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Top Click

Total : 16

  • 흩날리는 봄날, 그래서 더 황홀한 벚꽃 야행

    [인천 여행] 흩날리는 봄날, 그래서 더 황홀한 벚꽃 야행

    ​자유공원, 인천대공원 벚꽃 촬영 명소 ▲ 자유공원 앞​  4월 중순이 돼서야 인천의 벚꽃은 만개를 하고 흩날린다. 군인 시절, 복무 지역이 부평이었다. 지역 특성상 낮에는 행군을 못하고 야간에 했다. 야간행군은 매번 인천대공원이었다. 군 생활 중 딱 한 번. 고요한 밤 인천대공원은 터벅터벅 병사들의 군화 굽 소리만이 떠돌고 모든 것이 조용한 밤이었다. 그날이 마침 벚꽃이 만개하고 바람이 불어 꽃잎이 이리저리 흩날리던 날이었다. 졸병의 복받치는 기억을 가까스로 더듬어 인천대공원과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가까운 자유공원 벚꽃 야행을 준비했다.  잔인한 사월과 아름다운 벚꽃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 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운다. / 겨울이 오히려 우리를 따뜻이 해주었다. /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고, / 마른 뿌리로 작은 생명을 길러 주었다." <황무지, T.S 엘리엇> ▲ 자유공원 일대. 외국인 사교장이었던 근대문화유산 제물포구락부가 보인다.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의 장시 ‘황무지’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했다. 전쟁 이후의 황폐화된 유럽의 상황을 전달해주는 시다. 비슷하게 우리나라 현대사의 4월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인혁당사건, 4.19혁명, 세월호 침몰, 제주 4.3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4월엔 무심하게 벚꽃이 금세 왔다가 순간에 흩날린다.▲ 열한시가 지나면 인천대공원은 소등을 한다.​ 인천대공원과 자유공원의 벚꽃 야행은 인터넷만 켜면 연신 쏟아내는 환희와 찬양이 가득한 벚꽃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흩날리는 벚꽃은 화려하고 예쁜 것이 아니라 생명을 다해 낙화한다. 밤과 꽃이 주는 침착함과 고요함은 오감을 자극한다. 낮에는 예쁘고 잘 나온 사진을 가져다주지만 밤에는 노인네들의 주름처럼 아름다운 사진을 건네줄 것이다. 그들의 주름이 아름다운 건 주름선의 형태뿐만 아니라 그 속에 얽혀있는 애환이 패어져있기 때문이다. 주름을 펴기 위해 보톡스를 맞는 시대라지만 분명 인천의 밤길에서 벚꽃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빛나는 환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밤이 주는 감성과 야행을 하는 이들 각자만의 역사가 서려있기 때문이다.▲ 자유공원의 벚꽃 길​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낙화 4,5연 , 이형기> T.S 엘리엇은 4월, 전쟁으로 인해 애인을 떠나보냈고 후손에게 남길만한 작품을 선사했다. 잔인한 4월, 밤의 벚꽃은 예쁨을 더해 아름답기만 하다. 인천에 살고 있다면 4월 한 밤 중 벚꽃이 핀 공원을 둘러보는 것도 각자의 추억을 낙화시키는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인천은 이번 주가 만개와 흩날리는 기간이다. ▲ 금강산도 식후경. 인천대공원 어느 매점 앞​ 인천대공원은 입장료가 무료다. 이용시간은 오전 5시부터 오후 11시까지 개방한다. 벚꽃뿐만 아니라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어있는 걸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수목원, 동물원, 환경교육 체험 그리고 목재문화체험도 할 수 있다. 인천대공원은 공원 면적이 굉장히 넓기 때문에 호수와 산책로 등 다양한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인천대공원은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길과 호수에서 후문 방향으로 봄꽃길이 펼쳐진다. 후문 앞에는 최근에 개통한 무인 운전 도시철도인 인천2호선 인천대공원역이 자리하고 있다. 후문부터 길을 따라 산책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자유공원 역시 입장료는 무료이고 상시 개방되어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서구식 근대공원이며, 일대가 인천근대역사문화지구로 지정되어있기 때문에 문화재가 각종 지정 문화재가 위치하고 있다. 옛날 그대로의 골목길을 따라 산책을 하면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자유공원은 조명 빛이 화려하기 때문에 인물사진을 찍기 좋다. 특히 제물포구락부와 자유공원과 차이나타운을 연결하는 선린문 앞이 야간사진 특유의 향기를 풍긴다. 자유공원의 명물 맥아더 동상과 동상을 둘러싸고 있는 벚꽃나무는 멋진 장관을 연출하며 전망대에 올라가면 벚꽃 아래에 오색 빛의 인천항 모습을 볼 수 있다. 꽃잎이 흩날리는 날 곳곳에 있는 벚꽃길은 그 조명 빛과 어우러져 다른 곳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유공원 특유의 느낌을 발산한다.  <야간 사진 tip> 1. 야간 사진의 핵심은 빛이다. 카메라는 우리 눈보다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너무 어두운 곳은 피하는 것이 좋다. 2. 인물사진을 찍고 싶다면 인공조명을 찾자. 가로등이나 꽃을 비추고 있는 조명을 이용하면 인물이 살아난다. 3. 장롱에 있는 카메라 하나, 열 개의 최고급 핸드폰 안 부럽다. 밤이 되면 빛이 부족하여 카메라는 ISO라는 감도를 높여줘야 한다. 감도가 높아지면 화질에 영향을 준다. 다양한 이유가 화질을 결정하지만 큰 이유 중 하나가 센서의 크기다. 아무리 좋은 핸드폰이라도 센서의 크기는 작기 때문에 일반 카메라가 더 나은 결과물을 안겨다 줄 것이다. 4. 흔들리는 사진에 두려워 말자. 사람이나 사진이나 중요한 건 자신감이 아닐까. ▲ 인천대공원. 가로등불 아래로 아이들이 다가왔다.​ 글, 사진 민석기 i-View기자, seokgiphoto@naver.com 

    기간없음
    작성일 2018.04.16 (월)
  • 영종도, 원래 네 개 섬이었다네!

    [인천 이야기] 영종도, 원래 네 개 섬이었다네!

    ​지난 12일 오픈한 ‘영종역사관’에 가다그곳은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섬이었다. 바다를 메우고 산을 깎고 다리를 놓아 새로운 도시가 되었다. 영종도는 그렇게 변해갔다. 세월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영종의 역사와 추억은 새로 개관한 ‘영종역사관’에 남게 되었다.  ▲ 영종역사관에서 체험중인 구외숙, 이경희 씨​​​ 주말 봄나들이 코스로도 제격 사람들은 영종도가 네 개의 섬이 매립되어 만들어진 섬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또한 선사유적지가 발굴되었고 영종진에서 외세에 맞서다 사라져간 의인들이 있다는 사실도 잘 모를 것이다. 지난 12일에 개관한 ‘영종역사관’은 몰랐던 영종도의 역사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영종역사관’은 세 개의 이야기관이 있다. 첫 번째 이야기관에는 ‘네 개의 섬’이라는 주제로 영종도와 용유도, 삼목도와 신불도가 매립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천부사’라는 고전을 통해 영종도 명칭 유래와 ‘해좌전도’를 통해 영종의 역사를 고증하고 있다. ​ 두 번째 이야기관에는 섬마을 영종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지가 많아 농경지가 일찍부터 발달한 영종도는 바다와 갯벌이 있어 어업도 발달된 반농반어지역이었다. 한때는 잘 나가는 소금생산지였던 영종의 모습을 직접 체험해 보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옛날 영종도 가정의 모습이 재현된 공간도 있다. 학원 대신 방과 후 영종역사관에 온 성시헌(하늘초1) 군은 “엄마랑 같이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내가 살고 있는 영종도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어요. 영종도 마을 이름이 재미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특히 소금 체험하는 공간이 제일 재미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어머니 송경희 씨는 “개관하기를 많이 기다렸는데, 와보니 좋네요. 아이와 역사 공부할 겸 개관 날짜에 맞춰 와봤습니다. 영종의 역사도 알고 구읍뱃터, 인천대교 기념관, 씨사이드파크와 연결하면 좋은 나들이 코스가 될 것 같네요.” 라며 봄나들이 코스로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자손들에게 섬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 가슴 뭉클 세 번째 이야기관은 ‘사라진 바다, 새로운 섬’이라는 테마로 도시개발이 진행된 영종 이야기를 담는다. 네 섬을 매립해 하나의 섬으로 만들고 매립지에 공항을 건설한 이야기, 주민들의 생업 보상과 주민들의 이주, 환경 보호 대책 등 발전과 개발로 새로운 섬이 탄생된 이야기를 담는다. ​​ 중산동에 살고 있는 유현진 씨는 “애가 셋인데 주변에 학생들이 갈 공간이 별로 없던 차에 이곳이 생겨 좋네요. 아이들 역사 공부도 하고 레일바이크를 태워주면 무척 좋아할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문수원(용유동 자치위원장) 씨는 “영종도 용유 41회 졸업생으로서 이곳에 오니 옛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하네요. 이곳이 생겨서 옛 추억을 보전할 수 있어 기쁩니다. 자손에게 영종도라는 섬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할 수 있어서 너무 좋네요.”라며 고향 친구들과 흑백사진 한 장에서 추억을 더듬었다. 소금 체험를 하던 구의속, 이경희(중구 중산동)씨 는 “영종도는 공기도 좋고 산과 바다가 있어 천혜자원이 있는 축복받은 곳이라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영종 역사관을 통해 잘 몰랐던 영종도에 대해 알게 되어 기쁘네요.”라며 웃었다. 해마다 봄이 늦게 오는 영종도는 이제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영종역사관을 둘러 본 후 영종진 벚꽃을 보고 레일바이크를 탄 후 구읍뱃터에서 회 한 접시를 한다면 즐거운 봄나들이가 될 것이다. ​ *영종역사관주소 : 인천 중구 구읍로 63문의 : 032)760-6307 관람시간 : 오전 10시~ 오후6시휴관일 : 설연휴, 추석연휴, 매주 월 휴관관람요금: 성인 1천원, 어린이 500원이현주 I-view기자 o7004@naver.com 

    기간없음
    작성일 2018.04.16 (월)
  • 울동네 맛고수.14화

    [웹툰 · 갤러리] 울동네 맛고수.14화

      

    기간없음
    작성일 2018.04.18 (수)
  • '다름'인정하면 '함께'할 수 있어요

    [인천 이야기] '다름'인정하면 '함께'할 수 있어요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 희망공동체 ‘큰나무 캠프힐’ 첼리스트가 주인공인 일본 영화 ‘굿바이’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다양한 사연이 소개된다. 주인공인 장례지도사가 된다. 주인공이 죽은 트랜스젠더에게 남자 옷을 입혀야 한다며 가족끼리 실랑이가 벌어지자, 고인의 아버지가 울며 고백한다. 자식이 여자가 된 순간부터 얼굴을 똑바로 본 적이 없다고.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회 통념상 ‘정상’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불편해진다. 특수학교 설립 찬반 논란이 여전한 가운데, ‘다른’사람을 배척하지 않고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진정 어려운 것일까?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성년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일, 배움, 생산을 나누고 있는 삶터 ‘큰나무 캠프힐’을 방문했다. ▲ 농장 업무중인 모습   20~25세 발달장애인 청년 6명과 자원봉사자 함께 활동 강화군 양도면 도장리에 위치한 ‘큰나무 캠프힐’의 모델은 발도로프 교육철학을 토대로 한 발달장애인 마을 ‘캠프힐’이다. 독일, 아일랜드, 영국 등 100여 곳에서 운영되고 있는 ‘캠프힐’은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장애인 공동체다. “목회자가 된 후 첫 소임이 장애인 사역이었습니다. 장애인 복지관도 드물었던 시절이죠. 1996년에 장애인 어린이를 위한 특수교육센터를 열었는데, 10년 쯤 지나 교육방식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교육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면서 ‘큰나무 장애학교’를 설립했습니다. 발달장애인의 진로는 선택의 폭이 좁아요. 어쩔 수 없이 가정에 머물거나, 수용시설로 들어가게 되죠. 졸업생들이 그렇게 폐쇄적인 공간 안에서 격리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 수는 없을까 고민하다가, 독일 캠프힐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마음의 벽이 없는 꿈의 공간이더라고요.” ​​▲ 카페근무​‘큰나무 캠프힐’ 대표인 문연상 목사는 유럽의 캠프힐을 다녀온 후, 지금까지 누구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개척한다. 사회보장이 잘된 선진국과 달리, 장애인 복지에 대한 인식이 낮은 우리사회의 실정에 맞는 방식을 설계하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발달장애인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장소를 구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전국 구석구석 안다녀 본 곳이 없었다. “발달장애인들에게는 화려한 도시보다 소박한 농촌 환경이 좋아요. 사람의 생체리듬은 자연의 순환을 따르는 게 자연스럽거든요. 농촌은 인간 본연의 자정능력을 활성화시키기 용이해서 장애인에게 잘 맞는 생활터전입니다. 인연이 닿아서 강화도 정착을 결정하고 제가 4년 전에 먼저 들어왔어요. 마을 어르신들에게 앞으로 이런 공동체를 짓겠다고 말씀 드리고 농사를 지었죠. 동네 분들이 농사 노하우도 많이 알려주셨어요. 그러다 보니 저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주셨죠. 카페는 작년 11월에 오픈했는데, 개업식 날 마을 분들이 많이 오셨어요. 어르신들께 달달한 다방커피 타드렸더니 맛있어 하셨어요.” ▲ 카페근무​​ 현재 ‘큰나무 캠프힐’에는 학교를 졸업한 후 성인기에 접어든 20~25세 발달장애인 청년 6명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살고 있다. 또한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세 가정이 이웃으로 이사를 왔다. 6명의 청년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인 1실에서 생활 하며 직업 활동을 한다. A, B조가 오전, 오후로 나눠 농장과 카페에서 근무를 한다. “농사는 작업 공정이 다양해 발달장애인 직업으로 딱 입니다. 파고, 운반하고, 꽂고, 밀고, 당기고, 끌고, 뽑고, 해야 할 일이 무궁 무진 하잖아요. 발달장애인들이 취직할 수 있는 직업은 정해져 있어요. 단순한 반복 업무만 주어지죠. 상상해보셔요. 한 인간이 그 오랜 시간을 오직 한 가지 일만 해야 하잖아요. 정해진 시간 안에 업무 프로세스를 따라가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면 효율성이 떨어지니 자격이 안 된다고 못을 박거든요. ‘장애가 있으니까 이 일에 적합하지 않다’고. 발달장애인도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농사짓기는 해야 할 일이 많다보니 그 중에서 하나라도 잘 하는 게 생기더라고요. 저희 청년 중에, 잡초 뽑기 달인이 있어요. 그 일을 정말 좋아해요. 농사를 짓다 보면, 저마다 가치와 창조성이 발견 되는 순간이 있어요.”  장애인들이 구운 건강빵도 인기 사회는 적은 시간에 큰 업적을 내는 사람만 칭송한다. 인간을 피폐하게 만드는 시스템 안에서는 누구도 행복을 보장받을 수 없다. 완벽하지 않아도 머뭇거림 없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찾고 있는 ‘큰나무 캠프힐’사람들. 이곳에는 장애와 비 장애의 경계가 없다. “지난달에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는데요, 강화는 물론 타 지역의 발달장애인 부모님들도 참석하셨어요. 처음 한국에 캠프힐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관심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20년 동안 한 우물을 팠더니 조금씩 성과가 보이더라고요. 어깨가 무겁기도 해요. 부산, 안동에서도 견학을 왔거든요.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면서 영감을 얻은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작은 것부터 시도하다보면 형편에 맞는 모델을 찾을 수 있잖아요.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 발효빵과 수제 레모네이드​▲ 천연 발효종빵 공기 좋고 물 깨끗한 곳에 영혼이 맑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기 때문일까? 카페에서 판매하는 빵이 유난히 맛있다. 유기농 밀에 설탕, 버터, 우유, 계란 일절 넣지 않고, 이스트 대신 천연 발효종으로 구운 건강빵이다. “장애인이 만든 빵이라는 것도 의미가 깊지만, 몸에 좋은 맛있는 빵으로 사랑 받고 싶거든요. 한국에서 천연 발효종으로 많은 제자를 양성하신 교수님께 사사를 받았습니다. 자칭 수제자입니다. 도장리 기운이 좋은 건지,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효소보다 월등하게 우수합니다. 저희 빵 맛에 반해 멀리서 일부러 발걸음 하는 손님이 늘고 있어요. 앞으로는 직접 재배한 작물과 강화 특산물인 약쑥, 속노랑 고구마, 강화인삼을 활용한 건강빵도 개발할 예정입니다. 많이 기대해주셔요.” ▲ 큰나무 캠프힐 사람들 ‘큰나무 캠프힐’은 진화 중이다. 5살 어린이가 25살이 되었다. 청년들이 장년을 지나 노인이 될 때까지,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큰나무 캠프힐’ 사람들은 지치지 않고 뚜벅뚜벅 갈 것이다. ‘큰나무 캠프힐’에서 ‘다른’이들과도 가족이 될 수 있는 희망을 보았다. 글 김세라 ‘i-View’기자, seilork@korea.kr, 사진 나윤아 자유사진가 

    기간없음
    작성일 2018.04.16 (월)
  • 청라 새 명물 50인승 수상택시 떴다 등

    [인천뉴스] 청라 새 명물 50인승 수상택시 떴다 등

    ​청라호수공원에 50인승 수상택시가 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지난 4월 15일부터 50인승 수상택시인 ‘뷰게라’를 운행하고 있다. 50인승 수상택시‘뷰게라’는 (주)카네비컴 해양에서 건조한 선박으로 총 톤수 16톤 선체길이 12m, 폭 4m 규모이며 최대 속도는 8.8노트(16.7km/h)이다.​▲ 50인승 수상택시 ‘뷰게라’​ 운항은 4월 15일부터 11월 30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로 청파나루 선착장에서 승선, 공원 전체를 선회하여 다시 청파나루 선착장에 하선하는 코스로 3Km이며 30분 소요된다. 운임은 대인 6천원, 소인 3천원 이다. 한편, 경제자유구역청 관계자는 50인승 수상택시가 도입되어 청라호수공원의 또 다른 자랑거리이며 청라지역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암웨이 스프링 컨벤션 기업회의’ 유치 인천시가 국내·외 마이스산업 여건변화에 발빠른 대응으로 기업회의 최적의 도시로 비상하고 있다. 인천시 및 인천관광공사는 지난 4월 7일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유니크패밀리그룹 주최 기업회의「2018 유니크패밀리 글로벌 세미나」에 이어 4월 14일 약 7천여 명 규모의 한국암웨이 주최「2018 한국암웨이 스프링 컨벤션」기업회의를 유치했다. 이번 기업회의 행사는 지난 해 4월과 9월에 이어 3회 연속 인천시에서 개최되는 사항으로, 인천시의 적극적인 행정지원에 따른 상호 신뢰구축과 참가자의 높은 만족도 결과에 따라 올해 행사를 추가로 인천에 유치하였고, 이어 하반기 내셔널 컨벤션 행사도 유치하기 위해 긴밀히 협의 중에 있다.  인천시는 그간 국내·외 직접판매협회와의 지속적인 네트워킹과 세일즈콜을 통해 글로벌 다국적 기업의 기업회의·인센티브 관광단의 전략적 유치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2018년도 애터미 썩세스 세미나·원데이 세미나(월 2,500명/연간 30,000여명), 유니크패밀리(10,000명), 암웨이(7,000명) 등 대규모 기업회의를 연달아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이를 통해 외국기업 뿐만 아니라 국내기업의 자체 컨벤션 등 대규모 기업회의 유치를 위한 고객맞춤형 행정 지원으로 타 지역 및 해외 유출 마이스 수요를 인천으로 유인하여 지역사회에 실질적 소비촉진을 유도 중이다. 인천시와 공사는 「2018 암웨이 스프링 컨벤션」행사지원을 위해 논현 경찰서 및 남동구청 등 관계기관과 협조하여 남동체육관 주변 일대 교통정리 및 주차공간 확보, 인근 식당 및 관광지 안내를 위한 홍보 브로셔 배부와 함께 식음료 판매를 위한 푸드트럭 10대를 배치하여 인천 관내 소상공 지원과 함께 인천시의 대외 이미지 제고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적극 나섰다.  가좌동 화재 피해기업에 중기육성기금 지원 인천시는 4월 13일(금) 서구 가좌동 공단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레화학과 주변 중소기업을 위해 30억원 규모의 중소기업육성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원대상은 13일(금) 발생한 화재로 인한 피해를 본 중소기업이 해당되며 협약 은행의 협조 융자로 기업당 최대 2억원을 무이자 융자지원한다. 지원신청은 지난 16일(월)부터 Biz-ok 사이트(bizok.incheon.go.kr)와 인천경제산업정보테크노파크 자금지원센터에서 온 ․ 오프라인으로 접수하면 되고 자금을 신청하기 전에 대상여부 확인 등 상담이 필요할 경우 인천경제산업정보테크노파크 자금지원센터로 문의(☎260-0621~3) 하면 된다. 인천광역시에서는 재해로 인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2015년부터 전국 최초로 중소기업육성기금에 재해기업지원자금을 신설, 지원하고 있으며, 현재 총 23개의 중소기업이 자금지원 혜택을 받았다.  실업률 줄고, 고용률 지속 1위 인천시는 특·광역시중 실업률이 한단계 더 좋아졌고, 고용률은 지속적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경인지방통계청이 2018년 4월 11일 발표한 인천광역시 고용동향에 따르면 인천시 2018년 3월 실업률은 5.0%로 전년 동월 대비 0.1%p 낮아졌고, 지난 2월 실업률 5.1%와 대비하여도 0.1%p 낮아졌다. 이는 전국적으로 실업자가 126만명에 이르고 전국적으로 실업률이 증가하여 고용쇼크라 불리는 상황에서, 특광역시 중 유일하게 실업률이 감소한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 그동안 인천시 실업률은 전국 최하위에 머물며 고용률과 실업률이 동시에 높은 현상을 나타냈는데, 지난해 6월부터 실업률이 최하위를 면하였으며,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서울․부산․대구보다 낮고 광주와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2018년 1분기 청년실업률(15~29세) 또한 9.5%로 전년동분기(11.8%) 보다 2.3%p 하락하여 고용지표가 좋아지고 있다. 인천시는 그동안 일자리 미스매치를 해소하고 심각한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하여 일자리경제국과 청년취업 전담부서인 창업지원과를 신설하였으며, 취업지원 사업으로 청년들의 구직활동비와 취업 성공수당을 지원하는 ‘청년사회진출사업’을 추진해 오다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또한 창업재기펀드 375억원 조성을 통한 투자운영, 창업인들의 원스탑 서비스 지원을 위한 복합멀티 공간인 ‘인천창업허브 조성’ 등은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인천청년공간인 유유기지정보 플랫폼인 잡스(job’s)인천 등을 구축하여 청년일자리를 적극 지원하였다. ※ 18년 3월 특광역시 비교 o 실업률 : 대구(5.7)>서울(5.5)>부산(5.3)>인천․광주(5.0)>울산(4.5)>대전(4.4)>세종(3.0) o 청년실업률 : 대구(14.4)>대전(11.5)>서울(10.1)>인천(9.5)>광주․부산(9.3)>울산(6.1)>세종(5.4)  도시농업, 농업기술센터에서 배우세요 인천시농업기술센터는 인천시민을 대상으로 텃밭작물과 실내원예식물 기초재배기술을 보급하기 위하여 5월 2일부터 7월 11일까지 매주 수요일 농업기술센터 대강당에서 도시농업기초교육과정을 운영한다. ​ 이번 교육은 도시농업에 입문하는 초보자를 위한 기초교육으로 텃밭채소, 유실수, 잡곡 재배기초, 원예식물 형태와 구조, 번식실습, 병해충관리, 토양관리, 친환경농자재, 실내식물관리 등 이론과 실습 40시간으로 운영되며 교육인원은 40명이다. 교육신청은 4월 16일~18일 까지 농업기술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선착순으로 받으며, 교육대상자 발표는 4월 20일 홈페이지에 게시한다. 교육을 희망하는 인천시민은 인천광역시농업기술센터 홈페이지 교육 & 행사게시판(http://agro.incheon.go.kr) 또는 ☎440-6939로 문의하면 된다. 

    기간없음
    작성일 2018.04.16 (월)
  • 창작뮤지컬 ‘소우주환상곡’ 참여 시민배우 모집

    [인천뉴스] 창작뮤지컬 ‘소우주환상곡’ 참여 시민배우 모집

    ​생활문화예술동아리연합 놀이터(이하 놀이터)’는 생활예술활동(동아리활동)을 하는 10개의 동아리와 회원들로 구성되고 운영되는 비영리민간단체다. ‘놀이터’는 인천시민들이 일상에서 생활예술활동을 쉽게 접하고 건강한 문화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일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단체의 목적과 생활문화활동의 가치를 선보이고자 2016년에 부평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생활문화를 주체로 한 창작뮤지컬 ‘소우주환상곡’을 초연한 바 있다. ‘소우주환상곡’은 사람은 누구나 작은 우주를 갖고 있으며 그것은 아주 작고 약하지만 조금씩 성장하고 있고 아주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시민합창단 동아리활동을 하는 단원들의 이야기로 노래하는 창작뮤지컬이다. ‘소우주환상곡’은 시민들이 직접 배우로 참여하며 전문연출가의 도움으로 완성하는 시민참여 창작뮤지컬이다. 2018년도 10월에는 소우주환상곡이 시즌3로 새롭게 태어날 예정이고, 뮤지컬에 참여하고 함께 할 사람을 모집한다. 모집기간은 4월 30일까지고 공연은 10월 20일(토)~21일(일)까지다. 2016년 이후 소우주환상곡은 2017년 부평아트센터 달누리극장에서 시즌2로 앵콜공연을 하였으며, 7월에는 거창국제연극제에 초청작으로 무대에 올랐다.  ○ 모집개요 - 모집대상: 성인 남녀 누구나 - 모집기간: 4월 30일(월) 까지 - 신청양식: 네이버블로그 [소우주환상곡]검색, 참가신청서 다운로드 후 작성 - 문 의 : 523-8017 또는 010.2363.8137  강화 ·고려 역사 배우는 시민대학 강좌 운영 (재)인천문화재단 인천역사문화센터는 인천대 사범대학·강화도서관과 함께 시민을 대상으로 강화·고려 역사를 포함한 인천시의 역사와 문화유산 이해를 돕고자 2018년도 상반기 <인천역사시민대학> 강좌를 운영한다. 5월 3일부터 6월 26일까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7시∼9시에 강화와 인천에서 각각 7강씩 진행한다.<인천역사시민대학>은 강화 및 고려사와 관련한 주제로 2014년과 2016년부터 각각 진행한 <강화역사아카데미>와 <청소년 강화역사 바로알기>를 통합하고 인천시의 역사와 문화를 포함하도록 확대 개편한 것이다. 2018년 상반기 <인천역사시민대학> 은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이하여 ‘고려의 역사와 문화 재조명’ 특별 강좌로 진행한다. 강좌는 두 부문으로 나누어 고려시대 대표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시대를 빛낸 고려 명품 7선>과 고려의 정치와 사회·문화를 소개하는 <고려 건국 1100주년, 고려는 어떤 나라였나>를 주제로 각 7강씩 인천과 강화에서 동시에 진행한다. (하반기에는 주제를 서로 바꾸어 진행). 수강 신청은 4월 16일(월)부터 이메일 또는 전화로 가능하며, 수강 인원은 총 70명으로 선착순 모집한다. 수강료는 없으며 자세한 내용은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www.ifac.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8.04.01 ~ 2018.04.30
    작성일 2018.04.18 (수)
  • 기자로, 총무과장으로 90년을 살다

    [인천인의 삶] 기자로, 총무과장으로 90년을 살다

    ​ 인천화교협회 최장기 총무과장 재직한 모본산 선생인천은 화교의 역사가 깊은 도시다. 한국이 근대화 되는 시기에 이주한 화교들은 인천을 비롯한 국내의 여러도시에 다양한 직업을 갖고 정착했다. 그중 인천에는 많은 화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고 문화를 누리며 대대손손 살아가고 있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화교들의 130년간의 이주역사와 그들의 문화가 공존하는 인천내의 독톡한 공간이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화교들의 이주 역사와 인천에서 고단한 정착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본 산증인으로 모본산(慕本珊, 90) 어르신을 꼽을 수 있다. 그는 70여 년을 넘게 인천에 살며 인천 화교들의 지난한 삶의 과정, 차이나타운의 변화를 보아왔다. 그는 인천화교의 역사이자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쉬엄 쉬엄, 천천히 전해주었다.   19세의 어린 나이에 중국 산둥에서 이주 모 선생은 19세의 어린나이에 중국 산둥에서 인천으로 이주했다. 부모와 형제자매를 두고 혈혈단신으로 결행했다. 당시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이 중국본토의 지배권을 놓고 격전을 벌이던 내전의 시기로 시국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다. 그는 망막하고 불안한 조국보다는 이웃한 한국에서 새로운 일을 찾기로 결심했다. 인천에서 돈을 벌어 중국 고향으로 돌아가 형제, 부모와 함께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세상은 그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잠시 일하러 왔던 인천은 제2의 고향이 되어 평생을 살았고,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결국 돌아갈 수 없었다.  모 선생이 국내의 여러도시 중 인천에 정착한 이유는 누나와 매형 인천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인천에 정착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1940년대 후반 인천엔 화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중국의 혼란과 불안한 시기를 견디지 못한 화교들이 대거 한국으로 이주해왔기 때문이다. 인천에 온 화교들에게 자녀 교육은 절실한 문제였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중국문화와 말을 가르쳐 중국인으로 정체성을 길러줘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인천화교학교는 화교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가 부족했다. 교사 충원이 시급했고 그에 따라 모 어르신도 대만사범대학에 유학하여 3년간 교사양성 교육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대만정부는 화교 교육에 관심이 많아 국가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에 대만 사범대학을 무료로 다닐 수 있었다. 3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인천에 돌아온 그는 교사가 되는 대신에 인천화교협회 직원으로 채용됐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니 인천화교학교에는 이미 교사 정원이 채워진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교사가 대신 화교협회 직원이 되어 44년간 인연을 이었다. 모 선생은 인천화교협회 총무과장으로 일하면서 44년간 화교들의 손과 발의 역할을 했다. 누구보다 먼저 동포들의 애경사를 챙기고, 그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모 선생은 한때 화교들의 대소사와 이야기를 취재해 전하는 신문기자로도 활동했다. 지금은 폐간된 중국어 일간지 ‘한중일보’의 인천지사장 겸 기자로 활동하며 인천화교들의 다양한 소식들을 취재해 전했다.  화교들의 손과 발이 되어 궂은일 앞장서 모선생은 1958년 전부터 인천화교협회 직원이었다. 그의 부인 맥려진(麥麗珍, 79)여사는 남편과 1958년에 결혼했는데 이미 남편은 협회 직원이었다고 회고한다. 모선생의 부인 맥려진 여사는 중국 광동성 출신이다. 그녀는 당시 서울 명동의 조선호텔에서 중국요리사로 일했던 아버지를 따라 홍콩, 부산을 거쳐 서울로 온 뒤, 모 선생을 만나 결혼한 뒤 인천에 정착했다. 모선생은 2000년경인 73세에 화교협회 총무과장직에서 퇴직했다. 어림잡아도 44년간을 화교협회에서 일한 셈이다. 그는 화교협회 총무과장로 일하면서 집보다는 협회 일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협회 총무과장의 일이 화교들의 궂은일 어려운일을 앞장서 도와주고 해결해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천화교협회는 화교사회의 중심이다. 당시는 금융. 경조사. 여권, 대외업무 등을 모두 협회에서 처리했다. 협회가 화교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였다. 그는 화교들이 결혼하거나 사망하면 모두 쫓아다니며 경조사를 챙겼고 특히 화교들이 사망하는 경우 장의사가 없어 협회가 주축이 되어 장례절차를 밟았다. 화교들도 집안의 결혼, 돌잔치, 장례 등의 문제가 생기면 협회로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2남2녀 자식 두고, 큰아들은 화교학교 수학선생 모 선생은 2남2녀의 자식을 두었다. 큰아들 모사량(慕思亮)씨는 현재 인천화교학교인 중산중소학교의 수학선생이자 총무주임을 맡고 있다. 나머지 자식들은 대만에서 교사로, 의사로 살아가고 있다. 큰아들 모사량씨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엄격하기도 했지만 다정다감했다고 한다. 협회 월급이 많지 않아 생활은 늘 검소했고 돈은 늘 아껴서야 했다. 모사량씨에 의하면 어린시절 용돈은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쪼들리는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한동안 화교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중국어 과외를 하기도 했다. 담배와 술은 고사하고 외식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아끼고 또 아끼면서 살았다고 말한다. ​ 현재 살고 있는 차이나타운 내 2층집은 50년 전에 마련했다. 태화원 자리에 있던 중국식 공동주택에서 살다 돈을 모아 땅을 매입했고 그 자리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지었다. 모 선생은 지난 70여년간 차이나타운의 변화, 발전상을 몸소 느끼며 살았다. 그는 중국인으로 정체성을 지키며 살지만 또 한편으로는 인천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인천을 한평생 사랑했다. 대만을 가도, 서울을 가도 인천이 제일 좋고 제일 편하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70여년의 생을 산 모본산 선생은 이제 자신의 고향이 된 인천 차이나타운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기쁘다. 주말이면 사람들이 몰려 환하게 즐겁게 거리를 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활기가 넘쳐야 일도 잘되고 행복도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차이나타운에 오는 사람이 많아야 화교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고 서로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금은 문화가 개방되고 다양화되면서 한국사람이나 중국사람이나 서로 구분하지 않고 서로 잘 도와주고 이해하는 문화가 형성된 것 같아, 화교나 인천시민들은 형제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인천근대 시기를 눈으로 보고 살아온 모 선생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글 이용남 본지 편집위원, 사진 서은미 자유사진가 

    기간없음
    작성일 2018.04.18 (수)
  • 커피로 그리는 인천萬畵

    [인터뷰] 커피로 그리는 인천萬畵

    ​인천 소리 찾는 ‘소리사냥꾼’, 경인방송 안병진PD ​​▲ 커피로 그린 안병진PD​“인류의 문명은 세상의 소리들을 제로(0)에 수렴하는 쪽으로 가파르게 진화해왔어요. ‘칙칙폭폭’, 정겨운 의성어로 대표되던 기차소리는 ‘스르렁’하는 무진동 음으로 바뀐 지 오래죠. 기술이 발전하면서 ‘부르릉’대던 자동차엔진소리도 점차 사라지는 추세고요. 천정 위를 예사로 뛰어다니는 쥐들의 발자국소리에 잠을 설치던 시절의 아련한 추억은, 이제 층간소음 때문에 이웃 간에 원수가 되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끔찍한 세상으로 변해버렸어요. 첨단아파트일수록 자연의 소리들이 완벽히 차단돼 기괴한 고요와 정적이 감돌죠. 그 정적의 무게가 불편해 전자기기가 토해내는 어색한 음악을 또 소비하게 만들고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죠. 재래시장의 역동적인 현장音도 대형마트가 휩쓸기 시작하면서 자취를 감추고 있어요. 대신 구매욕을 자극하는 정체불명의 전자음들이 미묘하게 그 공간을 빠르게 메워가고 있죠.  빠르게 사라져가는 인천의 소리를 찾는 사나이 산업고도화시대가 잉태한 이런 ‘무소음 우선주의’는 현대인들로 하여금 차단벽을 겹겹이 쌓고, 방음벽을 두껍게 치고, 귀에는 이어폰을 낀 채 점점 외부의 소리와 단절되어 살아가도록 암묵적 강요를 해왔어요. 그 침묵의 헛헛함을 해소하기 위해 이번에는 로봇이나 기계음과의 대화를 유도하는 고도의 상술메커니즘이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거고요. 하지만 모든 소음이 무조건 박멸해야할 절대 악은 아니에요. 어떤 소음은 인간의 감성과 물성을 풍요롭게 치유해주는 유익이 있어요. 인간은 결코 밥으로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죠.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환경이나 자연의 소음들과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을 때에만 싱싱해지는 고도로 예민한 생명체예요. 그런 정겹고 익숙한 소음들이 하나, 둘 차단될 때, 인간의 정신구조는 미묘하게 균열이 가게 마련이죠.”빠르게 사라져가는 인천의 소리들을 찾아 시내 곳곳을 훑고, 구석구석 섬들을 뒤지는 ‘소리사냥꾼’ 경인방송 안병진PD(41세)와 만났다. 작지만 강단이 느껴지는 분위기, 고집스러운 듯 털털한 얼굴이 해맑은 소년을 닮았다. 방송사PD경력 10년을 훌쩍 넘긴 여유가 표정에서 읽혀진다. “TV에 밀리고, 범람하는 인터넷미디어들에 치여, 라디오가 찬밥신세 된 지 벌써 오래잖아요? 게다가 하늘을 찌르는 공중파도 아니고 목숨 줄 간당간당한 지방방송PD야, 발바닥에 땀나도록 몸빵하는 도리밖엔 없죠, 하하하! 그래도 라디오PD라서 행복해요. 내가 방향을 잃었던 시절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지금 내 방송을 듣고 조그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소위 ‘끽동’이라 불리던 학익동 출신이란다. 학익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공장지대 한복판에서 자랐다. 그 유명한 ‘미쓰비시 사택’이었다. 부평의 ‘삼능(三菱)주택’이 학익동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공장지대를 나서면 바로 사창가로 이어졌다. 날마다 그곳을 지나 학교를 다녔다. 이상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었다, 원래 세상이 다 그런 줄 알았으니까.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부터 누나와 저는 전적으로 어머니의 노동에 의지해 살아야 했어요. 우유배달이며 공장노동을 가리지 않는 억척 어머니의 생활력 덕분에 인하대후문 쪽에 조그만 단독주택으로 이사도 할 수 있었죠. 손바닥만 한 마당이지만 은행나무도 한그루 있어 가을이면 노란 잎들을 우수수 쏟아냈어요. 참 정이 들었는데, 군대서 휴가 나와 보니 집이 바뀐 거예요. IMF때 삼촌 빚보증으로 홀라당 넘어간 거죠.” 인하부중과 광성고를 거치면서 글 잘 쓴다는 칭찬을 간혹 듣곤 했지만, 앞뒤 안 재고 성균관대 국문과로 진학하게 된 계기는 기형도시인과 만나고 부터였다. 그건 전적으로 당시 국어국문과에 재학 중이던 누나의 영향이 컸다. 누나가 보던 책을 따라 봤고, 누나가 듣던 음악을 따라 들으며 자란 그가, 누나가 좋아하던 기형도시인의 시에 빠져든 건 어쩌면 선택의 여지가 차단된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작도 풀등에서 소리를 채집 중인 모습​ “기형도시인의 삶과 그의 시에서 동질감 비슷한 걸 느꼈던가 봐요. 연평도와 인천, 그리고 시흥을 거친 그의 유년시절, 특히 일찍 아버지를 여위고 겪었을 시인의 가난에 대한 원체험이 제 삶과 오버랩 되었던 거죠. 나도 기형도 같은 시인이 되어볼까? 무작정 국문과엘 들어갔어요. 국문과만 들어가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갈수록 벼랑인 거예요. 나름대로 수업도 열심히 찾아듣고, 글쓰기 모임이나 문학 서클 같은 데서 부지런히 공부도 하고, 습작도 해봤지만 번번이 제 문학적 재능의 밑바닥만 재확인할 따름이었죠. 고통스러웠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어머니가 눈에 밟히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고생을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현실감각은 여전히 동떨어져, 세월만 축내는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진 거죠. 결국 2학년을 마치고 전경으로 입대 했어요.” 제대와 함께 복학을 하고 졸업도 했지만 IMF터널의 한복판에서, 더구나 국문과출신에게 취업의 문은 그야말로 바늘구멍이었다. 글쓰기를 접고, 밤을 새워가며 취직시험공부에 매달렸다. 딱히 목표하던 회사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막연히 글쓰기가 필요한 언론사 취업을 겨냥하긴 했지만, 날마다 컴컴한 절망의 늪 속에 홀로 내동댕이쳐진 기분으로 아침을 맞곤 했다.▲ 교동 은행나무 소리를 채집중인 모습 여백을 지닌 소리의 매체 라디오 감흥 “그때 유일한 위안이 라디오였어요. 주로 늦은 밤 음악방송을 듣기 위해 여기저기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청소년상담프로를 잠깐 듣게 되었죠. 생방송이었는데 전화가 연결된 시청자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끼고만 있는 거예요. 눈치 빠른 상담자의 유도로, 그 시청자학생의 입에서 요즘의 ‘미투’에 해당되는 고백이 터져 나왔어요. 충격이었죠. 전 국민이 듣는 생방송에서, 그 누구한테도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은밀한 상처를 내보이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이 저를 흥분시켰어요. 라디오라는 매체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분명하게 눈을 뜨게 된 첫 경험이었죠. 그날 이후로 목표는 명쾌해졌어요. 여백을 지닌 소리의 무한한 치유가능성에 꽂혀버린 거예요.”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악전고투에 7전8기의 연속이었다. 대한민국 모든 방송사에 입사원서를 내겠다는 각오로 도전을 거듭했다. 라디오방송에 대한 그날의 신선한 감동이 없었다면, 벌써 포기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2002년 끝내 한 종교단체가 막 설립한 종교방송사에 합격했다. 어디든 방송만 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열정으로 불타던 시절이었다. ​ “몸이 부서져라 일만 했죠. 스튜디오에서 아예 먹고 살다시피 하며 라디오를 했어요. 그런데 종교집단 특유의 경직된 위계질서는 정말 ‘넘사벽’이더라고요. 립싱크 아이돌가수 대신 새롭게 떠오르기 시작하는 인디밴드음악을 위주로 한 프로그램기획이 엎어지더니, 열정을 담아 시도하려던 다른 프로들도 번번이 제동이 걸리거나 제 의도와는 다르게 수정지시가 내려왔어요. 결국 1년 만에 사표를 내고 말았죠.” 다시 입사시험에 매달렸다. 때마침 DMB방송이 붐을 타면서 SK가 주도하던 위성DMB 라디오 'KISS'에 PD로 입사했다. 공중파가 아니어서 자유롭고, 기성방송시스템과 체계가 달라 PD재량껏 개성 있는 방송을 만들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거기서 다큐멘터리 음악마니아방송을 시작했어요. 성우진, 김학선, 성문영 등 쟁쟁한 고수들을 그때 만났죠. 만 4년을 신나게 일했어요. 문제는 DMB방송이 하향세로 접어들면서 해가 갈수록 방송국 사정이 어려워진 거예요. 하나, 둘 동료들도 떠나갔어요. 그즈음 그동안 방송이 중단되었던 경인방송FM이 방송을 재개하게 되면서, 고향 인천으로 자리를 옮겼죠. 그때가 2007년 가을이었으니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사실 인천이 고향이긴 했지만, 그 스스로도 인천의 정체성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동안 줄곧 인천 집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면서도 온통 관심은 서울뿐이었다. 나이 30을 넘기고 인천에서 방송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인천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현재 그는 매일 오후4시~ 6시, 가수 백영규가 진행하는 ‘가고 싶은 마을’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한번은 어머니랑 동춘동 이마트에 장을 보러 갔는데, 여러 무리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딱히 물건을 사는 것도 아니면서 시원한 매장 이곳저곳을 어슬렁대고 있는 거예요. 그 광경이 너무 생경했어요. 그러다 외국인근로자들이 많이 활동하는 남동공단이 바로 옆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고, 그들의 삶을 밀착취재하고 싶은 호기심이 생겨났죠.” 그 결과 ‘강제추방반대’를 외치던 이주노동자인권밴드 ‘스톱크랙다운’을 알게 되었고, 그룹의 리더인 ‘미누’와 ‘소띠하’, 그리고 ‘몽땅’의 활동을 ‘라디오다큐’로 만들어 방송했다. ‘미누’의 강체추방으로 그룹이 와해되고 다시 ‘몽땅’이 중심이 된 ‘이주민중창단’편도 후속으로 내보냈다. 세계의 모든 음악의 탄생지가 공교롭게 항구도시였다는 점에 착안해 ‘항구도시 인천의 음악’을 찾는 다큐멘터리도 전파를 탔다.  자연의 원음을 채집해 방송으로 되살리는 게 나의 일 “‘보사노바’의 ‘리우데자네이루’, ‘재즈’의 ‘뉴올리언스’, ‘탱고’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이 모두 항구도시였던 건 우연이 아니에요. 항구를 통해 유입된 이주민들의 이질적 문화가 토착문화와 이종교배 되면서 전혀 새로운 음악이 생겨난 거죠. 바로 ‘스톱크랙다운’ 같은 이주노동자밴드가 ‘대중음악의 메카’ 인천에 착근되면서 또 다른 음악이 탄생하게 되는 물꼬를 튼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항구, 새로운 음악을 만나다’라는 프로그램이 그렇게 방송을 탔죠.” 그런 일련의 노력으로 ‘한국방송대상’ 지역라디오작품상, ‘방송문화진흥원’의 지역방송대상 금상, 한국PD연합회에서 주는 이달의 PD상 등을 수상하는 과분한 호사도 누렸다. ‘인천가치재창조사업’의 일환으로 ‘인천의 노래’를 음반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시민들에게 가사를 공모해 곡을 붙이고, 인천소재의 기존 대중가요를 리메이크한 음반이었다. 지금은 틈만 나면 녹음장비를 챙겨들고 인천과 인천의 섬들을 누비며, 곧 세월의 뒤편으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인천의 소리’들을 채집하느라 여념이 없다. 외포리서 배타고 넘던 석모도의 파도소리, 새우깡을 채가는 갈매기의 울음소리, 백령도 오지의 자연이 발하는 소음, 자유공원의 증폭기소리 등 얼핏 더 이상 쓸모없을 것 같은 그 소음들이 언젠가는 현대인의 공허함을 치유해줄 생명원음으로 절실해질 날이 오리라 그는 굳게 믿고 있단다. ▲ 안병진PD가 제작한 ‘인천의 노래’ 음반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성경의 첫 페이지처럼, 소리는 모든 자연과 생명체의 근원이죠. 현란한 영상에 밀려 천덕꾸러기가 되어가는 ‘라디오’와 ‘소리’의 중요성이 재조명되는 순간을 꿈꿔요. 저는 그저 이 도시가 상실해가고 있는, 싱싱하고 건강한 자연의 원음을 열심히 채집해 방송으로 되살리는 ‘소리사냥꾼’ 역할에 충실할 뿐이죠.” 글. 커피그림 유사랑 I-View  기자 

    기간없음
    작성일 2018.04.18 (수)
  • 친환경 생활, 행복한 지구 만들기 첫 걸음

    [탐방] 친환경 생활, 행복한 지구 만들기 첫 걸음

    ​인천과 세계를 잇는 ‘유엔거버넌스센터(UNPOG)’ 지난해 12월 새로운 국제기구가 송도 G타워 8층에 입주했다. 서울에서 송도로 이전한 유엔 거버넌스센터(UNPOG, United Nations Project Office on Governance)이다. 명실상부 국제도시답게 인천에는 유엔 산하기구 9개를 포함해 15개의 국제기구가 활동을 하면서 인천 안에 세계를 담은 국제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  2030년까지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 수립이 목적 전쟁방지와 평화유지를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 UN(국제연합)은 평화유지활동 및 군비축소활동 등 다방면에서 국제협력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동안 전쟁억제와 평화유지에 큰 성과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세계국가들의 정치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에 기여를 했다. 그런 가운데 2006년 6월,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UN경제사회처 소속의 ‘유엔거버넌스센터’(이하, 센터)가 탄생했다. 이 센터는 2006년부터 2016년 6월까지 공공행정 역량강화 및 연구 사업 등을 비롯한 홍보 활동을 성공적으로 추진했으며, 2030년까지 달성할 17개의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수립함에 따라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 사라 카스트로할그렌 씨와 함께 기념촬영 사라 카스트로할그렌 씨(Sara Castro-Hallgren, 엘살바도르, 프로그램전문가)는 “센터가 인천 송도로 이전하면서 UN 지속가능발전목표를 기준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송도시대를 열게 되어 기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한국경제발전의 역사와 송도가 스마트시티로써 큰 의미가 있어서 회원국에 이 시스템을 알리기 위함이지요.”라며 “한국을 포함한 유엔회원국들이 함께 추진하는 17개의 지속가능발전목표에는 169개의 세분화된 세부목표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사라 씨는 지속가능발전목표가 그림으로 알기 쉽게 표기된 게시물을 설명했다. “빈곤 퇴치, 기아 해소와 식량안보 달성 및 지속가능한 농업 발전, 보건 증진, 교육 보장과 평생학습 향상, 성 평등 달성과 여성역량 강화, 물과 위생 제공과 관리 강화, 청정에너지 보급, 경제 성장과 일자리 증진, 인프라 구축과 산업화 확대, 불평등 해소, 지속가능도시 구축, 지속가능소비생산 증진, 기후변화 대응, 해양 및 해양자원의 보존과 지속가능 이용, 육상 생태계 등의 보호와 지속가능 이용,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 증진, 이행수단과 글로벌 파트너십 강화 등 전 분야에 걸친 사업을 세계가 함께 시행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는 “한 아이가 성장하면서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성장해야하는 지를 생각하면서 환경과 교육, 경제, 사회적 조건 등을 중점적으로 실천해 나갈 계획입니다.”라고 덧붙여 말했다.  행정우수사례를 발굴, 공유하는 플랫폼 역할 지난 12월에는 송도컨벤시아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세계 각국의 공무원, 공공기관 관계자, 학생, 시민 등 50여 개국의 300여명이 참석을 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개발도상국이 지속가능발전의 이행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가 이루어지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참가자들이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는 뜻깊고 의미 있는 자리가 되었다. 이 행사에 참석한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은 송도 관련 기관 시찰 및 방문을 통해 각 기관들을 방문하고 문화체험을 하면서 인천의 좋은 사례들을 배우며, 친환경스마트시티를 체험하고 돌아갔다. 유엔거버넌스센터는 여러 사업을 통해 회원국의 거버넌스 역량강화 및 국가·지자체 행정우수사례를 발굴, 공유하는 플랫폼으로써 국가 간에 가교역할을 한다. 사라 씨는 “무엇보다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들 개개인의 마음가짐과 생활습관 및 소비패턴의 변화 그리고 사고방식과 친환경적인 생활의 실천이 중요합니다.”라며 생활습관을 고치려는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서예진 담당관은 “유엔거버넌스센터가 인천에 들어오면서 인천청년일자리 창출로 인턴을 채용하고 함께 일을 하며 인천의 발전적인 좋은 사례들을 해외에 널리 알리게 되어 너무 기쁘고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 인천과 센터가 서로 윈-윈하는 관계로 목표를 향해 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 한편, 유엔거버넌스센터의 사업은 역량개발, 정책 연구, 홍보 세 가지 영역으로 구성되어있다. 역량개발 사업으로는 지난 12월 송도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 지역 심포지움과 같은 대규모 국제회의를 비롯하여, 4월 초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20개국 정부 관계자들이 참여한 디지털 정부 관련 역량강화 워크숍 등이 있다.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 및 유엔 회원국의 우수 사례를 공유하여 개도국 공공행정 역량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연구사업으로는  아시아와 태평양 대상국의  지속가능발전목표 이행 현황 및 역량 개발 수요 조사 연구, 분석을 진행 중에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센터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추후 역량개발 사업 기획, 운영에 적극 반영할 예정이다.홍보 활동으로는 대학생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스피치 콘테스트를 매년 개최하고 그 외에 수시로 청소년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다양한 특강과 각종 커리어페어 및 박람회에 적극 참여하여 센터 사업을 널리 알리고 있다.박영희 I-view 기자 pyh606101@naver.com 

    기간없음
    작성일 2018.04.18 (수)
  • 6·70년대 인기스타 공연 열 정도로 '핫'했다

    [그때 그 시절] 6·70년대 인기스타 공연 열 정도로 '핫'했다

    ​골목길 보물찾기 – 옛 현대극장 송림로터리에 있는 현대시장 맞은편에 1961년 초 큰 건물이 하나 들어섰는데, 500평 규모의 2층짜리 현대극장이다. 시내도 아닌 변두리에 극장이 들어섰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일이었다.  시내 영화관에서 몇 달 전에 내린 영화 두 편을 동시 상영했다. 홍콩의 무협영화와 스토리 엉성한 에로영화가 주로 올려졌으며, 그나마 비가 줄줄 새는 필름은 끊어먹기 일쑤였다. 그래도 인근 노동자와 서민들의 안식처로, 영화광들의 더 할 나위 없는 꿈의 공간이었다. 영화 대신 유명한 코미디언 후라이보이(곽규석), 막둥이(구봉서), 비실이(배삼룡) 아저씨들이 ‘쇼’를 하는 날이면 극장 앞길은 인산인해였다. 그 당시에는 “동남아에서 방금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식으로 선전되던 누구누구의 ‘초대형 리사이틀’이라는 말이 유행되기도 했다.삶의 질서에서 일탈되는 분리된 공간, 극장에서 ‘영화’와 ‘쇼’를 본다는 것만큼 흥분되거나 설렘은 없을 것이다. 지금의 대형극장에선 좌석이 매진되면 입장도 못하지만, 그 시절은 극장표만 사면 상영 중에도 들어갈 수 있으니 자리가 없어 통로에 앉아 보거나 그것도 안되면 서서 봐야했다. 현대극장은 지역의 랜드마크였다. 지금도 이 일대는 ‘송림로터리’ 보다 ‘현대로터리’라고 불리고 있으며, 주변의 상가나 가게들도 ‘현대’라는 상호를 붙이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현대극장은 1960년대 초에 개관하여 수많은 서민들의 애환을 눈물과 웃음으로 함께 추억을 만들었는데, 인구의 감소와 대형 복합상영관에 밀려 1998년 2월에 문을 닫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영화간판이 바뀔 때마다 호기심에 가던 길을 멈추었던 곳이었다. 폐관 이후 한동안 할머니의 쌈짓돈을 노리는 약장수의 사탕발림 소리와 노래가 종종 들리더니 지금은 온갖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마트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래도 극장의 외관은 앞면만 조금 바뀌었을 뿐 지붕과 시멘트벽 등은 개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특히 ‘현대극장’ 이라고 쓴 빛바랜 간판 글씨가 시간의 흐름을 대변해주고 있다.  ※ 옛 현대극장 -위치 : 인천시 동구 샛골로 163(송림동 55‒4) -면적 : 대지 1,640.7㎡ / 건축면적 1,022.844 ㎥ -건립년도 : 1961년 2월 8일 원고출처 : 골목길 숨은 보물 찾기(2015년 출간) 

    기간없음
    작성일 2018.04.18 (수)

Main News

Main News더보기 +

많이 본 뉴스

주간 TOP 클릭
많이 본 뉴스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