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성공회 온수리성당 고상만씨의 삼종지기 인생
오후 3시30분, 철학자 칸트는 늘 이 시간에 산책을 했다. 얼마나 시간이 정확하고 일관됐던지 사람들은 그의 등장으로 시간을 가늠했다. 훗날 시간에 철두철미한 사람들의 별명이 모두 ‘칸트’가 된 연유이기도 하다. 강화도 온수리에도 25년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오전 6시, 오후 6시가 되면 종을 치는 ‘칸트’가 있다. 성공회 온수리 성당 종지기 고상만씨가 그 주인공. 사반세기 종지기로 살아온 그의 삶을 들어본다.
▲ 강화 성공회 온수리 성당(성 안드레와 베드로 성당) 전경.
아직은 어슴푸레한 3월 초입의 새벽 5시50분, 성공회 온수리 성당(성 안드레와 베드로 성당)에 도착했다. 이곳의 교회는 독특하게도 한옥 양식을 취하고 있다. 종이 설치돼 있는 대문도 솟을대문이 있는 전통 한옥 방식이다. 100여년 전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가 강화섬에 정착하면서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는 의미로 한옥 방식의 교회를 세웠다. 이를테면 현지화 전략이다. 외부의 한옥양식과 내부의 바실리카 교회 양식의 절묘한 조화는 100여 년이 지난 지금 강화섬을 상징하는 역사가 됐다. 교회가 세워진 후로 오전 6시와 낮12시, 오후 6시 하루 3번 삼종이 울려 퍼졌다. 시간을 알리는 역할인 동시에 종소리에 맞춰 서로의 안녕과 평안을 기도하는 의미였다고 전해진다.
“1997년 즈음 종지기를 시작했으니 햇수로 25년이나 됐네요.” 아직은 뼛속까지 시린 이른 아침. 고씨는 6시가 되길 기다리며 경건히 몸을 가다듬는다. “누가 추천하거나 시켜서 할 일이 아니에요. 앞선 종지기도 그랬고 저도 마찬가지죠.” 이윽고 아침 6시를 알리는 휴대전화 알람소리가 들린다. 지팡이에 의지해 자리에서 일어나 종에 연결된 줄을 잡는다. 힘차고 절도 있게 종을 친다. ‘대앵 댕 댕’ 세 번의 종이 한 번의 움직임에 울린다. 다시 잠시간의 침묵, 다시 힘있게 종을 친다. ‘대앵 댕 댕’ 그렇게 한 번 더 종을 친다. 세 번씩 3회의 종을 치기 때문에 이 종을 울리는 지기를 삼종지기라고 불렀다. 지금은 9대째 삼종지기인 고상만씨가 종을 울리고 있다. 앞선 종지기들은 평균적으로 3~4년 종지기로 활동했다.
▲ 아직은 어슴푸레한 3월 초입의 새벽 5시50분, 성공회 온수리 성당(성 안드레와 베드로 성당), 삼종지기가 종을 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100여년 전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가 강화섬에 정착하면서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는 의미로 한옥 방식의 교회를 세웠다. 교회가 세워진 후로 오전 6시와 낮12시, 오후 6시 하루 3번 삼종이 울려 퍼졌다. 시간을 알리는 역할인 동시에 종소리에 맞춰 서로의 안녕과 평안을 기도하는 의미였다고.
▲ 오전 6시 시간에 맞춰 종을 치고 있는 고상만씨.
집이 걸어서 코앞이지만 장마철엔 잠시 간의 움직임에 온 몸이 비에 젖기 일쑤고 겨울엔 동상을 늘 달고 살았다. “25년 중 1년은 종 줄을 못잡았어요. 허리에 인공 뼈를 심고 옆구리에 우럭만큼 큼직한 염증 두 개를 빼는 큰 수술을 받았으니까요.” 그 시간을 빼면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이곳에 있었다. “종을 치면서 주변에 아픈 사람, 장사가 잘 안 돼 시름하는 사람, 큰일을 앞둔 사람, 모든 교인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해요.” 몸짓 하나, 자세 하나 정갈하고 경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진심이 25년을 늘 이곳에 있게 했을 터. “수술하고 나서 의사가 더 쉬라고 했지만 제 일이니 가만히 앉아 쉴 수가 없었어요. 오히려 종을 잡고나니 금방 건강해졌어요. 지금은 끄덕 없어요.”
마을 사람들은 종지기 덕분에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교인들은 이 시간에 맞춰 자기만의 작은 의식을 드릴 터. 종지기를 시작할 무렵 고씨의 직업은 농부였다. 농사하랴, 종줄을 잡으랴, 마을 일 도우랴 하루는 늘 치열했다. “25년을 종을 잡으려면 멀리 여행도 못가고 자기 삶을 살기 위한 시간이 없지 않았어요?”라는 필자의 질문에 “에이 시간이 왜 없어요? 봉사활동도 하고 길상면 게이트볼 회장도 하고 있어요. 틈틈이 공부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땄는 걸요”라며 웃어보였다.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시간을 잘 쓰는 사람이었다. 괜히 ‘온수리 칸트’가 아니었다.
▲ 오후 6시에 맞춰 종을 치고 있는 고상만씨.
원래는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을 치지만 점심은 약속이나 모임, 활동이 많아 종종 종줄을 잡지 않는다고. 대신 아침과 저녁은 무슨 일이 종 시간을 놓치지 않는다. 이 외에도 예외적으로 종을 칠 때가 있는데 이때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 새벽 2시에 치는 일이 있다고도 한다. 바로 마을의 교인이 돌아가셨을 때다. “돌아가신 분의 나이만큼 종을 칩니다. 많을 땐 1년에 15번이나 종을 울렸죠. 요즘엔 다들 건강하신지 종을 울리는 일이 많지 않아요. 지금까지 130여 분을 보내드렸네요.” 동네 사람은 종소리만으로 마을에서 누가 상을 당했는지 알았다고 한다.
사반세기를 삼종지기로 살았다. 40대였던 그는 어느새 70대에 접어들었다. “언제까지 할지 다음엔 누가 할지 아무 것도 몰라요. 진심으로 우러나서 하는 일이니까요. 큰 수술을 했지만 종을 다시 잡으니까 건강도 많이 회복했습니다. 남들은 고생이라지만 제가 더 감사한 일이죠.” 종을 치면서 기도해준 사람 중엔 국회의원이 된 사람도 있고 장사가 번성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 없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심을 다해 기도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죠.” 부디 그가 울리는 종소리가 오래도록 들려오길 바라본다.
글· 사진 안병일 강화 책방시점 대표, 자유기고가
댓글 0
댓글 작성은 뉴스레터 구독자만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구독신청※ 뉴스레터 신청시 입력하신 이메일 주소를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