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야기

[인천 이야기] 독립운동 산실 송도고, 항일운동가 발굴

발간일 2021.02.24 (수) 15:45

의병·독립운동가 연구 대가, 인천대독립운동사연구소
이태룡 소장

올해로 3.1절이 102주년을 맞는다. 선열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기리는 날이다. 그런데 아주 긴 시간 동안 가려졌던 선열들을 발굴하고 연구해 오며 서훈을 추천해 온 이가 있다.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 이태룡 소장이다.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 이태룡 소장​

 



​송도고보 관련 사건 집중발굴 해 서훈 신청​


이 소장이 운영하는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는 지난 2월 16일 독립유공자 316명을 발굴, 포상신청 설명회를 가졌다. 포상신청 대상자는 송도고보(송도고 전신)와 관련된 ‘한영서원 찬가집 사건’, ‘송도격문사건(개성격문사건)’ 관련자, 그리고 송도고보 출신으로 1934~38년까지 반제국주의 활동을 하다 순국하거나 붙잡힌 73명 등이다.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는 316명의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설명회를 가졌다.


“이번엔 ‘송도고보’ 건을 철저히 조사했습니다. 일본 외무성에 공개된 자료를 가져와 그걸 분석해야 하는데 자료들이 일본 고어로 돼 있는 데다 번역이 쉽지 않아 시간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작업이었죠.”


2019년부터 발굴이 시작된 송도고보 건은 2년에 걸쳐 작업이 진행됐다. 이 소장은 “한 사람과 관련되었던 인물이 줄줄이 발굴될 경우 모두 서훈 신청을 하려다 보니 1년 이상 걸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송도고보 외에도 이번에 서훈 신청한 316명 중에는 1926년 융희황제 순종 인산일, 일장기에 검은 리본을 달라는 조선총독부 지시를 어기고, 정읍 읍내에 백기의 물결을 이루게 했던 최태환 지사도 포함됐다.


 

그는 “따님인 최영임(88) 여사가 선친의 공적을 정리해 20여 년 전부터 포상신청을 해왔지만, 번번이 공적 미비 등을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번에 함께 추천했다”고 밝혔다.


▲송도고등보통학교 교사 이상춘 -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2년 복역 후 만기 출소 (매일신보 1936.05.15)


▲한영서원(송도고등보통학교 전신) 개교 1주년(1907) 모습.(뒷산이 개성 송악산)


▲'개성격문'사건, 송도고보생 20여명을 검거했다는 내용의 신문보도




전국 대학 유일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는 2019년 5월 출발해 지난해 2월 정식 발족 됐다. 전국 대학과 대학원 중 독립운동사연구소가 설치된 곳은 인천대학교가 유일하다. 계기는 최용규 이사장과 조동성 전 총장, 이태룡 소장의 의기투합에서 비롯됐다.


이 소장은 “조동성 전 총장의 경우 할아버지 여동생이 조마리아 여사로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데 안중근 의사는 널리 알려진 데 반해 그와 함께 했던 많은 독립유공자들은 묻혀 있어 안타까웠다”며 “우리나라 순국선열을 15만 명으로 추정하는데 그중 포상이 이루어진 경우는 겨우 1만6400여 건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국가보훈처에서 일 년에 350여 명 정도를 발굴하는데 국립대학인 인천대에서 먼저 독립운동사연구소를 설치해 발굴을 지속한다면 더 많은 대학이 참여하지 않겠나 싶어 힘을 합치게 됐다”고 전했다.




‘의병 문학 연구’, ‘의병과 독립운동가’ 발굴 대가


이 소장은 사범대 국어교육과 졸업후 박사과정에서 한국 의병문학을 전공했다. 1986년부터 의병연구를 시작해 20여 년 넘게 연구에 몰두했다.

 

“사실 사기진작을 위해 만든 의병 가사나 의병들이 보낸 서간문, 활동하다 전사한 경우 사용했던 제문 등에는 의병들의 삶이 녹아있어요. 그런데 이런 내용을 정리해 놓은 자료가 거의 없었죠. 문학사에서 중요한 것이 어느 특정 시기, 특정한 삶이 담겨있어야 하는 것이라면, 1895년~1910년까지 우리 민족의 흐름은 의병이었기 때문에 의병 문학을 빼놓을 순 없죠.”
 


▲이번에 독립유공자로 발굴된 송도고학생들과 일반 항일투사들


이 소장이 의병연구를 하게 된 또 하나의 계기는 실제로 그의 집안에도 의병활동을 했던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숙이 18세 때 의병활동을 했어요. 경남 진주에 있는 병기창을 다른 두 분과 함께 폭파한 후 목숨을 잃으셨죠. 당숙의 활동으로 고문을 당한 큰할아버지는 넉 달 만에 돌아가셨고, 이어 1910년에는 왜놈 앞잡이의 방화로 할머니 두 분마저 돌아가셨지요.”

 

그는 20여 년 넘게 전국의 의병을 대상으로 연구 활동을 해오다 포상신청이 안 된 828명을 6년 동안 정리해 한꺼번에 포상신청을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2년부터 서훈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제가 신청하려고 했을 때 900명이 채 안 되더라고요. 제 경우는 이번에 발굴, 신청한 인원까지 총 4천 명이 넘습니다.”

 

그는 또 “의병은 다른 지역이나 산에서 싸우기 때문에 더더욱 그들의 삶을 추적하는 일이 쉽지 않다”라며 “의병활동 하다 독립지사가 된 사람이 많고 서로 연결되는 부분도 있어 13년 전부터는 독립유공자를 발굴해 포상신청을 해오고 있다.”라고 전했다.
 



나라 위해 희생하신 분들 공적발굴, 당연한 일


이 소장은 의병활동 연구의 대가로 통한다. 그동안 연구하며 펴낸 책만 해도 총 38권이며, 그중 의병 관련된 책만 30권이다. 그는 여전히 연구소에서 일제강점기에 반일 투쟁이나 반제국주의 활동을 하다 순국했던 독립운동가 발굴에 힘을 쏟고 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전문인력을 확충해 대상자를 발굴, 포상을 신청할 계획이다.

그는 “나라를 잃지 않으려고 일어섰던 분들과 잃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활동했던 분들의 공적을 찾아 그 얼을 기리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라며 “목숨까지 바치신 분들에 비하면 우리가 이런 분들을 찾아주는 것은 무척 쉬운 일이고 누구의 자손이나 후손이기 때문에 관심 가져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제5차 독립유공자 316명 포상신청설명회

 

​송도고 독립유공자 발굴과 서훈신청과정



■ 송도고 전신인 송도고보

송도고보는 현재 연수구에 위치한 송도고등학교의 전신이다. 1906년 개성에서 한영서원으로 개원했다. 1917년 송도고등보통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은 후 1952년 인천으로 이전했다. 초대원장 윤치호가 설립자로 알려졌던 기존 내용과 달리 미국 왓슨 목사가 설립했다는 사실이 최근 새롭게 밝혀졌다. 



■ ‘한영서원 찬가집 사건’

송도고보와 관련된 것으로 1916~17년 사이에 있었던 사건이다. 이 소장에 따르면 송도고보 출신이던 이경중이 북간도에서 가져온 찬가집(음악책)을 본떠 우리나라 위인의 업적을 기리는 가사로 99곡을 만들었다. 그것을 학교 교직원들이 필사해 송도고보, 호수돈여고보 등에 배포했는데 일부 가사였던 ‘일본 여왕을 가비로 삼고 왜 왕을 하녀로 삼아’라는 내용이 일제에 알려지면서 교직원 28명이 잡혀가 고문을 당하고 학생들은 퇴학당한 사건이다. 



■ ‘송도격문사건(개성격문사건)’

1932년 4월 27일, 개성거리와 송도고보 강당 등에는 일제의 만주침공을 비판하는 격문이 붙었다. 이로 인해 송도고보 학생 20명, 호수돈여고보 학생 1명이 잡혀가 고문을 당했다. 그때 옥사한 사람 중 한 사람은 서훈을 받았으나 한 사람은 받지 못해 이번에 추천되었다. 



■ 송도고보 출신 등 지식인들 반제국주의 활동

1934년~38년까지 송도고보 출신 등 지식인들이 반제국주의 활동을 위해 사회에서 노조를 만들어 활동을 벌이다 순국하거나 붙잡혀간 사건이다.


김지숙  i-View 객원기자 jisukk@hanmail.net


댓글 0

댓글 작성은 뉴스레터 구독자만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구독신청

※ 뉴스레터 신청시 입력하신 이메일 주소를 입력해주세요.

Main News

Main News더보기 +

많이 본 뉴스

주간 TOP 클릭
많이 본 뉴스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