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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그림

    [인터뷰]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그림

    인두화 김명희 작가인두화는 뜨겁게 달군 쇠(인두)로 그려낸 그림이다. 휘몰아치는 화력은 섬세한 선으로 표현되어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공예인에서 인두화작가로 변신한 김명희 작가는 그만의 공예기법에 인두화를 접목시켜 새로운 공예품으로 인두화를 소개한다. 조선시대부터 전승된 인두화 인두화의 기록은 조선시대로 거슬러간다. 안동 장씨 가문 장계향의 작품이 최초의 기록이다. 인두화는 불에 달 군 인두로 그림을 그려내는 독특한 장르다. 불을 떨어뜨린다는 의미로 ‘낙화’라고 불리기도 한다. 전통적으로는 칼자루, 활통, 신발 등에 활용되어 공예와 접목시킨 예술의 한 분야로 전해진다. 인두화 작가 김명희 씨는 가죽공예에 인두화를 접목시킨 작품을 선보인다. 특히 선조들의 민화를 작품에 담아, 우리 문화를 알리는데 힘쓰는 작가다. “한국을 알리고 싶었어요. 원래 이것저것 공예를 했는데, 가죽공예도 그 중 하나였죠. 독특한 우리의 멋을 남기고 싶어 인두로 한국화를 그려 넣기 시작했어요.”그녀의 인두화는 나무나 가죽에 새겨진다. 특히 가죽에 새겨진 인두화는 생활소품으로 활용도가 높아 더욱 눈길을 끈다. 지갑이나 휴대폰케이스, 가방, 액세서리 등에서도 그녀의 인두화가 빛을 발한다. 가죽표면을 따라 인두가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지나간 자리엔 마치 붓 자국과 같은 흔적이 남는다. 힘의 세기나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깊이와 선의 굵기가 정해진다. 세심하게 움직이는 김 작가의 손끝에서 신윤복의 단오풍경이 선명해진다. “이렇게 붓처럼 표현되죠?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익숙해지면 정말 붓을 잡고 그리는 것 같아요.”  전통문화, 생활 속에서 꽃 피우다 김 작가는 이밖에도 미인도, 월하정인 등의 한국화 작품이나 전통문양을 사용해 인두화를 그려낸다. 그녀의 인두화는 대부분 가죽공예품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사람들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가려는 그녀의 의지가 깃들어있다. “전통문화로서 인두화를 아는 분들이 많지 않더라고요. 우리가 사용하는 소품이나 가구에 전통 그림과 인두화를 많이 제작해 선보이는 것도 사람들에 게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가죽에 밑그림을 그린 뒤 인두화 작업을 한 뒤, 채색 및 염색 을 하면 그 다음엔 가죽공예의 영역이다. 어떤 소품을 만드느냐에 따라 작업기간이 달라진다. 한 가지 그림을 가방, 지갑, 휴대폰케이스 등 다양한 소품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인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전통이란 이름에 갇혀 현대에 뒤처지는 전통이 아닌, 우리 고유의 문화로서 이어지기를, 김 작가는 바라고 있다. “인두화는 흑백사진처럼 명암으로 표현돼요. 여기에 채색을 더하면 더욱 생기있는 그림을 완성할 수 있죠. 처음 시작할 땐 나무에 주로 작업했는데, 요즘은 가죽을 주로 사용해요. 호기심으로 시작한 작업이었는데, 한 번 해보니 너무 좋더라고요. 계속할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어요.”  인두화는 현대에 이르러 ‘버닝(burning)’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인두화라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우리 전통문화인지 아는 이도 많지 않다. 김명희 작가는 한국문화로서 인두화를 알리기 위해 강좌를 연다. 그녀가 운영하는 ‘샘곁 나무공방’에서는 물론, 각 문화원이나 일일강좌 등을 통해 학생들을 찾아간다. 어린 학생들부터 성인들까지, 학생의 연령대도 다양하다. “인두화는 누구라도 할 수 있어요. 천연재료를 사용해 나무 향이나 가죽의 질감도 느낄 수 있죠. 시끌벅적하던 아이들도 인두를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더라고요. 그만큼 집중력 향상에도 좋아요. 한번 시작하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니까요.” 전통 인두화의 명맥을 잇는다 불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뜨겁게 달궈진 인두만큼이나 뜨거운 작가의 열기가 작품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인두화’는 조선시대부터 전해진 우리 전통예술의 하나로 원목이나 배접한 한지 등의 표면을 인두로 태워 그리는 예술이지만 정식으로 전승되지 못한채 힘겹게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인두화에 대한 자료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전통성을 잃지 않기 위해선 작가 스스로 자료를 검색해야 하는 실정이다. 생활고를 감수하기도 해야 한다.  “인두화를 하면서 생활을 유지하는 건 솔직히 어려운 일이에요. 저는 공방을 운영하면서 수업도 하니까 공방유지정도 하고 있고요. 전통공예를 하는 분들은 다 그렇더라고요. 좋아서 하는 거죠. 이것 밖에 할 수가 없어서 하는 거예요.” 김명희 작가는 전통 인두화를 복원하는 것, 그로서 세계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것을 목표로 작업에 매진하는 중이다. 매일 아침 공방 문을 열고 수업을 하고, 작업을 이어가 는 원동력은 그녀의 꿈이다. “궁극적으로는 작가로서, 제 가치관을 담은 그림을 인두로 표현하고 싶어요. 전통 기법을 더 연구해 전통 인두화를 복원해 나가는 것도 제가 지녀야 할 사명같은 거겠죠. 가장 한국적인 인두화 기법과 그림에 뛰어난 기량을 세계에 선보이고 싶어요.” 아직까지 우리나라엔 인두화 명장이 없다. 전통문화로서의 입지가 탄탄하지 않은 것이다. 정식계승되지 않은 것도 이유다. 김명희 작가와 같은 개개인의 노력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우선은 인천에서 부터 시작할 거예요. 갑자기 어떻게 넓어지겠어요. 천천히 내가 있는 이곳에서부터 넓혀 나가야죠. 인천시에서 주관하는 공모전이나 전시회 참여도 적극적으로 할 생각이에요. 인두화수업도 꾸준히 진행할 거고요”.김명희 작가는 전통공예인협회 소속 회원으로 전통공예인이다. 꾸준히 공예인으로서의 삶을 살다 2000년대 이르러 본격적인 인두화 작업을 시작한 그녀는 자신의 첫 인두화 작품인 <공작부인>으로 37회 인천공예품대전에 입선하며 인두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인두화: 인두화는 목판, 비단, 가죽 등에 불에 달굴 인두를 지져 그 화력으로 그림을 그리는 예술장르다. 태우는 정도에 따라 명암을 달라져 풍부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조선시대 장계향의 인두화가 최초의 기록이다. 전통적으로 인두화는 칼자루나 활통, 신발 등에서 발견돼 소품에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고출처 : 인천시 영문소식지 ‘Incheon Now’(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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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2.26 (월)
  • 빨간색 상호가 멋진 문화재급 간판

    [그때 그 시절] 빨간색 상호가 멋진 문화재급 간판

    ​골목길 숨은 보물찾기 - 화순상회 동인천역에서 배다리 철교까지 가는 길가에 과일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1930년 공설청과물시장이 문을 열었다. 이 자리는 경인선 개통(1899) 때부터 원래 축현역(현 동인천역)이 있었고, 1908년 축현역이 맞은편 현재의 동인천역 자리로 이전하면서 넓은 공간이 생겼다.  이 시장에서는 주로 근교에서 생산한 참외가 많이 거래돼 흔히 ‘채미전거리’라고 불렸다. 6.25 전쟁 이후 이 시장은 농촌의 황폐화로 한동안 거래가 없었다가 1960년대 쯤 청과물도매시장으로 다시 꼴을 갖춰나갔다. 현재의 공영주차장 자리에 인천원예협동조합 경매공판장이 들어서면서 ‘깡시장’이라고도 불렸다.   배다리 쪽 방향의 청과물 가게 ‘화순상회’는 배다리 쪽 방향에 있는 청과물 가게였다. 건물 크기나 층수가 다른 가게들에 비해 별반 다르지 않지만 유독 눈에 띄는 여러 요소들이 있다. 하얀색으로 칠한 건물 2층 외벽의 빨간색 글자 간판이 압권이다.(간판 자체만도 문화재급) 간판 글씨(한자)는 양각형으로 돌출돼 있다. 글자를 나중에 붙인 것이 아니라 애초 건물 시멘트 공사할 때부터 입체적으로 공들여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형태는 인천에서 거의 유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간판에는 전화번호가 ‘六六七’ 번으로 붙어 있는데, 이것은 이 건물의 연수를 어림잡는데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된다.(뒷부분에서 논의) 가장 특이한 것은 가게 이름 가운데 있는 ‘마크’다. 당시로서는(현재도 마찬가지 이지만) 일반 가게에 마크를 만들어 단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마크는 ‘화순(和順·상점 주인의 고향인 듯)’을 형상화 했다. 마크 중심에 ‘順’이 있고 테두리 원은 ‘和’를 멋지게 형상화했다.(자세히 보면 보임) 2층 외벽은 보기 드물게 입체적으로 만들었고, 길가 쪽으로 난 6개의 직사각형 창문(안쪽 창문은 벽돌로 폐쇄)도 매우 이채롭다.    화순상회는 3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길가 쪽 가게는 2층 벽돌조이고, 주차장 쪽 건물은 2층 시멘트블록조이다.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가운데(안채)는 한옥 주택이 있다. 이 세 채 건물의 중심은 바로 이 한옥이다. 한옥이 먼저 지어졌고, 나중에 두 건물이 한옥 일부를 부수고 양쪽으로 가게를 들인 것으로 보인다.(현재 건물등기부에 건물이 게재돼 있지 않으나 다시 조사할 예정)    한옥은 원래 ㅁ자형으로 지어졌다가 길가 쪽을 먼저 부수고 2층 가게를 들인 듯하다. 그 시기는 앞서 언급한 전화번호가 단서가 된다. 인천에서 국 번호 없는 전화번호는 주로 1960년대 초반까지의 일이다. 이후 2국과 3국 전화가 나왔고, 이어서 72국, 73국 전화번호가 생겼다. 그러니까 간판이 달린 2층 햐얀색 건물은 60년대 초반 이전에 세워진 건물로 보인다. 1층 천장 인테리어는 튼튼한 목재로 마무리했는데, 현재도 그 모습이 뚜렷이 남아 있다. 현재 세 들어 사는 가게(인천유통) 주인 말에 의하면 3년 전에 이 건물은 경매로 넘어가 지금은 서울 사람 소유가 되었고, 본인이 개업할 때 보니 가게 안에 거의 쓰레기 같은 농산물 관련 물건들이 너부러져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건물을 튼튼하게 지었는지 못이 들어가질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주차장 쪽 이층 건물은 제대로 지었다기보다 임시 가게로 사용하다가 나중에 일종의 창고로 사용한 듯 보이는데, 현재는 비어 있다. 한옥은 골목 쪽으로 대문이 나있는데, 현재 아무도 거주하고 있지 않다. 세 건물 모두 물이 샜는지 본래 모습은 간데없이 현재는 슬레이트 지붕을 얹혀놓았다. <화순상회와 딸린 건물> - 위치 : 인천시 중구 참외전로 150-1 (용동 67-2) - 건립년도 : 1960년대(추정) 외 - 형태 : 석재 외 원고출처 : 골목길 숨은 보물찾기(2015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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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2.26 (월)
  • 부평의 독립운동가 ‘이연형’ 아시나요

    [외고 · 칼럼] 부평의 독립운동가 ‘이연형’ 아시나요

    부평의 숨은이야기- 조국 광복의 씨앗뿌린 의인들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큰 아이가 유치원에서 배웠다며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흥얼거리더니 얼마 전부터는 위인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순신 장군을 제일 처음 골라 집더니 최무선과 장영실을 거쳐 지금은 유관순을 읽고 있다. 유관순을 읽기 시작한 후에는 아이의 질문도 부쩍 늘었다. 일본은 왜 우리나라를 강점하였는지. 유관순은 왜 만세를 불렀는지. 만세를 부른 일이 왜 일본 경찰에 잡혀가 고문을 당할 일인지. 여덟 살 아이에게는 좀처럼 이해가 어려운 모양이다. “엄마 유관순은 혼자서 이렇게 만세를 부른 게 아니라 엄청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한 거죠?” “그럼, 유관순 누나가 만세운동을 부르고 난 다음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했는데… 아마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했을 걸?”  ▲히로나카상공부평공장 내부모습이연형은 이곳에서 감시의 눈을 피해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일본경찰에 끌려가 젓가락 고문당해 2016년 정도로 기억을 한다. 필자가 속해 있는 부평역사박물관에서 삼릉마을에 대한 연구조사를 한창 진행 할 때였다.(삼릉마을에 대한 내용은 ‘숨어있는 부평이야기’ 2편에서 이야기 하였으니 생략한다.) 더운 여름날 삼릉 마을 현장을 둘러보고 조사원들끼리 둘러앉아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누군가 “분명 미쓰비시 공장에 잠입해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 있었을 법 한데…” 라는 이야기를 던졌다. 아마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부평에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을 찾아본 것이. 국가보훈처에서 여러 자료를 검색하다 드디어 ‘정재철’, ‘이연형’ 두 사람의 기록을 찾게 되었다. 국가보훈처의 기록에 따르면 정재철과 이연형 모두 히로나카상공(미쓰비시 제강의 전신)에서 일을 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죄명으로 옥고를 치룬 것으로 되어있었다. 이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에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모두 고인이 된 지 오래였다. 이 중 이연형의 유족과 만남이 성사되어 짧게나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 국사편찬위원회 소장일제감시 대상 인물카드속에서 故 이연형의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술이 취하셔서 마중 나온 저에게 본인이 젊었을 적 일본 경찰한테 끌려가서 대나무 젓가락으로 고문을 당한 적이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근데 그 때는 그게 무슨 말씀인가 했죠. 그냥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실언을 하신 거라 생각했어요.”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을 가족들은 언제 알았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유족들도 정확하게 아버지가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2007년 국가보훈처에서 아버지의 독립운동에 따른 재판 기록이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가족들이 알게 되었다고 하니, 당사자는 그 일에 대해 침묵을 지키며 긴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그마저도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닐뿐더러 포상을 받을 만큼 큰 일을 한 것도 아니니 시끄러울 필요 없다며 단호하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자식들의 설득으로 국가보훈처에 관련 서류를 제출하였고, 2008년 8월 15일에 건국포장을 받으면서 지난 날 의로운 행동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건강이 극도로 쇠약해진 상태인지라 가족들 모두 아버지의 건강이 우선 순위였을 뿐 포상을 받은 것에 대한 기쁨을 느껴 볼 틈도, 아버지가 어떻게 독립운동을 했는가에 대해 궁금증을 가져 볼 여유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 세월동안 침묵으로 일관하셨던 당신의 이야기를 짧게 꺼내셨다고 한다. 이야기인즉슨 고인은 1939년부터 1941년까지 부평에 있는 히로나카상공에서 직공으로 일을 하였는데, 그 때 윤석균과 송치호의 권유로 조선독립당에 가입을 한 후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 공장에서 모은 돈을 성냥갑에 잘 넣어 약속된 시간에 부평 어느 장소로 나가면 넝마주이가 다가와 “담뱃불 좀 빌립시다”라고 말을 건넸다고 한다. 그것이 그들만의 암호였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성냥갑을 건네는 것이 이연형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그렇게 자금을 건네기를 여러 차례. 안타깝게도 이 일이 발각되어 1942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어 모진 고문을 당한 것이다. 이것이 유족이 기억하는 가장 구체적인 이야기였다. 고인은 건국포장을 받은 지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09년 끝내 세상과 이별을 하고 말았다. 그가 전달한 독립자금이 얼마인지, 전달 한 자금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당신과 같은 중요한 임무를 맡은 사람은 주변에 몇 이나 있었는지에 대해 이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유족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박물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부평에서 독립운동을 한 이연형의 이야기를 더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 해 특별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영상을 만들어 전시장 한 면을 채웠다. 영상을 본 관람객들은 꽤나 흥미로움을 느끼는 듯 했고 그렇게 부평에서 이루어진 독립운동 이야기는 제법 알려질 수 있었다.  독립자금 전달 실패로 역사에 알려지게 된 그의 삶 그리고 지난 해 여름.  고인의 이야기를 모델로 한 ‘강제징용노동자상’이 부평공원에 세워졌다.  동상을 가리고 있던 천이 제막되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나오고 큰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세상에 영원히 묻힐 뻔한 이야기는 국가보훈처에서 발견 된 재판기록 한 장이 홑씨가 되어 싹을 틔었고, 스토리가 더해져 생명력을 갖게 되었다. 거기에 더해 일본 기업인 히로나카상공(미쓰비시 제강의 전신)의 공장이 있었던 부평공원 중심에 동상이 세워졌다는 것에서 사람들은 커다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듯 했다. 사실 고인의 경우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은밀하게 자금을 전달하라는 임무에 실패(?)하였기에 오늘날 세상에 알려지게 된 역설적인 상황이다. 반대로 본인의 임무를 너무나 완벽하게 수행하여 그 어떤 기록과 흔적을 남기지 않아 영원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나간 시간 저 깊숙한 곳에 묻혀버린,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무명의 의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만 할까?​▲ 부평공원에 세워진 강제징용노동자상▲‘나는 일본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올바름이 아님을 깨닫고 대한민국만을 생각하고조국을 위한 길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1942년 1월 이연형’ 고인의 묘비문에서 비장함을 느낄 수 있다. 유관순 책을 읽던 아이가 삽화를 가리키며 이야기 한다.“엄마! 이 사람들도 다 같이 만세를 불렀는데 왜 똑같이 위인전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이 사람들도 다 똑같이 어려운 일을 한 건데…“ “위인전은 없지만 대신에 우리가 기억해주면 되지! 유관순 말고도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이 많았구나 라고.” 세상을 바꾸는 건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한 명이 아닌 수많은 보통의 사람들이 힘을 합하였을 때라는 것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도 배웠고, 최근의 촛불혁명을 통해서도 경험하였다. 70여 년 전 온 민족이 그토록 바랐던 해방의 그 날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이연형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 ‘명량’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다. 전쟁을 승리로 마치고 손에는 땀과 피로 범벅이 된 무명의 수병(水兵)들이 상처에서 오는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 한 걸 알아줄까?” “몰라주면 호로 자식이지.” 글, 사진 김정아 부평역사박물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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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2.26 (월)
  • ‘송도 테마파크 지하차도’ 2021년까지 완공 등

    [인천뉴스] ‘송도 테마파크 지하차도’ 2021년까지 완공 등

     인천시는 길이 660m, 왕복 4차로로 가칭‘송도 테마파크 지하차도(송도3교 지하차도)’를 2021년까지 건설하기로 했다. 송도 테마파크 지하차도가 개통되면 아암로의 교통 정체가 해소되고, 향후 동춘 1, 2구역 도시개발사업과 테마파크 등 주변지역 개발로 인한 교통체증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하차도는 테마파크 및 도시개발사업의 교통영향평가 개선대책과 도시개발사업의 사회공헌사업에 반영돼 있어, ㈜부영주택 측에 지하차도의 우선건설을 요청했었다. ㈜부영주택도 테마파크 사업 준공 이전에 지하차도를 먼저 건설함으로써 테마파크와 도시개발사업 시행의지를 표명했다. 그리고 2018년 1월 17일 시에 지하차도 위탁시행을 요청함에 따라 시는 협의를 통해 사업비 약906억 원을 전액 부담하는 조건으로 위탁시행 요청을 수용했다. 시는 ㈜부영주택과 테마파크 지하차도 위탁시행 협약 체결, 지하차도 설계도서 검토, 설계경제성 심사 등과 같은 행정절차를 이행한 후 2019년에 공사를 착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민·취약계층 보호 ‘불법사금융 일제단속’ 실시 불법 사금융의 고금리에 우는 서민·취약계층을 위해 인천시가 나섰다. 시는 오는 4월 30일까지 중앙부처와 합동으로 서민·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불법사금융 일제단속’을 실시한다. 이번 일제단속은 2월 8일부터 대부업법상 법정최고 이자율이 27.9%에서 24%로 변경 시행되면서, 신규대출 자격요건 강화 등 금융권(대부업 등) 문턱이 높아진 이들을 노린 불법 사금융 확산 우려에 따른 방지대책의 일환이다. 이와 관련하여 시(市) 및 각 군구 경제과에서는 ‘불법사금융 신고센터’를 설치·운영하고, 불법사금융 관련 상담·피해접수를 받는다. 접수된 내용중 중대 위법한 사항에 대하여는 경찰·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등 강력히 단속해 나갈 계획이며, 등록대부업체 중 위반사례가 있을 경우에는 현장확인 등을 거쳐 영업정지, 등록취소 및 과태료 부과 등의 신속한 행정처분을 시행할 방침이다. 불법사금융 피해사례와 예방법으로는 ‘불법고금리 요구’시 금융감독원, 경찰청, 지자체에 지체없이 신고하고, 폭행·협박 등‘불법채권추심’의 경우에는 증거를 확보한 후 관련기관에 신고하고 ‘대출사기’등의 경우에는 경찰청 신고 및 거래금융회사에 지급정지를 요청하면 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예방법으로는 불법사금융을 이용하기 전에 한번 더 본인의 소득과 이자부담을 생각하고, 서민금융 정책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등대올림픽 100일 기념, 시민프로젝트 진행 인천시는 오는 5월 송도 컨벤시아에서 개최되는 제19차 국제항로표지협회 컨퍼런스*를 기념하여‘희망등대원정대’프로젝트와 퀴즈이벤트 등 다양한 시민참여 이벤트가 기획하고 있다. 먼저‘희망등대원정대’는 국내에 있는 아름다운 등대의 매력을 발굴, 이를 스토리텔링형 콘텐츠로 제작, 홍보하여 항로표지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을 제고하는 시민참여 이벤트로써 해양수산부 홈페이지(mof.go.kr)를 통해 3월 11일(일)까지 참가신청을 받고 있다.  희망등대원정대로 선발되면 한 달간 국내에 있는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는 등대를 탐방하고 사람들의 삶의 지표와 희망이 되었던 등대를 바탕으로 스토리를 재구성하여 콘텐츠 제작과 홍보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인‘인천 팔미도 등대’를 시작으로 전국의 아름다운 주요 등대탐방을 하는 것으로 인천시민들의 많은 참여가 기대된다. 컨퍼런스 공식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19thIALA/)에서는 D-100일 기념 퀴즈이벤트도 진행되고 있어 퀴즈를 맞히고 공유하면 추첨을 통해 소정의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컨퍼런스 개최기간에는 컨벤시아 전시홀에서‘세계등대유물전시회’를 통해 세계 40여 각국의 등대유물(200여점)을 전시하여 등대 유물의 보존 및 관리 필요성은 물론 등대의 가치를 시민들에게 널리 알릴 예정이며, 6월 2일(토)에는 인천 국제여객부두에 ‘컨퍼런스 기념등대 점등행사’도 예정되어 있다. * 국제항로표지협회(IALA,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Marine Aids to Navigation and Lighthouse Authorities) : 등대, 등부표 등 항로표지에 대한 기술개발 및 기술 표준화를 위해 83개 항로표지 당국으로 구성된 국제기구   ‘하늘위 응급실’ 닥터헬기 백령도까지 운항 인천시는 2월 26일부터 응급의료전용헬기인 닥터헬기를 서해 최북단인 백령도까지 확대, 운항하고 있다. 닥터헬기는 일명‘하늘위의 응급실’로 불리며, 첨단 의료장비와 전문치료약물 탑재는 물론 응급의학 전문의가 탑승하는 응급의료 전용헬기다.  백령도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쾌속선으로 4시간이 걸리는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섬으로 그나마도 하루에 배가 운항하는 횟수가 적어 지금까지는 응급환자 발생 시에는 해경이나 소방의 도움을 받아 환자를 이송하여 왔지만, 이제는 닥터헬기 운항으로 인해 응급환자 발생 시 골든타임 내에 신속히 환자를 이송, 처치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출혈이 심한 중증외상이나 심장발작에 대한 응급처치는 촌각을 툰다. 말 그대로 시간이 생명이다. 특히 인천광역시는 전문 의료진은 커녕 의료기관이 취약한 도서지역이 많이 산재되어 있는 응급의료 취약지로 이 곳에서 발생한 환자의 생사 여부는 닥터헬기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인천광역시는 닥터헬기 백령도 출동 시 왕복 3시간 이상이 소모됨에 따라 타 지역 응급환자 발생 시 이송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관기관인 소방, 해경 등 유관기관과의 회의 및 지속적인 업무협조를 통해 응급환자 이송헬기 출동 매뉴얼을 공유하는 등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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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2.26 (월)
  • 한 컷, 한 줄로 풀다

    [렌즈 속 인천] 한 컷, 한 줄로 풀다

     이 빨래판은죽어서도 옷과 인연을 이어 간다.- 중구 도원동사진·글 유동현 (굿모닝인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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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2.26 (월)
  • 그곳에선 그윽한 묵향이 숨쉰다

    [인천 이야기] 그곳에선 그윽한 묵향이 숨쉰다

    강화 문화의 중심 '강화문학관'한민족 영웅 대서사시인 ‘동명왕편’을 지은 백운 이규보와 ‘관동별곡’의 저자 송강 정철의 공통점은? 두 문장가 모두 강화도와 인연이 깊다. 단군신화가 전해지는 역사의 고장 강화. 민족의 대문호 이규보, 정철을 비롯하여 조선 후기 4대 문장가 중 한 사람인 영재 이건창, 강화양명학의 대부 하곡 정제두, 최후의 양명학자이자 독립 운동가였던 위당 정인보 등 이 땅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문인들이 활동한 전통의 ‘문학동네’다. 봄바람 따라 문학의 향기가 솔솔 부는 계절이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요즘, 강화 문화의 중심지인 ‘강화문학관’에서 ‘문학의 봄’에 푹 빠져보자. ​  스탬프 찍기, 팔만대장경 체험 등 어린이 코너도 마련 2010년 7월 6일에 개관한 ‘강화문학관’은 한국 수필문학의 거봉이자 정무장관과 예술의전당 이사장을 역임했던 월당 조경희 선생의 유지에 의해 건립 되었다. ‘인간은 얼굴이 예쁜 것으로 잘 사는 게 아니라 보다 마음이 아름다워야 사람 노릇을 한다.’ 국어 교과서에 실려 유명한 조경희 선생의 수필 ‘얼굴’의 한 대목이다.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삼랑성 인근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조경희 선생은 독립 운동가이자 성공회 온수리 성당의 사제였던 부친 조광원 신부의 소박하고 강직한 성품을 이어 받았다. 조경희 선생은 2005년 타계하기 전에 강화의 청소년들이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도록 필생에 걸쳐 수집한 280여점의 미술품과 8천여 권의 도서를 강화군에 기증했다. 강화군은 우리나라 근현대 문학의 발전에 큰 공로가 있는 조경희 선생의 뜻을 받아들여, 5년에 걸쳐 강화문학관을 완성했다. 강화는 고려시대 이규보를 비롯하여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활약한 고장. ‘강화문학관’은 강화는 물론 한반도 인문학의 어제와 오늘을 연결하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강화문학관의 1층 전시실은 우리 문학에 큰 획을 그은 역사적인 문장가들이 소개 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동국이상국집’과 ‘국선생전’의 이규보, 고려 말기 유학자 이색 등 고려시대의 문장가들과 가사문학의 최고봉 송강 정철, 귀양 온 정철을 모셨던 천재 시인 권필, 그리고 정제두, 이광사, 이건창, 황현, 정인보의 강화양명학파, 오늘날 강화 나들길의 모태가 된 ‘심도기행’의 고재형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다. 전시된 작품들을 읽으니, 새삼 선조들의 절묘한 글 솜씨가 놀랍다. 귀에 익숙한 인물들이지만 문학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어렵지 않을까 선입견을 갖지 않아도 된다. 이규보가 6세 때 지은 시를 찍어보는 스탬프 체험, 팔만대장경 탁본 체험 등 어린이들도 즐길 수 있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어 온 가족이 함께 찾으면 더욱 좋다. 무엇보다도 문학관에 요청하면 언제든지 쉽고 재미있게 강화의 문학과 역사에 대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3년 전이었어요. 한가로운 평일 오후에 60대 노부부가 설명을 청하셨지요. 강화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어요. 반도 못 돌았는데 1시간이 훌쩍 흘렀더라고요. 시간은 충분하다면서 더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시더군요. 알고 보니 30년 전에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분들이셨어요.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와서 전국을 다니다가 강화도에 발길이 닿은 거죠. 이곳에서 이규보의 동명왕편과 주몽을 듣다 보니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한민족의 역사가 떠올랐다면서 눈시울이 붉어지더군요. 저도 뭉클했습니다. 강화문학관 위치가 참 좋아요. 이 자리가 원래 강화 근대화의 상징인 심도직물 기숙사 터에요. 앞에는 한옥성당인 성공회강화성당과 철종의 잠저인 용흥궁이 있고, 뒤에는 유서 깊은 강화초등학교와 고려궁지가 있지요. 명실상부한 강화도 역사·문화의 중심지에요.”  국문과 등 관련학과들의 단골 답사지로 유명 강화문학관 양태부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2층의 조경희수필문학관에 올라갔다. 조경희 선생의 육필 원고와 생전에 사용했던 유품이 진열된 집필실이 재현되어 있다. 선생의 손길이 닿은 소담스러운 물건을 바라보니 문학적 상상력이 자극된다. 같은 공간에 전시 되어 있는 소장품에는 운보 김기창, 백남준, 천경자와 같은 거장의 작품이 포함 되어 있다. 후학들과 고향을 위하여 값을 따질 수 없는 귀한 예술품을 아낌없이 기부한 조경희 선생의 아름다운 나눔이 깊은 울림을 준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올곧은 마음이 글을 통해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진정한 문학 정신이 실현된다. 문학의 본질을 행동으로 실천해온 강화 문인들은 오늘을 살고 있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된다. 해서 강화문학관은 전국 대학의 국문학과, 문예창작학과 학생들 단골 답사지가 되었다. 또한 전국 각 지역 문인회와 문학 단체들도 강화 문인들의 숨결을 느끼고자 발걸음을 한다. 뿐만 아니라 강화문학관은 인근 지역 주민들의 문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문재, 최영미 시인 등에 이어 2018년 3월 16일(금)에는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뜻한 희망을 전하는 정호승 시인의 초청강좌가 예정되어 있다. 강화문학관의 문화강좌들은 대도시에 비해 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강화 주민들에게 큰 선물이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고 했던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올 봄에는 문학관 나들이 어떨까. 사색을 통한 쉼표, 진정한 치유와 휴식의 시간이 될 것이다.   * 강화문학관 관람안내 - 매일 오전9시~오후6시 - 휴관일(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 및 추석날 당일) - 문학관 관람 및 세미나실 예약 안내 032)933-0605 글 김세라 I-View 객원기자, 사진 나윤아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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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2.26 (월)
  • 보름달에 소원을 빌러, 가즈아!

    [전시 · 공연] 보름달에 소원을 빌러, 가즈아!

    시립박물관, 검단선사박물관 대보름 행사 인천시립박물관은 정월대보름을 맞이해 3월 1일(목) 박물관 야외 우현마당에서‘정월대보름맞이 민속놀이 한마당’을 개최한다.  올해 대보름 민속행사는 정월대보름 하루 전날인 음력 1월 14일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박물관 앞마당에서 가족과 함께 다양한 전통 놀이와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체험마당, 놀이마당, 겨루기 마당, 먹거리 마당, 공연마당, 달집태우기 등이 진행된다. 체험마당 프로그램 6개 가운데 걱정인형 만들기, 강아지 가방 만들기, 짚 계란 꾸러미 만들기는 당일 현장 접수를 받으며, 그 외 제기 만들기, 색종이칠교 만들기는 현장 접수없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놀이마당은 투호던지기, 윷놀이, 윷점, 사방치기, 비석치기, 토정비결, 떡메치기 등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준비되어 있다. 겨루기 마당은 선착순 접수를 받으며 우승한 참가자에게 오곡과 문구세트 등의 선물을 증정할 예정이다. 먹거리마당은 행사에 참여하는 모든 시민들에게 땅콩, 호두, 귀밝이술, 인절미, 따뜻한 차를 제공한다. 공연마당은 연수노인복지관 천수패의 풍물놀이를 시작으로 달집태우기의 본격적인 준비가 진행된다. 대보름 행사의 가장 큰 볼거리인 달집태우기는 한해의 소망을 빈 소원지를 함께 태우는 것을 끝으로 민속행사의 막을 내린다. 검단선사박물관에서도 2월 27일(화)부터 ~ 3월 4일(일)까지 5일간 정월대보름맞이 민속행사 ‘달이 떠오른다, 가자’를 개최한다.  박물관 2층 야외 하늘정원을 중심으로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제기차기․비석치기․사방치기․투호놀이․윷놀이 등 전통 놀이를 자유롭게 체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또한 한 해의 소망을 담고 나쁜 것을 물리치기 위한 소원지와 개 부적을 작성하여 금줄 등에 매달아 볼 수 있다. 시민들이 정성껏 쓴 소원지와 개 부적은 정월대보름 행사가 모두 끝난 후 박물관에서 모아 하늘로 태워 보낼 예정이다. 또한 상설전시 관람과 전통 놀이 등을 마친 관람객은 1층 안내데스크에서‘내 더위 사가라’라는 세시인사를 주고받으며 땅콩, 호두 등 박물관에서 준비한 부럼을 깨고 한 해의 건강을 바랄 것이다. 특히, 3월 1일(목) 삼일절에는 내방객 중 선착순으로 약밥 등 절기 음식도 나눌 예정이다. 행사기간 중 3월 2일(금)은 박물관 휴관일이다.문의 032-440-6790, 6796  ​ <인천시립박물관 정월대보름 행사> 일 시 : 3월 1일(목) 오후 1시 ~ 7시  장 소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야외 우현마당  대 상 : 일반시민과 가족단위 관람객 등  행사내용 : 달집태우기, 체험마당, 놀이마당, 겨루기마당, 먹거리 마당, 공연마당  참여방법 : 당일 현장 접수 및 선착순 참여  문 의 처 :032-440-6733 <검단선사박물관 정월대보름 행사> 일      시 : 2월 27일(화)  ~3월 4일(일)  주요행사 : 부럼깨기와 전통놀이, 소원지 쓰기와 부적그리기 등 전통행사 문 의 처 :032-440-6790, 6796 

    2018.02.27 ~ 2018.03.04
    작성일 2018.02.26 (월)
  • 봄의 시작, 체코의 교향곡과 함께하다

    [무대와 객석] 봄의 시작, 체코의 교향곡과 함께하다

    인천시립교향악단, 드보르작 정기연주회인천시립교향악단은 매월 새로운 작곡가를 선정하여 그의 음악적 매력을 보여주는 연주회를 개최하고 있다. 상반기 두 번째 무대가 열린다. 시립교향악단은 지난 2월 북구의 거장 시벨리우스의 작품을 연주하여 인천시민들에게 호평을 받은바 있다. 이번 시간에는 강남대학교 교수인 유광이 객원지휘자로 나서 체코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드보르작의 ‘교향곡 제8번’을 집중 조명한다. 이외에도 베르디의 ‘시칠리아의 저녁기도’ 서곡, R.슈트라우스의 ‘호른 협주곡 제1번’이 함께 연주된다. ​ 첫 곡으로 연주되는 베르디의 ‘시칠리아의 저녁기도’ 서곡은 베르디 오페라의 서곡 중 가장 유명하면서 가장 긴 곡 중 하나이다. 이 서곡은 독립된 관현악곡으로 연주되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완벽한 작품으로, 단독으로 연주된다. 두 번째로 연주되는 R.슈트라우스의 ‘호른 협주곡 제1번’은 호른주자였던 부친의 탄생 60년을 기념하여 작곡되었다. 그의 신선함과 대담함을 엿볼 수 있는 젊은 시절 작품이기도 하다. 함께 연주할 이석준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사)TIMF앙상블, 솔루스브라스퀸텟, (사)한국페스티벌앙상블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호른 주자이다. 후반부는 이번 음악회의 메인이 되는 드보르작 ‘교향곡 제8번’을 들려준다.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가 적극적으로 드러난 곡으로 독일의 비평가 크레취마는 이 곡을 ‘교향시 혹은 슬라브 랩소디’에 가깝다고 평했다.인천시립교향악단 이번 연주회는 3월 16일(금) 오후 7시 30분에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펼쳐지며, R석 1만원, S석 7천원에 관람할 수 있다.문의) 032-438-7772​ <인천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 □ 일 시 : 3월 16일(금) 오후 7시30분 □ 장 소 :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 관 람 료 : R석 1만원, S석 7천원 □ 관람연령 : 8세 이상 □ 공연문의 : 420-2735, 438-7772 □ 예 매 : 인천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 http://art.incheon.go.kr           상설예매처 032-420-2000, 엔티켓 1588-2341 

    2018.03.16 ~ 2018.03.16
    작성일 2018.02.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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