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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동네 맛고수.12화

    [웹툰 · 갤러리] 울동네 맛고수.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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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4.04 (수)
  • 송도에   세브란스병원 건립

    [뉴스 속 뉴스] 송도에 세브란스병원 건립

    연세대-인천시, 국제캠퍼스 2단계 조성 등 협약 연세대학교가 경제자유구역인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500병상 이상 규모의 세브란스병원을 건립한다. 인천시, 인천경제자유구역청, 학교법인 연세대는 지난 3월 29일 오전 9시30분 연세대학교 언더우드 기념관 7층 국제회의실에서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2단계 협약식 및 세브란스병원 건립, 사이언스파크(YSP) 조성계획”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2006년 1월 26일 협약 이후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가 조성, 개교하였고, 학생 수는 5천여 명에 이르고 있으나, 1학년 중심의 RC(레지덴셜 칼리지) 형태로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어,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의 활성화 등을 위하여 인천시민의 염원인 세브란스병원의 조기 개원 및 사이언스 파크 조성, 학생 5천명 추가 유치를 위하여 지난 3년여 간에 걸쳐 연세대 측과 협의하여 마침내 본 협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번 협약은 2006년 1월 26일 체결한 ‘연세대학교 송도 국제화 복합단지 건립을 위한 협약’의 정신을 바탕으로 상호 신의성실의 원칙을 준수하는 협약으로써 송도지구 11공구(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인근)내에 토지 공급 규모, 사업내용, 추진시기 결정 및 1단계 미진 사업의 조속한 추진을 통한 경제자유구역 활성화를 꾀하고자 체결하였다.협약의 주요내용은, 토지 공급 규모는 2006년 협약 이후 11공구 매립면적 축소 등 여건변화를 감안하여 당초 30만평에서 10.2만평으로 약 20만평을 축소하였으며, 토지 공급 방식과 가격은 경자법에 근거하여 전체사업부지는 경제청에서 SPC에 공급하고, 교육연구부지는 SPC에서 연세대에 공급하는 1단계 사업방식과 동일하게 추진한다. 이번 2단계 협약을 통하여 이공계 연구시설 중심의 학부생(대학원생, 외국인 학생 포함) 5천명의 추가 유치와 500병상 이상 규모의 세브란스병원 건립이 추진되고, 11공구에는 세계적 수준의 첨단 산학연 클러스터(사이언스 파크)가 조성될 예정이다. 또한, 연세대의 의무사항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세브란스병원 건립 지연시에는 지연손해금 부과 등 위약벌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조감도 2단계 사업의 완성을 통하여, 기존 캠퍼스와 차별화하여 IT, 미래도시, 바이오 등 첨단 융합학문을 중심으로 학부생, 대학원생, 외국인학생, 연구원들이 함께 교육하고 연구하는 진정한 의미의 종합캠퍼스의 프리미엄 캠퍼스가 조성되고, 송도에 입주한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글로벌 인재를 육성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미래도시를 만드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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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4.02 (월)
  • 전통시장에 '야구박물관' 있어요

    [탐방] 전통시장에 '야구박물관' 있어요

    신기시장, 엽전 '신기통보' 화폐로 사용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까지 가득한 전통시장. 하지만 한국의 전통시장에는 외국에는 없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한국 사람들의 정(情). 상냥한 미소와 친절은 기본, 푸짐한 인심까지 더해져 전통시장의 정(情)은 완성된다. 그 중에서도 외국인들이 최고로 꼽는 ‘신기시장’에서 한국의 정(情)을 느껴볼까?먹거리부터 생활용품까지 없는 것이 없는인천 곳곳에는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시장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외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은 바로 ‘신기시장’. 인천국제공항에서 30분, 인천여객터미널에서 20분이면 도착해 짧은 시간동안 한국의 전통과 정을 느끼기에 딱 좋다. 신기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여온다. 얄팍한 반죽 속에 달콤한 설탕을 넣어 기름에 바짝 구운 호떡, 고기와 김치 등으로 속을 꽉 채우고 찜통에서 익어가는 만두, 시원한 국물과 딱 어울리는 어묵, 시장에서 먹어야 제 맛인 떡볶이까지 가지각색의 먹거리들이 맛있는 내음을 풍겨온다. 신기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먹거리는 시장 초기부터 형성된 순대골목에 위치한 순대국밥이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맛집으로,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더욱 유명해졌다. 길거리음식 외에도 각종 야채, 과일, 수산물, 떡, 두부, 반찬 등 먹거리와 의류, 속옷, 생필품, 생활용품 등 없는 것이 없다.신기시장은 1970년대 중반 문학산 언저리에서 농사짓던 아낙네들이 푸성귀를 내다팔며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현재도 주변 주민은 물론 외국인들까지 즐겨 찾고 있으며, 올해 ‘2018 대표 전통시장’으로 선정됐다. 손님들이 시장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아치형 지붕을 씌었으며, 자동 개폐장치, 무인카메라, 자동경보기, 꼬마소방차 배치 등 화재 대비책도 마련했다. 또한 깔끔한 시장을 만들고자 시장 의용소방대를 조직해 정기적으로 시장을 청소하고 있다. 다른 시장과 달리 신기시장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배달서비스도 운영해 시장의 불편함을 최소화했다.시장을 넘어 문화가 넘치는 공간으로신기시장과 주차장 사이 좁다란 길목에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바로 인천의 야구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야구박물관. 인천은 대한민국 최초의 야구장인 웃터골 운동장(현 제물포고등학교)이 생겨난 야구도시다. 인천의 야구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연대표가 전시돼 있으며, 인천 최초의 야구단 한용단, 인천 최초의 프로야구단 삼미 슈퍼스타즈, 현재 인천 프로야구팀인 SK와이번스까지 인천지역을 대표하는 야구팀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야구화, 사인볼, 유니폼 등 인천시민들이 기부한 선수들의 애장품도 전시돼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한 SK와이번스 선수들의 핸드프린팅은 물론 포토존도 마련돼 있어 작지만 꽉 찬 박물관이다.야구박물관 옆 시장과 영 어울리지 않는 목공예 공방이 보인다. 상인회 건물 1층 자그마하게 위치한 목공예공방에서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마다 목공예 수업이 이루어진다. 간단한 목공 장식품부터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도마, 목기를 만들어볼 수 있다. 공방 안에는 목공 공예품 외에도 신기통보와 한국 전통 매듭을 이용한 신기통보 액세서리, 신기통보와 신기시장의 워드마크를 이용한 마그넷을 판매하고 있다.밤에는 신기한 도깨비놀이터로 변신신기시장을 둘러보다보니 곳곳에서 도깨비를 쏙 빼닮은 마스코트가 보인다. 신기시장의 마스코트인 ‘들비’와 ‘날비’. 도깨비는 한국의 전통적인 캐릭터 중 하나로 변화무쌍하고 신출귀몰하고 변화무쌍하며, 사람들과 어울려 풍류를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과 어울려 북적이는 시장에 딱 맞는 도깨비 ‘들비’와 ‘날비’가 신기시장을 지키고 있다. 들비와 날비 사이 커다란 엽전은 신기시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신기통보’다. 조선시대 사용했던 ‘상평통보’를 본떠 만든 엽전 ‘신기통보’는 시장 내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다. 주차장 옆 상인회 건물 2층 또는 스마트 홈쇼핑 방송인 ‘팝쇼핑(pop-shopping.com)에서 신기통보를 구매할 수 있으며, 신기통보 하나에 500원의 가치를 갖고 있다. 봄을 맞이해 신기시장이 새롭게 변신한다. 겨우내 움츠렸던 시장 분위기에 따뜻한 봄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손님들에게 새로운 전통시장의 모습을 보이고자 매주 토요일 5시부터 10시까지 야시장 ‘도깨비 놀이터’를 개장한다. 신기시장 외에 인천 각지에서 만나볼 수 있는 유명 점포들의 먹거리를 한 곳에서 맛볼 수 있다. 신기시장은 먹거리 위주의 야시장에서 한 걸음 나아가 다양한 놀이‧체험거리도 마련했다. 놀이공원에서나 볼 수 있었던 ‘도깨비 소굴’부터 VR, 드론까지 아이들이 재미있게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놀이거리가 넘쳐난다. 야시장 운영기간에는 신기통보를 획득할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과 게임을 시장 내 곳곳에서 진행한다. 푸짐한 먹거리와 상인들의 인심과 따뜻한 정은 물론 볼거리와 체험까지 가능한 신기시장. 이곳에서 짧은 시간동안 격렬한 한국의 정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 가는 방법인천시 남구 신기길58번길 61호선 주안역 하차→514-1번 쌍용아파트정류장 하차※ 신기시장 문의032-865-5424 원고출처 : 인천시 영문소식지 ‘Incheon Now’(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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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4.04 (수)
  • 영종도 어르신들, ‘적제비 전통장’으로 일내다!

    [인천 이야기] 영종도 어르신들, ‘적제비 전통장’으로 일내다!

     인천시 최우수 기업으로 뽑힌 ‘어머니손맛두레사업’늙는 게 서러운 것은 도전할 용기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그것이 실패했을 때 감수할 용기가 사라진다는 것은, 이미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이런 편견을 깨고 영종도 노인들이 모여 마을기업을 만들었다. 그들에게 ‘늙음’이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보다는, ‘경험’이요, 그래서 그들은 도전이 두렵지 않다.    영종도 붉은 제비, 전통장맛으로 찾아들다옛 영종도에는 붉은 제비가 많이 날아다녔다. 영종도 노인들은 지금도 비행기가 나는 모습을 보고 ‘적 제비가 날아간다’고 표현한다. 영종도 7단지 LH아파트 노인회가 만든 마을기업 ‘어머니손맛두레사업’의 상표 ‘적제비 전통장’은 영종도 옛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영종 7단지 LH경로당은 다른 지역 경로당과 많이 다르다. 이곳은 독거노인과 생활이 힘든 어르신들이 많다. 힘든 어르신들이 장을 만들어 나눠먹자는 의미로 모여 장을 담갔다. 남은 장을 팔아서 노인회 부식비라도 마련하자는 의미로 넉넉히 담가 동네에 팔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시어머니, 친정어머니로부터 배운 장맛이기에 맛은 장담할 수 있었다. 맛을 본 후 찾는 이가 점점 많아졌고 입소문을 타고 2016년 독립된 기업체로 우뚝 서기에 이르렀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어머니손맛두레사업 진창희 대표 나이는 86세다. 그녀에게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 “노인정에서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화투를 치거나, 수다를 떠는 일 밖엔 없더라고요. 그렇게 그냥 시간을 보내느니 생산적인 일을 해보고자 일을 저질렀습니다.” 2015년 ‘어머니손맛두레 나눔 희망마을’로 시작해 법인을 꾸리고 마을기업으로서 뽑히고 2016년에는 어엿한 사업장을 만들었다.“노인들이 젊은이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요? 우리가 가장 잘 하고 자신 있는 것이 바로 장 만드는거였지요. 영종도는 콩 농사가 잘 안되는 지역이라 가장 콩이 맛있는 파주 지역 장단콩으로 장을 만듭니다.” 이상규 이사는 원료가 좋아 장맛이 좋다고 자랑한다.   “남쪽지역 콩은 값이 싸서 어느 해는 장을 담가봤는데, 파주 장단콩 맛을 따라가질 못하더군요. 그래서 가격차가 3배 정도 있어도 장단콩만 고집합니다.”콩을 삶을 때도 커다란 가마솥을 이용한다. 장 담그는 시기도 옛날 사람들이 사용했던 음력력을 사용한다. 그래야 장맛이 좋아진다는 귀띔이다. 그 어떤 식품첨가제도 사용하지 않고 전통 방식 그대로 만든 장맛은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서 찾고 있다. 작년의 경우 연 매출 3,000만원을 올렸다. 소량으로 판매 방식을 바꿨더니 매출이 쑥쑥 오르기 시작했단다. 사실 마을기업이다 보니 이윤창출이 목적이 아닌지라, 인건비와 월세를 빼고 나면 남는 건 아직 없다.“남기려고 하면 장 장사는 접어야죠. 양심껏 우리 노인네 손맛을 알리려고 하는 겁니다. 우리 손주들 먹이는 심정으로 만들어요. 이렇게 힘없는 노인네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일에 참여하고 있지요.”  박부자 할머니는 무급으로 일을 돕고 있다.임경순 할머니는 “바깥양반이 참 어렵게 자랐거든요. 바깥양반이 워낙 남 돕는 걸 좋아하니 저도 돕는 중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손 맛을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니 제가 계속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힘 있을 때 까지 해야죠.”임경순 할아버지의 남편이자 총괄이사인 이상규 할아버지는 “사실 저는 암환자입니다. 그런 제가 아픈 몸 이끌고 이 사업을 하게 된 계기는 더 늙기 전에 어려운 가정을 돕고 싶어서였습니다. 어릴 때 무척 어렵게 자랐기 때문에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제가 알거든요. 잘 키워서 젊은이들에게 인수인계해주면 일자리창출도 되고 좋을 것 같습니다.”마을기업에서는 수익금으로 많은 좋은 일을 하고 있다. 겨울에는 직접 배추를 심어 어려운 이들에게 김장나눔 행사를 하고 있고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있다. LH노인들에게는 무료로 부식비를 대주고 어버이날 독거노인 잔치도 해주고 있단다. 희망이 생기다“정부 보조금으로 시작한 우리 사업이 이렇게 크게 될 줄 아무도 몰랐어요. 하물며 젊은이들이 시작도 하지 않고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저희 꿈은 젊은이들이 우리 사업을 잘 이어받아 장 만드는 기술이 끈기지 않길 희망해 봅니다.” 진창희 어르신에게 꿈을 물었더니 영종의 젊은이에 대한 일자리 창출을 말한다.“우리 장을 이용한 보리밥집을 운영해 보는 게 제 꿈입니다. 돈 없고 자식 없는 노인들이 언제나 들러 밥을 해결할 수 있는 무료급식소도 운영해 보고 싶고요.” 임경순 어르신의 꿈이 참 곱다.“작년에 인천시 최우수기업으로 우리 기업이 뽑혔어요. 올해는 전국 최우수기업에 뽑히고 싶습니다. 전국 후보가 되면 상금이 나오거든요. 그돈이 생겨야 또 동네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지요.”  보물창고를 개방하다“우리 보물창고 볼래요?” 어르신들이 보물창고를 개방했다. 장이 담긴 장독대를 어르신들은 보물창고라고 부른다.“새벽부터 7-8시간 콩을 삶고 뜨끈한 아랫목에 메주를 띄우고 볏짚으로 하나하나 새끼를 꽈서 자연바람으로 메주를 건조시켜요. 자연이 주는 선물로 이렇게 장을 담그니 이게 바로 하늘에서 주는 보물이 아니겠어요?”보물창고를 지닌 그들의 웃음이 어느 부자보다 더 넉넉해 보였다.   (주) 어머니손맛두레사업032)751-0799홈페이지 : www.적제비.com - 취급품목: 쌈장, 고추장, 간장, 청국장가루 선물세트 고추장, 된장, 간장 청국장, 청국장가루  들기름, 참기름  다래순, 곰치, 부지깽이 곤드래, 취나물 고추부각, 고사리, 무말랭이 이현주 I-VIEW기자 o7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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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4.04 (수)
  • 어서와, 삼별초  전시는 처음이지!

    [인천 이야기] 어서와, 삼별초 전시는 처음이지!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삼별초와 동아시아'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예고되었다. 한반도에서 출발한 봄소식이 동아시아 전역으로 퍼져가고 있는 가운데, 긴박했던 정세 속에서도 온 힘을 다해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드높였던 고려 건국 1100주년 의의가 조명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13세기 후반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했던 최강의 몽골군에 끝까지 맞선 삼별초의 전 여정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회가 국내최초로 기획되어 눈길을 끈다. 2018년 올해의 관광도시 및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하여 강화역사박물관이 개최한 기획특별전시 ‘삼별초와 동아시아’전이다. ​​ ‘용사들로 조직된 선발군’ 몽골에 맞서 봉기 1270년. ‘용사들로 조직된 선발군’이라는 뜻을 가진 ‘삼별초’는 몽골군에 항복한 고려정부에 반기를 들고 봉기한다. 그해 6월. 삼별초는 배중손 장군을 중심으로 현재 강화도 내가저수지 인근 나루터에 배를 띄워 진도로 떠난다. 진도에 도착한 삼별초는 용장산성을 쌓고 후백제 유민, 남부 해안 연안의 해양세력권, 멀리 오키나와 지역까지 손을 잡고 한반도에서 몽골군을 몰아낼 준비를 한다. 진도의 삼별초군은 여러 차례 여몽연합군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그러나 배중손이 전사하고 왕으로 옹립된 승화후 온이 참수 되자 삼별초의 진도정권은 1년 만에 붕괴한다. 1272년 2월, 배중손의 뒤를 이어 새롭게 지도자가 된 장수 김통정은 남은 병사들을 이끌고 제주도로 거점을 옮긴다. 북제주군 애월읍 소재 항파두리성은 제주 삼별초의 거점이었다. 1273년 4월, 여몽연합군의 대공세에 결국 삼별초는 최후를 맞는다. ▲ ​스탬프 찍기▲ ​삼별초 영상자료 고려시대의 유물·유적이 이북지역에 많은 까닭에 그동안 고려를 배경으로 하는 전시 기획은 자주 경험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고려 건국 1100주년을 앞두고 국립제주박물관, 국립나주박물관, 강화역사박물관이 공동주관한 ‘삼별초와 동아시아’기획전은 더욱 뜻깊다. 삼별초의 탄생부터 마지막까지 과정이 담긴 국내 20개, 일본 7개 기관 제공의 570여점 유물 및 전시 자료들이 궁금하다. “이번 전시는 크게 삼별초의 출발지인 고려의 임시수도 강화도, 삼별초가 개경 만월대를 본 따 축조한 진도 용장산성, 마지막 항쟁지였던 제주 항파두리성 출토품들과 당시 삼별초와 외교관계를 맺었던 일본의 고려 관련 유물 및 각종 자료들로 구분 됩니다.”▲ ​전쟁이 끝나길 바라며 만든 청동금고​ 강화역사박물관 윤혜진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이번 기획전은 강화, 진도, 제주, 일본에 이르기까지 삼별초의 이동경로 따라 그들이 겪었던 사건과 시대를 압축하여 보여준다. 사실 강화에는 고려정부가 개경으로 환도 하면서 대몽항쟁 관련 흔적을 지운 탓에 삼별초 관련 유적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다만 강화읍 대산리, 송해면 화도리 출토 유물, 곤릉을 제외한 강화도의 고려왕릉, 강화 중성 발굴 조사를 통해 강화 도읍지 시절 고려의 뛰어난 문화·예술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5월 27일까지 삼벌초 문화유한 한눈에 “2011년, 충청남도 태안군 마도해저에서 고려시대 조운선이 발굴되었습니다. 전라남도에서 강도(江都, 강화) 궁궐로 가는 진상품이 실린 난파선인데요, 이번 전시에서 관련 유물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선체 안에서 죽간, 목간으로 된 화물표가 나왔는데요, 화물 목록, 수량, 받는 사람, 보내는 사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전복, 젓갈, 상어를 보낸다고 적혀있는데 실제로 상어 뼈가 발견됩니다. 상어는 고기와 기름으로 쓰였던 굉장한 고가품이죠. 귀한 약재였던 사슴뿔도 나왔습니다. 강도시대 고려 지배층의 생활수준이 굉장히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제공한 고려시대 유물 중에는 투각기법(두껍게 만든 청자의 벽을 칼로 도려내는 장식 기법)을 활용한 청자 의자가 있는데요, 거의 훼손 되지 않아 원형 그대로입니다. 고려 왕릉에서 출토된 옥 장식, 유리 구술과 같은 세련된 장식품은 고려 장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 항파두리성 출토유물​​​​ 진도 용장산성에서 발굴된 삼별초 군대와 백성들의 사용 물건과 최후의 접전이 벌어졌던 제주 항파두리성 출토 요물들도 고려 후기 사회상을 알려주는 소중한 사료들이다. 특히 항파두리성에서 발견된 상감기법(표면에 여러 무늬를 새겨서 그 속에 같은 모양의 금·은·보석 같은 다른 재료를 새겨 넣는 공예기법) 고려청자나 가죽 끈으로 연결하여 제작한 철제 비늘 갑옷을 통해 계급과 계층을 초월하여 국난극복의지를 보여준 고려인들의 기개를 확인할 수 있다. ▲ 규수 다카시마 해저유적유물(원나라군대관련)​​▲ 몽고습래회사(일본 후쿠오카시립박물관 소장)​ 이번 기획전에는 지금껏 한 번도 소개 되지 않은 특별한 자료들도 공개 된다. 제주에서 삼별초가 패망한 뒤 1281년 여몽연합군과 일본군의 전투장면을 묘사한 ‘몽고습래회사(일본 후쿠오카시립박물관 소장)’와 규수 다카시마 해저유적에서 발견된 제주산 현무암으로 보이는 닻돌 등 원나라 군대 관련 유물도 만나볼 수 있다. 국립제주박물관에 이어 지난 3월 27일(화)부터 두 번째로 바통을 이어받아 강화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본 전시는 5월 27일(일)까지 계속된다. 그동안 접해보기 어려웠던 삼별초의 문화유산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본 전시를 놓치지 말자. ▶ 관람시간 : 9시~18시(매주 월요일 휴관) ▶ 관람요금 : 어른 3천원/ 어린이·청소년·군인 2천원(자연사박물관 포함) ▶ 문의안내 : 032-934-4296 글 김세라 I-View 객원기자, 사진 나윤아 자유사진가  

    2018.03.27 ~ 2018.05.27
    작성일 2018.04.02 (월)
  • 커피로 그리는 인천萬畵

    [인터뷰] 커피로 그리는 인천萬畵

     ​인천개항장 풍경을 그리는 만화가 김광성▲커피로 그린 만화가 김광성​만화(漫畫)란 한마디로 ‘우스갯그림’이다. 그 사전적 정의는 ‘과장, 생략을 통해 인생과 사회를 비판, 풍자하는 그림’을 뜻한다. 비판과 풍자가 만화의 뿌리기능이란 얘기다. 당연히 그 비판과 풍자성은 ‘우스갯그림’ 속에 붕어빵의 ‘앙꼬’처럼 한 꺼풀 감춰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스갯그림이 풀어내는 의사세계(擬似世界)에 도취해 낄낄대다보면 어느 틈엔가 가슴을 베이고 뒷덜미를 낚아채는 알싸함이 만화의 진정한 속맛인 셈이다.부산 사나이, 인천이라는 도시는 살수록 오묘하고 편안문학적 관점에서 풀자면 만화는 ‘산문정신’에 바탕을 둔 시대와 사회의 배설문학적 성격을 지닌다. 서민대중의 울화와 욕구를 웃음이라는 메타언어를 통해 배설시켜주는 한잔의 칼칼한 ‘막걸리’같은 것이다.문화사적으로 보자면, 만화는 애당초 ‘황색 저널리즘’의 꼬리표를 낙인처럼 달고 태어났다. 고고한 주류예술이 체면상 차마 건드리기 꺼려하던 궂은 역할을 도맡아 표현해줄 비주류 매체의 필요성이 근대시민사회의 시대적 요청이었다. 만화가 주류예술의 사생아적 역할을 태생적으로 떠맡게 된 이유다. 세간의 모든 칭송과 존경을 주류예술이 차지하는 동안, 만화예술은 온갖 음해와 멸시의 흑역사를 오랜 세월 견뎌야 했다. 하지만 현대로 오면서 만화에 대한 인식은 180도 바뀌기 시작한다. 텍스트(글)와 이미지(그림)의 대표적 융합매체인 만화장르는 그 비주류적 속성이 오히려 IT시대의 튀기성과 절묘하게 궁합이 맞아떨어지면서 산업전반에 걸쳐 ‘원소스 멀티유즈(one-source mult-use)’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봤자 만화는 만화일 뿐이죠. 그래도 만화는 역시 만화다워야 하고요. 크로스오버 시대잖아요.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이 서로를 넘나들면서 주류예술과 비주류예술의 경계가 무너진 지 이미 오래죠. 사실 예술이 맨 처음 눈 뜨던 태초에 장르의 구별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었겠어요? 하지만 만화가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온 저로서는, 제가 그리는 모든 그림이 만화라는 장르의 정체성을 고수해주길 바라는 거죠.”인천 서구 가재울역에서 만화가 김광성 선생(63세)을 만났다. 무려 20여년 만이었다. 당시 최고 인기잡지였던 ‘월간만화광장’의 신인공모전에 당선되어 갓 데뷔한 그와 인사동의 한 작가모임에서 우연히 합석해 막걸리 잔을 기울인 것이 처음이었다. 그 후로도 이런저런 자리에서 몇 번인가 더 자리를 같이 했지만, 바쁘게 세상을 살아가다보니 어느 순간 소원해져버렸다. 가끔씩 신문지상을 통해 그의 질박한 작품세계와 근황을 반가운 마음으로 접하곤 했을 뿐이​다. “수도권의 항구도시라는 이유만으로 인천에 터를 잡았는데, 첨엔 많이 실망했어요. 시퍼런 태종대 앞바다만 보고 자란 부산촌놈한테 인천 앞바다는 바다가 아니었거든요. 물도 엄청 탁하고요. 그런데 참 묘하더라고요. 살아볼수록, 또 알아갈수록 인천만한 도시가 없는 거예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오묘하면서도 편안한 매력, 개항장과 자유공원으로 이어지는 골목골목마다 아프고 찬란했던 우리 근현대사의 자취가 생생하게 서려있는 도시는 아마도 인천이 유일하지 싶어요.”  낙동강변, 을숙도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부산 엄궁동에서 나고 자랐단다. 드넓은 김해평야를 끼고 오른 편으로는 구포가, 왼편으로는 다대포가 위치한 동네였다. 농사도 짓고 민물장어나 재첩잡이로 생계를 꾸리던 집안의 2남4녀 중 셋째였다.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전, 동네에 처음 만화방이란 게 생겼어요. 글씨도 모르면서 넘겨보던 만화그림은 완전 별세계였죠. 그때부터 만화에 파묻혀 살면서 만화그림을 따라 그리기 시작했어요. 산호선생의 ‘라이파이’나 김종래, 박기당, 권웅 선생의 만화를 즐겨보고 열심히 흉내도 냈죠.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미술에 두각을 나타낸 것도 그 덕분이지 싶어요. 그때는 반공포스터 같은 걸 많이 그렸어요. 탱크며 비행기, 공장의 연기 나는 굴뚝그림으로 상을 휩쓸곤 했죠. 중학교 때는 펜글씨교본이 정식과목에 들어 있었는데, 그 바람에 펜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시절에는 강철수의 서부만화며, ‘돌돌이와 멍멍이’ 같은 동물만화도 즐겨 봤죠. 신동우 선생의 삼국지나 추동성 선생의 ‘도술 3형제’에 영향을 받아 직접 만화를 창작해 친구들과 돌려보기도 하고, 당시에는 크리스마스카드를 손으로 직접 그리던 시절이라, 카드를 그려 팔아 용돈을 벌기도 했어요.”하지만 아버지는 그가 그림 그리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셨단다. 그가 몰래 그려놓은 노트며 스케치북들을 눈에 띄는 족족 불태우거나 찢어 없애곤 하셨다. ‘평생 식술 굶기기 십상’이라며, 그림 그리다 들키기라도 하는 날이면 경을 치기 일쑤였다. ​ 첫 작품 ‘자갈치아지매’로 상 받으면서 만화계 데뷔 “동아실업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업을 했어요. 미국 콜드사와 기술제휴로 국산 M16을 생산하던 국방부조병창이었죠. 방위산업체였던 데다, 5급 공무원 문관대우 급여로 괜찮은 조건이었어요. 의무복무 기간인 5년만 근무할 생각이었는데 10년을 눌러 앉았죠. 한창 때라 동료들과 신나게 술 먹고 놀러 다니느라 바쁘게 지내긴 했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이 늘 허전한 거예요. 그러다 사내에 각종 동아리반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등산, 낚시, 연극 등 여러 동아리 중 서양화반에 가입했어요.”그림과의 인연은 그렇게 다시 이어졌다. 사내 화우회 총무도 맡고, 사외 미술모임과도 활발히 교류하면서 여러 명의 지도교수들에게 7~8년 동안 서양화를 배웠다. 쉬는 날은 통째로 그림에만 매달렸다. 비로소 가슴이 뛰고 사는 재미가 났다. 전시회 출품도 했다. 부산미전과 목우회전 등에 입선도 여러 차례 하고, 지방미전 특선도 했다.▲​1940년대 인천축항풍경 (화선지에 붓)“그렇게 그림에 빠져 지내는데 86아시안게임을 치르며 회사에 큰 변화가 생겼어요. 민영화바람으로 회사가 대우정밀로 넘어간 것이죠. 경영진이 바뀌면서 관리직들의 근무시간도 들쑥날쑥해지고, 걸핏하면 수당도 없이 연장근무가 잦아졌어요. 생활미술을 전공한 지금의 아내와 결혼해 가정도 꾸린 상태였지만,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죠. 그리고 시작한 게 간판가게였어요.”자신의 그림실력과 경기활성화로 간판수효도 함께 늘어나리라 예상하고 택한 창업이었다. 솜씨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일감은 쉴 새 없이 밀려들었지만, 몸이 고된 것에 비해 수입은 별로였다.“세상일에 운명이란 게 있긴 있나 봐요. 1987년 말, 서점간판을 달러갔는데 ‘월간만화광장’이라는 잡지가 눈에 들어왔어요. 무심코 집어 들고는 대충 훑어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쏟아지는 거예요. 이제껏 잊고 있었던, 가슴 밑바닥에 꽁꽁 봉인해뒀던 뜨거운 꿈 하나가 울컥 심장을 찢고 뛰쳐나와 버린 거죠. 갑자기 간판 일이 시들해져 버렸어요.”간판가게를 접고 무작정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첫 작품이 ‘자갈치아지매’였다. 자갈치시장에서 생선가게를 하는 친구를 직접 찾아다니며 취재한 다큐멘터리 같은 만화였다. 이 작품으로 ‘월간만화광장’신인상을 차지하게 되면서 늦깎이로 만화계에 데뷔했다. 마치 꿈을 꾸는 거 같았다. 두 번째 작품은 ‘바닷소리’였다.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못하는 어부를 기다리는 망부가를 주제로 한 만화였다. 허형만 선생의 추천으로 ‘매주만화’라는 주간잡지에 ‘깜부기’라는 중편을 연재하면서 차츰 그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기 시작했다.▲​1950년대 차이나타운의 공화춘 풍경 (화선지에 붓)“1991년 웅진출판사에서 기획한 세계사와 한국사전집을 그리게 되면서 인천 서구 가좌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으니, 벌써 27년 동안 인천사람으로 살고 있는 셈이네요. 시련도 있었어요. 1996년 6월 15일 동네 조기축구회원들과 홍천으로 야유회를 갔다가, 당시 중1이던 큰 아이를 홍천강에서 잃어버리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죠. 그 충격으로 2년간 폐인처럼 지내야 했어요. 참 기특한 애였죠. 공부도 잘하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애비처럼 노트에 만화를 그리곤 하던 녀석이었는데.......”산목숨은 살아야 했다. 꼬박 2년 만에 겨우 떨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 미친 듯이 작품에만 매달렸다. 남는 시간엔 동네 주민자치센터 소식지에 그림도 그려주고, 인천아트플랫폼의 평화미술프로젝트에도 참여하면서 인천지역에 대한 관심이 애틋해진 것도 사실 그 무렵부터였다. “몇 년 전부터 근대건축물 이미지들이 좋아 인천의 개항장풍경들을 틈틈이 그려왔어요. 현재 40여점이 준비되었죠. 2010년 ‘흑백영화 속의 서울풍경展’을 서울 ‘자인제노’화랑에서 가졌고, 2016년 4월 인사동 갤러리 ‘이즈’에서 ‘오래 전 서울展’을 마쳤는데, 내년쯤 ‘파노라마 제물포시대’라는 주제로 인천개항장 풍경전시회를 계획 중이에요.”▲​접시에 그린 김광성의 만화캐릭터들작업실로 쓴다는 그의 집 안방은 빼곡한 책들과 자료들, 그렸거나 그리다만 그림들로 어수선했다. 저녁식사를 겸한 약주 몇 잔에 불콰해진 그가 서가에서 화첩 한권을 꺼내들더니, 앞장에 호쾌한 그림과 사인을 해 기자에게 건네준다. 펼쳐든 화첩 속에서는 수많은 탁마로 눈부시게 벼려진 붓놀림들이 꿈틀꿈틀 봄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이젠 아득히 사라져버린 아련한 옛 풍경들이었다. 글. 커피그림  유사랑 I-View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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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4.04 (수)
  • 희망 퍼 올릴 두레박 품고 떠나다

    [인천 이야기] 희망 퍼 올릴 두레박 품고 떠나다

    십정2구역 이야기 - 열우물 연가(戀歌) 터의 무늬가 다시 한 번 바뀐다. ‘열우물 마을’이라 불리는 십정동, 그 터의 무늬는 여러 차례 바뀌었다. 인천의 끝 땅으로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던 북망산에 6·25 전쟁 후 피란민이 들어와 말뚝을 박고 울타리를 쳤다. 이후 도심에서 쫓겨 온 철거민들이 언덕 기슭에 판잣집과 흙벽돌집을 짓고 솥단지를 걸었다. 인근 염전이 거대한 공단으로 조성되면서 전국 팔도에서 온 노동자들은 산꼭대기에 거처를 마련했다. 그곳은 인천의 대표적인 산동네, 달동네가 되었다. 시간의 켜가 층층이 쌓인 그 동네는 지금 빈 둥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떠났다. 열우물에서 퍼 올렸던 희망의 두레박을 하나씩 가슴에 품고 떠났다. 이제 그 터에는 새로운 무늬가 그려진다. ▲ 1948년 함봉산에서 수봉산 방향으로 찍은 사진(부평역사박물관)▲ 옛 지도 속 십정리(십정동)​이곳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았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국유지 야산에 드문드문 사람들이 들어와 살았던 이 마을의 모습은 1960년대 후반 철거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틀이 잡혔다. 도화동과 율도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들어왔다. 선인학원은 1964년부터 남구 도화동 대지 53만㎡(16만평)에 무자비한 불도저를 앞세워 거대한 상아탑을 세웠다.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은 졸지에 ‘철거민’이 돼 십정동으로 이주했다. 서럽고 지겨울 법도 한데 자신들이 모여 살게 된 곳을 ‘도화촌’이라 불렀다. 1967년 들어 한 무리의 이주민들이 다시 이곳에 짐 보따리를 푼다. 서구 율도에 인천화력발전소가 조성되면서 쫓겨 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율도촌’이라 불린 집단 거주지를 마련한다.▲ 2006년​​▲ 2017년​▲ 2017년​​ 앞집의 어깨를 짚고 다른 집이 올라섰다. 이웃과 내 집을 나눌 담은 없다. 담을 칠 공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산 모양을 따라 집들이 다닥다닥 붙었다. 오를 수 있는 곳까지 집들이 들어섰다. 그렇게 산동네가 되었다. 식구가 늘어도 집터를 한 뼘도 늘릴 수가 없었다. 집 위에 쪽방을 올렸다. 애초에 무허가이니 무단으로 방을 냈다. 사다리를 만들어 지붕 한 귀퉁이에 장독대와 텃밭을 만들었다. 십정동에는 건축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는 기형적 주택이 즐비했다.▲ 2008년​​​▲ 2009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3년​​ 사람이 모여 사니 작은 시장이 생겼다. 산 아래로 난 길 양쪽으로 2층 상가가 뻗어 있었고 그곳에 약국, 정육점, 비디오 가게, 목욕탕, 방앗간, 빵집 등이 들어섰고 저녁때만 되면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매년 시장 공터에서는 열우물 마을 축제가 열렸고 마을 입구에 낮이면 일 나간 부모들을 대신해서 아이들을 돌보는 ‘해님공부방’이 문을 열었다.​▲ 2015년​▲ 2017년​​▲ 2017년​​▲ 2017년​​​ 10여 년 전부터 개발 소식이 들렸다. 모조리 헐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주민들은 집에 대한 더 이상의 투자를 하지 않았다. 새면 새는 대로 비면 비는 대로 그대로 놔뒀다. 동네가 급속히 늙어갔다. 허물기 전에 사람들이 하나둘 떠났다. 2014년 이미 전체 1,488 가구 중 60%가 빈집이었다.▲ 2018년​ 얼마 전 우여곡절 끝에 십정2구역 주거환경개선사업의 첫 삽을 떴다. 19만2,687㎡ 규모에 총사업비 1조1,621억 원이 투입돼 2021년 완공될 계획이다. 이곳에 5,678가구, 1만4,000여 명이 입주한다. 십정2구역은 예전의 철거 후 재개발 방식에 도시재생 뉴딜이 접목된 새로운 형태의 주거복지 공간이다. 열우물에서 다시 희망의 두레박질이 계속되길 기대한다. 출처 : 인천시 시정소식지 <굿모닝인천> http://goodmorning.incheon.go.kr/index.do 사진· 글 유동현 굿모닝인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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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4.04 (수)
  • 1960년대 후반부터 ‘빨간 짬뽕’ 등장

    [인천 맛] 1960년대 후반부터 ‘빨간 짬뽕’ 등장

    한데 섞음 이라는 뜻, 지금은 ‘짬뽕 전성시대’ 짬뽕은 ‘짬뽕’이란 이름 자체에서 풍기는 재미만큼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음식이다. “웃기는 짬뽕”, 가끔 짜장면과 짬뽕의 사이에서 고뇌에 찬 결단을 내려야 할 때면 그 국물의 얼큰함과 시원함에 짬뽕을 선택하고야 만다. 짬뽕은 중국요리점 인기 순위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짜장면의 자리를 넘보기 시작한다. 언제부터인가 중국요리점을 대표하는 면요리가 되면서 그 종류 또한 셀 수 없이 많아진다. 지금은 짬뽕의 시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중국요리점의 흥망을 결정하는 짬뽕, 더 이상 웃기지 않는다.  짬뽕을 쉽게 말하면 “일본 이름을 가진 한국 입맛의 중국 면요리”다. 한국 화교들의 초마면(炒碼麪)에 불맛이 가미된 시원하고도 얼큰한 국물을 가진 일본어 이름의 탕면(湯麪)이 된 과정이 짬뽕의 이력이다. 즉 한국, 중국, 일본의 합작품인 셈인데 중국의 초마면이 화교들에 의해 한국의 중국요리가 되고 탕을 유난히 즐겨먹는 한국의 음식문화로 의해 탕면이 되면서 고춧가루의 얼큰함까지 더해진다. 중국요리의 불 맛까지 살아있는 짬뽕은 여기에 특이한 발음의 이름까지 더해지면서 짬뽕의 신화는 시작했다.  짬뽕이란 이름의 탄생 짬뽕은 일본말에 ‘한데 섞음’과도 발음이 비슷하다. 1960대만해도 ‘짬뽕’은 먹는 짬뽕이 아닌 ‘한데 섞음’이라는 의미로 주로 쓰였다. 이때만하더라도 ‘한데 섞음’이라는 의미를 ‘짬뽕’이 아닌 ‘잡탕’으로 많이 섰었다. 언제부터 해물잡탕이 해물짬뽕이 되더니 ‘짬뽕’은 이렇게 먹는 짬뽕과 ‘한데 섞음’의 짬뽕 두 가지 뜻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잡탕’을 따돌리고 ‘짬뽕’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 백짬뽕​ 사실 일본 나가사키 짬뽕도 그렇고 중국 후난(湖南)의 초마면도 그렇고 해물이 들어가지 않는다. 나가사키 짬뽕과 후난 초마면 모두 돼지고기와 채소가 주재료다. 차이가 있다면 나가사키 짬뽕은 국물이 많고 후난 초마면은 국물이 거의 없다. 후난 초마면은 한국 화교들이 한국 식객들의 요구에 맞춰 탕면이 된다. 1960대년 대량의 화농(華農, 농업에 종사하는 화교)들이 화상(華商, 상업에 종사하는 화교)으로 전업한다. 대부분의 화상들은 중국요리점을 개업하고 더 푸짐하고 차별화된 짬뽕으로 식객들을 사로잡는다. 고기에 새우와 부추가 더해진 삼선짬뽕은 이미 일반 짬뽕이 되고 이보다 좀 더 푸짐한 갑오징어와 새우 그리고 홍합까지 들어간 짬뽕도 이미 일반 짬뽕이 된다. 이러다 보니 기존의 삼선짬뽕은 건해삼까지 들어가는 짬뽕이 된다. 중국요리에서 건해삼은 최고 중 최고의 재료이다.  짬뽕에 고춧가루, 고추짬뽕의 탄생 지금 짬뽕의 초창기 이름은 고추짬뽕(辣椒炒碼)이다. 짬뽕의 국물이 하얗던 시절, 고추짬뽕이 탄생한다. “고추짬뽕 주세요.” 하면 하얀 국물의 짬뽕이 아닌 빨간 국물의 짬뽕이 나온다. 이 시기가 1968년 정도 된다고 한국 화교들은 기억한다. 화농에서 화상으로 전업한 한 화교는 “손님이 고추짬뽕을 주문하는데 이 짬뽕이 무슨 짬뽕인지 몰라서 친구한테 전화로 물어보고 조리법까지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하얀 국물의 일반 짬뽕과 구별하기 위해 고추짬뽕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재밌는 것은 지금도 고추짬뽕이라는 메뉴가 있는데 마른 고추를 기름에 볶아서 만든 짬뽕이다. 하얀짬뽕과 구별하기 위한 ‘고추’가 아니고 고추가 들어가서 고추짬뽕이다. 고추짬뽕의 탄생은 육개장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설과 중국요리점에 비치되어 있는 양념 통의 고춧가루를 우동과 짜장면 등에 처먹는 것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는 설 그리고 식객들의 주문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설 등이 있다. 정확한 것은 누구도 알 수는 없지만 1960대 후반부터 짬뽕은 빨갛게 된다. 이 시기 갈비찜과 동등한 반열에 있던 떡볶이도 빨갛게 되기 시작한다. 고춧가루에 대량생산이 되기 시작하는 시기와 맞물리다.  짬뽕의 전성시대 이제는 짬뽕하면 빨간 짬뽕이 대표적이고 오히려 하얀 국물의 짬뽕이 하얀짬뽕이라고 구별해서 부른다. 이전에는 짬뽕 외에도 삼선짬뽕과 고추짬뽕 뿐이었지만 지금은 홍합짬뽕, 굴짬뽕, 옛날짬뽕, 냉짬뽕, 나가사키짬뽕, 고추바지락짬뽕, 부대짬뽕, 문어짬뽕, 크림짬뽕, 해물불짬뽕 등 그 종류도 다양해서 셀 수도 없다. 요즘은 자체 상호를 브랜드화 한 짬뽕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고 심지어 명품짬뽕이라고 해서 바닷가재 짬뽕이 생겨나기도 했다. ▲ 명품짬뽕​​ 짬뽕은 후난 초마면으로 출발하여 처음에는 ‘잡탕’이라는 단어를 대체하더니 한국 중국요리의 대표 술국 계란탕과 훈탕을 밀어내고 어느 순간 삼선짬뽕과 하얀짬뽕을 제치고 대한민국 대표 하는 요리가 되더니 이제는 명실상부 중국요리점 흥망을 결정하는 자리에까지 올랐다. 승승장구 한 짬뽕 지금은 과히 짬뽕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 주희풍 서울대학교 중문과 수료, 사진 서은미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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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4.02 (월)
  • 어둠 속 빛 끊어진 시간을 잇다

    [인천 이야기] 어둠 속 빛 끊어진 시간을 잇다

    Retro? Newtro! ④ 잇다스페이스 때론 오래된 것이 더 새롭고 아름답다.  인천은 과거와 미래가 조화로운 도시, 최초와 최고가 공존하는 도시다. 시간의 흔적을 온전히 보듬어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시킨 공간으로 들어가 본다.  그 네 번째로 100여 년 시간과 공간,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을 ‘잇는’ ‘잇다스페이스’를 찾았다.   청춘의 꿈 자라던, 싸리재 골목 모퉁이 하마터면 스쳐 지날 뻔했다. 개항장에서 배다리로 넘어가는 싸리재 고갯길. 그 길 골목 모퉁이 낡고 오래된 벽돌 건물에 ‘잇다스페이스’가 있다. 입구에는 ‘동양서림’ ‘새전과·표준학력고사·중학전과·새산수완성’이라는 정겨운 단어가 빛바랜 채 새겨져 있다. 추억으로 통하는 시간의 문처럼 느껴진다. “나를 만나기 전 이 건물의 마지막 역사, 그 시간의 연속성을 이어가고 싶었습니다.” 닫힌 공간 멈춘 시간이, 목(木) 조형 작가 정희석(45) 씨를 만나면서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 ‘잇다스페이스’는 공연, 전시를 비롯해실험적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잇다’에 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곳은 1920년대 소금 창고로 첫 숨을 텄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화약을 제조하는 원료로 쓰기 위해 소래에서 소금을 만들었다. 그 탐욕의 결정체가 이곳 바닷가 창고에 쌓여 바다 건너 섬나라로 속절없이 흘러 들어갔다. 아픈 역사가 깃든 건물은 1940년대 일본식 한증막으로 쓰이다, 10년 후 서점 ‘문조사’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대부분 동네 사람의 기억에는 헌책방 ‘동양서림’으로 남아 있다. 너도나도 어렵던 시절, 배움에 목말랐던 사람들이 부지런히 책방을 드나들었다. 젊은 지성인들과 소년 소녀들이 이 안에서 지문의 때가 스민 책을 넘기며 내일을 꿈꾸었다.   폐허에 움튼, 나무 한 그루 책방이 문을 닫고 20여 년간 숨죽이고 있던 공간은, 3년 전 정 작가를 만나면서 서서히 기지개를 켰다. 사방이 꽉 막힌 경남 거창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언젠가는 소금기 밴 바닷바람을 맞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릴 적 브라운관에서 보던 인천이라는 도시에 막연한 호기심을 품기도 했다. 그 운명 같은 끌림이, 15년 전 그를 이 땅에 뿌리내리게 했다. ▲ 단단한 벽에 뿌리내리며 줄기차게 이어온 생명력.나무줄기를 따라가면 놀랍게도 건물 밖에 있는 나무의 몸체로 이어진다.​​ 살다 보니 작업 공간을 만들고 싶어져, 무작정 배다리 주변을 배회했다. 몇 달을 골목골목 헤매었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 그만두려고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시선을 던진 후미진 골목 사이에서 오래된 벽돌 건물의 옆면을 ‘발견’했다. 순간, ‘아, 여기다’ 마음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20여 년 시간이 멈춘 옛 공간은 자욱한 먼지와 쓰레기 더미에 묻혀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아내의 한숨이 깊어져만 갔다. 하지만 그는 어둠이 깔린 폐허를 비추는 한 줄기 빛을 놓치지 않았다. “놀랍게도 죽어있는 공간에 나무 한 그루가 숨 쉬고 있었어요. ‘내가 꼭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 잃고 버려진 존재가 되어 몸뚱이가 잘려나간 오동나무. 하지만 나무는 기어코 단단한 벽면에 뿌리를 내리고 부서진 슬레이트 지붕 위로 가지를 뻗어, 틈으로 스미는 빗물과 햇살 한 줌으로 버티고 있었다. 평생 나무를 만지며 살아온 사람이 아니던가. 폐허에 움튼, 생명을 지키고 싶었다.   마음과 마음, 문화를 ‘잇다’ 묵직한 시간의 문을 여는 순간, 나무 향기가 진하게 밀려든다. 100여 년 켜켜이 쌓인 긴 시간과 오늘이 혼재된 공간이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잇다스페이스’가 둥지를 틀고 어둡고 음침한 골목에 활기가 돌자 가장 반긴 건 동네 주민이었다. 그들로부터 이 일대에 깃든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마음이 더 각별해졌다. “당시 젊은 문인들이 이곳을 드나들며 문학과 인생을 논하고 낭만을 이야기했다고 해요. 공간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어요.” ▲ 함께 만든 모두의 공간이다.‘잇다스페이스’를 짓겠다고 하자,주변 예술가들이 ‘소셜펀딩 (Social Funding)’으로 마음과 마음을 모았다.  그 오래됐지만 빛나는 시간의 증거들을 붙잡고 싶었다. 그래서 동양서림의 간판을 대문에 걸고, 마루로 쓰던 자투리 나무를 덧대어 문을 만들었다. 틈 사이로 빛이 새어드는 낡은 벽돌 벽, 나무가 숨을 내쉬던 지붕의 구멍도 온전히 남겨 두었다. 벽면에 눌어붙은 오래된 신문, 누렇게 빛바랜 태극기도 처음 발견했던 모습 그대로다. “언젠가 술에 거나하게 취한 어르신이 오셔서, 저 태극기를 절대 옮겨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마치 지나온 시간과 역사를 함부로 거스르지 말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 시간의 증거들을 붙잡고 싶었다.그래서 옛 공간의 흔적들을 온전히 남겨 두었다.벽면에 걸린 빛바랜 태극기도 처음 발견했던 모습 그대로다. 벽을 감싸는 나무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놀랍게도 건물 밖에 있는 나무의 몸체와 하나로 이어진다. 한 세기 가까이 부침 많은 세월을 견뎌 온 이 공간의 강인한 생명력을 말해주는 듯하다. 모두 떠나고 먼지 속에 침잠하던 공간에 오롯이 핀 생명. 잇다스페이스에 가면, 시간과 공간,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을 ‘잇는’ 희망이 ‘있다’. 출처 : 인천시 시정소식지 <굿모닝인천> http://goodmorning.incheon.go.kr/index.do 글 정경숙 굿모닝인천 편집위원│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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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4.04 (수)
  • 다리로 이어진 삼형제 섬 - 바다 누비며 바퀴 굴리는 맛

    [인천 여행] 다리로 이어진 삼형제 섬 - 바다 누비며 바퀴 굴리는 맛

    봄 자전거 여행 - 옹진군 신·시·모도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지구 삼목선착장에서 장봉도 가는 배를 타고 신도에 들른다. 신도는 공항철도와 선박을 통해 접근이 쉬워 수도권의 섬 여행지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게다가 신도는 시도, 모도와 다리로 이어져 있어 자전거를 즐기는 이들에게 일석삼조의 여행지로 소문이 나 있다. 배 한 번 타고 세 섬을 볼 수 있으니 큰 이득이다.   자전거 타고 여행하기 좋은 섬 영종도 삼목선착장에서 신도로 가는 배를 탄다. 이곳은 인천대교나 영종대교를 통해 접근이 쉬워 주말이면 많은 이들로 붐비는 선착장이다. 특히 차를 배에 싣고 섬에 들어가려면 보통 한두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바다를 건너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여 분에 불과하다. 대기시간이 필요 없는 자전거로 여행을 떠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신도, 시도, 모도는 자전거 여행에 딱 맞는 작은 섬이다. 바로 옆 장봉도 역시 라이딩을 즐기기 좋지만, 아기자기함은 확실히 신도, 시도, 모도가 우위다. 세 섬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며 각기 다른 풍광과 해안선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아라뱃길처럼 긴 거리를 달리는 라이딩에서 느낄 수 없는 여유도 만끽할 수 있어 좋다. 신도선착장에서 시도를 거쳐 모도 끝의 배미꾸미 해변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6km 정도다. 휘파람 불면서도 다녀올 수 있는 짧은 거리다. 게다가 세 섬을 연결하는 길은 경사가 거의 없다. 당일 라이딩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섬 여행이 주는 여유로움을 만끽하기 위해 자전거에 캠핑 장비를 실었다.   볼거리 많은 봄맞이 여행지 신도선착장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길이 바닷가를 따라 뻗어 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길은 양쪽으로 갈린다. 먼저 시도로 가기 위해 왼쪽의 작은 언덕을 넘는다. 기어를 낮추고 페달을 빠르게 돌리니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기분 좋은 땀방울이 이마에 맺힌다. ▲ 모도 남쪽 체험어장 부근의 바위에 올라 주변을 조망하면 가슴이 탁 트인다. 신도1리를 지나 바닷가로 이어진 해안도로를 따르면 신도와 시도를 연결한 연도교가 눈에 들어온다. 시도에는 북도면사무소와 파출소, 보건소, 공설운동장, 우체국 등의 주요 시설이 모여 있다. 세 섬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신도에서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 길로 들어서니 조그만 염전이 보인다. 일조량이 좋은 여름철에는 소금 만드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시도에서 나온 소금은 염도가 낮아 김치를 담그면 맛이 좋다고 한다. 시도 북도우체국 부근의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뻗은 도로를 따라 이동한다. 포장도로가 끝나는 곳에 위치한 드라마 ‘슬픈연가’ 촬영지에는 새로운 시설물이 들어서 있다. 바로 옆 수기해변은 오래전 방영된 드라마인 ‘풀하우스’ 세트장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세트장이 철거되어 사라졌지만 해변의 아름다움만큼은 변함이 없다. 이곳에 화장실과 식수대 등 편의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시도에 이곳보다 환경이 좋은 캠핑장은 없다. 바다를 보며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해변에 텐트를 펼친다.    신도 구봉산에서 보는 시원한 조망 수기해변에서 하루를 묵은 뒤 모도로 향한다. 시도 중심부의 삼거리에서 서쪽의 작은 언덕을 하나 넘으면 모도로 이어지는 긴 다리가 보인다. 모도로 건너가는 도중에 왼쪽으로 보이는 갯바위 위에 사람 형태의 조각품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모도 끝의 배미꾸미 해변의 조각공원에 가면 더욱 놀라운 작품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이 조각공원은 조각가 이일호씨가 성(性)을 주제로 만든 작품을 해변에 하나둘 설치하면서 조성됐다고 한다. 조각공원 앞 작은 해변은 여름철에 펜션 이용객들이 해수욕을 즐기는 곳이라고 한다. 시간만 있다면 뛰어들고 싶은 아담한 바닷가다. ▲ 구봉산 안개 낀 숲과 아침햇살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광 선착장이 있는 신도는 세 섬 가운데 가장 크다. 볼거리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이곳에는 구봉산(179.6m)이라는 큰 산줄기가 중심을 잡아 주며 우뚝 솟아 있어 나름의 매력이 있다. 구봉산에는 산정을 중심으로 환상(環狀) 임도가 조성되어 있어 산악자전거를 즐기기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임도로 오르는 초입이 상당히 가파른 편이라 강력한 체력이 필요하다. 이 산 최고의 전망대는 정상 동쪽 능선 상의 ‘구봉정’이다. 구봉정은 영종도 방면의 전망이 기가 막힌 곳이다. 바다와 갯벌은 물론, 인천공항의 드넓은 활주로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해질 녘 바다 너머 보이는 반짝이는 영종도의 밤 풍경이 일품이다. 출처 : 인천시 시정소식지 <굿모닝인천> http://goodmorning.incheon.go.kr/index.do글 김기환 월간‘산’ 기자, 사진 C영상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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