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야기

[인천 이야기] 광운대학교 설립자 인천출신인 거 아시나요?

발간일 2019.05.13 (월) 17:01


화수동 출신 조광운박사 탄생 120주년, 전기 출판

“나라를 잃은 것도 무지에서 왔고 일본인들에게 서러움을 받는 것도 무지에서 왔다. 사업을 하자! 사업을 하여 큰돈을 모으고 조국에 돌아가 육영사업을 하자!”


서울의 유명 사립대학인 광운대학교의 설립자인 화도 조광운 박사가 젊은 시절 큰 뜻을 품으며 다짐했던 생각이다. 화도 조광운 박사가 인천인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대학을 설립한 유일한 인천인이다.


▲ 조광운 설립자(1972년 12월 5일)


광운대학교 설립자 화도 조광운 박사(1899~1979)는 인천 동구 신화수리 123번지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화수동이다. 그의 아호인 '화도'도 화수동 지명에서 따왔다.

 

학교법인 광운학원(이사장 조선영)은 올해 화도 조광운 박사 탄생 120주년을 기념해 그를 기리는 전기출판물 <항상 그대와 함께 걷는길-광운학원 설립자 화도 조광운의 생애와 도전(역사비평사)>을 출간했다. 그의 전기집 출판을 계기로 오랜 세월 끊어져 있던 인천과의 인연이 다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조광운 박사 전기 출판기념회는  5월 15일(수) 오후 2시 광운대학교 동해문화예술관 소극장에서 개최한다.
 

1899년생인 화도 조광운 박사는 한일합방이 이뤄진 1910년까지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일제가 서당을 폐쇄하고 보통학교 세우자 인천보통학교에 들어가 공부했다. 인천고의 전신인 인천공립상업학교 병설 간이상업학교에 입학해 상업, 경제공부를 하기도 했다.

 


▲조선무선강습소 라디오과 제5회 졸업생 일동(1939년 5월)


그는 일본 군국주의 교육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인천공립보통학교 4학년 졸업을 몇 개월 앞두고 학교를 그만두고 15세 어린나이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일본인이 운영하는 잡화점의 점원, 법률사무소 보조원 생활을 했다. 직장생활로 모은 돈을 밑천으로 면포상 사업을 시작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인천미두거래소에서 그간 모은 돈을 모두 날리기도 했다. 그는 큰 사업가로 성장을 위한 다양한 경험을 거쳤다.


인천에서 잘 나가던 사업가로 성장하던 그에게 1919년 3.1만세운동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그는 조선에서 사업을 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 나머지 중국에서 곡물사업을 할 생각으로 당시 인천에서 신의주까지 1,300리를 가고 신의주에서 중국 장춘까지 1,400리를 가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막상 중국 장춘에서 만난 사촌매부의 충고로 다시 신문물을 배우러 일본으로 떠났다. 그의 일본 유학생활은 일본 당국이 재일 유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탄압해오자 짧게 마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일본에 있으면서 석유남포에서 전등으로 조명기구가 바뀌는 것을 보았고, 라디오 시대가 올 것을 예상하여 기초이론인 무선통신 기술을 습득했다.

1968년 설립자 전자실습실 방문


조 박사는 한국에 돌아와서 석유램프 도매상을 하다가 소켓, 전구, 전기다리미, 난로 등 전기기구를 파는 도매상을 시작했다. 1923년 3월 서울 남대문 인근의 봉래동에 문을 연 ‘광운상회’였다. 광운상회는 만주 등 해외에 출장소를 열 정도로 번창했다. 그는 광운상회를 기반으로 광운대학의 모태가 되는 ‘조선무선강습소’를 1934년 5월 설립한다.


그는 기술만이 식민지 조국의 어두운 미래를 구하는 길이라는 신념으로 기술자 양성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1948년 1월 27일 조선무선중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고 학교 교장 겸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육영사업의 길로 들어섰다. 올해는 광운대학이 설립된 지 85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후 화도 조광운 박사는 서울에서 인재양성과 교육사업에 전념했지만 오매불망 고향 인천을 잊지 않았다. 그의 아호가 ‘화도’인 것 뿐만 아니라 광운대학교 본관의 이름도 ‘화도’로 지을 만큼  인천을 품고 살았다.


조광운 박사 탄생 120주년, 전기​ 출판물과 전기의 목차


▲ 화도 조광운 박사는 고향 인천을 생각하며 학교 본관이름을 화도관으로 지었다.


화도 조광운 박사가 탄생한 동구 화수동 123번지는 화도진 아래 있는 ‘쌍우물동네’다. 학교법인 광운학원은 화도 조광운 박사 전기출판을 계기로 인천과 끈을 다시 잇는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지역사회에서도 인천이 배출한 걸출한 인물인 화도 조광운 박사 탄생지에 그를 기리는 ‘표지석’ 설치를 기대하고 있다.

 


글 이용남 I-View 편집위원, 사진 학교법인 광운학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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