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야기

[인천 이야기]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가 걸었던 그 길을 가다

발간일 2020.10.21 (수) 16:20

10월 24일 ‘어느 여성 노동자의 길’ 행사 열려

한 사람이 내디딘 첫걸음이 흔적을 만들고, 그 흔적을 따라 여러 사람의 발걸음이 이어지면 길이 만들어진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길 위에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이고, 그 위에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간다.

만석동, 송월동, 화수동 일대에는 동일방직 공장 정문으로 이어지는 ‘어느 여성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이 담긴 여러 갈래길이 있다. 그중에 ‘인천 도시산업선교회’로 이어지는 길에는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저항이 유난히 두텁게 쌓여 있다.

“만석동 동일방직에서 화수동 일꾼교회(옛 인천산업 도시선교회)에 이르는 700m의 거리를 ’어느 여성 노동자의 길‘로 기념하고 싶다. 그 길을 걸으면서, 당연시되는 우리 일상의 여유와 평화가 사실은 어느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음을 잊지 않고 싶다.”


▲동일방직 정문

동일방직 정문에서 본 풍경​(스케치는 이웃 제공)


만석 고가가 끝나는 곳에 붉은 벽돌 담장을 두른 오래된 동일방직 인천공장이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34년 문을 연 이곳은 지금은 공장 가동을 멈춘 채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솜을 틀어 실을 뽑고 천을 짜는 방적, 방직 노동은 손이 야무지고 임금이 싼 여성 노동자를 필요로 했다. 직물 생산이 호황기를 누리던 70~80년대에는 1,200명이 넘는 여성 노동자가 동일방직 공장에서 근무했다.


가난했던 시절 우리의 ‘누이’들은 가족을 돕고 돈을 벌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누이들의 노동으로 형제들은 학교에 다닐 수 있었고 국가 경제는 좋아졌지만, 그들의 노동 현장과 근무 여건은 너무도 열악했다.

당시만 해도 공장은 사람이 아닌 제품 생산에 모든 것이 맞춰져 있어 실내 공기는 일 년 내내 40도를 웃돌았다. 땀이 비 오듯 하고 탈진하지 않기 위해 왕소금을 먹어야 할 정도였다. 노동자들은 탈의실도 샤워실도 없어 쉰내 나는 몸으로 퇴근해야 했다.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근로시간, 임금 등 가장 기본적인 것들도 지켜지지 않았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 부품처럼 고된 노동의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했다.


화수동 오르막길​(스케치는 이웃 제공)


1961년 화수동에 터를 마련한 인천 도시산업선교회(인천산선)는 노동,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천의 노동자들과 다양한 소모임을 만들어 함께 운영하고 공부했다. 이곳에서 공부한 여성 노동자들이 주축이 되어 70년대 동일방직 민주노조 운동을 이끌었다.


어용노조를 물리치고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노조 집행부를 구성하여 근무환경 개선과 노동자 인권을 위해 애썼지만, 회사와 국가의 집요하고 혹독한 폭력과 탄압이 이어졌다. 1978년 노조 대의원 선출을 위한 투표를 강제로 저지하기 위해 사측에서 여성 노동조합원들에게 똥물을 뿌린 어이없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후 124명이 해고됐고 그후 그들의 고단한 복직 투쟁이 시작됐다.



▲인천산전 관련사진


인천산선은 노동자들과 함께 지금도 진행 중인 힘겨운 투쟁의 발걸음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 지금은 일꾼교회 이름으로 지역과 함께 하는 사회복지기관의 역할도 맡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의미 있는 공간인 동일방직과 일꾼교회가 여기 인천 동구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근현대사의 역사적인 공간입니다.” 일꾼교회 김도진 목사는 이곳에서 당시 노동운동을 펼쳤던 이들에 대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흔적을 새겨야 한다고 말한다.


“재개발 구역에 묶여 있는 일꾼교회는 곧 없어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길에 쌓인 노동운동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이 길을 함께 걷는 행위를 통해 우리의 손과 발 근육에 산 역사를 기록하고 싶습니다.”

인천 시민문화예술 활동을 지속해서 확장해온 ‘스페이스 빔’이 ‘기독교 도시산업선교회기념관’과 손잡고 지난 여름부터 ‘어느 여성 노동자의 길’ 예비걸음을 시작했다. 지난 6~7월 스페이스 빔 1층에서 ‘산업화 시대 인천 만석동과 화수동의 여성, 노동, 인권 운동’을 주제로 5차례의 강좌를 열었다.


▲어느노동자의 길 행사가 있기전에 열렸던 강좌


▲행사 준비위원회가 체험길을 미리 답사하고 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7월 22일 오전 ‘어느 여성 노동자의 길’ 도보 순례를 준비하는 첫 모임이 있었다. 스페이스 빔, 일꾼교회, 인천민주화운동센터, 인천여성노동자회, 창작집단 도르리, 인천 나눔의집, (사)서해문화, 권근영×송김경화×이연주, 책방 모도, 어번스케쳐스 인천이 뭉쳤다. 매주 만나 함께 길을 걸으며 의미를 되새기고, 머리를 맞대고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10월 23일 금요일 저녁 7시, 전야 행사로 영화 상영을 한다. 스페이스 빔 2층에서 다큐멘터리영화 ‘위로공단’을 보고 감독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마련된다.


10월 24일 토요일 아침 10시, 도보 순례를 시작한다. 1부는 동일방직 정문에서 붉은 벽돌 담장을 따라 한 바퀴 걷는 ‘혼자 걷는 길’이다.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출퇴근길 풍경, 작업 환경, 월급날, 대한민국 최초 여성 지부장의 탄생 이후 회사와 국가의 탄압에 맞선 여성 노동자들의 시간과 길을 오롯이 혼자 느껴보는 시간이다.


2부는 다시 동일방직 정문에서 일꾼교회까지 다 함께 걷는 ‘함께 걷는 길’이다.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과 동시대의 노동자인 우리가 만나 함께 길을 걷는다. 길 위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이어가는 시간이다.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동일방직과 화수동 일대를 그린 ‘여성 노동자와 함께 걷고 그리는 어반스케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오후에는 일꾼교회 옆 정원에서 토크콘서트와 작은 공연이 펼쳐진다. 동일방직 노동자, 도시산업선교회 활동가, 지금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가 함께하는 열린 대화의 자리와 ‘기타등등’, ‘인천콘서트챔버’ 공연팀의 음악을 나누는 시간이 마련된다. 쌍우물 주변에서는 인천 나눔의 집에서 진행하는 벼룩장터도 열린다.

▲화수동 일꾼교회(스케치는 이웃 제공)

 

▲화수동 일꾼교회


도보 순례 후 일주일 동안 열리는 행사도 마련했다. 일꾼교회 현관과 마당에서 기록 사진전이 진행되고, 책방 모도에서 ‘비움과 채움, 사상의 재개발’ 사진전과 도서전이 열리며, 문화공간 도르리에서는 ‘한땀한땀, 잇다’ 영상·사진전이 펼쳐진다.


함께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역사로 넘어 들어가는 문턱이 된다.


“여기 이곳에서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불합리한 노동의 현장을 바꾸어 상실된 노동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여성 노동자들의 시간은 동시대 노동자들의 시간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있습니다. 동일방직 공장은 오래전 멈춰버렸지만,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 <어느 여성 노동자의 길> 행사는 코로나 19 방역지침을 준수하여 진행된다.
문의 : 032 422 8630





글·​ 사진 박수희 i-View 객원기자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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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27 06:04:56.0

    나의 이모, 고모, 사촌누나가 걸었던 길..

    수정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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