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터뷰] “가난과 세상풍파 겪으며 인생 그림 배웠죠”

발간일 2018.01.29 (월) 18:06

명노선 화백의 오뚜기 인생


인생을 '새옹지마'라고 말한다. 흐렸다 맑아지는 자연섭리가 인간의 삶에도 들어맞는다. 인천토박이 명노선 화백 삶도 그렇다. 화가였던 그가 집을 나와 거리를 배회했다가 다시 일어서 아트페어운영위원장이 되기까지 굴곡진 사연이 눈물겹다.

 

 

 


소년, 누워진 배만 그리다

명노선 씨의 인생을 얘기할 때 그림을 빼놓을 수는 없다. 논현초 교장선생님이던 부친을 따라 그는 논현동 사택에서 자랐다. 당시 완전 시골이었던 논현동은 그에게 많은 예술적 감흥을 주던 곳이었다. 사택 앞 큰 나무를 스케치북에 옮기길 좋아했고 송월동으로 이사한 후에는 자유공원과 인천바다를 화폭에 그렸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가 돌아가신 후 집안은 기울기 시작했다. 7남매 중 막내였던 명 화백에게 엄마는 '그리움'이었다.
"그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제 삶은 텅 비어있어요. 우울감이 너무 커서 그 어떤 것을 해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바닷물이 빠진 바다에 배 한 척이 쓰러져 있는데 마치 내 삶과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쓰러진 배 한 척을 그려서 학교에 냈고 미술 선생님께 불려가서 엄청 혼난 기억이 있습니다. 왜 쓰러진 배만 그리냐고 말이죠."
"소래포구는 제 유일한 놀이터였어요. 소래철교만 건너면 내 부족한 마음이 정리되지 않을까 싶어 철길을 걸었어요. 철교 끝에는 엄마가 살아있을 것 같았죠."
소년의 그리움과 외로움은 그의 그림에 고스란히 그려졌다. "바닷물이 빠진 바다에 배 한 척이 쓰러져 있는데 마치 내 삶과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쓰러진 배 한 척을 그려서 학교에 냈고 미술 선생님께 불려가서 엄청 혼난 기억이 있습니다. 왜 쓰러진 배만 그리냐고 말이죠."  

 

 

 


모두 다 떠나가다

만들기를 좋아하던 명 화백은 어느 날 TV를 제작했다. 만든 TV와 안테나를 연결하기 위해 옥상에 올라갔다가 그만 옥상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그의 머리에 이상이 생겼고 이로 인해 건강도 나빠졌다. 당시 사귀던 첫사랑에게 그는 건강상 이유로 이별을 고한다. 생이별을 감수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첫사랑 여인은 충격으로 미국으로 건너간다.
 

 


미대에 진학한 명 화백은 졸업 후 입시미술학원을 차렸다. 13년 간 미술학원은 호황을 누렸다. 그러다 동업자의 배신으로 사업은 망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그는 길가로 내몰렸다. 집에 전화를 하려해도 10원짜리 동전이 없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부인과의 오해도 생겼고 결국은 각자의 길을 선택했다. 이때부터 명 화백에게는 인생의 쓰디 쓴 맛이 찾아왔다. 막노동부터 보험회사, 명화 위작, 콩국수 배달까지 안 해본 일 없이 마구잡이로 일을 시작한다.
어느 날 콩국수 배달 일을 할 때였다. 새벽에 일어나 콩국수와 콩 국물을 받아서 각 공급처에 배달하는 일은 새벽에 도착해야 당일 만든 국수와 국물을 받을 수 있었다. 제일 먼저 콩국수 재료를 받으려고 새벽 같이 나갔지만, 항상 1등을 놓치는 것이었다.
 

 


"도대체 나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은 누굴까 궁금했습니다. 평상시 보다 더 서둘러 새벽 4시에 나갔는데 누군가 큰 트럭에 물건을 던지고 내려오더군요." 그는 그의 눈을 의심했단다. 두 다리가 잘린 남자가 시동을 걸더란다. 다리도 없는 사람이 자신보다 훨씬 많은 거래처를 뚫고 일등으로 물건을 가져가는 모습에 퍼뜩 생각이 스쳤다.
"좌절하지 않고 성실만하다면 나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일을 계기로 그는 재개에 성공했다.
"당시 인터넷으로 공부를 하던 아이가 제게 전화를 걸어왔어요. 아빠, 인터넷이 안 돼….라고 말이죠. 2만원이 없어서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고 들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던지 그때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명 화백은 자꾸 입을 가리며 말한다. 치료시기를 놓쳐 빠진 치아가 부끄럽단다.


사람에게서 다시 위안 받다

우연히 남인천방송에 그의 사연이 소개되었고 그 방송을 본 첫사랑 여인과 연락이 닿아 지금은 다시 연락을 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큰 김치사업을 하면서 혼자 사는 옛 연인과 사랑이 다시 싹 트는 중이다. 그는 요즘 '만남'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바뀌는 게 인생이지요. 제가 갚아야 할 돈 대신 줬던 그림이 어떤 분에게 흘러들어갔고 그 분을 기 십년 지난 후 만나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명 화백에게 그림을 받았던 ‘우 선생’이라는 분은 키다리아저씨 같은 분이란다. 우연히 남인천방송에 그의 사연이 소개되었고 그 방송을 본 첫사랑 여인과 연락이 닿아 지금은 다시 연락을 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큰 김치사업을 하면서 혼자 사는 옛 연인과 사랑이 다시 싹 트는 중이다.
"참 많은 일이 벌어졌지만 노력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게 인생인 것 같습니다. 제가 젊어서 배고픔을 알았고 이젠 인생의 맛을 알게 되었어요." 

  

 
개인전을 열고 화가로 등단한 한효순(72세) 씨는 "저에게 선생님은 은인이십니다. 미술시간이 제일 싫었던 제가 이렇게 화가로서 길을 걷게 해준 장본인이시죠. 회원들에게 지도하는데 있어서 일률적이지 않고 각자 맞게 지도해주셔서 모두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욕심내지 않고 순수하게 인생을 화폭에 풀어가고 싶어요."
그에게 그림을 배우는 문하생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그가 틀에 얽매이지 않아서 배울 것이 많다고 말한다.
개인전을 열고 화가로 등단한 한효순(72세) 씨는 "저에게 선생님은 은인이십니다. 미술시간이 제일 싫었던 제가 이렇게 화가로서 길을 걷게 해준 장본인이시죠. 회원들에게 지도하는데 있어서 일률적이지 않고 각자 맞게 지도해주셔서 모두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그에게 배운 문하생들은 '명 아트크루'라는 전시회를 해마다 열고 있다.
"제가 어려서 놓친 부분이 있어요. 뉘어져 있던 배는 바닷물이 들어오면 다시 똑바로 일어섭니다. 썰물이 있었다면 다시 밀물이 들어오는 게 인생입니다. 지금 힘들어도 좌절하지 마세요."
지금 명화백의 그림 속 배는 누워 있는 것 없이 모두 세워져 있다. 쓸쓸하게 있던 한 척의 배 대신 여러 척의 배가 당당하게….


*명노선 화백

추계예대 졸업
인천고 미술동문회장
아트페어 운영위원장 역임
현 인천미술협회 서양화 분과위원장



이현주 I-VIEW기자 o7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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