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야기

[인천 이야기] 미세먼지 없는 강화엔 별들이 ‘총총’

발간일 2018.06.04 (월) 13:57


강화의 별지기, 천문학 저술가 이광식씨

어린 시절, 여름이 오면 낮에는 진초록 들판을 뛰어 다니다가, 어둠이 내리면 개구리 소리 들으며 별을 헤아렸다. 쏟아질 것 같은 은하수는 언제나 신비했다. 이제, 세계적인 빛공해 국가인 대한민국의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별빛 대신 불빛뿐이다. 다행히 수도권 인근의 강화도는 ‘별지기들의 성지’라고 부르는 빛공해 청정지역이다. 아마추어 천문가를 뜻하는 별지기들 중에서 생업을 반납하고 강화도로 온 별사람이 있다. 잘나가던 출판사 대표를 그만두고 천문학 저술가가 된 이광식씨다.
 


 ▲ 원두막천문대에서 이광식씨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온 가족이 시골로 이사를 갔어요. 어느 초여름 밤, 마당 평상에서 동네 친구들과 놀고 있었는데, 9살 위인 큰 형이 이런 말을 했어요. ‘얘들아. 하늘 좀 봐봐. 저 별이 사실 이 순간에는 없는 것일지도 몰라. 우주는 너무 넓어서 저 별빛이 지구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 꼬마들이 이해하기에는 몹시 이상한 소리잖아요. 그 특이한 이야기가 내내 잊혀 지지 않았나 봐요. 비록 문과 출신이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우주를 향한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청계천 헌책방을 수십 군데 뒤지면서 천문서적을 찾아 다녔는데,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그런 책들이 많지 않았거든요. 편집인이 되어서 천문학에 대한 책들을 내게 되었죠. 국내 최초의 천문잡지 <월간 하늘>도 발간했고요.”

비록 <월간 하늘>은 수요가 많지 않아 3년 만에 여정을 중단하였지만, 본격적인 아마추어 천문가의 길을 가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 강화 강서중학교 운동장에서 찍은 별 일주사진.
135mm 굴절망원경으로 촬영(사진=정성훈)



▲ 동쪽에서 떠오르는 대표적인 겨울 별자리인 오리온자리.
화살을 들고 전갈을 노리는 오리온의 모습이 잘 보인다.
촬영지는 경북 예천(사진=정성훈)




삶이 버거울 땐 먼 우주를 생각해 보세요

“출판사 대표의 삶이 나쁘지 않았어요. 야근을 하고 귀가하는데, 아파트 건너편 베란다에 걸린 조등(弔燈)이 눈에 걸리더라고요. 순간, ‘어영부영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라는 영국 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떠올랐어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남은 인생은 조용한 곳에서 별 보고 우주나 사색하면서 살자고 다짐했죠. 미련 없이 출판사를 넘기고 강화도로 이사를 왔습니다. 대략 20년 전 일이지요.”
 


▲ 이광식씨 집필도서


천문학 도서 탐독 시절, 어째서 5분만 읽으면 잠이 오는지 늘 의아했다. 그래서 이광식씨는 문외한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우주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한다. 문학을 전공한 출판편집인이 집필한 <천문학 콘서트>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 원래는 <천문학 콘서트> 한 권으로 끝내려 했지만,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십대, 별과 우주를 사색해야 하는 이유>에 이어 어린이 도서까지 쓰게 되었다.

“우리나라 청소년 행복지수가 OECD 22개국 중 최하위라잖아요. 눈앞에 처한 상황에 매몰되면 아무래도 시야가 좁아지죠. 시선을 하늘로 돌릴 수 있다면, 10대들의 마음 그릇도 커지지 않을까요. 삶이 버거울 때마다 우주를 생각하면 좋겠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는 초속 30킬로미터로 태양을 향해 달려가고 있거든요. 눈 한번 깜빡하면 강화도에서 인천시청까지 가는 거리에요. 태양계는 초속 200킬로미터로 움직이고 있고요. 우리 은하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이렇게 중첩되는 운동 속에서 살고 있어요. 격렬한 지구의 움직임은 감지하지 못한 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보고 있거든요. 이렇게 우주를 향한 감수성이 활짝 열리면, 우리 청소년들도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보급형 90mm 굴절망원경


밤하늘을 볼 줄 아는 아이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 무한한 우주 앞에서 인간은 고개가 숙여지게 마련이다.

“천문학은 겸손을 가르치는 학문이라고 해요. 인성교육에 천문학만큼 강력한 무기가 없죠. 아는 별지기의 경험담인데요, 요즘이 목성 관찰 시즌이거든요. 미세먼지 없는 맑은 날 동남쪽 하늘을 보셔요.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 목성입니다. 쌍안경으로도 관측이 가능하죠. 그날도 목성을 보려고 한밤중에 인근 학교로 갔대요. 운동장 구석 어둠 속에서 남학생 몇 명이 나타난 거여요. 그 밤중에 집에 가지 않고 어울려 노는 고등학생들. 아무래도 모범생들은 아니었겠죠? 이 별지기가 순간 겁이 났는데, 애써 태연한 척 한마디 했답니다. ‘야, 오늘 목성 정말 잘 보인다. 너네도 볼래?’ 망원경 거부하는 애들은 하나도 없답니다. 애들이 껄렁껄렁하게 다가와서 망원경을 들여다봤는데, 신기하거든. 목성 무늬도 보이고. 그 별지기가, 목성은 지구의 10배 크기다, 저건 갈릴레오가 발견한 목성의 4대 위성이다, 저 목성의 폭풍은 300년째 저러고 있다. 이런 설명 해주니 학생들이 저도 모르게 집중을 하게 되었죠. 관측 끝내고 이 별지기에게 90도로 인사하고 갔대요.”




하점면 강서중학교는 손꼽히는 별 관측지

목성을 쌍안경으로도 볼 수 있다니 귀가 솔깃해진다. 전문지식과 특별한 장비를 갖춘 사람만 별을 관찰할 수 있다는 편견이 있었나보다.

“천문학은 아마추어들의 기여도가 높아요. 학자들보다 소행성이나 혜성 발견에 더 큰 성과를 내기도 하죠. 누구나 ‘별 볼일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마음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별지기가 될 수 있어요. 우선 한두 권이라도 재미있는 천문학 교양서를 읽어보셔요. 아는 만큼 보인다잖아요. 동호회나 카페에서도 관련지식을 얻을 수 있고요. ‘스텔라리움(stellarium)’이라는 사이트가 있는데요, 실시간으로 밤하늘의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스마트폰 별자리 앱도 유용하고요. 밤하늘에 갖다 대면 바로 별과 별자리 이름이 뜨죠. 별자리 공부 따로 하지 않아도 되요. 장비구입도 크게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몇 만 원짜리 쌍안경으로도 달 분화구나 가까운 행성을 볼 수 있고요, 요즘에는 20만 원대 90mm 굴절망원경도 훌륭해요. 장비가 없어도 괜찮아요. 인터넷에서 ‘별관측회’를 검색해보셔요. ‘스타파티’라고도 부르는 별관측회에 참석하시면, 앞 다투어 초보자들에게 별을 보여 주려는 훈훈한 광경을 만나게 될 겁니다.”

 


▲ 한국천문봉사협회 주관으로 열린 강서중학교 학생대상 관측회(이광식씨 제공)

하점면 강서중학교는 서울 인근에서도 손꼽히는 별관측지다. 강서중학교가 20년째 교정을 개방해줄 수 있었던 것은 ‘가장 좋은 망원경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는 망원경이다.’는 별지기들의 나눔 실천 때문 아닐까. 돌아오는 주말에는 자녀들과 밤하늘을 봐야겠다. 내일은 또 내일의 별이 뜨겠지.


글 김세라 I-View 객원기자, 사진 나윤아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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