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야기

[인천 이야기] 강화 고려 왕릉으로 떠나는 가을여행

발간일 2019.10.30 (수) 15:47


 낭만과 여유 가득한 강화 고려왕릉 산책



이규보 묘역 사당(유영각)


고즈넉한 자연의 운치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은 계절이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가을 정취를 놓치게 될까 조급해졌다면, 거창한 여행 계획 대신 가까운 교외 나들이는 어떨까?


역사, 문화, 자연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수도권 대표 관광명소인 강화도는 가을빛이 한창 이다. 올 해 강화의 단풍은 이제 막 물드는 중. 인파를 피해 호젓하게 가을의 낭만과 여유를 즐기고 싶다면, 잘 알려지지 않아 더 아름다운 강화 고려왕릉 산책을 추천한다.




강화에 고려시대 왕릉이 있다? - 고종의 홍릉


고려유적지는 북한에만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때문일까. 29년 동안 고려의 도읍지였던 강화에도 고려시대 유적이 남아있다는 것은 의외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강화의 대표적인 고려의 흔적은 고려 왕릉인데, 고려 21대 왕인 희종의 ‘석릉(碩陵)’, 원덕태후 ‘곤릉(坤陵)’, 23대 왕 고종의 ‘홍릉(洪陵)’, 순경태후 ‘가릉(嘉陵)’, 왕릉으로 추정되는 능내리 석실이 있다.


먼저 강화 천도를 이끌었던 고종의 홍릉을 찾았다. 홍릉이 모셔진 고려산은 진달래와 함께하는 봄철 등산코스로 잘 알려져 있지만, 고운 파스텔톤으로 은은하게 물든 가을산도 좋다.


홍릉

홍릉 가는 길은 제법 가파르다. 국화야영장 주차장에서 홍릉까지 고작 300m지만, 평소에 사용하지 않았던 다리 근육은 아우성이다. 가쁜 숨을 내쉬며 걸어본 게 언제였더라. 느림보 산행이 익숙해지자, 맑은 공기와 은은한 가을향기가 건강한 기운을 전한다.


서걱 서걱. 천연 ASMR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돌계단을 올랐다. 과연 이런 곳에 왕릉이 있을까 싶을 만큼 인적 드문 산길. 길을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불안해 질 무렵, 홍릉에 도착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지정되어 잘 보존되고 있는 조선왕릉을 떠올리니, 고려왕릉은 서글퍼 보인다. 그나마 홍릉은 강화의 고려왕릉 중 가장 잘 정비가 된 편이다. 석릉이나 곤릉 가는 길은 사유지가 포함되어 있어서 접근도 쉽지 않다.


거란에 이은 몽골의 침입으로 재위기간 내내 국난을 겪었던 고립무원의 고종의 처지가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홍릉에 겹쳐진다.

소박한 왕릉 위로 소슬바람이 분다. 번잡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도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홍릉 올라가는 길




가을에 더 좋은 강화나들길 3코스, 고려왕릉가는 길


홍릉 가는 길의 급한 경사에 살짝 놀랐다면, 이제는 마음을 놓아도 좋다. 강화나들길 3코스 ‘고려왕릉 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주변 경관이 좋은 인기 만점 가을 트래킹 코스.


먼저 가릉 주차장에 차를 두고 정겨운 마을길을 걸었다. 중간 중간에 설치된 이정표와 나뭇가지에 매달린 노란 색 나들길 리본을 따라가니, 길을 찾지 못할까봐 걱정 할 필요가 없다. 길가에 핀 노란 소국이 가을의 낭만을 더한다. 바닥에는 알맹이가 빈 밤송이들과 껍질만 남은 도토리가 가득하다.


가릉


가릉의 주인인 순경태후는 제24대 원종의 비(妃)다. 1235년(고종 22년) 원종이 태자로 책봉될 때 궁에 들어왔고, 강화천도 초기인 1236년에 충렬왕을 낳은 후 세상을 떠났다.


진강산 자락에 자리 잡은 가릉은 소담하고 아늑하다. 석수를 직접 볼 수 있는 고려왕릉은 가릉이 유일한데, 익살스러운 석수의 표정이 가릉의 아기자기한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쪽빛 가을하늘 아래 막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병풍 나무들, 금빛으로 변한 봉분이 조화롭다.


일반적으로 고려왕릉은 지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 제1단에는 봉분과 곡장, 제2단에는 석등과 문인석, 제3단에는 무인석, 제4단에는 정자각이 배치된다.


가릉은 제1단에 봉분과 좌우 한 쌍의 석수가 놓여있고, 제2단에는 중앙 표지석, 제3단에는 석인상 한 쌍이 마주 보고 있다.


능내리 석실​분


가릉을 둘러보고 능내리 석실분로 자리를 옮겼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무가 빼곡한 오솔길 따라 걷다 만난 청솔모와 반갑게 인사했다.


능내리고분은 4단으로 구획 되었고, 봉분구조물과 석실, 건물지가 양호하게 남아 있어 고려왕릉으로 추정되지만, 능의 주인은 아직 확인 되지 않았다. 아래쪽에 위치한 가릉의 순경태후보다는 지체가 높은 인물이 아닐까 추정 될 뿐이다.


가릉과 달리, 능내리 고분은 울타리가 없어서 가까이 가 볼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기억으로부터 아득해진 능의 주인을 떠올리니 연민이 느껴졌다. 왕릉이야 말로 조용하게 사색하기 좋은 공간이 아닌가 싶다.

능내리석실분 이정표




고려 최고의 문장가, 이규보 묘역


왕릉은 아니지만, 이규보 묘역은 고려시대 묘지 중 빼놓을 수 없는 유적지다. 주몽신화가 담겨있는 ‘동명왕편’, 교과서에도 수록된 ‘국선생전’으로 유명한 이규보는, 신라의 최치원, 조선의 박지원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고의 문장가로 손꼽힌다.


이규보는 어린 시절부터 문학천재였지만 관직을 얻지 못하여 불우하게 지냈다. 32세에 비로소 최고 권력자인 최충헌의 눈에 들어 관직에 올랐고, 강화 천도 시기에는 벼슬이 재상까지 이른다.

이규보 사당을 둘러보는 여행자들

 


이규보 묘역


이규보 묘역 문무석


이규보 묘지는 비교적 최근에 새 단장을 한 덕에 자동차로 접근하기 용이하다. 풍수학은 몰라도 당대의 걸출한 지식인답게, 본인의 묘자리를 참 좋은 곳에 잡았다 싶다.

 

마치 돌하루방을 연상시키는 유머러스한 문무석은 무신정권 당시의 유풍을 알 수 있는 귀한 조각이라고 하니 참고하길.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가을 산책을 마무리 하고 돌아오는 길. 가을이 한 층 짙어졌다.



글 김세라 I-View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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