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그때 그 시절] 인천의 숨은 역사, 항일운동가 70명의 기록

발간일 2019.02.20 (수) 17:19


‘일제 감시 대상카드’ 에서  인천인 자료 찾은
김락기 역사문화센터  센터장


▲ 김락기 역사문화센터  센터장


지금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앳된 티가 확연한 까까머리 15세 소년 임갑득(林甲得), 맑은 청년의 얼굴을 한 김명진(金明辰). 이들은 일제가 만든 감시대상 인물카드에 기록된 인천인들이다.


임갑득, 김명진 지사는 인천에서 3.1만세운동을 주도한 후 일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명진 지사는 창영초등학교 3학년 재학 중 3.1만세운동을 주도하고 학교동맹 휴업을 이끈 혐의로 학교에서 제적당한 뒤 일제에 항거하는 조직적인 투쟁을 계획하다가 체포되어 1년6개월간 옥살이를 해야했다.




70명의 인천 항일운동가들 발굴


임갑득 지사는 3.1만세 운동때 조선인들에게 가게 문을 닫고 만세운동에 참여를 촉구하는 ‘상가철시’ 삐라를 배다리 일대에서 뿌렸다는 이유로 일경에 의해 잡혀 징역 6개월을 살았다.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에 등록된 인천항일 운동가들의 모습은 죄인의 모습 그대로다. 수인복을 입고, 머리는 빡빡 밀었으며 가슴에는 수인번호가 붙어있다. 흑백사진 속에 또렷이 보이는 독립 운동가들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 진다.

 

인천에서 3.1만세운동 당시 조선인들에게 만세운동 참가를 요구하는
'상가철시' 삐라를 뿌렸던 임갑득 지사​


사진은 사람의 모습과 느낌을 구체적으로 느끼고 보여주는 힘이 있다. 이 분들이 인천에서 항일운동을 한 분들이구나 생각하며 이들의 얼굴을 머릿속에 또렷이 새기게 된다.


일제에 의해 제작된 ‘감시대상 인물카드’에는 인천 항일운동가들의 키, 신분, 형량, 직업, 얼굴사진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카드지만 항일운동가들의 정보를 알 수 있는 귀한 자료다.


인천문화재단 역사문화센터 김락기 센터장(49)은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인천인 조사연구 자료집을 만들면서 인천에서 활동하며 항일운동을 한 인천인물 70명을 발굴했다. 그는 인천에서 항일운동을 한 분들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진정한 인천다운 3.1운동 역사를 알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 일을 시작했다.

 

자료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제공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서 체포 또는 재판 당시 거주지가 현재 인천광역시에 해당하는 인물들만 추렸고 죄목이 ‘소요’ ‘보안법 위반’ ‘치안유지법 위반’ 등 독립운동과 관련되는 죄목만을 선별해 정리했다.




3.1 만세운동과 관련된 분들은 11명


김락기 센터장이 정리한 독립운동가 70명중 3.1만세 운동과 관련된 분들은 11명이다. 김명진(중구, 창영초등학교), 심혁성(부평, 황어장터), 염상오, 유봉진, 유학용(강화), 김삼수, 
임갑득(인천),  조종서, 조수동, 최봉학(혈성단, 용유도 3.1운동 주도), 최선택(인천) 등이다.
 


인천 최초로 3.1 운동을 주도한 창영초등학교 학생이었던 김명진 지사


​인천 부평구 황어장터에서 3.1 만세운동을  이끈 심혁성 지사


김명진 지사는 1902년 10월 9일 생으로 본적지와 주소는 인천부 내리 125번지다. 그는 기록카드에 평민으로 적혀있다.


김삼수와 임갑득 지사는 3.1 운동 당시 조선인들에게 3.1만세운동 참여를 촉구하는 ‘상가철시’삐라를 뿌린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10개월과 6개월을 받았다.


심혁성 지사의 주소는 경기도 부천군 계양면 오류동이다. 키는 155㎝로 직업은 농업에 종사했다. 심혁성 지사는 3월 24일 주동이 되어 황어장터에서 3백명의 군중과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시위를 하다 붙잡혀 징역 8개월을 살았다.


강화에서 3.1만세운동을 이끈​ 염성오 지사


▲강화에서 3.1만세운동을 이끈 유봉진 지사


염성오와 유봉진 지사는 강화에서 3.1강화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됐다. 그들은 경찰서 앞에 모여 그동안 검거된 사람을 석방하라고 요구하다 체포되어 염성오 지사는 징역 8개월, 유봉진 지사는 1년 6개월을 살았다. 유봉진 지사는 해방이후에도 임시정부 강화 환영대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등 강화 지역사회의 중심인물로 꾸준히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유학용 지사는 1919년 3월 18일 강화읍내에서 조선독립만세를 크게 외쳐 치안을 방해한 죄로 체포되어 징역 3개월을 선고받았다.


▲영종, 을왕리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이난의 지사


이난의 지사는 경기도 부천군 용유면 을왕리 출신으로 1919년 4월 28일 관청리 광장에 모여 큰 태극기를 중앙에 달고 기세를 떨쳤다. 잠시후에 을왕리에서 이난의 지사 등  많은 군중이 모여 조명원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관청리를 향해 시위행진에 들어갔다.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받았다.


조종서, 최봉학, 조수동 지사는 3월 23일과 24일에 모여 독립운동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독립운동 단체의 이름을 혈성단(血誠團) 이라 칭했다. 4월 28일 관청리에 모여 태극기를 중앙에 달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벌였다. 


조수동 지사는 징역 1년6개월, 조종서 지사는 1년, 최봉학 지사는 9개월을 선고 받았다.


▲인천 관교동에서 횃불을 올리고 만세운동을 주도한 최선택 지사


최선택 지사는 인천 관교동에서 1919년3월 23일 밤 몇몇 독립운동가들과 부락민들이 합세해 횃불을 올리며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 일로 그는 징역 6개월을 살았다.




사진으로 보는 독립운동가들, 기억하고 알려야


자료에는 3.1운동 독립운동가 말고도 노조활동 등으로 체포, 구금된 항일운동가들의 명단도 보인다. 이번에 발굴된 항일운동가들 중에는 해방이 된 뒤 반민특위에 출석해 조선인출신 일본 고등계 형사를 고발한 이수봉, 이억근 지사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고문했던 이중화, 전정윤 등 경찰을 고발하며 이들을 ‘세마리의 까마귀’로 비유하며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그러나 역사는 아이러니 하게도 친일청산이 되지 못한 채 독립투사들과 조선인 경찰들의 삶은 그 이후에 극명에 갈리고 만다.


김 센터장은 이번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 자료집은 기초적인 자료를 모은것에 불과하지만 온라인에서 찾다보니 인천독립운동과 관련된 자료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료에는 독립운동과 관련된 낯선 인물들이 수없이 나오고 그 행적을 기록한 일제 경찰의 사찰문서, 재판기록도 상당한 양이었다. 그들의 기록과 행적을 찾는 일을 누군가는 계속해야 할 것 같다고 강조한다.


김 센터장은 이번에 발굴한 70명의 항일운동가들의 사진이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이들의 얼굴이 알려져 실물로 접하게 되면 시민들도 더 이들을 친근하게 여길 수 있고, 숨어있는 후손들이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나 관련기관에서 인생을 걸고 독립운동을 한 분들의 후손을 찾고 만약 이분들이 아직 서훈을 받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서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 이용남 I-View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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