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여행

[인천 여행] 100년 성당엔 진귀한 보물 숨어 있었다네?

발간일 2017.12.20 (수) 19:34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제대'와 '세례대' 국가 문화재로

 

 

예수님이 이 땅에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는 세계인들이 즐기는 축제가 되었다.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 덕분에 한반도 곳곳에는 종교관련 문화재가 많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떠들썩한 분위기에 휩쓸리기 보다는 신앙과 무관하게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조용한 예배당을 찾아보면 어떨까. 수도권에서 차로 1시간 남짓 거리의 강화읍에는 서양 기독교와 조선의 전통문화가 조화로운 특별한 한옥성당이 있다. 지난 14일에 ‘제대’와 ‘세례대’가 국가지정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사적 제424호)’이다.
 


 

영국인 조마가 신부 한옥구조 성당 건설

성공회는 영국의 해군력을 활용하여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고종의 의지 덕분에 한반도 정착이 용이했다. 한반도 최초의 해군사관학교인 ‘통제영학당’이 강화도에 세워지고, 교관으로 영국 해군대위가 부임하면서 영국 성공회는 강화도에 자연스럽게 전파 되었다. 1893년 강화 최초의 성당이 갑곶 나루터에 자리 잡는다. 강화읍에는 외국인 신부가 들어올 수 없던 시절이었다. 초가집 예배당에는 ‘천지만물을 창조한 참 근원’이라는 뜻의 ‘만유진원(萬有眞原)’ 현판을 올렸는데, 현재는 성당 전면 기둥에 걸려있다. 3년 후 강화읍 동문 안에 성공회 선교본부가 탄생한다. 서울이 아닌 강화에 선교본부를 지은 까닭은 강화가 해상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이다. 1897년, 선교본부에 걸 맞는 교회를 짓기 위해 본격적인 성당 건설에 착수하여 1900년 완공한다. 

성공회는 새로운 지역에 성당을 지을 때 그 지방의 풍습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심리적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민들과 문화 코드를 맞추는 것이다. 건축 당시 주교였던 영국인 트롤로프 신부(한국명 조마가)는 동양문화와 조선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조마가 주교는 조선인들과 눈높이를 맞추고자 성당을 사찰과 비슷해 보이는 한옥으로 결정하고 프로젝트 책임자로 경복궁 공사를 담당한 도편수를 초빙한다. 경복궁 중건 직후라 좋은 나무가 구하기 어려웠기에 조마가 신부는 몸소 신의주까지 가서 수령 백년 이상의 백두산 적송을 보급해온다. 

 

국가지정문화재 된 ‘세례대’와 ‘제대’ 건평산 화강암으로 제작 

전통 문화 안에서 복음의 본질을 자연스럽게 녹이려는 노력은 사찰을 닮은 외관과 서유럽의 바실리카 양식 실내의 절묘한 하모니로 나타난다.
 


 

강화성당의 외삼문은 마치 사찰의 일주문을 연상케 한다. 외삼문을 지나면 내삼문인데, 내삼문 왼편에는 절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각과 범종이 있다. 성당에서 만난 범종이 반갑다. 원래는 영국에서 공수해 온 종이 있었는데, 1943년 태평양 전쟁 때 공출 당했다. 그 후 오랫동안 종각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종이 울리다가, 1989년 강화성당 건립 90주년을 앞두고 범종을 제작했다.  
 


 

‘천주성전(天主聖殿)’편액이 달린 팔작지붕 아래에는 기둥마다 불교의 법당처럼 한자로 된 주련이 붙어있다. 만물을 주관하는 하느님의 가르침이 담긴 문장들이다. 밖에서 보면 2층인데 내부로 들어가니 천장이 높은 1층 건물이다. 자연채광을 중요하게 여기는 바실리카양식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 세례대


 

국가지정등록문화재가 된 ‘세례대’를 살펴보았다. 강화 건평산 화감암으로 만든 세례대의 네 면에는 교인의 마음가짐이 한자로 새겨져있다. 지금도 세례행사가 있는 날에는 사용되고 있다. ‘제대’의 재질 역시 건평산 화강암이다. 강화성당은 동절기를 제외하고는 현재도 예배가 거행 되고 있기에, 제대는 제대보로 씌워져 있다. 눈썰미 있는 관람객이라면 제대 방향이 의아할 것이다. 대게 교회는 제대를 사이에 두고 신부 혹은 목사님과 신자들이 마주 보고 있는데, 강화성당의 제대는 동쪽을 향하고 있다. 예배 시간에 교우들이 사제의 등을 보는 형식이다. 강화군청에서 39년간 근무하고 퇴직 후에는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의 성당지기로 활동 중인 강종훈님에게 이유를 물었다. 

 

강화성당은 예전방식으로 예식 진행

 “본디 제사장과 교우들이 같은 쪽을 보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1960년대 교회 규정이 바뀌면서, 소통을 위해 신도와 사제가 마주 보게 되었죠. 화강암으로 된 이 제대는 고정되어 있거든요. 덕분에 강화성당에서는 여전히 예전 방식으로 예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 제대



▲ 영국인 조마가 신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20세기 초 조선 교회의 전통은 이 뿐이 아니다. 성당 곳곳에는 영국인 선교사들이 찍은 강화성당의 역사가 흑백 사진으로 전시 되어있다. 100년 전 풍경 위로 오늘이 겹쳐진다. 코끝이 시큰하다.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어야 진짜 집이다.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에 마음이 가는 것도 과거 기억만 품고 있는 박제된 공간이 아니라 변함없이 일상이 지속되고 있어서일 것이다. 구원의 상징인 노아의 방주를 형상화 한 이 한옥성당이 한갓진 문화재로 남는 것이 아니라 평화의 안식처로 오래 오래 사랑 받기를 기도해본다. 메리크리스마스.

  

글 김세라 ‘i-View’ 기자, 사진 나윤아 자유사진가,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전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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