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야기

[인천 이야기] '강식당' 보다 더 맛있는 이집트경양식 ‘돈가스’

발간일 2018.02.05 (월) 15:39

돌아온 신포동 명물, 옛 명성 그대로


80년대, 껌 좀 씹었던 인천 젊은이었다면 나팔바지 흩날리며 신포동을 누볐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신포동은 ‘모든 것은 신포동으로 통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그곳에는 조금 사는 사람들이 ‘최애처(最愛處)’ 외식장소였던 경양식집도 여러 개가 있었다. 그중 하나였던 이집트경양식집은 아무나 근접할 수 없었던 경양식집의 지존이었다.

 


 

지금 신포동은 추억 소환 중
지금은 쇠락한 구도시가 된 신포동은 80년대 서울 명동을 뺨치는 번화한 동네였다. 인일여고, 인성여고, 인천여고, 송도 중고, 제물포고 등 학교가 밀집된 신포동 거리는 젊은 학생들로 북적였다. ‘신포동 워킹코스(동인천~신포동 경동사거리~애관극장 골목)’에는 항상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방과 후 학생들은 ‘뉴욕빵집’과 ‘크라운빵집’에서 삼삼오오 미팅을 했고, 그들의 아버지들은 ‘곰다방’에서 시간을 죽이기도 했다. 밤이 되면 여러 개의 고고장과 디스코텍의 네온사인이 뿜어내는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뤘다. ‘쌍쌍’, ‘바덴바덴’, ‘국일관’, ‘우산속’, ‘팽고팽고’ 등 유명한 클럽에서 놀다 새벽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동인천 광장의 벤치를 자신의 침대삼아 눈을 붙이곤 했다. 신포동 지하상가는 사람에 치여 걸음을 떼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신포동에는 여러 곳의 경양식집이 있었다.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경양식집 역시 신포동 한 경양식집을 배경으로 찍었다. ‘이집트경양식’은 80년대 동인천의 명물이었다. 당시 예식까지 치러질 정도로 규모가 큰 경양식집이었고 좀 산다는 집의 외식장소로 손색이 없던 곳이었다. 신포동에 있던 학교들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주안과 연수동, 부평, 구월동이 주거지로 부상하면서 신포동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이집트경양식집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한진규 대표

옛것은 추억을 소환한다. 인천사람들의 스토리가 담겨있는 이집트경양식집이 다시 부활해 옛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한진규(34세) 대표는 청년 사업가다. 수봉공원 앞 ‘불티나 돈가스’ 창업자이자, 동인천 ‘메카’ 경양식집 사장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돈가스를 먹으며 자랐다. 한진규 대표는 대학 졸업 후 교회에서 운영하는 카페를 운영했다. 커피 외 부수적으로 돈가스를 판매했다. 커피보다 돈가스가 더 잘 나갈 정도로 돈가스가 소문이 났다. 장사가 끝난 후 원데이 레슨을 배우고 야간 학원을 다니면서 돈가스에 매진했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전통 레시피에 배운 것을 접목해서 돈가스가 점점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28세에 시작한 교회카페를 2년 만에 접고 150만원으로 제물포지하상가에서 자신만의 돈가스집을 차렸다. 블로거들의 입소문을 타고 그의 작은 돈가스집은 유명세를 탔다.

 



바삭한 돈가스 속에 육즙 뿜뿜
그의 돈가스 맛은 외식계의 거손이라 불리는 장진우 대표 귀에 들어갔고 장진우 대표와 손잡고 동인천의 옛길을 살리는 프로젝트 일환으로 ‘이집트경양식’을 재탄생 시켰다.
‘이집트’ 자리에 옛 추억 그대로의 테이블과 의자, 벽지, 샹들리에 등의 소품을 살려 옛 ‘이집트경양식’ 그대로를 재현했다. 다시 이집트경양식을 열었다는 소식은 손님들의 입소문을 탔다. 과거 엄마 아빠 손에 이끌려 돈가스를 맛보았던 중년층에서부터 노년층, 젊은층에 이르기까지 이집트경양식 맛에 홀릭했다.
 

 


“망치로 두들겨 얇고 넓게 피는 방식이 아니라, 고기는 두툼하게하고 튀김옷은 얇게 해서 고기의 육질을 살리는 것이 저희 돈가스의 특징입니다. 또한 매콤한 소스를 개발, 돈가스가 느끼하지 않도록 돕고 있지요.”



이곳 소스 맛에 손님들 ‘엄지척’
“이집의 돈가스는 소스가 매콤해서 전혀 느끼하지 않습니다.” 라고 오애란(연수동) 씨는 말한다.
“주문이 들어가면 그때 돈가스 옷을 입힌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서 최고의 돈가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윤다정(논현동) 씨는 이 돈가스 맛을 잊을 수 없어 이곳에 자주 들러 식사를 한단다. 한 대표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이곳을 누가 수십억의 권리금을 준대도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는 70대 어르신이 찾아오셨어요. 갑자기 돈가스를 드시다가 우시는 거예요. 사연을 들어보니 아이들과 부인과 함께 이곳에서 과거에 돈가스를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는 겁니다. 이혼을 하면서 30년간의 기억을 잃고 살았는데 돈가스 한 조각에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답니다. 그 노인이 썰고 있는 것은 돈가스가 아니라 단란했던 과거를 썰고 있다는 생각에 저 역시 같이 울었던 기억이 있네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이집트경양식을 살린 것이 자신의 사명같다는 주인장에게 꿈을 물었다.
“나중에 5평정도 되는 작은 식당을 차리고 싶어요. 테이블 한 두 개 정도만 놓고 제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손님과 수다를 떨며 행복하게 장사하고 싶어요.”
장사가 잘되면 권리금을 받고 넘기고 여러 개의 분점을 내는 욕심 가득한 장사꾼이 판치는 세상에 한 대표의 소박한 꿈이 별빛처럼 빛난다.


이현주 I-view기자 o7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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