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칼럼

[기획 · 칼럼] '남진쇼'가 열려 성황을 이뤘던 지역의 명소

발간일 2021.08.02 (월) 15:11


애관(愛觀)의 도시, 인천의 극장사 ㉚
현대극장​


인천에서 태어나 초중고 학창시절을 보냈고 결혼도 인천에서 했다. 당연히 인천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면서 느낀 점은 정작 인천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학창시절 자주 갔던 애관극장이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 정확히 말하자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극장이라는 사실을 불과 5년 전에 알 정도였다. 몇몇 분들에게 이를 여쭤보니 알고 계신 분들이 적었고 애관극장과 함께 자주 갔던 현대극장, 미림극장, 오성극장, 인천극장, 자유극장 등등 사라진 옛 극장들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본 칼럼을 통해 사라진 인천의 옛 극장들이 인천시민 개인에게는 추억이었으며, 인천에는 평생 친구였고 우리나라에는 역사였다는 것을 조명하고자 한다.

 


▲ 현대극장은 1961년대 송림동 105번지에 개관했다. 사진은 1960년대 초 현대극장, 출처 최성연, 화도진도서관


현대극장은 1961년 송림동 105번지에 개관했다. 500평 규모의 2층 건물이었다. 필자가 송현동에 살 때 미림극장, 오성극장이 가장 가까웠지만 거긴 비싼 극장이었다. 그에 비해 현대극장은 반값에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영화 포스터를 붙이는 아저씨를 기다렸다가 할인권을 얻으면 반의반값에 영화를 볼 수도 있어 가장 많이 간 극장이었다. 시설도 나쁘지 않았다. 매표소를 지나 극장 입구로 들어가면 로비가 있었고 가운데에 TV를 틀어주던 휴게실, 좌우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재상영관이었지만 초등학생인 나에게는 개봉관이나 다름없었다.


▲ 현대극장의 1960년대 중반 모습. 출처 최성연, 화도진도서관


첫 번째, 두 번째 사진을 보면 극장 주위에 별다른 건물이 없어 유독 현대극장이 도도라져 보인다.



▲ 1964년 12월 22일 조선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64년에 전국역도선수권대회가 인천남고교 체육관에서 열렸고 미스터 코리아 선발대회가 현대극장에서 펼쳐졌다. 장신부, 단신부, 학생부가 있었는데 장신부는 신장 168m 이상이라는 기사 내용이 흥미롭다.



▲ 현대극장에서는 한국청년회의소 창립 20주년 기념식이 열렸는데 이 기념식에는 국무총리가 참석했다. 이 내용을 담은 1971년 3월 20일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현대극장에서 한국청년회의소 창립 20주년 기념식이 열렸는데 무려 국무총리가 참석했다. 백두진 총리는 “경인고속도로 덕택에 너무 빨리 도착했다.”라며 고속도로 PR을 했다. 경인고속도로는 1968년에 개통된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다.

▲ 현대극장의 1988년 모습. 출처 동구청

현대극장은 관객들이 제법 많은 극장이었다. 송현동, 송림동 사람들이 주로 갔지만 서구 사람들도 서구 지역에 극장이 없어 현대극장을 애용했다. 또한 강화에서 인천으로 들어오는 시내 초입이라 나름대로 인기 있는 극장이었고, 앞에 현대시장과 옆에 예식장이 있어 주말이면 극장 주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 현대극장 1989년 모습. 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1989년에 극장 외관을 적벽돌 타일로 개축하여 재개관했다. 개관기념으로 ‘호소자6’의 주인공이 직접 싸인회를 했다.​



▲ 현대극장은 1996년에 폐관했다. 1층은 마트가 바뀌었다.


현대극장 1층은 마트로 바뀌었고 극장은 그대로 방치되어있다. 오성극장, 백마극장도 같은 형편이다. 군데군데 적벽돌 타일이 떨어져 나가서 애처롭기만 하다.


▲ 극장 뒤편. ‘현대극장’이 담쟁이덩굴에 가려져 ‘장’만 보이는데 ‘장’도 ‘강’이 되고 말았다.


▲ 현대극장 바로 앞에 있는 현대시장은 1971년에 설립되었다. 현대극장의 이름을 따서 현대시장이라 했다. 

 


 


▲ 조이식 전 현대극장 기도주임


조이식 전 현대극장 기도주임의 회고다.

"현대극장에서 기도주임으로 근무했었다. 충무로에서 필름을 받아와서 상영하고 입장권을 관리했다. 키네마극장, 동방극장, 도원극장에 출장을 가기도 했다. 현대극장은 재생극장이었다. 재생극장은 전국에 필름을 다 돌리고 난 뒤 마지막으로 상영하던 극장을 말한다. 현대극장이 있던 이 근처는 온통 호박밭이었다. 극장이 생기면서 현대극장이 이 지역의 대명사가 되었다. 극장 주인은 두 명이었는데 사돈 사이였다.”


▲ 유명자씨는 현대극장 뒤에서 세탁소를 운영했다. 그는 70년대 현대극장에서 남진쇼를 봤었다고 한다.


유명자씨는 동구 현대극장 뒤에서 세탁소를 운영했다. 

“송현동에서 양장점을 하다가 이곳에서 오랫동안 세탁소를 하고 있다. 70년대에 현대극장에서 남진쇼를 봤었다. 몰려든 사람들이 어마어마했었다. 극장 주위로 술집도 많았고 장사가 잘 됐다. 지금 이 동네는 재개발 문제로 시끄럽다. 노인과 영세민만 남아있는 동네가 되고 말았다.”


▲옛 현대극장 위치

글·사진 윤기형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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