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제1213호] 2017년 07월 06일 (목) [광고문의] [구독신청][지난신문][홈페이지]
군대가 있어 열차는 달렸다
인천과 철도 ⑦ 부평지역 군용철도
  

이번 호는 부평으로 시선을 옮겨 보자. 인천 시민이라면 부평역은 누구나 한 번씩 지나치게 되는 곳이다. 인천 1호선과 경인선이 환승되는 중요한 길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평역의 철도 시설이 인천의 다른 역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은 철도에 웬만큼 관심이 있는 사람만 아는 사실이다.
오늘날 부평역의 많은 측선들은 선로 보선을 위해 사용하는 장비를 유치하는 선로로 주로 쓰인다. 하지만 오늘날 부평역의 규모는 이런 용도로 설명할 수 있는 것 보다 더 크다. 여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부평지역 철도에서, 이런 배경의 역할을 했던 것은 군대였다.


군용물자 수송차 부평조병창(造兵廠)주변에 철도 건설
시간은 19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보도는 ‘경인일체화’, 다시 말해 서울과 인천 사이의 연결을 위해 부평 인근에 대규모 공업지대가 설정되고, 실제로 수많은 중공업 공장이 건설되고 있는 상황을 전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경인선을 복선화하고 부평역에 화물역을 신설하려 한다는 계획도 보도되었다(동아일보 1939.11.08). 제2차 세계대전이 점차 확대되면서 실제 복선화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아직 자동차가 그리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철도는 공업화에 꼭 필요한 수송력의 기반이 되었다.
당시 보도로는 추적할 수 없는 또 다른 중요한 투자가 있었다. 바로 일본 육군측의 조병창 건설이다. 많은 증언은 이 시설이 1939년경 지금의 미 캠프 마켓 부지에 건설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츠비시(三稜)를 비롯한 일본측의 민간 기업 공장뿐만 아니라, 군 조병창까지 들어섬으로서 부평 일대가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시가지로 바뀌게 되는 단초가 놓인다.

▲원대 철종(1298년 주조), 인천시립박물관(『인천의 중국불교문화유산』,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2016: 147쪽).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부평역 주변의 화물 철도가 부설된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부평역 부근의 지선 철도가 정확히 언제 부설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없었다. 하지만 군용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서라도 철도는 조병창과 함께 부설되었을 것이다. 종전 이후, 조병창에서는 중국에서 실려온 몇몇 불상과 범종들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당시 일본이 전쟁 수행을 위해 문화재까지 녹여 금속을 조달해야 했을 정도로 수많은 무리수를 두고 있었다는 점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이들 불교 문화재들은 분명 인천항에서 부평까지, 화차에 실려 경인선을 따라 이동했을 것이다.


▲3 1947년 부평 일대의 철도

미군정 치하인 1947년 항공사진은 당시 부평역 일대 화물철도 노선의 전모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다. 부평역 북쪽에 위치한 조병창 구내, 그리고 미츠비시 공장(현 부평공원) 인입선은 지금까지 이뤄진 많은 연구들도 다수 그 존재를 확인했던 선로였다. 그런데 이 사진 속에는 부평역 남측 현 3군지사선 역시 현재의 선로만큼 멀리까지 지선망이 뻗어 있다는 사실이 담겨 있다. 당시 부평역 남측에는 별다른 시설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2km 이상의 긴 지선망이 건설되어 있던 이유에 대해서는 향후 학계의 면밀한 조사가 필요할 것이다.

부평전투와 철도
철도는 조병창과 같은 보급 시설에 대한 연계 뿐만 아니라, 실제 전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철도는 지형이 비교적 평탄한 지역을 통과하기 때문에 진격하기 편리할 뿐만 아니라, 철도역은 도시의 핵심 거점이기도 했다. 부평 일대의 철도 역시 바로 인천상륙작전 이후 전개된 진격 작전으로 전장이 되었다.

▲부평전투 승전기념비. 백운역 인근, 부평문화센터 측면.

부평전투 승전기념비는 철도와 전쟁의 관계를 증언하듯 백운역 인근, 인천에서 부평으로 넘어 들어가는 언덕에 건설되어 있다. 이 곳에는 육군 군사(軍史)연구소가 당시 전황을 기록해 놓은 비석이 있어, 당시의 전황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다. 물론 도시화가 이뤄진 오늘날의 상황에서 당시의 모습을 그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백운역 주변의 야트막한 산에 올라가면 당시의 상황을 그려 보기에 크게 어렵지는 않다.

▲부평전투 전황도. 육군 군사연구소의 서술에 따랐다.

1950년 9월 15일 상륙작전이 벌어진 지 이틀이 지난 9월 17일, 부평을 탈환하기 위해 투입된 병력은 대략 1개 연대 규모의 한미 해병이었다. 이들은 경인선 철도(한 해병 1연대 3대대 9, 11중대), 그리고 경인가도(미 해병 1사단 5연대 1, 2대대, 한 해병 10중대)를 따라 두 갈래로 부평에 진입했다. 경인가도를 통해 부평으로 넘어오는 길목인 원통이 고개에서는 T-34 전차 6량을 앞세운 적과의 본격적인 교전이 있었다. 격렬한 전투 끝에 한미 해병은 적을 모두 섬멸하였고, 부평 남쪽을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경인선을 따라 진출한 한국 해병들은 37, 46고지를 점령한 적으로부터 중화기 사격을 받아 진격에 난항을 겪었으나, 선포산의 미국 해병으로부터 화력 지원을 받아 적의 저지선을 돌파, 부평 시가지로 진입해 적을 소탕하는 작전에 돌입할 수 있었다. 이후 이들 병력은 김포공항, 그리고 서울 서북 방면으로 진출한다.
부평 전투는 영등포 전투와 함께 경인선 주변에서 있었던 유일한 전투였다. 이곳을 한미 해병이 무사히 돌파하지 못했다면, 인천상륙작전은 한국 전쟁의 전황 전체를 송두리째 역전시키는 성과로 이어질 수 없었다. 이미 백운역 인근에 이 전투를 기리는 기념비와 공원이 건설되어 있지만, 백운역이나 원통이 고개(현 동수역)를 당시 해병의 진격로를 따라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당시를 환기하고 전쟁과 철도의 관계에 대해 한 번쯤 생각을 뻗어볼 수 있게 만드는 계기는 부족해 보인다. 글쓴이조차 아주 우연한 기회에, 2016년이 되서야 기념비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정도이다. 기념비 인근이자 당시의 실제 진격로였던 백운역에 당시의 전황과 관련된 지도나 전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애스컴 시티’와 그 이후
부평을 다시 장악한 미군은, 부평 조병창 시설을 전투지원부대를 위한 시설로 계속 활용하기로 결정한다. 부평 일대의 전투지원 시설은 흔히 ‘애스컴 시티(ASCOM city)’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이는 ‘Army Support Commend’의 약자였다. 이 표현은 국군의 표현으로는 ‘(주한 미) 육군 지원사령부’에 해당한다. 당시 부평 평야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던 애스컴 시티의 규모는 미 제2보병사단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1960년대 ASCOM City 지도. 미 제2보병사단 홈페이지에서



이 글에서 주목할 부분은 물론 철도다. 구 일본 조병창을 수용해 정비한 캠프 마켓은 물론, 새롭게 만든 캠프 그랜트의 경우에도 인입선이 부설되었다. 심지어 캠프 하이예스의 남단으로도, 현재의 백운역 인근에서 철도가 분기해 들어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캠프 하이예스의 이 철도는 1967년 인천지도포털의 항공사진에서도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경인선에서 비교적 거리가 멀었던 캠프 애덤스, 그리고 규모가 비교적 작았던 캠프 타일러, 캠프 해리슨으로만 철도가 진입하지 않았으며, 애스컴 시티의 주요 캠프에서는 한 때나마 철도를 활용했다는 점을 이렇게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철도 노선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는 당시 애스컴 시티에서 근무했던 미 병력 또는 카투사 병력을, 또는 부평역에서 수송 업무에 종사했던 철도원을 인터뷰하여 조사해야만 할 것이다. 주변 주민들의 증언에도 철도망의 전체 모습을 그리는 데 충분하지 않았다. 물론 왜 이렇게 많은 철도를 부설했는지 대략적으로 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1960년대까지는 도로 수송도, 컨테이너 수송도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스컴 시티의 미군 역시 철도에 깊이 의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캠프 하이예스의 철도는 오늘날 백운역이 위치한 곳에 분기를 설정해 둔 채 운용된 것으로 보인다. 부평역에서 통제하기도 힘든 분기를 설정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철도가 당시 미군측에게 유용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준다.
1970년대 이후, 애스컴 시티의 규모 축소에 영향을 준 것은 닉슨 독트린이었다. 1969년, 당시 미국 대통령 닉슨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아시아인들의 전쟁은 아시아인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게 되었고, 이 성명이 바로 “닉슨 독트린”이라는 이름을 얻었던 것이다.
이는 한반도에도 미 제7보병사단의 철수(1971년)로 영향을 끼쳤다. 지원을 할 야전 부대가 축소되었으니 전투지원부대 역시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애스컴 시티의 기능이 축소 또는 이관되고, 캠프 마켓을 제외한 부지들이 한국 국방부의 손으로 넘어간 것은 1973년 6월 30일의 일이었다. 캠프 애덤스, 하이예스, 타일러, 해리슨은 부평 시가지로 편입되었고, 당시의 경제 개발에 절실했던 공업 용지와 주거지로 개발되었다.




▲현재의 부평지역 군용 철도



물론 이것은 부평 일대에서 군대가 빠져 나가고, 군용 철도의 역사가 끝나게 되었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었다. 캠프 그랜트는 국군이 인수해 지금도 육군군수사령부 예하 3보급단 주둔지로 활용중이다. 또한 이 시기를 전후하여 유사시 인천을 방어하는 임무를 담당하는 17사단 등의 국군 주둔지도 부평역 남측 지선을 따라가면 나오는 일신동 일대에 자리잡는다. 이들 시설의 규모는 애스컴 시티에 필적할 만하다. 이 곳에는 제3야전군 휘하 제3군수지원사령부(약칭 3군지사)가 철도를 활용하고 있다. 부평 일대 군용 철도는, 미 육군의 대폭 축소와 국군의 전력 강화 속에서도 면모를 달리 했을 뿐 오늘도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다.


캠프 마켓 옮기면 공원화 작업
이렇게 부평 일대의 군용 철도가 재편된 지도 약 40년이 흘렀다. 마지막 남은 미군 기지인 캠프 마켓 역시 그 기능을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 옮길 예정이다. 게다가 국군 역시 도로의 발달 덕분에 철도의 활용 빈도를 점차 줄여 왔으며,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전시에만 철도 화물을 쓸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열차 운행이 드문 두 지선 철도에는 녹이 슬고 있으며, 때로 쓰레기가 방치되어 있기도 하다. 부평 일대에서 이들 인입선에 대한 불만이 연일 기사화되고 있는 이유다.




▲경인로 남측의 3군지사선. 사진에 보이는 전선은 궤도회로, 즉 선로를 일종의 회로로
구성하여 열차의 유무를 감시하는 설비로 보인다.


최근 부평구청에서는 군용 철도를 근간으로 삼아 트램 망을 구축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중부일보 2017년 6월 8일).물론 지도 위에 이 노선을 그려 보면, 부평구청의 제안은 현존하는 군용 철도 뿐만 아니라 계양구에 위치한 작전역을 통과하는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제안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부평구청의 “부평형 트램(노면전차) 건설 계획”에 따른 노선도. 노란 점선이
부평구청의제안 노선이다. 배경 그림은 인천지도포털.


물론 대중교통망에 대한 광범위한 투자 계획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도로망을 공용해야 하는 트램을 부평 주민들이 쉽게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면 기존 군용철도는 비록 주요 도로와 평면 교차를 하지만, 많은 부분 도로와는 별도의 노반 위를 달린다. 산곡동이나 부개동이 철도망과 거리가 있다는 점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군용철도를 트램망으로 개량하는 방안이 상당한 의미가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물론 여기에도 중요한 한계는 있다. 특히 경원대로와 경인로의 건널목이 문제다. 경인선 철도를 넘는 것은 여러 이유에서 포기하는 것이 적절하지만, 이 두 도로를 넘지 못하면 열차 운행 빈도를 높힐 수 없어 노선망 자체가 성립하지 못한다. 도로 통행량이 많은 이 두 건널목은 입체 교차를 시켜야 할 것이다. 특히 경원대로 건널목은 남부고가교에서 내려오는 차량 앞으로 노면전차 차량이 지나다녀야 한다는 점에서 좀 더 위험하다. 반드시 구조 개선 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경원대로 건널목. 지선 버스가 남부고가교로 올라가고 있다.



캠프 마켓이 완전히 이전하고 나면, 그 자리는 공원이 채우게 될 것이다. 이런 곳을 철도차량이 통과한다는 데 우려를 표명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부평 지역 언론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글쓴이는 부평 지역의 트램 차량으로 최근 시제 차량이 개발된 무가선 트램 차량을 채택한다면 이런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철도기술연구원의 무가선 트램은 오송에서 시험 운행중이기 때문에 이미 많은 부분 검증된 기술이다. 또한 성남 등 다른 지자체에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부평에서도 도입을 검토하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 기술은 아직 상업 운전 사례는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부평 일대의 군용 철도는 현재 길어봐야 3km 남짓의 노선이기 때문에, 무가선 트램의 운영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우선 부평역을 중심으로 산곡동, 부개동 방면 노선을 개량해 운행한 다음, 주변 반응이 좋으면, 천천히 망을 확대해 나가면 될 것이다. 물론, 이들 노선에는 전시에 군용 화물 열차가 운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점을 궤도 시공에서 배려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전시 군용 화물은 디젤 기관차가 수송하는 만큼, 군사 목적으로는 철도 위에 공중가선을 걸 필요는 없다.




▲무가선 트램 차량의 모습. 철도기술연구원의 브로셔에서


지난 수십년간, 부평지역 군용 철도는 철도와 전쟁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인천 시민들에게 생생히 증언해 왔다. 언제 인천의 철도가 전쟁의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마도 그런 날이 오지 않으리라고 예상하는 것이 현명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철도를 유지하는 것과, 부평구가 강조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꼭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철도 노선을 유지해야 하는 한, 인천시와 시민 모두는 부평지역 군용 철도가 지금 현재 주변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도 보탬이 되는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가능한 기술적 해법을 최선을 다해 찾아내야만 할 것이다.



글· 사진 전현우 <도시철도 연구가,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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