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야기

[인천 이야기] “무관 배출하며 위기때마다 나라 지켜”

발간일 2018.03.12 (월) 15:47

 

500년 역사 간직한 강화군 불은면 구씨 집성촌

 

일흔이 넘은 친정아버지는 여전히 케이블 채널에서 재방영 중인 농촌드라마 ‘전원일기’를 챙겨보신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MBC에서 방영했던 ‘전원일기’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던 국민드라마였다. 압축 성장으로 인한 근대화 과정에서 ‘삶터’를 잃어버린 도시민의 DNA에도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회 돌아가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저장되어 있다. 아파트 위주의 단절된 주거 환경 속에서 온갖 이웃 갈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요즘, 복지 선진국에서 주목하는 ‘따뜻한 공동체’의 요소가 남아있는 강화의 농촌마을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그 중,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불은면 고능리는 올해로 500년이 된 능성 구씨 강화 종중의 집성촌이어서 눈길을 끈다.

 

 



▲ 
새로운 이웃에게 고추장 담그는 법 전수​하는 어르신들


 

기묘사화에 연루된 후 1519년 강화도 불은면에 정착
나주지역의 토착성씨인 능성 구씨의 11대조는 기묘사화에 연루 되어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1519년에 강화도 불은면 일대에 자리를 잡는다. 연산군 시절부터 각종 사화에 시달림을 당했던 능성 구씨 강화 종중 입향 시조는 후손들에게 ‘절대 벼슬길에 나가지 마라’는 유지를 남겼다. 이에 능양 구씨들은 중앙 정계 진출 보다는 개인 수양을 위한 학업에 정진하거나, 문과 대신 무과에만 응시를 한다. 그래서 능성 구씨는 나라에 위급한 일이 닥칠 때마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무관들을 배출 했다. 잘 알려진 인물은 병자호란 당시 순절한 구원일 장군이다. 나라에 충절하면 3대가 가난하다고 했던가. 인조 실록에 의인으로 기록된 구원일 장군이지만, 초야에 묻혀 조용히 살아온 능양 구씨들의 살림은 넉넉하지 못했다. 제때 손질 하지 못해 초라해진 사당은 비교적 최근에 새 단장을 하였으니, 능양 구씨들의 검박한 성정을 짐작할 수 있다.

 

 



능양구씨 종친회장




▲ 구원일 장군 사당​

 

 

“불은면에 구씨 집성촌이 다섯 쯤 됩니다. 그 중에도 우리 마을은 입향조 선산과 구원일 장군의 사당이 있는 으뜸 마을이지요. ‘고능리’ 명칭에서 예상되듯이, 우리 동네는 예로부터 ‘능골’이라고 했어요. 학계에 보고되지는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곳이 태조 왕건과 그의 아버지 능이 있었던 자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강화사에 의하면, 고려 고종이 강화도로 천도하면서 태조 왕건과 그의 아버지 능을 강화로 이장했다고 하거든요. 두 번째 이장지가 선원면인건 확실한데, 첫 번째 장소는 정확하지가 않아요. 우리 마을에는 왕릉 앞 홍살문이 있었다는 ‘대문재’와, 왕실 원찰로 추정되는 ‘자은사터’가 전해오고 있어요. 또한 마을의 수호신 천년 넘은 은행나무가 자은사터 마당을 지키고 있지요. 부모 세대에는 밭을 갈다가 장개석 같은 왕릉 석물이 나오기도 했데요.”

 

 

1,000년 된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지켜주는 동네
능성 구씨 종친회장인 구예서 옹에 따르면, 고능리는 풍수지리상으로 고려 왕릉 자리의 특징을 전부 갖춘 배산임수 지형이다. 위협적이지 않고 아늑한 뒷산과 선녀가 와서 목욕하고 갔다는 선녀개울이 있는 ‘능골’은 지난 500년간 능성 고씨들의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충분한 일조량과 기름진 옥토. 양지 바른 마을에서 쑥쑥 자란 고능리의 농산물은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마을 주변을 병풍처럼 두른 감나무에서 수확한 장준감(임금님 수랏상에 올랐다고 하는 강화의 특산품)은 당도가 높아 부르는 게 값이니, 풍수지리는 몰라도 고능리가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 천년은행나무​



▲ 무료 이발봉사​​​


 

 

상숙이네, 자매네, 자춘네, 자완네, 동지네, 문성네, 할머네, 순자네. 8촌 이내의 가까운 친척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능리 어르신들은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마을회관으로 향한다. 고능리 사람들은 매일 마을회관에 모여서 점심을 함께 나눠 먹는다. 오늘은 마침 ‘할아버지 이발의 날’. 몇 해 전 고능리로 이사 온 정대길씨는 본디 파주에서 이발소를 운영했다. 은퇴 후 살 곳을 찾다가 고능리를 선택한 정대길씨는 염려와 달리 이주민들을 환대해준 고능리 어르신들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마을 회관에 무료 이발소를 연다. 할아버지들이 멋쟁이로 거듭나는 동안, 부엌에서 할머니들은 점심 준비에 한창이다. 오늘의 메뉴는 누룽지와 무나물. 삶은 무는 소화가 잘 되어서, 고능리 어르신들이 즐겨 드시는 반찬이다. 평생을 함께 했던 이웃들과 정을 나누는 기쁨이 있기에 30인분 마련도 웃음이 가득하다.
 

 

 



▲ 점심준비하는 할머니들​​​​

 

 

“양도면에서 시집왔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혼례를 치룬 후, 가마니만 짰어요. 그래도 이웃인 시어른들이 먼저 다독여 주어서 시집살이가 고단하지 않았죠. 신랑보다 시어른들이 더 좋았다니까요. 구씨 집성촌이지만, 우리 마을이 텃세가 없어요. 몇 집 있는 한씨, 외지에서 온 사람들 두루 두루 다 잘 지내요. 오늘도 인천에서 이사 온 옆집 사람에게 고추장 만드는걸 알려줬어요. 비법이랄 것은 없고. 전기밥솥에 엿을 고아서 단술 만들고, 엿기름, 소금, 고추 가루만 넣어요. 우리 집은 원래 장을 묵혀 먹거든요. 메주가루 넣고 묵히면 까맣게 되니까, 빛깔 나빠질까봐 안 넣죠.”
 

 

 



▲ 장준감으로 만든 곶감 말랭이

 

 

20년 묵힌 장, 가마솥과 아궁이, 밥을 주는 괘종시계. 세월을 거스르는 오래된 습관은 그대로여도, 새로운 사람들은 언제든 환영이다. 단오가 오면 1000살 넘은 아름드리 은행나무 가지에 그네를 매고, 그늘 아래에서 동네잔치를 여는 ‘따뜻한 농촌공동체’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특히, 강퍅한 생활에 지쳐 마음의 고향이 필요한 도시인들에게는.


글 김세라 I-View 기자, 사진 나윤아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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