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야기

[인천 이야기] “예쁜 골목벽화…아이들과 산책하는 동네 됐어요”

발간일 2019.05.20 (월) 15:17


노적산 호미마을 살맛나게 바꾸는 데 앞장, 유현자 대표

“인근 아파트에 사는 부모들이 노적산 호미마을에 도깨비가 나온다며 아이들에게 접근도 못하게 했어요. 그런데 마을가꾸기 사업을 시작하면서 벽화를 그리고, 화단을 가꾸기 시작하자 마을이 깨끗해지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의 마을 출입을 만류하던 부모들 역시 주말이면 아이와 함께 마을로 산책을 나와요.”


마을을 위한 일이라면 물심양면으로 최선을 다하는 유현자  마을대표


1950년대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1960년대 동양제철화학공장이 들어서며 활성화된 노적산 호미마을은 문학산 끝자락에 위치한다. 노적산 주변은 과거에 인천 화학공업 발전의 중심지로 부상했고 수인선 협궤열차의 종착역이었던 송도역을 품어 주변 마을은 왁자했다.


곡식 더미를 한곳에 수북이 쌓아 둔 노적데기처럼 보여 ‘노적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주변마을은 호황을 누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화학공장에서 발생되는 각종 공해와 소음문제로 주민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거나 떠나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동양제철화학공장이 군산으로 이전하며 마을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위기에 처한 마을을 위해 물심양면 힘을 쓰다  


낙후된 환경과 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노적산 호미마을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물심양면 아끼지 않고 마을의 일이라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돌보는 이가 있다. 노적산 호미마을 마을대표로 활동하는 유현자 씨다.

 

​​​
▲살맛나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노적산 호미마을 주민들 (유현자 대표 제공)​

​ 

충북 음성이 고향인 그녀는 아버지 사업 때문에 네 살 때 주안으로 이사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노적산 호미마을에서 살았다.


“1979년 당시 학익초등학교 학생수가 5천800명이었어요. 한 반에 80명이 넘어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어 다닐 정도였어요. 공업지대였던 마을에 공장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주민들 역시 떠나기 시작해 낙후의 길을 걸었어요. 저 역시 마을을 떠났다가 개발이 시작되면서 돌아와 통장을 맡아 10여 년을 마을을 돌보았죠. 원래 건축, 인테리어 관련된 일을 하면서 마을 추진위원장 일을 겸하였는데 너무 벅차더라고요. 결국 본업을 포기하고 마을일에 매진하다가 친언니의 권유로 
2009년부터 보험영업을 시작했어요. 사무실에 종일 상주하고 있지 않아도 돼서 가능한 일이죠. 주민들이 모일 장소가 없어 제가 살고 있는 집을 공사해서 공방을 조성했는데 그때도 언니의 도움이 컸어요. 대출까지 받으며 공방을 조성한 이유는 주민들의 결속력이 지속가능해야하는데 공방에서 수업을 하지 않으면 주민이 뭉쳐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주민들과 자주 어울리기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직접 공방을 꾸미게 되었어요.”
 

▲'노적산 호미마을' 로고는 야생화와 마을, 풀이 노적산 아래에 어우러져 공존하는 행복한 마을을 의미하며 손으로 만든 판화 느낌의 형태는 맨손으로 일군 마을이라는 뜻을 상징하고 있다.

 

‘노적산 호미마을’의 원래 지명은 ‘노적산마을’이었는데 사업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마을을 상징하는 애칭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에 유 대표가 지은 이름이다. 당시 마을주민들이 호미를 들고 함께 밭을 가꾸던 모습에서 떠올렸다고 한다.


“마을을 이끌어 가는데 가장 힘든 사항은 인적자원이 없다는 사실이에요. 주로 연로하신 분들이 거주하는 마을이기에 제가 보필해가며 이끌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사업을 하려해도 토론이나 논쟁할 수 있는 상대가 없다는 거예요. 혼자 2014년 3월부터 마을만들기를 시작했는데 거의 1년 정도 혼자 고군분투했어요. 당시 저 혼자 화단을 가꾸고 쓰레기와의 전쟁을 치르니 주민들이 비협조적인 태도로 격려는커녕 손가락질 하는 분들도 많았어요. 혼자 너무 힘들었는데 이젠 많이 나아졌어요. 자비를 쓰면서까지 마을을 가꾸는데 물심양면 아끼지 않는 이유는 그저 좋아서예요. 저는 평균사람에 비해 행복지수가 높다고 생각해요. 스스로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고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하겠죠. 사업을 진행하며 연륜이 많은 주민들을 자주 접하게 되었는데 그들에게 인생을 배웠어요.”




꽃을 심고 벽화를 그려 화사한 마을로 탈바꿈 


지난 2014년, 미추홀구가 지원하는 통두레 활동을 통해 마을만들기 사업을 시작하게 된 노적산 호미마을. 2014~2015년은 ‘발길 가는 호미’, 2016년~2017년까지는 ‘손길 가는 호미’, 2018년~ 2020년까지는 마음 가는 호미마을을 만들 목적으로 주민들이 직접 마을을 디자인하고 있다.

 

▲손바닥 조형물은 손잡고 잘 해보자는 화합의 의미로 주민이 직접 그림을 그렸고, 샵(#)은 네 개의 우물을 터전으로 살아간 호미마을 주민의 삶을 상징한다.

 

“처음에는 야생화를 심어 마을을 가꾸기 시작했어요. 골목 곳곳에 버려진 각종 쓰레기로 몸살을 앓던 중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게릴라 가드닝’을 접하게 되었어요. 낙후된 동네를 찾아다니며 밤새 쓰레기를 치우고 그곳에 화단을 만들더라고요. 놀랍게도 화단을 만든 후 쓰레기 불법 투기가 줄어들었어요. 골목이 깨끗해지고, 화단에 예쁜 꽃들이 피었는데 오래돼 곰팡이 피어 시커멓게 변질된 담장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그래서 벽을 흰색으로 칠했는데 너무 밋밋한 거예요. 비영리봉사단체인 네오맨벽화사업단과 연결을 시도해 담장에 벽화를 그렸어요. 벽화까지 그려놓으니 골목이 화사해졌어요. 예전에는 인근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아이들에게 이 마을에 도깨비가 나온다고 출입조차 막았는데 벽화를 그린 이후 여름철 저녁엔 아이들 손을 붙잡고 산책을 오기도 해요.”

 



이러한 노력들은 2014년도 통두레 모임 우수사례 발표대회에서 최우수상, 제17회 전국주민자치박람회 주민조직 분야 장려상, 2018년 우수디자인마을 선정 등으로 노고를 인정받았다.


한편, 노적산 호미마을은 2018년 3월에 민·관의 협력을 이루어 호미마을 공영주차장에 햇빛발전소 1호기를 설치해 에너지 자립마을로 거듭난 바 있다. 




세월에 낡았지만 살맛나는 마을로 지켜내기 


OCI(옛 동양제철화학)가 사회공헌사업으로 기부 채납한 부지에 2023년 개관을 목표로 시립미술관, 시립박물관 컬쳐스퀘어, 영화관 등 콘텐츠 빌리지 ‘인천뮤지엄파크’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와 같은 소식은 노적산 호미마을 주민들에게 달갑지만은 않다.

 

​​
▲마을 풍경. 쉴 수 있는 의자가 곳곳에 마련되어 있고 담장마다 골목을 화사하게 밝혀주는 각종 벽화가 그려져 있다.

 

“개발로 인해 마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릴까봐 걱정돼요. 이제 더 이상의 개발은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살기 좋은 동네를 조성하려면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하는데 간혹 개발 앞에서는 우선이 안 될 경우가 있더라고요. 선진국이 되려면 소외계층을 돌보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발을 위해 무조건 ‘밀어’ ‘부셔’가 아니라 상처가 있는 공간도 교육의 지침이라 생각하고 보존해야합니다. 삭제가 아니라 자료로 보존이 되어야한다는 뜻이죠. 마을공동체만들기 사업을 진행하면서 제 손길 안 닿은 곳이 없는데 한순간 없어진다고 하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유 대표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자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소소한 행복이 흐르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마을공동체만들기 지원사업이 2020년 완료되기에 추후 자립을 위한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가장 큰 과제는 주민들을 한곳에 모으는 것이다.

 

▲살맛나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노적산 호미마을 주민들 (유현자 대표 제공)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마을, 영리목적이 아니라 동네에 가면 웃음이 넘쳐나는 마을, 오래됐지만 정감이 있는 마을, 그리고 사람냄새가 풍기는 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무엇보다 자립을 위해서는 마을 경제가 활성화되어야 하는데 빈집을 활용한 길거리 상점(로드샵)을 운영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천시민들이 특색 있는 골목을 찾아 서울이나 타지역으로 이동하는데 인천에도 낙후된 골목을 활용해 거리에 다양한 즐길 거리를 마련하여 관광문화 선도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일조하길 바라요. 젊은 문화예술가들이 호미마을의 콘텐츠를 발굴, 제작하여 주민은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하여 친숙한 마을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그 외에도 담장을 허물어 주민들 사이에 틈을 좁히고, 깨끗하게 살 수 있는 환경조성 등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았어요.

무엇보다 노적산 호미마을이 개발로 인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세우는 것만이 개발이 아니다. 오래된 흔적을 지켜내는 것 또한 개발이 될 수 있음을 노적산 호미마을 유현자 대표와의 대화를 통해 깨달았다.



글·사진 이수인 I-View 객원기자


 

댓글 0

댓글 작성은 뉴스레터 구독자만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구독신청

※ 뉴스레터 신청시 입력하신 이메일 주소를 입력해주세요.

Main News

Main News더보기 +

많이 본 뉴스

주간 TOP 클릭
많이 본 뉴스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