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야기

[인천 이야기] 소창 기계 소리가 더 없이 행복한 '이 청년'

발간일 2018.10.24 (수) 14:11


2대째 연순직물  잇는 김민재 대표

집집이 베틀소리 갠 하늘에 비 퍼붓네

소문난 강화색시 부지런히 저러할 새

헐벗은 많은 사람의 살을 가려주거니


60년 여 년 전, 육당 최남선은 강화를 방문 한 후 여행기를 남겼다. 육당이 기록 했듯, 강화는 예로부터 직물산업이 발달 한 고장. 이화견직, 경도직물, 유신산업, 남화직물, 삼화직물….




10대부터 소창공장 다녔던 어머니 이름 회사명에 사용


1934년 민족자본으로 설립한 최초의 직물공장 조양방직과 1947년 세워진 굴지의 방직회사 심도직물을 필두로 1970년대까지 강화에는 크고 작은 60여개의 직물공장이 있었다. 특히 이불안감, 기저귀, 생리대, 행주 등 살림살이로 사용했던 강화소창은 1980년대까지 강화의 번영을 이끌었지만, 1990년 이후 무역자유화와 중국산 면소창의 대량수입으로 사양길을 걸었다.


▲백년 넘은 도요타 직물기로 작업 중인 김민재씨


최근 친환경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강화소창이 재조명 되고 있는 가운데, 대를 이어 소창을 짜고 있는 청년을 만났다. 연순직물 김민재씨(33세)다.


“연순은 어머님 성함이에요. 부끄러우신 건지 자꾸 상호를 바꾸라고 성화인데 저는 이 이름이 좋아요. 어머니는 10대부터 소창공장에서 일하셨대요. 친가도 옥림리에서 메리야스 직물공장을 운영하셨고요. 그때는 강화 젊은이들이 대부분 직물공장을 다녔죠.”


▲연순직물 고연순 사장


소창공장에서 만난 두 남녀는 가정을 이룬 후 더욱 부지런히 일했다. 민재씨의 부모님은 그렇게 마련된 독립자금으로 93년에 ‘연순직물’을 세운다.


“솔직히 가업을 이을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20대에는 서울에서 다른 일을 했었죠. 그 나이에는 누구나 포부가 크잖아요. 서울살이가 만만치 않았어요. 고심 끝에 6년 전에 강화로 돌아왔죠. 서른도 훌쩍 넘었고, 뭘 해야 하나 고민 하던 차에, 공장에서 근무하셨던 직원 한분이 개인사정으로 그만 두셨어요. 하필 기계까지 말썽이고. 어린 시절부터 봤던 거라 그랬는지, 배운 적도 없는데 이틀 만에 고쳤어요.”


▲이제는 구하기 어려운 북(실타래를 넣는 연장)


이 일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공장에 합류하게 된 민재씨는 기왕 시작한 일 제대로 배우자고 결심한 후, 바로 폴리텍 대학을 입학한다. 쇠 가공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이제 부품을 구할 수가 없어서 직접 제작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일제강점기에 도요타 직물기가 들어 온 후, 강화에 직물산업이 번창했어요. 저희 공장에도 도요타 기계가 두 대 있어요. 그 이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우석, 삼일에서 직물기가 생산되었어요. 예전에는 기계마다 등록증이 있어서 정부에서 관리했대요. 인가를 받지 못하면 기계를 살 수도 없었죠. 어머니 말씀으로는 귀한 기계여서 직원들이 하이타이로 닦았대요. 이제는 더 이상 평직기계는 나오지 않아요. 전국을 돌아다니며 폐업한 공장에서 기계를 통째로 사오고 있어요. 셔틀, 바디, 북 같은 부품 기술자들도 한 분씩만 남으셨죠.”




사라진 줄 알았으나 다시 각광


100년 넘은 평직기와 정경기(날실을 가지런히 감는 기계)가 여전히 돌아가고 있는 강화. 세월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진 줄 알았던 오래된 산업이 누군가에 의해 되살아나고 있었다. 강화소창은 박물관 속에 박제된 전통문화가 아니다. 오늘도 일상 속에 현존한다.


▲백년 넘은 정경기


“그동안 소창은 생활용품 보다는 결혼식 함이나 장례식 때 관 묶는 끈으로 더 많이 쓰였어요. 주로 의례용으로 사용되었죠. 세월호 때도 저희 제품이 나갔어요. 그때는 마음이 안 좋아서 엄청 신경 썼어요. 티끌 하나라도 들어가면 다 빼버렸죠. 최근 들어 화학제품이 사회문제로 언급 되면서, 강화소창을 찾는 분들이 늘었어요. 특히 지난여름에 모 정보프로그램에서 소창행주가 방송 된 후 난리가 났죠. 저희가 대박 난 줄 아시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공장 기계가 20대에요. 하루에 기계 한 대에서 19인치 두 필 나오거든요. 폭주한 주문량 맞추려고 손해 보면서 판적도 있고요. 그래도 소비자들이 더 잘 알거든요. 저희 소창 좋은 거.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풀먹인 실 말리기


소창은 사람 손을 거치지 않는 단계가 없다. 소창 원사인 23수는 모두 풀어서 과산화수소로 표백 후 옥수수 전분을 끓어 풀을 먹인다. 풀 마르기를 기다리는 닷새는 밤낮없이 바깥 날씨에 신경이 곤두선다.


비라도 내리면 대책이 없기 때문. 젖은 실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말린다. 이렇게 가공한 실은 정경기에 넣고 감는다. 오롯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이 잊은 정경기. 성한 곳 없어 민재씨는 매번 응급처치를 한다. 


강화에서는 정경작업을 ‘나름 한다.’고 부른다. 여기까지가 준비 과정. ‘나름’한 실이 비로소 직물기계에 오르면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가슬가슬한 촉감의 소창으로 변신한다.

▲소창공장​-연순직물


▲원사풀기


“강화에 소창공장이 많이 안 남았잖아요. 강화소창이 좋다는 입소문은 났는데 공급이 못 따라주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중국산, 파키스탄산이 강화소창 타이틀을 달고 나오기도 해요. 그래서 강화군에 강화소창 제조사 인증을 요청했어요.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강화소창도 부흥하지 않을까요? 저희 물건을 써본 고객들이 깜짝 놀라요. 다른 곳에서 산 소창이랑 비교가 안될 만큼 품질이 좋다고. 좋은 원사로 촘촘하게 짜서 그렇거든요. 제대로 만들어서 제 값 받고 팔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 보다 소창기계 돌아가는 기계소리를 듣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청춘. 그 남자의 도전을 응원한다. 

강화소창은 현재진행형이다. 



글 김세라 I-View 객원기자, 사진 나윤아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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