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야기

[인천 이야기] 한 여름 더위 화문석으로 "싹 날려요~"

발간일 2019.06.10 (월) 14:40


2대째 가업잇는 강화도령 화문석 박윤환 대표

이제 막 여름에 접어들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푹푹찌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기상관측사상 최고의 극심한 폭염으로 기록 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무더위가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시민들은 벌써부터 슬기로운 여름 생활 대비에 분주하다.


요즘처럼 방마다 에어컨이 설치되어있지 않았던 옛날에는 어떻게 더위를 극복했을까? 그 시절에는 가정마다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준 화문석 돗자리가 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온 세상이 익어갈 즈음, ‘꽃무늬가 들어간 자리’라는 뜻의 화문석에 누워 낮잠 한숨 자고 나면 더위도 저 만치 물러갔다.


▲‘강화도령 화문석’ 박윤환 대표


강화도의 대표특산물인 화문석은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반드시 구비했던 필수품이었다. 강화읍내에서 화문석 5일장이 열리면 전국의 장사꾼들이 북새통을 이뤘지만, 오늘날은 찾는 이가 많지 않아 요새는 10여 가구 만이 돗자리를 짜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전통문화가 아니라 현대인들에게도 유효한 화문석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있는 강화의 젊은 기업가를 만났다. 2대째 화문석을 판매하고 있는 ‘강화도령 화문석’의 박윤환 대표다. 




화문석의 가치 알아본 아들, 가업 이어받아


“아버지는 감정공예인 완초장 박성찬 옹이십니다. 화문석을 짜는 장인은 아니고, 우수한 화문석을 감별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으셔서 감정공예인 완초장이 되셨죠. 아버지께서는 원래 이발사셨고, 화문석은 양사가 고향인 어머니가 짜셨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권유로 아버지께서 1980년도부터 화문석가게인 삼성돗자리를 차렸는데요, 아버지는 비교적 늦게 개업하였지만 85년도부터는 화문석 상인들의 중심이 되셨어요. 아버지가 출근하기 전에는 화문석 장을 열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하루에 화문석 돗자리가 백장씩 팔리던 시절이에요. 강화도 인구의 70프로는 화문석을 짰으니까요. 당시 화문석 상인의 능력은 좋은 돗자리를 빨리 확보하는 것이었답니다. 돗자리를 펴자마자 바로 구입하는 게 실력이었지요. 이발사였던 아버지는 눈썰미가 있어 좋은 돗자리를 구별하는 재능이 탁월하셨답니다. 처음 3년은 화문석을 몰라 손해를 봤지만, 나중에는 쓱 보기만 해도 원하는 물건을 바로 골랐다고 합니다.”


​‘강화도령 화문석’​ 제품들


좋은 화문석에는 값을 아끼지 않았기에 박성찬 옹은 화문석 장인들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삼성돗자리는 전국의 도매상들이 엄지척 할 만큼 번영을 누렸지만, 시대가 바뀌자 화문석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도 뜸해졌다. 그러던 차에 잘나가던 외국계 회사 직원인 아들이 화문석을 해보겠다고 나섰으니 아버지는 펄쩍 뛰었다.


“강화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서울로 나갔습니다. 외국계 회사를 18년 다니면서 한창 커리어를 쌓았죠. 그러다가 핀란드 쪽 거래처 분이 화문석 구매를 요청하셨어요. 부모님이 화문석 하시니까 구해다 드렸죠. 그랬더니 그분이 한국 사람들은 이걸 왜 수출 안하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해 하더라고요. 저야 말로 황당한 마음에 되물었죠. 이게 수출이 됩니까? 그분 말씀으로는 이미 유럽은 아시아 앤틱 문화 애호가들이 많아서 일본의 다다미도 수출이 되고 있대요. 반신반의하여 시장조사를 해보니 수요가 정말 있더라고요. 고심 끝에 직장을 그만 두고 본격적으로 화문석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감정공예인 완초장 박성찬 옹 부부 젊은시절 (강화도령 제공)


▲1980년대 화문석 장 모습 (강화도령 제공)


어린 시절, 화문석 장터를 놀이터 삼아 지냈지만 화문석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다는 박윤환 대표. 본격적으로 화문석 공부를 시작하며 전국 각지는 물론 일본의 장인들까지 만났다.


“꼬마 시절 화문석 장인 분들이 아들처럼 손자처럼 귀여워 해주셨던 기억이 생생해요. 그래서인지 그분들의 장인정신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고 싶다는 염원이 커요. 왕골재배, 화문석 제작, 왕골 판매, 체험학습, 기술개발까지. 저는 화문석을 활용한 문화콘텐츠를 생산하는 공예벤처기업가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전국에서 공예부문 벤처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벌써 5년째인데 여전히 시행착오 중이죠. 현재 화문석 생산은 10가구가 채 안되는데요, 화문석 하나를 짜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품질도 제각각입니다. 전통의 본질을 놓치지 않되 작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데요, 쉽지 않네요.” 


작품 하나가 탄생할 때까지 60만 번의 사람 손이 간다고 하는 화문석은 그야말로 시간과 땀으로 짠 예술 작품. 모내기가 끝난 후 강화사람들은 두 달 동안 왕골농사를 짓고, 한창 뜨거운 여름날에 수확을 했다.


▲화문석 제작 모습 (강화도령 제공)


▲고두렛돌




간격이 일정하고, 칼질이 고른 것이 좋은 화문석


수확한 왕골은 전용칼을 사용하여 세절(3등분)한 후, 노랗게 만드는 바래기 작업을 한다. 뜨거운 여름, 1평 남짓 실내에 30여개의 화덕을 설치하여 국수 널듯 세절한 왕골을 말리는 작업은 어지간한 인내심으로는 견디기 힘들다.


“화문석에 뛰어든 첫 해였어요. 첫 왕골농사를 짓고 잘 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죠. 한 여름에 왕골 말리기를 하다가 연탄가스를 마시고 쓰러졌죠. 며칠 만에 정신을 차리고 곰곰이 생각했어요. 이건 21세기에 할 짓이 아니다. 그래서 기술개발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예술성이 높은 함평 돗자리, 생산성이 뛰어난 보성 용문석 등 전국의 돗자리 명인들을 만났는데요, 강화 화문석은 문양이 아름답고 생산 효율성이 높은 공예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화문석 제작의 현대화를 고민 하고 있지만, 강화 화문석 특유의 무늬와 색은 장인의 손끝에서만 이뤄질 수 있습니다.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화문석 돗자리를 제작 하려면 높은 품질은 기본이지요. 아버지 때는 화문석을 8등급까지 나눴다는데, 현재는 생산이 많지 않다 보니 일반, 고급, 진상품 세 단계로 분류 되거든요. 강화도령에서 생산하고 판매하는 모든 제품을 진상품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왕골 손질 (강화도령 제공)

 


▲화문석 돗자리 (강화도령 제공)


감정공예인 완초장인 아버지에게 화문석 감정 노하우를 물려받는 박대표가 손꼽는 좋은 화문석은 어떤 돗자리일까요?


“저는 우선 휘갑부터 봐요. 화문석 옆의 마무리 치는 것을 휘갑이라고 하는데요, 휘갑만으로도 화문석을 짠 사람의 솜씨를 알 수 있거든요. 휘갑 간격이 일정한 것이 진상품입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줄인데요, 줄이 비뚤 빼뚤 한 돗자리는 잘 못 짠 거 에요. 기계로 짠 것 같다 싶게 일정한 간격인 것이 좋은 돗자리입니다. 보통 간격은 1.8cm인데요, 촘촘할수록 더 많은 정성이 들어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왕골이 좋아야죠. 빨간 점도 없고 티가 없는 왕골이어야 하고요, 문양을 넣을 때 칼질이라고 표현하는데, 잘 짠 돗자리는 칼질도 고르게 되어 있습니다.”


▲강화도령 화문석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디자인 협업 작품
(강화도령 제공)


자리 잡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며 멋쩍은 웃음을 짓다가도 화문석 이야기만 나오면 반짝반짝 눈빛이 달라지는 박대표를 보니, 화문석을 향한 콩깍지가 영원히 벗겨지지 않겠구나 싶었다. 화문석을 향한 박대표의 열정에 절로 응원을 보내게 된다. 박대표에게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일본에도 이구사라는 골풀이 있어요. 이구사를 활용한 다양한 공예품이 나오고 있지요. 일본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차례 방문 했는데요, 그때마다 새삼 일본의 장인정신에 감명을 받습니다. 전통공예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장인정신을 발휘하잖아요.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일본 다다미는 이미 100프로 기계화가 되었는데, 거기까지 가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더라고요. 강화 화문석은 그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지요. 눈앞의 이익을 쫓기 보다는 묵묵하게 갈 길을 가는 일본의 장인정신을 존중 하게 되었습니다. 막 시작했을 때는 젊은 혈기에 새로운 시대에 알맞게 모든 것을 젊은 감각으로 바꾸려 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어머니께서 디자인 한 돗자리가 잘 팔리더라고요. 새로운 것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죠. 최근에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협업 하고 있는데요, 온고지신의 정신을 살려 여러 디자인을 시도해 보고 있습니다. 아직은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인데요, 화문석 세계화의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강화도령 화문석 홈페이지 www.hwamunsuk.com



글 김세라 I-View 객원기자, 사진 나윤아 자유사진가, 강화도령 화문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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