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야기

[인천 이야기] 바다를 호령했던 그, 바다는 삶의 전부였다

발간일 2019.04.15 (월) 14:24


전 도선사 조수린씨가 들려주는 ‘도선사의 삶’

파일럿의 어원은 ‘pedotes’에서 왔다. peda(키)와 ~otes(사람을 나타내는 어미)가 합쳐져 '조타수’의 뜻이 되었다. 파일럿의 의미가 하늘에서 시작된 단어가 아닌, 배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것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도선사를 영어로 파일럿이라고 한다. 


도선사는 선박을 원활하게 조종하여 지정된 장소까지 접·이안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바다와 선박,

3박자에 광범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될 수 있는 전문직이다. 도선사는 바다에서 젊은 청춘을 받쳐야 될 수 있다. 운항경력 20년이 지나야 도선사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질만큼 아무나 될 수 없는 직업군이다.
도선사로서 26년의 삶을 살아온 조수린(72세) 씨는 인생의 반을 함께한 바다가 그리워, 영종도에 살면서 바다를 품고 살고있다.


▲도선사로서 26년의 삶을 살아온 조수린(72세) 씨




40대 후반 돼서야 비로소 할 수 있는 직업, 도선사


도선사는 고액 연봉자라는 화려함 때문에 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도선사가 되기 위해서 20년 정도 배를 타야 겨우 시험 볼 자격이 생긴다고 말하면 대부분 도망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도선사가 되기 위해서는 원양선박에서 3등항해사부터 시작하여 2등항해사·1등항해사를 거쳐 이후 최소 5년 이상(과거는 7년이었음)의 선장경력이 있어야 한다.

 20년의 항해 경력이 있다고 다 도선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년 항해 경력으로 시험 볼 자격이 되면, 힘든 시험을 통과해야 비로서 파일럿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보통 15~20년 정도의 세월을 가족과 떨어져 해상에서 생활해야 한다. 도선사는 50이 다 된 나이에 수여되는 훈장이라고 할 수 있다.

 
도선사는 도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소형 도선선에 승선하여 거친 파도를 헤치고 다가가 보통 7∼10m에 달하는 도선사용 사다리(Pilot Ladder)를 이용해 수직 암벽을 오르듯 거침없이 선박에 올라야 한다.

 



“외국 배가 오면 조그마한 보트를 타고 큰 배가 있는 곳까지 2시간 반을 가야합니다. 큰 배에 도착 후, 작은 보트에서 도선사용 사다리로 큰 배에 기어 올라가야 합니다. 찬 겨울 바다를 헤치고 배에 오르는 것이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지요.” 조수린 씨는 집중을 하지 않으면 바다로 실족해 사망할 수 도 있다고 말한다.




경북 안동 시골 소년, 바다를 동경하다


조수린 씨는 경북 안동 출신이다. 고2, 우연히 부산에서 난생 처음 바다를 접했다. 드넓고 푸른 바다의 매력에 빠져 바다를 흠모하기 시작했다. 배를 타고 넓은 바다를 건너 해외를 가보는 꿈을 꾸게 되었다. 당시 안동농림고등학교 학생으로서 배를 탈 수 있는 방법은 해양대학교를 입학하는 것이었다.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으로 국비를 받고 공부할 수 있는 길을 택했다.


친구들이 비료, 토양, 과수, 원예, 임업 등의 수업을 들을 때 그는 이를 악물고 국영수과 대학 입학시험공부를 혼자서 준비했다. 새벽3시까지 공부하고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강행군을 하면서 공부한 끝에 드디어 한국해양대에 당당히 입학했다. 1970년 졸업 후 일반회사 항해사로 취업했다.




작은 거인, 세계를 누비다


항해사로서, 선장으로서 해외를 마음껏 드나들게 되었다. 선장경력이 최소 7년 이상 되었을 때서야 도선사 문을 두드릴 자격이 생겼다. 선장경력 7년의 자격조건 기간은 휴가기간을 빼고 나면 10년의 세월이었다. 그렇게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등 세계의 모든 바다를 누비면서 20년을 살았다.


“한 번 출항하면 8~10개월 정도 걸립니다. 가족이 많이 그립죠.”


우리나라 배의 경우는 ‘여자가 타면 재수없다’는 선입견이 있지만, 외국선박의 경우는 가족과의 동승을 허락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 국적 선박을 타다가 영국선박 선장으로서 9년간 재직한 적이 있다.


▲부부가 같이 항해했던 시절


“그때는 정말 꿈만 같은 항해였습니다. 부인을 초청해서 10개월간 항해를 같이 했죠. 그때 셋째 아들을 만들었습니다. 하하하” 조수린 씨는 부인과 아프리카, 브라질, 세네갈 등을 함께 돌며 항해했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한다.


“말도 마세요. 파도가 치면 배가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는데,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요. 175m 길이의 배가 바다에서는 작은 나뭇잎보다 작게 느껴집니다. 파도가 치면 배가 떨면서 올라와요. 물에 잠겼던 데크의 물이 폭포처럼 떨어져요. 애 아빠는 취침 시간이고 3항등사가 당직서면 불안한 마음에 배 좀 나가서 보라고 남편을 깨우기 일쑤였죠.”


부인 김경순 씨는 남편과 함께 배를 타면서, 선원들이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10개월간 같이 생활해보니 좁은 공간에서 항해하는 모습이 무척 안타까웠어요.”



“우리가 ‘선장’하면 기골이 장대하고 턱수염이 난 듬직한 마도로스 모습을 기대하잖아요. 보시다시피 우리 남편은 체격이 작아요. 배가 외국 항구에 닿으면 그 나라 세관 등 여러 사람이 배에 올라와요. 그러면 우리 남편한테 물어요. 선장은 어디 있냐고… 당시 그 배의 3항사가 덩치가 컸거든요. 다른 나라 항구에 도착하면 꼭 그 사람이 선장인 줄 알더라구요. 호호호.”


당시 영국 선박에는 크로아티아, 유고슬라비아, 필리핀, 터키인 등의 세계 각국 선원들이 있었다. 그들을 지휘하고 결단력있게 일하는 남편의 모습이 작은 거인처럼 보였다고 경순씨는 말한다.




부인이 바라보는 도선사라는 직업


20여 년의 항해를 하면서 드디어 도선사 시험을 볼 자격을 갖게 되었다. 50대에 이르러서야 될 수 있다는 도선사의 길을 수린 씨는 40대부터 걷기 시작했다. 

도선 임무를 마치고 함께 온 작은 보트로 돌아가는 밤, 보트에서 밝힌 불빛은 작은 점처럼 보인다.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파도를 맞으며 다시 사다리에 내릴 땐 신경이 예민해집니다. 작은 부주위가 사고로 이어질 수 있지요.”


"도선사의 자격조건은 항해술이나 도선술 외에 외국 선장과 교류할 수 있는 공감능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해요. 난방시설 작동에 무지한 동남아 선적에 난로도 피워줄 수 있는 따스한 마음이 도선사에게는 중요한 덕목이라고 봅니다.”


영어로 각국 선장과 대화하다 보니 영어실력이 수준급이란다.


“우리 남편이요? 공부벌레랍니다. 지금도 하루에 한 시간씩 꼭 영어공부를 합니다.”

▲아들 내외와 도선사 시절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 꽃을 피우는 가족


부인이 보는 조수린 씨는 항상 노력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남들은 남편이 돈 잘 벌어서 좋겠다고 말하는데요, 그건 도선사 업무와 될 때까지의 과정을 모르고 하는 소립니다. 20년간 우리 부부는 떨어져 살았어요. 보고 싶어도 항해를 시작하면 수개월 씩 나가있다보니, 제가 가장의 역할까지 할 수 밖엔 없더라구요. 또한 도선사 부인들은 남편이 거친 바다에서 일하는 동안은 남편이 집에 들어올 때까지 가슴 졸이며 잠도 못 잡니다. 가족들 마음 졸이게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다에 나간 남편 대신,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집안 대소사를 챙기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웃긴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하루는 아이가 초등학교 때 가정조사 란에 아빠직업을 ‘도선사’라고 적었더니 아이를 불러서 아빠가 스님이냐고 묻더래요. 그만큼 당시에 도선사에 대한 인식이 없던 시절이었죠.”


경순 씨는 20년 간 집을 비운 가장을 대신해 시부모를 모시고 자식을 건사했다. 수린 씨는 시동생 시집 장가까지 보내주고 묵묵히 애들을 훌륭히 키워준 부인이 감사하단다.




바다는 내 삶의 전부였다


조수린 씨는 현재 영종도에 거주하고 있다. 인천항에서 근무하던 시절, 바다 건너 보이는 영종도를 보면서 퇴직 후 저곳에 작은 전원주택을 짓고 살겠노라고 다짐했단다.


“지금도 바다를 보면서 삽니다. 지겹게 바다에서 살았으면서도 말입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갯벌 냄새와 정박된 선박에서 보이는 굴뚝연기를 보면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 편에서는 심장이 뜨거워짐을 느낍니다. 많은 세계 각국 사람들을 만났던 추억도 많이 생각납니다.” 그가 영종도 섬에서 사는 이유다.


▲가족들과 함께한 조수린 전 도선사


“바다요? 바다는 내 삶이었고, 내 생활이었고, 내 주변이었으며, 내 자신이었습니다.”


육상근로자의 5배의 연봉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당시 상황에서는 최고의 선택이었기에 다시 태어나도 도선사를 직업으로 삼고 싶단다.


“도선사의 ‘도’가 한자로 ‘인도할 도’입니다. ‘선’이 ‘배선’이구요, ‘사’는 ‘선비사’입니다. 우리 도선사들끼리 ‘배선’을 빼고 도선사를 ‘도사’이라고 부릅니다. 배에 관해서는 도선사가 도사가 맞지요. 허허허”




*26년간 일했던 인천항을 말하다


“인천항은 세계에서 수 백 개의 항구 중 최악의 항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조수간만의 차가 무척 큽니다. (9~10m) 둘째, 조류가 가장 쎈 항구입니다. 셋째, 1년 중 3개월 이상 안개가 끼는 곳입니다. 넷째 해저상태가 최악입니다. 암초나 바위가 많으며 수심이 낮습니다. 따라서 일 분 일초라도 긴장을 놓치면 안되는 지역입니다.”



이현주 I-VIEW기자 o7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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