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제1211호] 2017년 06월 29일 (목) [광고문의] [구독신청][지난신문][홈페이지]
도시발전 막던 골칫덩이의 참신한 변신
인천과 철도 ⑥인천항 항만철도
  

지난 두 주 동안, 인천항을 지원하기 위해 건설되었지만 폐지된 여러 철도를 알아보았다. 이번 호는 지금도 인천항의 화물을 수송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축항선과 석탄부두선을 중심으로, 경인선 남측에 펼쳐져 있는 여러 항만 철도를 소개한다. 

인천역 남측,  항만철도
인천항 부근 이곳저곳에 철도가 많이 있고, 특히 일부 구간이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인천항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 노선은 많은 혼동의 원천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남인천역’이라는 명칭을 현재의 수인곡물시장 부근에 있었던 협궤 수인선 역이 아니라, 지금은 용마루 지구에 편입되어 사라진 표준궤 선로군에 대해 붙인 지도가 시중에 적지 않게 돌아다니고 있다.
이런 상황은 무엇보다도 화물 선로 자체가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경인선 남측의 화물 선로는 앞서 다뤘던 북해안선이나 주인선에 비해 좀 더 복잡하다. 인천역에서 5 km 이상 떨어진 지점까지 노선망이 뻗어 있는데다, 설치나 폐지 역시 수십 년에 걸쳐 이뤄져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인선 남측 화물선로는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인천항 구내를 상당부분 통과하기도 하며, 노선의 주요 연결 포인트였던 인천항 제1선거(현 1,2부두)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약 20년간 점유하기도 했다(반환은 1972년 5월 1일). 사람들에게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기 어려운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1989년경 인천역구내 배선도의 일부. 경인선 남쪽에 있는 시설만 여기 인용했다. 『기억을 깁다: 3.8km』(김상태 글, 류재형 사진. 다인아트, 2013)에서.

철도청이 작도한 당시 인천역의 옛 배선도를 보기 전까지는, 글쓴이 역시 이런 혼동에 빠져 있었다. 배선도란, 철도 궤도의 배열 상태를 간략하게 묘사해 놓은 그림을 말한다. 열차는 궤도를 벗어나 달릴 수 없기 때문에, 배선도는 열차의 운행 계획을 세우기 위해 반드시 참조해야 하는 문서다. 위 배선도는 인천역 주변 항만 철도가 가장 컸던 1989년경 인천역 구내, 다시 말해 인천역의 관제를 받아 운영되는 단거리 노선들의 구조를 표시해 놓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노선이 축항구내로 연결되는 축항선이다. 이 노선의 이름은 1918년 준공된 제1선거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었던 축항(築港)에서 온 것이다. 축항구내의 많은 측선들은 이 당시부터 지금까지 철도 화물을 처리하기 위해 활용되어 왔다.
남부구내는 현재 LH공사의 용마루 지구에 편입되어 사라진 곳이다. 이곳에서 주인선으로 선로가 연결되기도 했다는 점은 이미 언급했다. 이곳이 2012년까지도 계속 사용되었던 이유는, 인천역에서 제3부두와 석탄부두로 화물 열차를 직접 보낼 수 없었고 이 곳에서 방향을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동양화학선 등의 선로는 수인선을 표준궤로 바꾸어 사용한 노선이다. 남부구내에서 따로 방향을 바꿀 필요가 없었던 노선이지만, 주변의 개발에 따라 동양화학이 공장 부지를 2008년 매각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기능이 축소되었고 직후 운행이 중지된 듯 하다. 수인선 지하 복선전철 공사와 함께, 이 노선의 모습은 사라졌다. 제3부두선 및 석탄부두선은 남항∙연안부두 방면으로 깊숙하게 뻗어 있는 노선을 말한다. 이들 노선은 1970년대 이후 이어진 인천항 개발과 함께 건설된 비교적 최근에 조성된 노선들이다. 이제 이들 선로의 건설 순서에 따라, 항만 철도의 일대기를 한 번 그려보도록 하겠다.


축항선,  1백년 된 항만 철도

▲개항한 축항의 전경. 1920년경, 『인천항사』 844-845쪽에서 재인용.

1883년 개항한 인천항, 그리고 1899년 개통한 경인선이 직접 철도로 연결된 것은 1918년 인천항에 최초의 갑문식 도크가 건설된 시점으로 보인다. 당시의 보도는 바로 이 도크를 중심으로 한 여러 항만 시설을 '축항(築港)'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이 말은 항구를 구축한다는 의미의 동사로 쓰일 뿐만 아니라, 당시로서는 신식 시설을 갖춘 항구 자체를 지시하기 위해서도 사용되었다.
'축항선'이라는 이름은 이 노선이 바로 항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철도라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축항구내”라는 말은 바로 여기서 화물 철도 차량을 조성하거나 분리하는 작업이 이뤄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화물의 하역은 제1선거를 돌아 현재의 2부두까지 진입한 선로에서 이뤄졌다.

▲인천항 제1선거와 초기 축항선. 붉은 선이 철도이다. (『인천항 안내』, 조선총독부, 1922 ; 『인천축항공사개요』., 조선총독부, 1919: 인천항만공사, 『인천항사』, 315쪽에서 편집.)

이후 축항선과 축항구내는 지금까지 약 1백여년간 인천항의 대표적인 시설로 기능했다. 그리고 인천역 남쪽의 모든 다른 노선들은 이 축항선에서 가지를 쳐 나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후 노선의 확장 과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는 그리 분명하지 않다. '인천항사'를 비롯한 인천항 관련 연구에서는 항만 철도에 대한 내용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여러 문학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천항 주변 철도의 모습 역시 석탄을 비롯한 화물을 빼돌렸다는 경험담처럼 개인적인 회상들이 많아 항만 철도의 전모를 살펴보기에 좋지는 않다.

▲오늘날의 축항구내

축항선은 남부구내 방면으로 연장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1937년 개통한 수인선은 오늘날의 수인곡물시장 부근까지만 부설되었으며, 게다가 협궤(762mm)였기 때문에 수인선의 개통이 직접적으로 표준궤(1435mm) 항만 철도의 연장을 가져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부구내와 축항선 사이, 지금은 버려진 연결선로의 존재를 흐릿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가장 이른 것은 1947년 인천지도포털의 항공사진이었다. 이 사이의 어느 시점에 표준궤 선로가 남부구내로 연장된 것으로 보인다.
남부구내로부터 연장되었던 동양화학선이 언제 부설된 것인지 역시 그리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인천지도포털의 1966년 항공사진에서는 막 착공한 동양화학 공장의 시설물만이 보일 뿐, 공장으로 들어가는 인입선은 보이지 않는다. 1973년 7월 14일 수인선 남인천-송도 구간이 폐선된 이후의 어느 날, 수인선이 동양화학선으로 용도가 바뀌었다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투자는 수인선을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화물 철도로 활용하려는 당시의 장기 계획을 감안하여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인선은 모두가 알다시피 40년이 지나서야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제3부두선과 석탄부두선,  인천항의 확장과 항만 철도
인천 내항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74년 내항 도크가 완성된 다음이다. 이 공사는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도 결코 작지 않은 공사였고, 이를 통해 인천항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인천항 항만 철도도 이를 전후하여 최대의 규모로 확장된다.
그런데 이 시기는 화물 수송에 있어 두 가지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 첫 번째 변화는 1969년 경인고속도로 개통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던 고속도로망의 등장이었다. 고속도로의 힘은 그 때까지 육상 수송의 제왕이었던 철도의 지위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두 번째 변화는 전세계 항구의 모습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은 발명인 컨테이너였다. 인천항에 컨테이너선이 최초로 입항했던 것은 내항 도크가 공사중이었던 1970년 3월 29일의 일이었다. 컨테이너는 이전까지는 사람의 팔 힘으로 여러 날, 때로는 십여일에 걸쳐 벌여야 했던 하역 작업을 몇 시간만에 끝낼 수 있게 만들었다. 인천항 역시 컨테이너의 충격에서 자유롭지 않았고, 현 제4부두를 1973년 컨테이너 전용 부두로 설정하게 된다.




▲인천항 제4부두 옆을 통과하는 철도. 일반인의 접근은 통제된 인천항 구내에 있다.



내항 도크의 개항과 시기를 같이 하여 제3부두와 제4부두에 철도가 추가된 것은 분명하다. 특히 4부두의 철도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철도가 고속도로와 컨테이너의 도전에 맞서 제대로 활약하였는지 알 수 있는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물론, 부산항의 상황에 비춰보면 여기에 간접적으로 답하기는 어렵지 않다. 부산항의 화물 철도는 인천항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로 유지되고 있고, 특히 컨테이너를 대량으로 수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항에서, 컨테이너를 철도로 보내는 경우는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석탄부두 초입 철도의 모습




1988년 11월 30일에는 남항의 남쪽 끄트머리에 석탄부두가 완공된다. 이 부두는 내륙의 발전소나 시멘트 공장으로 들어갈 석탄을 나르기 위해 철도를 활용했다. 한창 때는 이 부두에서 출발하는 석탄 열차만 하루에 네 편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하루 한두 편 정도의 열차가 이 철도를 이용하여 석탄을 수송한다.




▲1989년 인천항과 항만 철도. 인천지도포털에서



그런데 내항에 직접 진입하거나, 석탄부두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화물 열차는 오랫동안 매우 불편한 경로를 지나가야만 했다. 인천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남부구내에서 방향을 전환하여 석탄부두까지 움직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3, 4부두에 철도가 진입했던 1970년대부터, 인천항 구내를 가로질러 가는 노선(삼각선)이 확보된 2012년 12월 13일까지 30년 넘게 이어졌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10차선 대로를 열차가 건너다니는 모습은 보기 드문 구경거리이긴 했어도 시민들, 그리고 인천항을 드나드는 수많은 물류 차량에게는, 그리고 철도 수송원들에게는 상당히 위험하고 시간도 손실도 큰 일이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고증되어 있지는 않다. 지금 화물 삼각선이 통과하는 지역을 한 때 미군이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긴 하지만, 구 제1선거를 미군이 한국측에게 완전히 반환한 것은 1972년인 만큼(인천항사 826쪽) 미군 부지가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기 어렵다. 내항 정비 당시, 글쓴이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이유에서 연결선을 확보하지 못했거나, 이미 마련되어 있는 시설(남부구내)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생각에서 아예 시공을 하지 않았고, 이후 수인선을 위한 예산을 사용할 수 있게 된 2012년까지 방치된 것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남부구내 초입의 두 대규모 건널목(연안부두 1, 능안)은 이렇게 수인선의 부설 덕분에 폐지될 수 있었다. 이들 건널목은 경인 1, 2고속도로가 부근에 연결되어 있고, 수많은 대형 화물차들이 드나드는 곳임에도 이처럼 개량 투자가 늦었다. 시간이 정지해 있던 변두리 철도 수인선의 모습이 여기서도 재현되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2012년 말 개통한 연결선의 모습. 과거에는 남부구내
(삼성아파트를 지난 방향)로 향하던 철로가 이제는 남측으로 직접 굽어 있다.



2012년 말 이후, 인천항 항만철도는 비교적 간소한 모습으로 축소되었다. 주요 건널목 역시 남항인근으로 줄어들었고, 덕분에 그나마 철도 건널목으로 인한 불편과 위험도 많이 줄어들었다. 석탄부두가 계속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항만 철도는 지금의 모습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을 듯 하다.


연안동과 철도
오늘날, 석탄부두선이 직접 통과하는 연안동은 공업과 항만 시설로 가득 차 있다. 또 여객선과 어선이 집결해 있는' “연안부두'라는 이름은 적어도 인천 시민들에게는 너무나 유명하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철도의 역할은 극히 미미하다. 주변 주민들과 상인들은 시끄러운 소음, 그리고 건널목을 가로막는 불편 때문에 철도를 단지 방해물로만 여기고 있는 듯했다.




▲2017년의 인천항과 항만 철도


지금처럼 화물 열차만 다니는 상황에서, 이런 평가를 뒤집기는 어렵다. 하지만 축항선과 석탄부두선을 활용하여 여객을 다닐 수 있게 한다면, 아마도 이런 평가는 뒤집힐 수 있을 것이다. 연안부두 방면으로 가는 교통은 그리 편리하다고 할 수 없으며, 연안동의 인구 또한 갈수록 감소하는 상황이기도 한 만큼, 석탄부두선을 개량하여 전동차를 투입한다면 단지 철도에 대한 인식 을 개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연안동 지역을 재생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게 될 지 모른다. 만일 개통하기만 한다면, 인천역 뿐만 아니라 새로 지어진 수인선으로부터 환승해 연안부두로 향하는 사람들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연안부두 2 건널목. 남항과 연안부두 초입에 있다.




물론 현재 석탄부두선의 설비로는 여객 철도 차량을 운행하기 어렵다. 연안부두나 인천세관(제3부두 인근) 근처에 간략하게 역을 추가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남항과 연안부두의 핵심 길목인 연안부두 2 건널목 만큼은 입체화를 시켜야 하고, 인천항 구내를 통과하면서 생길 수 있는 각종 문제에도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안동 일대의 도시 재생을 위해서는 석탄부두선에 전동차를 투입하는 것을 장기적으로 검토해야만 한다.




▲석탄부두선 금단광업건널목에서 본 연안부두 어시장 방면. 어시장까지의 거리는 약 300,
잔교가 있는 광장과 연안부두까지의 거리는 약 700m로, 도보 접근이 어렵지 않다.



항만 철도를 여객용으로 다시 활용하는 것은 또 다른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확인했듯, 항만 철도는 인천의 도시계획을 많은 부분 가로막았던 노선이었다. 이는 이들 노선이 무엇보다도 인천항과 주변 공업지역의 기능을 위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들 철도는 10차선 대로를 건널목으로 가로막은 채, 주변 지역의 시간을 멈춰 있게 했다. 하지만 이제는 항만 철도를 인천의 관점에서, 인천 시민의 필요에 따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항만 철도가 연안동 주민과 방문객의 발로 거듭나는 날이 찾아 오기를 기원한다.


글, 사진 전현우 <도시철도 연구가,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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