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야기

[인천 이야기] 첫눈 내린 날, 겨울왕국 ‘강화’를 걸어보니...

발간일 2018.11.26 (월) 16:59


흰 눈꽃 쌓인 고려궁지, 용흥궁 동화같은 분위기

첫눈이 왔다. 지난 24일 1981년 관측 이후 최고기록이라는 함박눈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붉은빛이 남아있는 단풍나무 위로 소복하게 쌓인 11월의 눈,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 겨울손님이 반갑기만 하다.


▲용흥궁의 설경




하얀 솜 같은 고운 눈 맞으며 강화읍 산책


첫눈 온 날 아침, 하얀 솜 같은 고운 눈을 맞으며 옛 이야기를 품고 있는 강화읍 거리를 걸었다.


먼저, 겨울왕국으로 변한 강화읍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고려궁지로 갔다. 

고려정부는 몽골군의 침략을 피해 1232년 강화도로 도읍지를 옮긴 후, 규모는 작지만 개경의 궁궐을 닮은 궁을 짓는다. 결사항전을 결의하며 세 겹의 성을 쌓았건만, 전 국토가 몽골군에 유린되자 39년 후 고려정부는 결국 원나라에 항복을 한다. 고려궁궐은 몽골군에 의해 파괴되고, 터만 남는다.


▲고려궁지(눈싸움하는 초등학생들)


조선시대 강화는 광주, 수원, 개경과 더불어 수도를 지키는 중요한 군사적인 요지였다. 강화유수는 장관에 해당되는 고위 관료였으므로 많은 책임과 권한이 주어졌다.


강화유수부로 승격된 옛 고려궁터에는 행궁과 여러 관청건물이 들어섰고, 특히 정조시대에 들어와서 왕립도서관인 외규장각이 세워졌다. 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났다. 프랑스군은 강화도를 습격하면서 외규장각 안에 보관 중이던 서적을 약탈하고 건물을 불태웠다. 현재 고려궁지에는 동헌, 이방청, 외규장각이 복원되어있다.


▲고려궁지(눈쌓인 외규장각)


눈발이 약해진 사이, 엉금엉금 거북이걸음으로 외규장각을 올라갔다. 옛 영화를 빼앗긴 빈 궁궐터는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고 탄식했다는 ‘맥수지탄’을 떠올리게 하지만, 순백의 눈으로 가득한 오래된 궁터는 아늑하고 포근한 동화나라 같았다.


▲고려궁지(눈싸움하는 소녀들)


선생님과 현장학습을 온 초등학생들이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을 뒹굴었다. 역사의 현장에서 제자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은 선생님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개구쟁이 녀석들의 관심은 온통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 뿐 이다. 눈물 콧물 훔치며 눈싸움을 했던 오늘 하루가 오래 오래 행복한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




강화도령 철종이 살았던 용흥궁, 겨울 낭만이 흠뻑


고려 궁지 바로 아래에 위치한 천주교 강화성당은 올해로 건립 60년이 된 유서 깊은 종교 문화재다. 조선후기 천주교도들의 처형지인 진무영(조선시대 해상경비의 임무를 맡았던 군영) 순교성지이며, 1960년대 심도직물노동조합의 노조탄압 당시 가톨릭 노동사목의 시작을 알린 역사적 장소다.


▲천주교강화성당


아직 11월이지만 소담스럽게 쌓인 눈 덕분에 어디선가 성탄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종교와 무관하게 경건하고 평화로운 연말을 보내고 싶다면 한 번 방문해보자.


눈이 그쳤다. 마지막으로 강화성당에서 5분 쯤 떨어진 ‘용흥궁’으로 향했다.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좁은 골목을 걸었다. 근대화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은 돌담길이 고맙다. 지붕위에 쌓인 눈이 벌써 녹기 시작했다.


▲용흥궁 골목


추녀 끝으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이 겨울의 낭만을 더한다. 용흥궁은 조선의 25대왕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19세까지 살던 집이다. 강화도령 이원범의 할머니 송 마리아는 신유박해 사건 때 천주교 강화성당이 있었던 진무영에서 처형을 당했고, 할아버지 은언군도 이와 관련하여 사약을 받는다.


강화유수로부터 매우 가혹한 대접을 받았던 이원범은 헌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하루아침에 왕이 된다. 이원범이 살았던 초라한 초가는 주인이 용상에 오르고 4년 후 새롭게 단장하여 ‘왕이 일어난 집’ 즉 ‘용흥궁’으로 지위가 높아진다.


▲용흥궁 안채(문화해설사 설명을 듣는 관광객들)


골목 안에 대문을 세우고 행랑채를 둔 용흥궁은 창덕궁의 연경당과 낙선재를 본받아 지은 살림집이다. 검박하고 단정한 안채 마루에 가만히 앉았다.


눈 쌓인 고아한 분위기의 고택과 설경이 조화롭다. 한 폭의 한국화 같이 펼쳐진 눈 오는 날 풍경이 운치 있다. 번잡한 대도시의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이 절로 치유되는 순간이다.


​고려궁지(셀카찍는 연인들)


누가 걸어갔는지 알 순 없지만 누군가 지나갔음을 알려주는 눈 위의 흔적들 따라 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강화의 옛 골목을 걸었다. 거리마다 눈꽃이 피었다. 계절은 갑작스럽게 가을에서 겨울로 건너뛰었다.



글 김세라 I-View 객원기자, 사진 나윤아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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