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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도’ 골목 골목엔 이야기가 살아있다

    [인천 여행] ‘강화도’ 골목 골목엔 이야기가 살아있다

    ​전통과 낭만, 문화와 함께 걷는 ‘강화스토리워크’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추구를 의미하는 '소확행'이 대세다. 이에, 복잡한 준비나 많은 경비가 필요 없는 골목길 산책이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관광자원이 풍부한 강화는 최근에 도시재생사업을 통하여 오래된 골목을 주제가 있는 스토리워크로 새롭게 단장하였다. 전통과 현대의 낭만적인 만남, 강화스토리워크로 지금 떠나보자. GOGO~! ​▲ 독립운동길 지도독립운동, 종교, 소창길 등 세가지 테마로 조성<전설의 마녀>, <터널>, <쌈, 마이웨이>, <명불허전>부터 현재 인기리에 방영중인 <스위치>까지.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강화에서 촬영한 드라마들이다. 높은 건물이 없고, 잘 손질된 근·현대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강화읍 골목은 드라마 촬영지로 선택될 만큼 구석구석 예쁘다. 골목길 여행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강화스토리워크는 독립운동길, 종교이야기길, 소창길의 세 가지 테마로 조성되어있다. ​▲ 이야기투어 전기자전거​​ 독립운동길은 강화의 근·현대역사를 조망할 수 있어 교과서체험여행으로 좋다. 1919년 탑골공원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된 3.1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강화읍 장날인 3월 7일에 약 2만4천여 명의 강화사람들이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독립운동길은 3.1만세운동과 조봉암, 김구, 이동휘 선생 등 강화와 인연이 깊은 독립운동가들의 자취를 따라 걷는 길이다. 일제말기 세브란스의전 출신이 설립했던 구세의원, 김구 선생이 해방 후 강화의 후원자들을 만나기 위해 머물다 간 대명헌 등 일제 강점기 당시 가옥들이 이국적인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 종교이야기길을 둘러 보고 있는 연인들​▲ 종교 이야기길을 걷는 가족들​​종교이야기길에는 용흥궁, 성공회강화성당, 강화성당, 고려궁지 등 장소 마다 인생샷 명소가 숨어있다. 연인들에게는 강화스토리워크의 명물 '이야기투어 전기자전거'를 추천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전거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전문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거리를 돌아보는 이색데이트, 강화스토리워크에서 누리는 특별한 추억 만들기다.​ ​▲ 소창길 지도​▲ 여행객들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는 동네를 허무는 것은 한순간이다. 골목에는 오랜 세월동안 대대로 그 땅을 살던 사람들의 사연이 포개져있다. 골목은 보존할 전통이자 도시의 미래다. 강화스토리워크는 골목의 역사문화자원을 새롭게 재해석한 시간여행장소로서 가치가 높다. ‘우리동네 전성기 소창길’은 이야기가 있는 도보여행을 원하는 여행객들에게 안성맞춤 코스다.▲ 소창길에 설치된 방직기와 심도직물 굴뚝 강화는 일제시대부터 직물산업이 발달했다. 조양방직은 1933년 우리나라 사람이 세운 최초의 인조견 공장으로, 강화지역의 대부호 홍재묵이 강화읍 신문리에 세운 회사다. 이곳에서 생산된 인조견은 품질이 좋아 만주와 중국에까지 수출될 만큼 인기가 좋았지만 1942년 친일 자본에 넘어가게 된다. 드라마 ‘백년의 유산’에 등장했던 국수집이 바로 이 조양방직 터다. 조양방직 인근서 파는 베트남 샌드위치 맛 별미 해방 후에도 강화의 직물산업은 읍을 중심으로 활황이 이어진다. 1970년대 강화는 60여 개의 크고 작은 직물공장이 인조견, 넥타이, 커튼직물, 특수 면직물을 생산했던 ‘직물의 도시’였다. 전성기 시절, 강화읍에만 직물공장 직원이 4,000여 명이었다. 특히 아기들 기저귀감과 이불에 사용하는 강화 소창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그러나 1990년대 무역자유화와 중국산 면소창의 대량수입으로 강화직물산업은 쇠락하게 된다. 그 후, 강화의 자랑이었던 직물공장은 오랫동안 도심 속 흉물로 방치되었다. 강화군은 작년부터 직물 공장 터를 매입하여 역사, 문화,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심도직물 굴뚝, 동광직물, 이화직물, 남화직물, 상호직물, 경도직물, 조양방직. 소창길에서는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던 산업역군들의 노력과 삶의 애환을 느낄 수 있다.​ ​▲ 카페 들 - 반미와 신또골목길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나만의 맛집 찾기 아닐까. 길을 걷다 허기가 밀려오면, 조양방직 인근에 위치한 카페 ‘들’을 방문해보자. 이곳의 메인 메뉴는 베트남 식 샌드위치 ‘반미’와 베트남 식 스무디 ‘신또’. 강화에서 맛보는 베트남 샌드위치는 어떨까? 몸에 좋은 재료로 구운 향긋한 바게트 빵에 고수를 잔뜩 올린 ‘반미’는 별미중의 별미다. 고수가 입에 맞지 않는 손님들에게는 신선한 양상추가 제공되니 참고하길. 글 김세라 I-View 기자, 사진 나윤아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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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4.23 (월)
  • 울동네 맛고수.15화

    [웹툰 · 갤러리] 울동네 맛고수.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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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4.25 (수)
  • 이 건물엔, 인천 화교 탯줄같은 역사 숨쉰다

    [인천 이야기] 이 건물엔, 인천 화교 탯줄같은 역사 숨쉰다

    ​ 산둥동향회로 시작, 소방차박물관까지 시대마다 용도 달라 인천 중구 선린동 49번지. 이곳에는 세계의 신기한 미니어처 소방차들을 볼 수 있는 소방차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위로는 인천의 유명한 호텔인 올림포스호텔이 언덕에 위풍당당 자리하며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소방차박물관에서는 세계 소방의 역사, 특이한 미니어처 소방차를 보러 유치원생부터 초등학생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이 건물이 인천화교의 탯줄과 같은 역사가 있는 산둥동향회 건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 1891년 산둥출신 화교간 친목과 상호부조 위해 조직 중구 선린동은 화교들의 깊은 원류가 흐르는 장소다. 올림포스호텔이 있는 이곳을 개항기 인천에 정착한 화교들은 ‘용머리’라고 불렀다. 언덕 지점에서 시작해 자유공원과 홍예문까지 이어지는 땅의 모습이 마치 용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중국과 인천을 오가는 배의 선주들은 용머리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무사히 항해를 마치게 해 달라”고 바다의 신에게 빌었다고 한다. 이 언덕에 바다의 수호신인 ‘마조여신’의 사당이 있었다. 마조신당도 6.25 전쟁중에 불타 사라진 것으로 전해진다.​ ​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조계지 계단부터 선린동 월미은하레일역까지는 19세기말 중국 청나라의 조계지였다. 당연히 이곳에는 중국인들의 주택이 많았고 상당수의 화교들이 이곳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갔다. 그래서 산둥동향회의 후신인 세계소방차박물관 역시 인천화교협회가 소유다.​ ​▲ 1930년대 인천 산둥동향회 건물 모습 ​산둥동향회 건물은 130여 년간 시대에 따라 쓰임새와 건물모양이 바뀌면서 생명력을 이어왔다. 건물은 여러 번의 리모델링으로 예전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지만 골격은 산둥동향회 당시 모습 그대로다. 1969년 전까지는 공화춘 창업자의 아들인 우홍장 등 화교 2명의 공동소유로 되어있었다. 1969년 이후 소유권이 화교협회로 바뀌었다. 현재 인천 올림포스호텔 아래에 있었던 산둥동향회는 산둥성 출신 화교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상호부조를 위해 1891년 조직되었다. 조직 당시의 이름은 ‘북방회관’이었다. 당시 인천 화교가운데 상당수가 산둥성 출신이었기 때문에 북방회관은 인천 최대의 동향회 조직이었다. 처음 북방회관은 1층 건물이었으나 1930년에 3층짜리 붉은 벽돌의 멋진 건물로 개축했다. 건물 내에는 산둥성 출신 화교 자제를 위한 노교소학(魯僑小學)이 있었다. 산동동향회관 내에는 당시의 화상이 갹출해 구매한 기선 이통호(利通號)를 경영하는 사무실이 있었다. 이통호는 월 4회 인천을 출발해 산동성의 연대와 위해를 왕복하는 1855t의 기선으로 인천과 산동성 간의 사람, 물건, 정보를 실어나르는 당시 최고의 교통수단이었다. 그러나 이통호는 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군의 폭격으로 침몰하고 만다. 산동동향회관은 해방직후까지도 이통호 관련 문서를 대량으로 소장하고 있었으며, 동향회 관련 문서도 다수 소장하고 있었다. 산동화교의 기록과 추억을 간직한 산동동향회관은 인천상륙작전 때의 함포 사격으로 모두 불타버렸다. 산동동향회관뿐 아니라 인천차이나타운 일대 붉은 벽돌 건물에도 많은 피해가 발생했음은 물론이다.​ ​▲ 6.25 전쟁중 폭격을 맞고 붙타고 있는 동향회 건물​​​인천 산둥동향회는 인천화교의 역사가 깊숙이 자리한 장소이지만 그것을 증명할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1950년 9월15일 오전 2시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면서 안전한 상륙을 위해 유엔군 함대는 현재의 인천차이나타운(선린동) 일대, 북성동 일대, 자유공원 일대에 엄청난 포격을 가했다. 이 선제 포격이 북한군을 제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포격으로 인해 인천차이나타운 일대가 큰 피해를 입었다. 산동동향회도 이때 폭격을 맞아 불타면서 자료들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산둥동향회가 어떤 곳이었는지 짐작케 하는 기록을 남긴 책이 있다. 화교 진유광(秦裕光)이 쓴 ‘중국인 디아스포라’에 보면 산동동향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당시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그려볼 수 있다. “1911년 인천에서 처음으로 짜장면을 판 공화춘을 시작한 우희광(于希光)의 이야기에서 산둥동향회를 그려볼 수 있다. 우희광은 17세에 인천에 왔는데 운좋게 곧바로 산둥동향회관에서 막일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회관 위치는 올림포스회관 주변이었다. 회관은 1층짜리 단층 건물에 불과했지만 내부 가구장식 등은 모두 모두 중국 상하이에서 운반해 온 것들이었다. 그래서 산동동향회관은 당시 인천에서 가장 화려하고 호화로운 건물이었다. 1층만으로는 그 용도를 다 충족시킬 수 없게 되자 1920년에 4층으로 개축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6.25전쟁때 포탄을 맞고 파괴되었다.” 6.25때 폭격 맞은 뒤 기숙사, 교실, 찜질방 등으로 활용 산둥동향회는 6.25 전쟁때 폭격을 맞았지만 골격은 그대로 남았다. 화교들은 외관에 남은 벽돌을 살려 다시 건물을 세웠다. 건물은 두 개동으로 구성되어 있고 옥상에 다른 한 채의 집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번지가 선린동 49,50, 51번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동향회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다양한 용도로 쓰임새가 변했다. 인천에 화교들이 늘고 수원, 군산 등에 사는 화교학생들이 인천으로 유학을 오면서 교실이 부족해지자 한때 교실로도 쓰였다. 이후엔 외지에서 남학생들의 기숙사로 전용됐었고 1980년대 경에는 화교 남녀학생들의 기숙사로 용도가 변경되기도 했다. 당시 기숙사 생활을 했던 화교들은 아침에 학교 등교시간이 늦을까봐 기숙사에서 학교까지 뛰어갔다고 회고한다.​ ​▲ 7·​80년대 화교학교 기숙사 시절 모습​​​​▲ 화교학교​ 기숙사 시절 - 학생들​ ​기숙사에는 2층 침대가 40개 이상 쫙 놓여져 있었고 80여 명의 학생들이 이곳에서 생활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인천화교학교는 중고교 과정이 개설되어 있었기에 소학교만 운영되던 수원, 군산출신 화교들은 중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인천으로 유학을 오는 경우가 많아 교실도, 기숙사도 증축됐었다. 인천화교학교는 1958년에 중학교 과정이, 1962년에 고등학교 과정이 정식으로 개설됐다.​ ​ 산둥동향회 건물은 2000년 들어 용도가 또 바뀐다. 2000년 초 화교유치원 교실의 일부가 이곳에 마련됐다. 당시 화교유치원에 들어가면 중국어와 영어를 한꺼번에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화교유치원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인기에 힘입어 화교유치원 아동 정원이 급격히 늘었고 교실이 부족하자 산둥동향회에 교실을 조성했다. 산둥동향회내 마련됐던 유치원 교실은 몇 년 뒤 유치원 원아가 줄자 패쇄됐다. 다시 이 건물은 사행성 오락실로 유명한 ‘바다이야기’와 찜질방으로 임대되면서 예전의 모습은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2000년 후반 찜질방에 임대하면서 건물은 다시 리모델링이라는 수술을 거쳤고 건물 옥상에는 주차장을 만드느라 대대적인 수리를 했다. 소방차박물관이 들어선 것은 3년전이다. 화교 어르신에 따르면 옛날 산둥동향회는 중국에서 인천으로 건너온 중국인들이 화교등록부에서 친인척을 수소문하기 위해 꼭 들렀던 장소라고 말한다. 인천 화교 역사의 원류가 흐르는 건물이다. 글 이용남 본지 편집위원, 사진 서은미 자유사진가, 부극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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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4.25 (수)
  • 1970년대 가장 잘나간 최고 핫 플레이스

    [그때 그 시절] 1970년대 가장 잘나간 최고 핫 플레이스

    ​골목길 보물찾기- 경동 전 ‘민속주점’ 건물가장 최근에는 민속주점으로 사용했지만 영업을 중단하고 건물을 사용하지 않은지 수년이 지났다. 겉보기에는 상업전용 건물로 보이나 내부는 방 형태를 이루고 있다. 원형을 고려하지 않고 건물 내·외관을 많이 수리했다. 현재 건물 외벽은 작은돌과 시멘트가 섞여있는 모양새다. 한때 시멘트가 귀해 돌을 섞어 건물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 건물이 여기에 해당하는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싸리재, 서울로 올라가는 간선도로 시발점 싸리재는 1930년대 숭의동 로터리를 지나는 경인 국도가 준공되기까지 서울로 올라가는 간선도로 시발점의 역할을 했다. 그러던 것이 개항장을 중심으로 일본인 거주 인구 증가와 국내 각지로부터 이주해 오는 외지 유입인구로 인해 1920년대 말을 전후해서 지금의 배다리~경동사거리~신포동을 중심으로 상권을 형성하면서 1970년대 후반까지 인천 상권의 중심지가 됐다.(인천개항사, 격동기 한세기 인천이야기 참고)​ ​ 일본 교토대 지리학과에 소장하고 있는 오노마사미의 그림을 보면 1935년 당시 인천 시가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싸리재를 따라 많은 건물이 위치해 있으며, 싸리재를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공공시설과 산업, 상업시설로 보이는 대형건물들이, 북쪽으로는 도시형 한옥들이 자리잡고 있다.하지만 특이하게도 현 ‘카페 싸리재’ 뒷편 골목만은 건물이 거의 없는 공터로 그려져 있다. 몇몇 나무들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소공원으로서의 역할을 추측해 볼 수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이곳이 이 건물이 위치해 있는 골목이다. 좁은 골목 사이로 독특한 도시경관 조성 현재 카페 '싸리재' 뒷편 골목은 오래된 한옥과 건물들이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자리잡아 독특한 도시경관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골목은 1935년 후반~1936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이 골목에 남아있는 건물 중 오래된 건물들은 1935년 후반~1936년이 지어진 건물이다.(163번지: 1935년 11월 1일, 197-1번지: 1936년 5월 30일, 197-2번지: 1936년, 197-4번지: 1936년 6월 10일, 참고: 싸리재길에 맞닿아 있는 '카페 싸리재'의 건축일: 1920년)  골목형성의 역사를 추적해보고, 인근 건물과 길이 어우러진 정비가 이루어진다면 특색있는 거주+상업 공간이 될 수 있어 보인다.​ ​<경동 전 ‘민속주점’ 건물> - 위 치 : 인천시 중구 큰우물로 4번길 5 (경동 197-2) - 면 적 : 건축 82.61㎡, 연 106.01㎡ - 건립연도 : 1936년(출처: 건축물대장) - 주 구 조 : 목조, 철근세벽조 원고출처 : 골목길 숨은 보물찾기(2015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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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4.25 (수)
  • 청년들은 어떤 인천에서 살고 싶을까?

    [인천 이야기] 청년들은 어떤 인천에서 살고 싶을까?

    ​인천청년원탁토론회, 청년들의 고민 공유인천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천시에게 바라는 저마다의 희망사항을 쏟아냈다. 지난 4월 19일 저녁 7시 인천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인천청년원탁토론회’는 정책·문화·일자리·주거 등의 4개 분야에 대한 인천청년들의 바람을 듣고, 이를 6·13 지방선거 인천시장 후보자들에게 전달하고자 마련됐다. 이번 토론회는 인천청년협회 준비위원회와 인천 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지난 4월 19일 저녁 7시. 인천시청 대회의실에서인천청년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청년원탁토론회’가 개최됐다.​내가 인천시장이라면… 인천청년협회는 인천지역 청년문제에 대한 다양한 의제를 발굴하고 해결방안을 찾아 청년들이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기 위해 조직된 단체다.  이러한 취지의 일환으로 ‘내가 인천시장이라면 나는 인천청년들을 위해 어떤 정책을 만들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이번 인천청년원탁토론회가 개최됐다. 참석한 100여 명의 청년들은 원탁에 둘러앉아 인천에서 청년으로 살면서 느낀 고민과 그에 대한 해결방안을 가감 없이 풀어냈다.▲ 포토존에서 참석인사를 건네는 청년예술가 신효진씨와 대학생 이경은씨​이번 토론회의 키워드는 ‘짠’. ‘짠한 청년’, ‘인천 짠놈’, ‘짠! 이제 등장하자’, ‘소주한잔 짠!’, ‘청년이 모여 축제를 열자 짠짠짠!!!’등 인천청년들의 애환이 담긴 다양한 의미의 ‘짠’이 키워드로 선정됐다.  청년예술가 신효진씨는 참여인사에서 “청년문제에 대해 같이 이야기해 볼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지인의 권유로 참석하게 됐다”며 “청년들의 문화·예술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진지하게 논의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또 다른 참석자 대학생 이경은씨는 “청년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떤 고민과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무엇에 삶의 가치를 두는지 알고 싶어서 찾아왔다”는 인사말을 밝혔다.​▲ 토론회는 청년들의 최대 고민분야로 꼽히는 정책·문화·일자리·주거 등 4개의 주제로 나뉘어 진행됐다.​​ 토론회는 청년들의 최대 고민사로 분류되는 정책·문화·일자리·주거 등 4개의 주제로 나뉘어 진행됐다. 청년들이 각자 자신의 관심분야를 찾아 원탁에 둘러앉으면서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됐다.​ 테이블별로 청년들은 현재 자신을 표현하는 키워드 3가지를 적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인천지역에서 청년으로써 살면서 겪은 고충이나 아쉬운 점을 공유하며 이를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 토론 중 청년들에 의해 직접 작성된 청년정책제안서는올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의 인천시장 후보자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이번 토론회의 하이라이트는 인천시에 전달될 청년정책제안서를 각자 작성해보는 것. 청년들에게 필요한 정책과 의제가 작성된 제안서들은 한데 모아 올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인천시장 후보자들에게 전달된다. 6월 2일에 열릴 인천시장 후보자 토크콘서트에서 제안서들을 기반으로 후보자들에 직접 질의하고 답변을 듣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청년들이 살기 좋은 인천이 되길 바라는 애정을 담아 작성한 제안서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지금껏 익히 청년문제 해결방안으로 논의됐던 대학등록금 지원, 학자금 이자면제, 주택마련지원금 확대, 청년창업지원금 확대, 청년문화예술공간 마련 등의 제안들도 있었지만 이색적인 제안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직장인 박준영씨는 “청년들이 폭넓게 누릴 수 있는 대중교통비 지원책을 제안해봤다”며 “인천시가 매달 청년들에게 10만원 가량의 교통비를 지원해준다든가 자전거를 무료로 대여해준다면 청년들의 경제적 부담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않을까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대학생 이영준씨는 “학업과 취업준비, 직장생활 등으로 지친 청년들의 재충전을 위한 청년여행비 지원책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라는 또 다른 이색제안으로 청년들 사이에서 많은 호응을 받았다.▲ 토론의 마지막 순서에서는 각 테이블에서 나온 의견을 서로 공유하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모두가 공감했던 청년들의 고민 토론회의 마지막은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공감해보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각자의 제안을 육하원칙 하에 작성한 메모지를 붙여 완성한 표를 토대로 나온 종합적인 의견을 테이블별로 발표했다. 발표에서 제시된 ‘청년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작업공간을 늘리자’, ‘신혼부부에게 5년 동안 전세대출보조금을 지원하자’ ‘직장초년생을 위한 취업지원책도 만들자’ ‘좋은 기업을 인천에 유치하자’ 등의 의견에 많은 청년들은 공감의 제스처를 보냈다. 앞으로 인천청년협회는 SNS를 통해서도 보다 많은 청년들의 의견을 모을 계획이다. 원탁토론회와 온라인 의견수렴을 취합한 빅데이터를 공개해 효과적인 정책반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쓸 예정이다.​ 정해랑 I-view기자 marinboy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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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4.23 (월)
  • 인천 원도심에 디자인을 입히다

    [동네방네] 인천 원도심에 디자인을 입히다

    ​구월1동, 계산1동 등 대상 관광활성화에 도움사람들이 떠난 칙칙한 원도심이 컬러풀한 디자인으로 활기차고 생동감있게 변신하고 있다. 인천시는 지난 19일(목), 지역별 스토리텔링으로 맞춤형 디자인을 보급하는‘원도심 디자인 활성화 4차 사업’최종보고회를 개최했다. 이 사업은 공공디자인을 통해 도시미관을 개선하고 원도심 활성화에 기여하여, 신·원도심이 조화로운 안전하고 쾌적한 희망 인천을 조성하는데 있다. 또 낙후된 원도심 고유의 정체성을 재해설하고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디자인개발, 시범제작 및 설치까지 시행하는 용역이다.​ ​▲ 남동구 구월1동 안심마을​​ ​원도심은 인천시를 발전시키고 성장하게 만든 주역이다. 최근 도시가 급속도로 성장하여 여러 신도시들이 생겨나고 원도심이 노후화 되면서 거주 인구가 줄고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태다.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주거환경 개선이나 도시재생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으나 단기간 개선이 어렵고, 주민의 반대에 부딪히는 등 어려움이 있다. 이번 4차 사업 대상지는 남동구 구월1동, 계양구 계산1동,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 3개소로 각각 안심마을, 보호수 쌈지 숲, 내가면 관광활성화 등 스토리텔링을 통하여 범죄예방, 안전디자인, 유니버설디자인 기법 등을 고려하여 사용자를 배려하는 디자인으로 추진하였다. 남동구 구월1동은 달빛마을로 브랜딩하여 골목길을 정비하였으며 특히 길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등의 여성들이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여성안심마을 조성’이라는 목표로 디자인을 개발했다. 이 프로젝트는 인천시와 남동구청, 인천지방경찰청, 지역 주민들이 함께 어두운 골목길을 다니며 위험한 곳을 조사하고 곳곳에 아이디어를 담아 안전하고 쾌적한 디자인을 만들어 냈다.​ ​▲ 계양구 보호수 쌈지숲 ​계양구 계산1동은 600년 이상 오래된 보호수 주변을 쌈지 숲으로 조성하여 주민들에게 마을 쉼터를 마련한다. 기존에 어둡고 지저분하여 주민들의 민원이 지속되었던 곳으로 깨끗하고 밝은 디자인과 개방적인 분위기로 주민들의 공동체 회복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 일원은 대한민국 올해의 관광도시를 맞아 저수지 주변 둘레길과 인근 주거지를 연결하는 관광활성화 차원으로 디자인되었다. 특히 진입로 주변 방치되었던 공·폐가를 정비하여 지나가는 방문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주변 관광지를 홍보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4월 말까지 디자인을 완성하여 군·구에 전달하고 연말까지 시비와 군·구비를 투입하여 시범사업을 마무리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는 남구 용일자유시장, 연수구 함박마을, 동구 송현초교 일원 3개소에 원도심 디자인 활성화 5차 사업을 시행하여 지역에 활력소를 제공하고 기존 대상지 10개소에 대한 사후평가를 통해 더욱 체계적인 사업을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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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4.25 (수)
  • 시대가 달라져도 늘 노동자의 ‘보금자리’로

    [외고 · 칼럼] 시대가 달라져도 늘 노동자의 ‘보금자리’로

    ​숨어있는 부평이야기9 – 산곡동 근로자주택어렸을 적 살던 마을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집집이 마주보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을 걸을 때 발자국 소리가 좋아 뛰어도 보고 빠르게 걸어도 보고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도록 살금살금 걸어도 봤던 재미있는 기억이 있다.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받아내어 이곳저곳 패이고 깨진 바닥은 정겨웠고, 그 사이를 비집고 올라 온 풀꽃은 반가웠다. 해 질 무렵 집 밖으로 낸 연통에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면 누구네 집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지도 알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묏골마을’ 부평의 근·현대사 고스란히 간직 요즘에는 눈 돌리는 곳 마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야만 끝을 볼 수 있는 높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아파트 단지 산책로는 마치 지금 막 만든 것인 마냥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는데, 그 곳에 피어있는 꽃을 보고 있으면 좁은 골목길의 이름 없는 풀꽃을 바라 볼 때와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마을’은 사라졌고 그 자리를 ‘단지’가 채운 지는 꽤 오래전부터이다.​ 부평구 산곡동에 ‘묏골마을’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이 있다. 마을 서편으로 원적산이 있어 ‘원적산 골짜기’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주변 모두가 고층 아파트인데 반해 이곳은 어렸을 적 필자가 기억하는 마을의 모습과 많은 부분이 비슷하다. 요즘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빨간 벽돌로 지어진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골목은 두 사람이 지나다니기에 불편함이 느껴질 정도로 비좁다. 마을을 걷다보면 작은 시장이 나온다. 도로 하나를 건너면 대형마트가 있어 시장에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이발소 삼색등’도 힘차게 돌아가고 있고, 방앗간의 문틈사이로 새어나오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봐서는 저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의 장면으로는 근래에는 사라져 버린 옛 마을을 추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해 할 수 있지만, 사실 ‘묏골마을’은 부평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이다. ​​친일인사 조병상, 근로자 주택 500호 건설 계획 원적산을 옆에 두고 있어 자연적으로 부락이 형성 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묏골마을’은 특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세워진 마을이다. 1930년대 후반 부평에는 히로나카상공을 비롯하여 동양자동차 공장, 국산자동차 공장 등 근대식 공장이 하나 둘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큰 규모의 공장은 전쟁무기를 만들어내는 ‘일본육군조병창 제 1제조소’였다. 부평에 대규모 군수공장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리자 부평의 땅 값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성부 의원 조병상(조병상은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한 인물이다)을 중심으로 한 재계 인사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이들은 경인기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경기도로부터 부평 내 토지 2만평을 분양 받아 근로자 주택 500호 건설을 계획하였다. 군수공장의 설립에 따라 부평에 많은 사람들이 이주할 것으로 보고 사업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건설계획을 살펴보면 전체 13,013평의 부지에 8개의 블록을 만들었으며, 한 개의 블록에는 6동 88호를 배치하였다. 전체적으로 48동 704호의 조선식 목조가옥이 세워진 것이다. 1호 당 크기는 6.25평이었다. 40년대 초반에 완공을 이룬 경인기업주식회사의 주택에는 조병창의 노무자들이 입주하여 사택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경인기업주식회사 외에도 산곡동에 주택을 건설한 회사가 있다. 바로 조선주택영단이다. 조선주택영단은 1941년 조선총독부에서 설립한 법인체인데, 조선주택영단이 지은 주택을 조선영단주택 혹은 영단주택이라 부른다. 1944년 8월에 정지공사를 끝낸 조선주택영단은 부평 산곡동에 500호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나 곧이어 맞이한 해방으로 인해 실현시키지 못했다. 해방 전 까지 조선주택영단이 건설 한 주택은 약 200여 호 정도였다.​ 경인기업주식회사와 조선주택영단의 주택 건설 사업의 표면적인 목적은 인구 급증에 따른 주택 부족의 해소였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따로 있었다. 바로 한강이남 최대의 군수단지였던 조병창으로의 원활한 노동력 공급을 위한 것이었다. ​▲ 산곡동 영단주택지 구성도광복 후 마을의 변화​ 광복 후 인천에 들어 온 미군은 일본이 남겨 놓은 시설과 물자를 그대로 사용했다. 미군은 옛 조병창을 애스컴시티(ASCOM City)로 이름 지었으며, 이후 미군을 위한 새로운 군수기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마을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일어난 변화는 마을 구성원이었다. 해방 후 조병창 노무자들은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갔고, 빈 자리는 애스컴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종업원들로 채워졌다. 한국인 종업원들 뿐만 아니라 미군들의 현지처 역할을 했던 소위 ‘양공주’ ‘양색시’라 불리는 여성들이 새로운 주인으로 자리를 잡아나갔다.​ 산곡시장이 활기를 띠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미군PX에서 판매되는 물건이 시장으로 흘러나와 활발하게 거래되었다. ‘양공주’ ‘양색시’들이 중간 유통의 역할을 한 것이다. 지금이야 상점 몇 개와 가판 몇 개가 전부 인 작은 규모의 모습으로 남아있지만 당시에는 품질 좋은 미제물품을 구할 수 있는 핫 플레이스가 바로 이곳이었다.또 한 번의 변화묏골마을은 1973년 애스컴 부대가 해체된 후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직장을 잃은 미군부대 종업원들과 ‘양공주’ ‘양색시’들은 새로운 터전을 찾기 위해 이곳을 떠났다. 그리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주인이 묏골마을을 찾았다. 바로 대우자동차 부평공장과 한국베아링 그리고 부평공단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었다. 각 가정의 빨랫줄에 공장 작업복이 널려져 있는 모습은 당시 묏골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묏골마을은 경인기업주식회사와 조선주택영단에 의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후 조병창과 미군기지를 거쳐 산업화 시대의 공장들과 함께 역사적 흐름을 같이해 왔다. 그리고 영단주택은 때마다 주인을 달리하며 근로자 주택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현재 묏골마을에서는 경인기업주식회사가 건설한 주택은 ‘구사택’으로 조선주택영단이 건설한 주택은 ‘신사택’으로 주민들에게 불리며 긴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살면서 조금씩 개·보수를 하여 원래의 모습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제법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있다. ​​▲ ​​​경인기업주식회사가 건설한 구사택의 모습​​​▲ ​조선주택영단이 건설한 신사택의 골목 모습필자에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좁은 골목길은 사실 안전한 주거환경을 방해하는 원인이 된다. 건축물의 노후와 그에 따른 안전문제를 이유로 이 지역의 개발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나이 많은(?) 건축물을 다 밀어버리고 새 건물을 짓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방법이다. 묏골마을의 근로자 주택은 단순히 나이 많은 건축물이 아니라 그 안에 많은 역사적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의 개발 이전에 부평의 역사적 기억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묏골마을을 어떻게 보존하고 재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묏골마을 전봇대 위 복잡하게 얽혀있는 전선들이마치 마을의 지난 시간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그나저나 누군가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있을 때 부평에 대규모 군수공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재빠르게 사업성을 계산하고 날름 경인기업주식회사를 세운 조병상의 이야기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부동산 투기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나보다.글· 사진 김정아 부평역사박물관 총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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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4.23 (월)
  • 국내 최정상 무용수 대표작 본다

    [무대와 객석] 국내 최정상 무용수 대표작 본다

    ​춤추는 도시 인천 10주년 스페셜 무대 춤꾼과 관객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가는 <춤추는 도시 - 인천>이 10주년을 맞아 더욱 특별한 무대로 5월 18일(금)부터 26일(토)까지 인천문화예술회관 대․소․야외공연장, 그리고 야외광장에서 관객들을 맞이한다.​ ​▲ 개막공연 - 김용걸 댄스씨어터 대표사진 ⓒ박귀섭​ ​2008년에 시작된 <춤추는 도시 - 인천>은 열린 무대, 함께하는 공연을 지향하는 인천의 춤 축제이다. ‘항상 곁에 있는 춤’ 이라는 슬로건 아래 인천시립무용단의 공연을 중심으로 지역의 춤 공연을 엮어 춤을 사랑하는 무용가와 관객의 매개가 되고자 시작했다. 지역의 작은 축제였던 <춤추는 도시 인천>은 10년을 이어온 시간을 돌아보며, 더 넓고 깊은 춤의 세계를 함께하기 위해 다양한 춤판을 준비했다.​ ▲ 개막공연 - 인천시립무용단 무무​​ ​5월 18일 대공연장에서 열리는 <개막공연>에서는 국내 최정상 무용단체들의 대표작을 갈라 형식으로 만날 수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발레리노 김용걸의 ‘김용걸댄스씨어터’, 한국 최초로 팬덤을 몰고 다니는 현대무용의 ‘LDP무용단’, 인천 지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두 무용단체 ‘이은주무용단’과 ‘인천시티발레단’, 그리고 축제의 호스트인 ‘인천시립무용단’의 대표적 작품을 소개한다.​ ▲ 무대열전 - 서울예술종합실용학교 '침묵의시선' ​5월 23일에는 소공연장에서 향후 우리 춤을 이끌어 갈 전공 대학생들의 열정 가득한 페스티벌 <무대열전 舞․大列傳>이 펼쳐진다. 서울예술종합학교, 한성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인천대 등에서 본격적인 춤의 길을 걷고 있는 학생들이 학교의 이름을 걸고 무대 위에서 열전을 벌인다. 5월 25일 소공연장에서는 인천시립무용단이 주목할 만한 무용가를 선정하여 소개하는 이 열린다. 현재 우리 무용계의 기둥으로 활약하는 무용가들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쳐내는 무대로 테크닉과 표현의 정수를 확인할 수 있다. 인천시립무용단원 박재원, 배아란 외 조재혁, 박수정 등 6명의 무용가가 무대에 오른다.​▲ 릴레이댄스 야외공연장 전경​5월 26일은 야외에서 모두가 어울리는 시간이다. 야외광장에서는 오후 6시 50분부터 릴레이댄스 참가자들을 중심으로 관객 및 행인들이 다 같이 함께하는 <플래시몹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인천지방무형문화재인 나나니타령에 맞춰 ‘나나니춤’의 주요 동작을 신명나게 춰본다.이어 7시부터는 야외공연장에서 축제의 시그니처 무대 <릴레이댄스>가 대미를 장식한다. 다양한 무용단체들의 공연이 쉼 없이 릴레이로 펼쳐지는 <릴레이댄스>는 춤꾼과 관객의 벽을 허물고 함께하는 축제의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공연이다.​  날 짜 공연명 공연장소 5월 18일(금) 오후 8시 개막공연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5월 23일(수) 오후 8시 무·대열전(舞·大熱戰) - 무용과 대학 페스티벌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5월 25일(금)오후 8시 IMDT CURATION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5월 26일(토) 오후 6시 50분 플래시몹 - move nanani 인천문화예술회관 야외광장 5월 26일(토) 오후 7시 릴레이댄스 인천문화예술회관 야외공연장▲ <춤추는 도시 - 인천>​ 일정표​ 인천시립무용단 관계자는 “전문 무용 단체들의 작품부터 아마추어 무용가들의 삶이 묻어있는 춤까지 모든 춤은 다 그 자체로 신나고 아름답다. <춤추는 도시 - 인천>을 통해 춤과 예술로 삶의 충만한 기쁨을 나누기를 바란다.”고 말했다.18일 <개막공연>과 25일 은 전석 1만원이며, 그 외 공연들은 무료로 진행된다.문의) 인천시립무용단 032-420-2788 ○ 인천시립무용단 <춤추는 도시 인천 10th Anniversary> - 일 시 : 5월 18일(금) ~ 26일(토) - 장 소 : 인천문화예술회관 대·​소·​야외공연장, 야외광장 - 관 람 료 : 공연별 상이 - 예매문의 : 1588-2341 / 032-420-2788, www.imdt.or.kr                art.incheon.go.kr / www.enticket.com 

    2018.05.18 ~ 2018.05.26
    작성일 2018.04.25 (수)
  • 5월은 어린이 세상, ‘부키프’ 축제 열린다

    [전시 · 공연] 5월은 어린이 세상, ‘부키프’ 축제 열린다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과 체험을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부평키즈페스티벌(이하 부키프(BUKIF))가 5월 1일부터 5일까지 부평아트센터 공연장과 야외광장에서 진행한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하는 부키프는 2014년 부평구문화재단에서 기획한 어린이 축제로 축제 기간 동안 전시와 공연을 즐길 수 있고 어린이날에는 가족이 함께 야외공연을 즐길 수 있어 구민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축제이다.​ ​올해는 2016년 문화특화지역조성 문화도시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음악도시 부평’으로 성장하는 부평구의 문화정책 방향성에 맞추어 ‘Sound of Music’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관객들을 찾아간다.​부키프 시작을 알리는 전시 <아빠를 찾아라>는 4월 26일부터 일찍 관객을 맞이하며 벽화, 미디어아트를 통해 아빠를 직접 표현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어서 5월1일부터는 장갑과 양말 같은 생활용품이 무대 소품이 되는 전통 음악 음악극 <봉장취>가 공연되며 5월 3일은 부평구립소년소녀합창단의 창착합창뮤지컬 <헨젤과 그레텔>, 5월 4일은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아기 상어를 들을 수 있는 <애니메이션 콘서트>가 공연된다. ​ 특히 5월 5일 어린이날 당일에는 부키프 초록누리 축제가 부평아트센터 곳곳에서 펼쳐진다. 올해는 기존에 선보였던 잔디 무대와 함께 부평생활문화센터 공감 168 건물 뒤편 ‘숲속 작은 무대’를 새롭게 선보이며, 어린이들이 집에서 악기를 가져와 함께 공연하는 <함께하는 뮤지컬>과 비눗방울과 저글링을 선보이는 <침침체리>등 다양한 공연이 관객들을 기다린다.더불어 미취학아동 및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미래 예술영재 발굴 프로젝트 가 ‘우리 가족 보물상자’라는 주제로 진행되며 본 대회에서 수상한 수상작품들은 5월 아트센터 꽃누리 전시실에서 전시될 예정이다.부평구문화재단 관계자는 “음악으로 아이들이 행복한 도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라며 “2017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어린이재단 초록우산과 함께하여 의미를 더했고 재단 모든 기관이 참여하여 체험 이벤트도 늘리고, 무대도 추가하여 더 풍성하게 준비했다. 온 가족이 함께 잊지 못할 어린이날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부평구문화재단 홈페이지(www.bpcf.or.kr), 032-500-2000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2018.05.01 ~ 2018.05.05
    작성일 2018.04.25 (수)
  • 작가 등용문 역할 '톡톡'

    [인천 이야기] 작가 등용문 역할 '톡톡'

    ​33회 맞은 새얼전국학생·학부모 백일장 스케치미래 문인들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새얼전국학생·어머니백일장'이 지난 21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렸다. 그동안 '새얼전국학생·어머니백일장'이라는 타이틀로 열렸던 대회는 올해부터는 아버지도 참여할 수 있는 대회로 확대, '새얼전국학생·학부모백일장'으로 개최되었다.​ 자타공인 전국 최고의 백일장으로 자리 잡다 새얼문화재단이 주최하는 백일장이 열린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는 알록달록 풍선꽃이 피었다. 입구에서 나눠준 헬륨풍선을 쥔 참가자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올해는 약 2천500여명의 참가자들이 자신의 글재주를 뽐낸다. 축구경기장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의 열기가 뜨거웠다. 지용택 이사장은 "아버님도 많이 참가해서 가족 축제가 되길 희망하는 뜻에서 '학부모 백일장'으로 올해부터 이름을 바꿨습니다. 나 자신을 믿고 글을 쓴다면 내 인생 최고의 글을 쓸 것입니다."라며 "많은 추억을 만들고 좋은 작품을 만들길 희망합니다."라고 말했다.​ ​ 개회사가 끝나고 나눠준 풍선이 하나둘 손에서 떠나 하늘을 수놓자, 주제가 발표되었다.초등3·4학년부는 '심심한 날·딱 한번만·매운맛', 초등5·6학년부는 '동영상·멍·신발', 중등부는 '라면·주머니·손가락', 고등부는 '그물·편의점·00금지', 학부모부는 '영수증·출근·모두가 잠든 뒤'였다.주제 발표 후 미래의 문학인들은 원고지를 채워갔다. 1986년 제1회 대회를 개최한 새얼백일장은 올해로 33회를 맞았고 전국 각지에서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은 문인으로 나가기 위한 등용문으로 자리매김되어 지고 있다.가족 나들이 행사가 되다햇살 좋은 4월, 파란 잔디구장에서 글을 쓰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님들의 눈빛이 따사롭다. 남동구 논현5동에서 온 허성조 할아버지는 손자를 응원하기 위해 구장을 찾았다.​ ​"손자 응원 차 왔는데 너무 좋네요. 손자가 글 쓰는 것도 대견하고 같이 축구도 하면서 뜻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손자와 함께 축구하면서 무릎은 시큰거렸지만 며느리와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라면서 내년에도 따라올 생각이라고 전했다.며느리 양미숙(도화동) 씨는 "해마다 참여하고 있는데, 나들이로 생각하고 나와요. 주말에 집에 있으면 게임할 애가 할아버지랑 같이 축구도 하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 행복합니다. 상을 받으면 좋겠지만 워낙 큰 대회라 일단 마음은 접고 소소한 즐거움만 느끼고 갑니다."라고 말했다.허준서(인천 대화초, 5) 군은 "신발이라는 주제로 글을 썼어요. 신발이 작아진 줄 알았는데, 내 발이 커졌다는 것을 적었어요."라면서 "할아버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서 잘 온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양주에서 온 윤상인(덕정고, 2) 양은 "문창과를 들어가고 싶어서 대회에 참여했어요. 새얼 백일장은 특기자 전형에 도움이 되는 대회라 참여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도 많고 열심히 쓰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불안합니다."라면서 "편의점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있어요. 입시공부를 하다가 편의점에서 위로를 받는다는 내용으로 풀어가는 중입니다."라고 말했다. ▲ 이나연 양과 어머니​​​엄마와 나란히 배를 깔고 누워 글을 쓰던 이나연(한길초, 5) 양은 "시를 쓰는 중에 엄마와 같이 다정하게 얘기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잘 온 것 같아요. '동영상'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데 우리 꿈이 커가는 이야기를 담는 동영상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라면서 미소 지었다.문인 양성의 등용문으로 우뚝 서다.새얼백일장은 이 대회를 통해 문인으로 등단한 작가가 많기로 유명하다.​ ​ 시인 이용임 씨는 제1회 새얼백일장에서 시부문 장원을 수상했다. 2007년 신춘문예에서 시 '엘리펀트맨'으로 등단한 이용임 시인은, 시집 '안개주의보', 에세이집 '당신을 기억하는 슬픈 버릇이 있다' 등을 발표하며 현재 활발한 시작활동을 하고 있다.제3회 새얼백일장 초등3·4학년부 산문부문 차하를 수상했던 김금희 씨는 유명 소설가로 도약 중이다. 2009년 신춘문예에서 '너의 도큐멘트'로 등단한 뒤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을 발표해 문단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소설가 안보윤씨는 1996년 제11회 백일장에서 중등부 산문부문 차상을 수상한 작가다. 시인 유병록 씨도 새얼백일장 출신 문인이다. 신춘문예에서 시 '붉은 호수에 흰 병 하나'로 등단했으며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를 발행했다. 1990년 제5회 백일장에서 어머니부 시부문 장원을 했던 구경분 씨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동문학가가 되었다.작가와 시인, 비평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은 다음날 모여 엄정한 심사를 거쳐 수상작을 뽑는다. 노트북으로, 컴퓨터로 글을 쓰는데 익숙한 초, 중, 고 학생들이 아날로그적 감성을 적는 원고지에 자신의 꿈을 꾹꾹 눌러 쓴 수상작은 오늘 5월 3일 발표된다.이현주 I-VIEW 기자 o7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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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4.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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