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야기

[인천 이야기] 개성 갑부집 본 떠 지은 80년 강화 고택

발간일 2019.01.09 (수) 14:21


강화 3대 부잣집 솔정리 고택 영섭재(榮燮齋)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4대를 이어온 고택에는 곳곳마다 옛 이야기가 가득하다. 부침 많은 근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킨 유서 깊은 집, 강화도 솔정리 고씨가옥 영섭재(榮燮齋)는 지금 새롭게 거듭 나고 있다.


 


▲영섭재 뒷뜰

예로부터 강화는 선진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섬이었다. 근대화를 겪으며 강화에 돈이 흘러 넘쳤고, 그 과정에서 방앗간과 양조장을 운영했던 故 고대섭 옹은 큰 부를 축적했다.


“고조할머니께서 약주를 잘 담그기로 유명하셨대요. 증조할아버지인 고대섭 옹께서 비법을 전수 받아 양조장을 운영하셨죠. 소곡주, 청주, 막걸리를 제조 했다고 해요. 강화에서 개성까지 거리가 가깝잖아요. 개성을 오가면서 인삼 재배를 구상하셨나 봐요. 강화에 최초로 인삼을 경작했던 두 분 중 한 분이 증조할아버지세요.”


영섭재 후계자 고영한 씨


증손자인 고영한씨에 따르면, 고대섭 옹은 양조업, 인삼재배, 직조공장 등을 크게 하여 모은 돈으로 이 집을 지었다.


“당시 증조할아버지 연세가 29살이셨어요. 사업차 방문했던 개성 제일 부잣집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아 집을 짓기로 결심 하셨죠. 젊은 혈기에 원대한 뜻을 품으셨나 봐요. 1941년에 첫 삽을 뜨고 45년에 준공이 나는데, 땅 다지기에만 3년이 걸렸다고 해요. 이 집을 위해 강화의 솜씨 좋은 목수를 모두 불렀대요. 요즘으로 치면 목수 오디션을 본거죠. 저마다 자신의 실력을 뽐냈는데, 한쪽 구석에서 묵묵히 칼만 갈고 있던 목수가 있었대요. 결국 그 무명의 목수가 선발 되었지요.”




집터, 도깨비가 놀던 장소라는 소문


손을 댄 비즈니스마다 대박을 친 사업가가 더 큰 복을 소망하며 쌓아올린 저택, 집을 짓는 내내 신령스런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화재 나기 전 영섭재


“고택 옆 파란 지붕 집은 100년 넘도록 저희 고씨 집안과 형제처럼 지낸 이웃입니다. 저 집안은 건축 자재 관련 사업을 해왔거든요. 증조할아버지를 위해 성심성의껏 자재를 준비해주셨죠. 육면체의 화강석을 사괴석이라고 하는데요, 본디 궁궐 담장이나 높은 신분의 사대부들만 사용했던 돌이죠. 사괴석은 석모도에서 가져왔는데, 석공이 하루에 하나씩 깎았대요. 그때는 인건비가 밥 세끼였거든요. 그러니까 쌀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어간 집이죠. 저 단단하고 아름다운 목재는 황해도에서 공수했어요. 황해도에서 밤중에 배로 나무를 날랐는데, 뱃머리에 도깨비불이 환하게 불을 밝혀줬대요. 그걸 본 사람들이 저 집은 앞으로 더 큰 부자가 되겠구나... 했다는 군요. 동네 어르신들 말씀이, 원래 이 집터가 도깨비가 놀던 곳이래요. 민담에 보면 도깨비방망이에서 재물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이 집 짓고 더 큰 재물을 모으셨나 봐요.”

▲영섭재 안채


개성식 전통 한옥에 일본식 건축 양식이 혼합된 영섭재. 두 살 먹은 대형견 순이가 반갑게 인사하는 솟을대문으로 들어가면 니은(ㄴ)자 형태의 사랑채가 나타난다. 사랑채에 있던 누마루는 안타깝게도 2002년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소실됐다. 사랑채 안으로 들어가면 기역자 (ㄱ)형 안채와 마당 한가운데 서있는 향나무가 신비한 분위기를 더한다.

일본가옥과 한옥양식을 혼합한 복도

▲근대식 욕실


“우물 옆에 향나무가 있으면 물맛이 좋아진다고 하여 증조할머니께서 심으셨지요. 이 우물은 깊이가 20미터 가량 되요. 이 우물을 가리기 위해 가림벽을 세웠는데요, 외부에서 우물을 사용하는 여성들을 볼 수 없도록 가려주는 역할을 했죠. 여름에는 이곳에서 목욕도 하셨나 봐요. 목욕시설은 별채에도 있는데요, 근대식 목욕탕이에요. 건물 밖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펴 지름 1.5m 규모의 무쇠솥 물을 데웠다고 합니다.”




2020년에는 고택스테이로 개방할 예


영섭재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구조는 이뿐이 아니다.


▲대청마루와 경기반닫이(궁궐에서 반출된 것을 증조할머니께서 구입)



▲한국전쟁 당시 4863부대 고택에 주둔했을때
(왼쪽 첫번째 인물이 고영한씨 할아버지인 故 고장창옹)


“이 집이 대지는 450평이고, 건평이 99평이에요. 한옥 크기는 칸으로 구별 했지만, 근대시대 넘어오면서 평 개념이 생겼거든요. 칸으로는 55칸 집입니다. 저희 집을 찾은 건축가들이 가장 놀라는 부분은 지하의 난방 시설이에요. 땅을 깊게 파서 툇마루 아래에 방마다 아궁이를 두었거든요. 또한 나무에 습기가 들어 갈까봐 아궁이 사이에는 통풍구멍을 만들었어요.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이 지하 공간에 독립운동가를 많이 숨겨줬다고 해요. 한국전쟁 시절에는 이 집을 첩보부대였던 4863부대가 사용했어요. 한국전쟁 영웅인 김동석 대령이 이곳에서 진두지휘 하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가 입대를 하게 되었죠. 지대장과 할아버지가 마음이 잘 맞았대요. 그 후에, 할아버지의 여동생과 지대장이 결혼을 하게 됩니다. 저의 고모할아버지시죠.”

▲궁궐식 굴뚝


현재도 여전히 조왕신을 위해 부뚜막 위에 음식을 올려놓는 오래된 옛집. 물려받은 가풍을 잇느라 때로는 불편함도 감내 해야 하는 젊은 후계자는 이 집에 새 이야기를 쓰고 있다.


“아버지 어릴 적에는 동네 친구들이랑 숨바꼭질도 하고 그랬다는데, 저는 이 집이 너무 커서 무서웠어요. 이 집이 저를 선택 했으니 이제 사람의 온기를 채우려고요. 마침 올해 강화군에서 예산 지원이 예정 되어 있어요. 올 한 해 동안 누마루도 복원하고, 주변 환경도 깔끔하게 정리해서 2020년 1월에는 고택 스테이로 개방 할 계획입니다. 새 단장 하면 꼭 보러 오세요.”



글 김세라 i-View 객원기자, 사진 나윤아 자유사진가, 영섭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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