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그때 그 시절] 이름만 들어도 서글픈 ‘전당포’

발간일 2019.12.11 (수) 15:57


골목에서 ‘발견’한 유물 ⑩ 전당포


골목을 걷다 보면 과거를 더듬어볼 수 있는 물건들을 종종 만난다. 어린 시절, 내가 사용했던 학용품이나 우리 부모들의 손때가 묻은 생필품들이 문밖에 버려졌거나 혹은 빈 집에 쓰레기로 남아 있다. 어찌 보면 이것들은 가까운 미래에 우리 생활사의 소중한 ‘유물’이다. 고려시대 자기도, 조선시대 장신구도 그렇게 사용되다가 버려진 것들이다. 이 시대 골목에서 ‘발견’한 유물들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예전엔 기차역 주변이나 중심가 뒷골목을 둘러보면 전당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신용카드가 일반화된 이후 이를 찾아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전당포 하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떠오른다. 가난한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가 악랄하기로 소문난 전당포 노파를 무참하게 살해한다.



1876년 강화도 조약 후, 인천 등 개항장에 일본인들이 정착하는데 유독 고리대금업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당시 조선에서는 고율의 이자가 통용된다는 점을 눈여겨보았다. 그들은 조선인들에게 저당 가격을 높게 쳐 주고 이자는 낮게 책정했다. 국내 전당업 시장을 장악해 조선인의 고혈을 빨아먹겠다는 의도였다.

‘전당포(典當鋪)’라는 단어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슬프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민초들에게 은행 문턱은 높기만 하다. 애써 장만한 은수저, 진공라디오는 물론 어제 입었던 양복을 들고 전당포 철창 앞에 섰다.

주인의 돋보기안경 너머 눈초리는 공포 그 자체였다. 몇 푼 손에 쥐고 나온 그는 저당 잡힌 물건은 이미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생을 저당 잡힌 사람들이다. 먹고 살기 힘들어진 요즘 ‘라스콜리니코프’는 소설 속의 인물이길 바랄 뿐이다.



글·사진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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