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야기

[인천 이야기] 태풍, 돼지열병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화사람

발간일 2019.10.14 (월) 16:41


건강한 먹거리 만드는
손맛식품 박상수 대표​



손맛식품 박상수 대표


강화 사람들에게 이번 가을은 잔인한 계절로 기록 될 것 같다. 기록적인 강풍이었던 제13호 태풍 ‘링링’으로 인하여 70억이 넘는 피해가 발생했고,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38,000여 마리 돼지가 살 처분 되었다. 갑작스런 재난상황으로 인해 시름이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강화사람들은 심기일전하여 안정된 삶을 되찾아 가고 있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진 청정 강화에서 생산된 친환경 농산물로 건강하고 맛 좋은 김치와 밑반찬을 생산하는 손맛식품의 박상수 대표도 그 중 한사람이다. 지난 태풍으로 공장 일부가 파손 되는 피해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에게 바른 먹거리를 제공하고자 온 힘을 다하고 있는 박상수 대표를 만났다.


“태풍으로 인해 손해가 있었지만, 저보다 더 힘든 일을 겪은 주민 분들이 훨씬 많으세요. 이번에 돼지 살처분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계시는 축산농가 분들도 계시고요. 그분들의 고난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요.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잘 헤쳐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나의 아픔보다 타인의 고통을 먼저 생각하는 박상수 대표. 남편 윤여군 목사와 함께 기독교 시민운동을 해온 박상수 대표의 담담한 대답에서 신앙인으로서 평소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었다.


“원래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여주가 고향인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취업을 했어요. 교회 청년회 활동을 했는데 전도사님이 가난한 자들에 대한 질문을 던지셨어요. 그때부터 민중 신학을 공부하게 됐죠. 뒤늦게 기독교 교육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28세의 늦은 나이에 감신대에 입학했습니다.”


손맛식품 순무김치(이음마켓 제공)


또래 친구들이 가정을 꾸릴 나이에 늦깎이 대학생이 된 박상수 대표. 입학했던 1987년은 독재타도와 사회 변혁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이 절정에 이른 때였다. 대학에서 난생 처음 광주항쟁 비디오를 보게 된 박상수 대표는 큰 충격을 받고 대학 선후배와 함께 거리로 나섰다. 이웃 학교였던 연세대 이한열 열사의 추모집회를 비롯하여 뜨거웠던 6월 항쟁의 한 복판에 섰던 박상수 대표는, 시위 현장에서 평생의 반려자인 윤여군 목사를 만나게 된다.


“윤여군 목사는 대학 선배였어요. 이한열 열사 투쟁을 하며 알게 되었지만 친한 사이는 아니었죠. 졸업 후, 윤여군 목사는 노동현장으로 들어갔다가 검거 됐어요. 면회를 계기로 결혼을 하게 되었죠. 남편은 여전히 노동 현장에 있었고, 저는 교회에서 교육사로 활동했기 때문에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어요. 그러다가 1992년, 남편이 교동도에서 목회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연고도 없는 교동도에서 생활은 좋은 추억이 가득했다. 여주의 시골에서 나고 자란 박상수 대표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농사를 도왔던 터라 농부가 대부분이었던 교동도 교인들과 잘 지낼 수 있었다.


“교동도에는 5월에 들어왔어요. 모내기가 막 끝나고 잔디처럼 자라던 연두색 풍경이 그렇게 예쁘더라고요. 농민의 마음을 아니까,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죠. 교우들과 친환경 오리농법도 도전하고, 새로운 먹을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모색했습니다. 그때는 젊어서 의욕이 넘쳤죠.”


▲직접 생산한 순무

10년의 교동도 생활을 정리하고 강화로 터전을 옮기게 된 박상수 대표. 친환경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환경단체, 여성단체,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생협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아직 강화에는 생협이 없었어요. 남편을 포함하여 강화의 시민운동가들이 힘을 모아 생협을  만듭니다. 저도 뭔가 하고 싶더라고요. 지역 엄마들 5명과 의기투합 하여 순무김치 납품을 했습니다. 조합원도 적었던 시절이라 아마추어들이 겁 없이 덤볐죠. 소액 서민대출을 받아 순무를 매입했습니다.”


대출받은 500만원 사업자금 중에 300만원을 순무 사는데 썼다며 웃는 박상수 대표. 사업은커녕 사회경험도 적은 가정주부들이 모여 벌인 일이라 온갖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순무 300만원어치가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저온저장고를 빌려 순무를 저장 하고 주문 들어 올 때마다 작업을 했어요. 애기 엄마들이, 포장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티커는 어떻게 제작 하는 건지, 레시피는 어떻게 만드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아는 게 없으니까 매번 멘붕이었어요. 딱 일 년하고 접었으니까요. 다행히 적자는 아니었어요. 대출금 갚고 나니 잔고가 0원 이더라고요.(웃음)”


순무 세척


순무김치사업을 하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박상수 대표는 2005년에 본격적인 김치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송해면의 한 공장을 빌려서 작게 하다가, 2007년에 제대로 공장을 짓게 되었어요. 생협 시장이 커지면서 주문이 하루가 다르게 늘었거든요. 우연히 지금 이 자리가 급매로 나와서 땅을 샀지요. 돈도 없었는데 무슨 배짱으로 저질렀는지 몰라요. 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는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더니, 강화군 공무원이 순무가 강화 특산품이니까 지원 사업 공모를 내보라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덕분에 자금 지원을 받게 되어 공장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손맛식품’이란 상호는 친정엄마가 차려주셨던 밥상을 떠올리며 박상수 대표가 정했다.


“딸들이 촌스럽다고 야단이었어요. 손맛이 뭐냐고. 그러다가 허영만 화백의 ‘식객’에 손맛을 찬양하는 에피소드가 나왔어요. ‘레시피보다 손맛’이라는 내용이었죠. 그때부터는 ‘손맛’이란 이름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박상수 대표의 손맛은 소비자들에게 ‘믿을 수 있는 제품’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매출도 하루가 다르게 올랐다. 물론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물량이 많아 다른 농민 분들이 가꾼 친환경 농산물도 수매 하지만, 처음에는 직접 농사를 지었어요. 친환경 농사다 보니 밭 매는 게 일이잖아요. 한고랑 매고 돌아와서 김치 담그면 하루가 갔어요. 농사도 서툴고 하니까 매번 문제도 발생했고요. 어느 해는 배추를 한주 늦게 심었는데, 김장철에 속이 덜 찼더라고요. 농민들은 농산물 심는 적기를 알지만, 저 같은 초보는 매번 그걸 몰라 농사를 망치는 거죠. 배추가 작게 되니까 판로가 없어서 골치였어요. 고민하다가 묵은지로 만들어 볼까 싶어 일단 김치를 담갔어요. 저온저장고 빌려서 김치를 넣어 뒀다가, 다음해 봄에 생협에 연락 했어요. 비료 하나도 안주고 심은 거라 배추가 작긴 해도 고소했거든요. 제목을 ‘시골김치’로 해서 출시했는데, 완판 했어요. 모자라서 못 팔 지경이었죠.”


닭갈비 양념, 감자 크로켓 등 손맛식품에서 출시된 제품 중에는 이처럼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궁리하다가 뜻밖의 대박을 낸 경우가 많다.


제조 과정


“현재 생협 시장이 최대 규모가 아닐까 싶어요. 소비자들 쇼핑 패턴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더 나아가 모바일로 바뀌었잖아요. 그러다 보니 최근 2,3년은 저희도 변화되는 시장상황에 적응하느라 어려움이 있었어요. 작년에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받았지만, 매출이 줄어드니까 계속 운영해야 하나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러다가 올해 들어서 상황이 또 변했어요. 모바일 시장 규모가 확대되면서 다양한 유통이 가능해졌어요.”


현재 손맛식품은 아이쿱생협, 두레생협, 행복중심생협, 올가 등 생협 매장에 납품 중이고, 마켓컬리에는 생산지로 참여 중이다. 이밥차 사이트와 협업도 고민하고 있다.


“어려움은 항상 있었어요. 안정적인 적은 한 번도 없었죠. 그래도 손맛식품 제품을 아껴주시는 소비자분들이 계시니까, 언제나 힘이 나요. 엄마의 정성으로 차린 가족 밥상처럼 건강하고 맛 좋은 손맛 식품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  김세라 I-View 객원기자, 사진 손맛식품, 이음마켓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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