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야기

[인천 이야기] 스승에서 제자로 주인 이어진 '문구점 사연'

발간일 2018.03.14 (수) 18:04


강화읍에서 가장 오래된 선일문구사

 

학교를 졸업한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맘때가 되면 긴장과 설렘이 공존한다. 해마다  3월에는 새로운 교실, 담임 선생님, 친구들을 만날 준비에 늘 설레었다. 개학 전날, 엄마 손 잡고 방문한 문구점은 붐볐다. 표지에 유럽의 성 사진이 담겨있던 노트, 흔들면 심이 나오는 샤프, 스위치를 누르면 지우개 통이 튀어나온 자동 필통은 모든 어린이들의 워너비 아이템이었다. 참새 방앗간 들르듯 매일 하굣길에 ‘신상’구경하러 출근 도장을 찍었던 ‘문방구’가 사라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0년대 무려 3만여 곳에 달하던 문구점은 2016년 3월 말 기준 9918곳으로 급감했다. 변해가는 소비패턴과 대형마트에 밀려 문을 닫는 문구점이 늘고 있는 가운데, 50년 전통의 문구점이 있어 눈길을 끈다. 강화읍에서 가장 오래된 ‘선일문구사’다.

 
 


 

 

1대 주인은 강화고등학교 1회 졸업생 이영성 교장

50년 된 상점이라고 하니, 가업을 잇는 가게가 아닐까 짐작 했다. 놀랍게도 이 문구점은 3대째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고 있다. 어떤 사연일까?

“선일문구사 1대 주인은 강화고등학교 1회 졸업생인 이영성 교장선생님입니다. 선일이라는 이름은 ‘선함이 제일이다’는 뜻을 담아 이 교장선생님께서 지으셨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8명의 자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강화고등학교 8회 졸업생인 제자 강도운 선생님께 선일문구사를 물려주셨습니다. 저는 강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선일문구사로 취직하여 17년간 점원으로 일하다가 1997년에 인수하였습니다. 올해로 21년 되었네요.” 
 
 

 




선일문구사 3대 사장인 최병철씨는 조상 대대로 강화사람이다. 땅 한 평 없어 나무를 해다가 근근이 살던 어려운 가정 형편에 대학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제자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은사님의 권유로 시작한 점원 생활. 당초 문구점 일을 오래 할 마음은 없었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 성실한 문구점 청년의 삶의 태도에 감화 받은 서울 아가씨가 강화로 시집을 왔다. 부부는 선일문구사를 인수하였고, 전통을 이어받았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IMF시절 가게를 물려받고 1년 동안 자리 잡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어요. 그런데 98년에 강화읍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 진거에요. 대홍수로 가게 안까지 1미터 가량 물이 차올랐어요. 새로 장만한 상품이 다 망가졌죠. 손해액은 당시 금액으로 500만원이 넘었어요. 읍에 전셋집을 구할 만큼 큰 금액이었습니다.”
 


 

예전엔 개학, 어린이날, 크리스마스땐 꼬마 손님들로 줄서

지우개 하나, 연필 한 개, 개별 단가는 얼마 안 되지만 가짓수가 많은 문구점. 제조사마다 금액이 다르고 손님들이 찾는 물품의 종류도 다양하며 마진율도 높지 않아 운영이 쉽지 않다. 컴퓨터의 발달로 필기도구를 찾는 이도 줄어들고, 몇 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는 학습준비물 제도로 인하여 새 학기 용품을 장만하는 학생들도 거의 없다. 개학,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전에는 식사도 못 챙길 정도로 꼬마 손님들이 줄을 섰지만, 그것도 옛말이다. 대신 근처 사무실에서 사무용품을 사러 오는 단골들이 있어 그나마 현상 유지가 가능하다. 
 

 
 




“강화군 책자에 1960년 대 강화거리 사진이 실렸는데, 제가 제출한 겁니다. 어느 날 80대 서양 노인이 이 골목을 이리 저리 기웃 거리더라고요. 무슨 일인지 여쭈었어요. 옛날에는 고려산에 미군기지가 있었거든요.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재직했던 미군이셨죠. 노인이 되어서 젊은 시절 근무했던 강화도를 방문하셨더라고요. 1960년대에 강화도 미군기지에 있으면서 찍었던 흑백사진을 꺼내며 사진 속 장소를 찾으셨어요. 서로 말은 안 통했지만 봉지 커피 한잔 타드리고, 안내 해드렸죠. 그랬더니 고국으로 돌아가서 고맙다며 본인이 찍은 60년대 사진들을 CD로 제작해서 보낸 거여요. 강화대교 건설 전에 보트 타고 오가는 사람들, 민둥산인 고려산, 뽑기 하는 아이들, 소방관들이 사용한 리어카, 이런 사진을 강화군청에 제공했어요.”  

 
 



▲선일문구사 3대 사장인 최병철씨와 그의 부인



군 생활을 제외하고는 강화를 떠나본 적 없는 강화토박이. 최병렬씨는 본인을 강화 지킴이라고 스스럼없이 소개 할 만큼 강화사랑이 각별하다. 고등학교 때 강화사를 탐독할 만큼 강화 역사에 관심이 많아 문화재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다 했던가. 지역 어르신들도 잘 모르는 강화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독학으로 향토사를 연구 하는 남다른 애향심의 소유자에게 돈으로도 구할 수 없는 귀한 역사 자료가 주어 진 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닐 것이다. 

강화읍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예쁘게 단장된 골목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선일문구사. 어디선가 누구에게 필요한 물건은 반드시 제공하는 동네 문구점이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작은 가게의 힘을 보여주면 좋겠다. 파이팅.

 
 

글 김세라 'i-View' 기자, 사진 선일문구사 제공

 

EVENT

댓글 0

댓글 작성은 뉴스레터 구독자만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구독신청

※ 뉴스레터 신청시 입력하신 이메일 주소를 입력해주세요.

Main News

Main News더보기 +

많이 본 뉴스

주간 TOP 클릭
많이 본 뉴스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