 마주치는 숲세권이다.

하지만 집을 사고 처음 들은 말은 “아니 아파트를 사야지 빌라를 왜 사?”였다. “아파트 외에는 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저는 한 달에 몇 백 만 원씩 융자 빚 갚으면서 살고 싶진 않아요.” 임기웅 감독은 10년을 이사하면서 머물렀던 방 혹은 집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그 생각과 내가 앞으로 살아갈 동네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었다.



▲  '동구밖 숨바꼭질 수봉전- 이것은 집이 아니란말인가'  전시 장면


임 감독이 전에 살고 있던 집의 임대 기간이 아직 몇 개월 남아, 새로 산 집의 단장을 마치고 잠시 비어 있을 시간을 이용해 전시를 열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살았던 다양한 형태의 공간을 미니어처로 만들고, 글을 쓰고, 2011년 제작했던 수봉공원 다큐멘터리 영상과 주제와 관련된 사진들을 정리해서 집들이 전시를 열었다.

임 감독이 25살 처음으로 독립해서 살았던 곳은 고시원이었는데, 총무 일을 맡아서 방값을 내지 않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고시원을 우울한 곳으로 생각하지만, 저는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기쁨이 더 컸어요. 밖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와 고시원 사람들하고 같이 밥도 먹고 어울리면서 즐거웠어요.” 대중매체는 고시원 생활을 비참한 이미지로만 비추지만, 그는 공동체를 느낄 수 있었던 행복한 시절로 기억한다.

다음에 살았던 곳은 인하대 후문 쪽에 있는 ‘기숙방’이었다. 하숙도 기숙사도 아닌 기숙방은 밥을 주지 않는 방한 칸 형태의 주거지로, 월세가 저렴하고 보증금이 없는 임대공간이다. 대학생들로 활기찬 동네였지만, 혼자 방에 처박혀 외로웠던 적이 많았다.

이후로도 지인이 빌려주어 살았던 상가주택, 월세 자취집, 연(年)세 낡은 아파트 등 여러 동네, 다양한 공간에서 살았다. “나중에 보니까 기록이 남지 않은 곳은 하나같이 빛이 들지 않는 곳이더라고요. 반 지하 같은 어두운 공간에 살던 때죠. 사람은 본능적으로 밝은 곳, 좋은 것만 기억하고 싶은가 봐요.”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오색 풍선에 매달려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아담한 이층집 미니어처다. 영화 ‘UP’에서 엄청나게 많은 풍선을 매달고 하늘로 날아가던 집이 떠올랐다. 빛이 잘 드는 창이 사방으로 뚫린 방과 친구들이 맘껏 머물 수 있는 공유공간, 공구 작업을 할 수 있는 주차장이 딸린 집이 임 감독이 꿈꾸는 로망이다.

수봉공원 동네 주민으로서 수봉공원에 대한 옛 기억도 풀어놓고 싶었다.

‘작은 산 위에 바이킹과 범퍼카, 다람쥐통, 허니문카가 반짝이며 돌아간다. 비교적 작지만 아기자기한 놀이기구는 마을 어린이들에게 디즈니랜드, 캐리비안베이보다 훨씬 즐겁고 친숙한 공원이었다. 서민들의 작은 놀이동산이 있던 이곳을 이야기한다.’

임 감독은 수봉공원 놀이공원이 사라진 것이 아쉬워서, 2011년 다큐멘터리 영상을 만들었다. 10분 분량의 영상에는 놀이기구를 타던 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인터뷰와 옛날 공원 사진이 임 감독의 내레이션과 함께 담겨있다. 영상을 보는 내내 깊이 잠들어 있던 유년 시절의 설렘과 짜릿함이 뭉게뭉게 피어나면서 수봉공원에 오르고 싶어졌다.


▲수봉공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별빛 축제'. 조명과 미디어 아트 랩핑으로 공공 곳곳을 아름답게 수놓아 밤마다 사람들을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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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보고 밖으로 나오니 해가 저물었다. 요즘 매일 저녁 일몰부터 밤 11시까지 별빛이 머문다는 수봉공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봉공원 ‘별빛 축제’는 조명과 미디어 아트랩핑으로 공원 곳곳을 아름답게 수놓아 밤마다 사람들을 유혹한다.

아름드리나무가 우거진 숲속에 설치된 목재 데크 산책로 ‘무장애 나눔길’에 오르니 나뭇잎 사이로 별빛이 쏟아지고 3차원 빛으로 구현된 산짐승들이 나무 사이를 노닌다. 누구나 걸을 수 있도록 배려해서 만든 아름다운 무장애(無障礙) 길이 해가 지면 더욱 환상적인 공간으로 변신한다.

캄캄한 수봉공원 곳곳에 쏟아져 내리는 별빛 아래, 사람들의 행복한 얼굴이 더 환하게 빛난다. 공간과 사람이 어우러져 새로운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생생한 수봉공원의 이미지가 과거의 추억과 공명하면서 다채로운 색깔로 피어나는 아름다운 5월의 밤이다.


▲현재 수봉산 아래 동네​. 빨간색, 파란색, 녹색의 예쁜 단독주택 지붕들의  모습이 정겹다.

■ 동구 밖 숨바꼭질 수봉展_이것은 왜 집이 아니란 말인가
○ 기간 : 2021. 5월 말일까지
○ 장소 : 용정초등학교 후문 부근 ‘임기웅 감독의 집’
○ 예 약: 전화나 문자로 시간 조율하여 관람 가능함. 010-2290-1397
※ 무료관람으로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5인 미만일 경우만 관람 가능합니다.
글·사진 박수희 i-View 객원기자, suhipar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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