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Top Click

Total : 29

  • 울동네 맛고수. 39화 - 초밥

    [웹툰 · 갤러리] 울동네 맛고수. 39화 - 초밥

      

    기간없음
    작성일 2018.11.28 (수)
  • 첫눈 내린 날, 겨울왕국  ‘강화’를 걸어보니...

    [인천 이야기] 첫눈 내린 날, 겨울왕국 ‘강화’를 걸어보니...

    ​흰 눈꽃 쌓인 고려궁지, 용흥궁 동화같은 분위기 첫눈이 왔다. 지난 24일 1981년 관측 이후 최고기록이라는 함박눈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붉은빛이 남아있는 단풍나무 위로 소복하게 쌓인 11월의 눈,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 겨울손님이 반갑기만 하다.▲용흥궁의 설경​​하얀 솜 같은 고운 눈 맞으며 강화읍 산책첫눈 온 날 아침, 하얀 솜 같은 고운 눈을 맞으며 옛 이야기를 품고 있는 강화읍 거리를 걸었다.먼저, 겨울왕국으로 변한 강화읍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고려궁지로 갔다. 고려정부는 몽골군의 침략을 피해 1232년 강화도로 도읍지를 옮긴 후, 규모는 작지만 개경의 궁궐을 닮은 궁을 짓는다. 결사항전을 결의하며 세 겹의 성을 쌓았건만, 전 국토가 몽골군에 유린되자 39년 후 고려정부는 결국 원나라에 항복을 한다. 고려궁궐은 몽골군에 의해 파괴되고, 터만 남는다.▲고려궁지(눈싸움하는 초등학생들)​조선시대 강화는 광주, 수원, 개경과 더불어 수도를 지키는 중요한 군사적인 요지였다. 강화유수는 장관에 해당되는 고위 관료였으므로 많은 책임과 권한이 주어졌다.강화유수부로 승격된 옛 고려궁터에는 행궁과 여러 관청건물이 들어섰고, 특히 정조시대에 들어와서 왕립도서관인 외규장각이 세워졌다. 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났다. 프랑스군은 강화도를 습격하면서 외규장각 안에 보관 중이던 서적을 약탈하고 건물을 불태웠다. 현재 고려궁지에는 동헌, 이방청, 외규장각이 복원되어있다.▲고려궁지(눈쌓인 외규장각)​눈발이 약해진 사이, 엉금엉금 거북이걸음으로 외규장각을 올라갔다. 옛 영화를 빼앗긴 빈 궁궐터는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고 탄식했다는 ‘맥수지탄’을 떠올리게 하지만, 순백의 눈으로 가득한 오래된 궁터는 아늑하고 포근한 동화나라 같았다.▲고려궁지(눈싸움하는 소녀들)​선생님과 현장학습을 온 초등학생들이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을 뒹굴었다. 역사의 현장에서 제자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은 선생님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개구쟁이 녀석들의 관심은 온통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 뿐 이다. 눈물 콧물 훔치며 눈싸움을 했던 오늘 하루가 오래 오래 행복한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강화도령 철종이 살았던 용흥궁, 겨울 낭만이 흠뻑고려 궁지 바로 아래에 위치한 천주교 강화성당은 올해로 건립 60년이 된 유서 깊은 종교 문화재다. 조선후기 천주교도들의 처형지인 진무영(조선시대 해상경비의 임무를 맡았던 군영) 순교성지이며, 1960년대 심도직물노동조합의 노조탄압 당시 가톨릭 노동사목의 시작을 알린 역사적 장소다.▲천주교강화성당​아직 11월이지만 소담스럽게 쌓인 눈 덕분에 어디선가 성탄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종교와 무관하게 경건하고 평화로운 연말을 보내고 싶다면 한 번 방문해보자.눈이 그쳤다. 마지막으로 강화성당에서 5분 쯤 떨어진 ‘용흥궁’으로 향했다.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좁은 골목을 걸었다. 근대화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은 돌담길이 고맙다. 지붕위에 쌓인 눈이 벌써 녹기 시작했다.▲용흥궁 골목​추녀 끝으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이 겨울의 낭만을 더한다. 용흥궁은 조선의 25대왕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19세까지 살던 집이다. 강화도령 이원범의 할머니 송 마리아는 신유박해 사건 때 천주교 강화성당이 있었던 진무영에서 처형을 당했고, 할아버지 은언군도 이와 관련하여 사약을 받는다.강화유수로부터 매우 가혹한 대접을 받았던 이원범은 헌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하루아침에 왕이 된다. 이원범이 살았던 초라한 초가는 주인이 용상에 오르고 4년 후 새롭게 단장하여 ‘왕이 일어난 집’ 즉 ‘용흥궁’으로 지위가 높아진다.▲용흥궁 안채(문화해설사 설명을 듣는 관광객들)​골목 안에 대문을 세우고 행랑채를 둔 용흥궁은 창덕궁의 연경당과 낙선재를 본받아 지은 살림집이다. 검박하고 단정한 안채 마루에 가만히 앉았다.눈 쌓인 고아한 분위기의 고택과 설경이 조화롭다. 한 폭의 한국화 같이 펼쳐진 눈 오는 날 풍경이 운치 있다. 번잡한 대도시의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이 절로 치유되는 순간이다.▲​고려궁지(셀카찍는 연인들)​누가 걸어갔는지 알 순 없지만 누군가 지나갔음을 알려주는 눈 위의 흔적들 따라 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강화의 옛 골목을 걸었다. 거리마다 눈꽃이 피었다. 계절은 갑작스럽게 가을에서 겨울로 건너뛰었다.글 김세라 I-View 객원기자, 사진 나윤아 자유사진가

    기간없음
    작성일 2018.11.26 (월)
  • 아름다운 별 관측, ‘우주 쇼’ 보러 갈까?

    [인천 이야기] 아름다운 별 관측, ‘우주 쇼’ 보러 갈까?

    ​선학별빛도서관 ‘별 헤는 금요일 밤’선학별빛도서관에서는 금요일 밤이면 밤하늘 별빛 아래 특별한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천체투영관에서 별자리 영상을 관람하고 야외테라스에서 달과 화성을 관측할 수 있는 야간 천체관측 프로그램 ‘별 헤는 금요일 밤’이 진행된다. 유난히 별빛이 반짝였던 지난 금요일 밤, 선학별빛도서관으로 별을 보러 나섰다.▲‘​선학 별빛 도서관’​에서 천체관측 중인 어린이​별 보기 좋은 겨울의 맑은 밤하늘지난 7월 개관한 선학별빛도서관은 얼마 전 야간 천체관측 프로그램 ‘별 헤는 금요일 밤’을 새롭게 개설했다. 지난 16일 첫 회를 시작으로 매주 금요일 저녁 선학별빛도서관 천체투영관과 야외테라스에서는 천문학을 전공한 배봉석 강사의 지도하에 별자리 영상이 상영되고 천체관측이 이루어진다.​▲​선학 별빛 도서관 외관배 강사는 “늦가을과 겨울은 건조한 날씨 탓에 구름이 덜 생겨 하늘이 맑은 날이 많다. 밤하늘의 우주를 관측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로 천체관측 프로그램을 개설하게 됐다.”고 말했다.초등학생 이상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참가비 없이 제공되는 이번 프로그램은 부모를 동반한 초등학생들의 참여가 주를 이룬다.​▲부모님과 함께 천체관측 프로그램​에 참여한 신지성 어린이배 강사는 “아무래도 호기심이 많은 초등학생들의 참여가 많다. 또 천체관측은 평소 쉽게 해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참여인기가 높은 편이다.”며 프로그램의 높은 인기를 전했다. 매주 금요일 정기적으로 열리는 이번 프로그램 외에도 유성우, 일식, 월식 등과 같은 특별한 천문이벤트가 있을 때에도 천제관측이 진행된다. 좀처럼 보기 힘든 생생하고 신비한 천체쇼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달 속에 정말 떡방아 찧는 토끼가 있네요”‘별 헤는 금요일 밤’은 천체관측을 하기 전에 천체투영관에서 별자리 영상을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돔 모양의 높은 천장으로 꾸며진 천체투영관의 천장스크린에는 밤하늘을 수놓은 별자리 영상이 가득 펼쳐진다. 머리를 뒤로 젖힐 수 있는 의자 관람석에서 마치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듯이 별자리를 감상할 수 있다. 영상에서는 별을 관측하기 좋은 환경과 날씨, 별자리를 살피는 법 등이 알기 쉽게 소개된다.▲천체투영관 내부​​▲천체투영관의 별자리 영상돔 영상 관람 후에는 본격적인 천체관측이 이어진다. 천체관측은 야외테라스에서 이동식 망원경을 통해 달, 화성, 해왕성, 천왕성, 성단 등을 볼 수 있다.배 강사는 “날씨가 구름 없이 맑고 달빛이 은은할 때나 달빛이 최대한 없을때 천체를 관측하기 가장 좋다. 구름이 껴있는 날에는 일부 별들은 관측을 못할 수도 있다.”며 별을 관측하기 좋은 날씨를 설명했다.관측의 기회는 참여자 모두에게 골고루 주어진다. 이날 망원경을 통해 달을 관측한 신지성 어린이는 “멀리 하늘에만 떠 있던 달을 가까이 보니 너무 신기하다. 보름달 속에는 떡방아 찧는 토끼가 있다고 하던데 정말 떡방아 찧는 토끼의 모습이 보여 놀랐다.”며 관측소감을 말했다.▲이동식 망원경을 통한 천체 관측​배 강사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별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역시 달이다. 비교적 지구와 가까운 거리에 있어 선명하게 관측할 수 있기도 하지만 유독 달에는 아름다운 의미와 이야기를 많이 담겨 있지 않은가. 그러한 달을 가까이 본다면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라고 전했다.매주 금요일 저녁 7시에 약 1시간 동안 진행되는 선학별빛도서관의 야간 천체관측 프로그램 ‘별 헤는 금요일 밤’은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관측이 어려운 경우에는 천체투영관에서 천체 관련 영상과 영화를 관람하는 것으로 대체된다. 신청은 연수구립공공도서관 홈페이지(http://www.yspubliclib.go.kr) 에서 인터넷 접수로 가능하다. 이제 곧 별을 보기 좋은 겨울이 다가온다. 선학별빛도서관에서 겨울 밤하늘 아래 별빛낭만을 즐겨보길 바란다.▲천체투영관 외관<선학별빛도서관>인천시 연수구 넘말로 30032-749-6710www.yspubliclib.go.kr정해랑 I-view객원기자 marinboy58@naver.com 

    기간없음
    작성일 2018.11.28 (수)
  • 커피로 그리는 인천萬畵 - 김태규 관장

    [인터뷰] 커피로 그리는 인천萬畵 - 김태규 관장

    ​2002부산아시아경기대회 동메달리스트, 김태규 복싱클럽 관장▲커피로 그린 김태규관장​​‘퍽!’전광석화처럼 날아든 주먹이 기자의 코뼈를 여지없이 으깨버렸다. 순식간에 콧등이 부어오르고 일그러진 얼굴위로 코피가 콸콸 뿜어져 나왔다. 쿨럭쿨럭! 숨을 쉴 때마다 목울대를 타고 피비린내가 내장 안으로 가득 고여 드는 불쾌감, 전의(戰意)는 이미 상실한지 오래였다. 아득한 중학생 때의 일이다. 어쩌다가 전교생이 지켜보는 운동장 한가운데서 싸움이 붙은 것이다. 애당초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었다. 운동신경이라곤 쥐뿔도 없던, 얼굴 허연 샌님과 소문난 복싱부 일진의 싸움은 단 한방으로 승부가 기울어버렸다. 싸움의 단초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청소년시절 누구나 품었음직한 만용이 부른 치기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날 이후 기자는 어긋난 코뼈로 인한 ‘비염’을 평생 달고 살게 되었을 뿐 아니라, 복싱에 대한 ‘트라우마’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다.같은 폼을 끝까지 유지하는 힘, 그것이 복싱 매력그런 이유로 하필 미세먼지까지 뿌옇던 지난 금요일 오후, 만수동의 ‘김태규복싱클럽’을 찾아가는 내내 기자의 속마음은 뒤숭숭하기만 했다.“복싱이요? 선수시절엔 제 주먹 힘만 믿고 무턱대고 덤벼들곤 했는데, 지도자가 된 이후로는 할수록 모르겠더라고요. 모든 운동이 마찬가지겠지만, 몸과 몸이 부딪치는 격투기에서는 특히 기본기가 중요해요. 빠르고 이쁘게, 그리고 단단하게 폼을 잡아주는 것만큼은 누구보다 잘 가르칠 자신이 있어요. 사실 그게 복싱의 알파요 오메가죠. 물론 끊임없는 반복연습으로 자기 몸에 체화하는 수밖에 다른 왕도는 없어요. 복싱도 세상일과 다르지 않아요. 같은 폼을 끝까지 유지할 줄 아는 힘, 단순하지만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죠.”천장 위로 수많은 LED 등이 눈부시다. 체육관 한쪽에서는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샌드백을 치고 있고, 링 위에서는 김태규(40) 관장이 초등학생 하나에게 미트를 대주고 있다. 오른쪽 주먹이 나올 때마다 벌어지는 빈틈을 반복적으로 지적하며 자세를 교정해주던 김관장과 눈이 마주쳤다. 냇가의 빠돌처럼 반들반들한 인상이다. 머리에 무스를 발라 올백으로 넘겼다. 순간 기자의 코뼈를 부러뜨렸던 중학교시절 친구가 오버랩 되면서 먼지 덮인 아픈 기억이 우수수 고개를 든다. 비좁은 체육관사무실 소파에 마주앉아 ‘박카스’ 한 병을 사이에 두고 인터뷰를 시작했다.“충남 홍성이 고향이에요. 3남1녀의 막내로 태어났죠. 구항초등학교시절부터 운동신경과 완력이 남다른 편이라, 육상과 씨름선수생활을 했어요, 홍성중학교로 진학해서는 우연히 학교 일진들과 싸움이 붙었는데, 싸우는 모습을 보신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복싱부에 들었죠.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출전한 전국소년체전에서 충남대표로 나가 금메달을 따게 되었어요. 학교가 뒤집어지고 마을경사가 났죠.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은 불행과 함께 찾아오는 게 세상이치인가 봐요. 그해 태풍에 무너진 우사에서 감전된 소를 끄집어내려던 어머니가 전기감전사고를 당하신 거예요. 그날 이후 술로 지내던 아버지마저 1년 만에 세상을 뜨셨죠.”논산 충남체고에 특기생으로 들어갔다. 양친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시작된, 낯선 기숙사생활은 잿빛이었다. 훈련강도도 중학교 때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힘들었고, 선배들의 군기와 구타도 혹독했다. 하지만 그보다 견디기 힘든 건, 주말을 혼자 보내야하는 일이었다. 주말이면 다른 학생들은 각자 부모님이 기다리는 고향집으로 흩어졌지만, 김관장은 수중에 돈 한 푼 없고 마땅히 갈 곳도 없어, 텅 빈 기숙사에서 홀로 외로움을 삼켜야했다.“그래서 주말이면 노가다를 다녔어요. 외로움보다 육체가 힘든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한 거죠. 노가다해서 번 일당으로 혼자 영화도 보고 자장면도 사먹으며 주말을 견뎠어요. 그런데 코치선생님이 저에게 자꾸 ‘3할’을 강조하시는 거예요. 전 그 말뜻을 1학년 가을, 전국체전 우승을 하고나서야 알게 되었죠. 우승상금이나 후원금 중 30%는 코치 몫이라는 의미였어요.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그때 어렴풋이 깨달은 거죠. 학기마다 독지가 한분이 후원금을 보내주고 계셨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들었어요.”대학은 원래 경희대 진학으로 오래전부터 이야기가 되어있었는데, 막상 원서를 쓰는 순간이 되자 돈 얘기가 나오더란다. 그럴 형편도 못되고, 그렇게까지 해서 대학을 가고 싶지도 않아 거절했다. 오퍼가 왔던 몇몇 다른 대학들도 사정은 비슷했다.“그러다가 특기생모집 기한이 지나버렸죠. 그런데 전에 제가 먼저 입학제의를 거절한 대전대에서 뒤늦게 다시 오퍼가 왔어요. 등록금을 담당교수님이 사비로 대줄 테니, 다른 생각 말고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조건이었죠. 그런데 담당교수님과는 달리, 대학코치선생님은 저를 못마땅해 하셨어요. 오라고 사정할 땐 콧방귀만 뀌더니, 갈 곳이 없어지니 못이기는 척 들어왔다는 거죠. 어린 마음에 그런 코치님의 시선이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끝내 못 참고 입학 전, 동계훈련기간 중 훈련소를 이탈하고 말았어요. 대전서 과외 하던 누나 자취방에 얹혀 지내는데, 어찌 알았는지 고등학교코치선생님이 찾아와 설득을 하시는 거예요. 2주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갔죠.”25세 전성기 동메달 따고 국가대표 은퇴대학1학년 때부터 플라이급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태릉선수촌 생활을 시작했단다. 거기서 평생 마음 속 스승으로 모시게 된 김성은 국가대표감독님도 만났다. 처음 시큰둥해하시던 감독님이 김관장을 눈여겨보기 시작한 건 우즈베키스탄 전지훈련 때부터였단다.“손수 미트를 잡아주시기도 하고, 당신의 경험과 기술을 전수해주시는 특별한 시간도 늘었어요.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가끔씩 그때 감독님의 가르침을 찬찬히 되새기다보면, 이제야 그 깊은 뜻이 온전히 깨달아진 적도 많아요. 그런데 현실은 감독님의 그런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국제대회에 나갔다하면 번번이 강력한 쿠바선수들을 만나 예선탈락하곤 했죠. 그러다 ‘시드니올림픽선발전 아시아예선 준결승’에서 ‘주마디르프’라는 올림픽메달리스트인 카자흐스탄의 최강자와 맞붙게 되었어요. 코치들은 모두 질 걸로 지레짐작하고, 제 경기엔 관심조차 갖질 않았죠. 혼자 워밍업하며 몸을 풀고 링에 올라갔는데,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끝에 판정으로 이기고 올림픽 티켓도 확보했어요.”복싱계가 발칵 뒤집혔단다. 플라이급 최강자인 챔피언 주마디르프를 꺾은 김태규를 세상이 비로소 주목해주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1년 후 출전한 시드니올림픽 본선에서는 하필 예전에 패한 적이 있던 쿠바선수와 맞부딪쳤다.그런데 잔 펀치 대신 큰 거 한방으로 승부를 걸기로 한 작전이 실책이었다. 분명 크고 깨끗한 주먹은 훨씬 많이 적중시켰지만, 결과는 12대 6으로 패했다. 대회 직전 바뀐 국제 룰에서 작은 펀치나 큰 펀치를 똑 같이 1점으로 산정하기로 한 사실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2002년 카자흐스탄 ‘알마티복싱월드컵’에서는 러시아선수와 시합했는데, 편파판정의 제물이 되어 판정패하기도 했죠. 막판 복부를 가격 당해 일어나지 못하는 러시아선수를 심판이 억지로 일으켜 세워 경기를 진행시키는 해프닝에, 관중석 여기저기서 야유가 터져 나왔어요. 감독님께서는 ‘잘했다, 네가 이긴 시합’이라며 어깨를 두드려 주셨지만, 복싱에 대한 회의감에 한동안 마음을 잡지 못했죠.”드디어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가 열렸다. 이 날을 위해 절치부심 이를 갈아온 김관장은 파죽지세로 상대선수들을 때려눕히고 승승장구하며 4강에 올라 동메달을 확보했다. 4강전 상대는 파키스탄선수였다. 금메달이 눈앞에 와 있다고 스스로 확신했다.“분명 제가 일방적으로 이긴 경기였는데, 결과는 어이없게도 판정패로 나왔어요. 당시 국제복싱연맹회장이 파키스탄의 ‘초드리’회장이었던 까닭에 심판들이 ‘초드리’회장의 눈치를 보고 승부를 조작한 거죠. 당시 저뿐 아니라, 파키스탄에 이기고도 진 한국선수들이 서너 명이나 됐어요. 심판에게 강력하게 항의해봤지만, 돌아온 건 오히려 ‘징계’뿐이었죠. 허탈했어요. 다시 글러브를 끼고 싶은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렸죠. 그렇게 아시안게임 동메달을 목에 걸고 25살 한창 전성기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어요.”그래도 할 줄 아는 게 복싱뿐이었다. 선수경력자에게 발급되는 ‘경기지도자 2급자격증’을 따 충남보령체육관에서 지도자생활을 시작했단다. 2003년 겨울에는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해, 온양체육회소속 선수들을 지도하기도 했다.고등학교 시절부터 사귀어왔던 여자 친구와 결혼도 하고 애도 낳으며 평범한 생활인으로 변신해갔다. 1년여에 걸친 체육과학연구소의 전문가교육을 통해 ‘1급 지도자자격증’도 획득했단다.“제대 무렵 김원찬 인천복싱협회전무님 주선으로, 인천전문대학교 코치를 맡게 되면서 인천사람이 되었어요. 인천체육회소속으로 인천전문대 파견코치를 한 거죠. 인천선수단을 이끌고 참가한 전국체전에서는 종합우승을 4번이나 차지했고, 준우승과 3위도 여러 번 했어요. 인천선수단을 이끌고 시합장마다 다니며, 선수등록서류에서부터 계체량과 검진 등 모든 일정을 도맡아 처리했죠.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나날이었지만,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 때마다 내 일처럼 기뻤어요. 그러다 인천아시안게임선발전 때 결국 문제가 터졌죠.”누가 봐도 명백하게 승리의 기쁨을 누려야 마땅한 제자 하나가, 과거 자신과 똑 같은 심판편파판정의 희생양이 되는 장면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단다. 김관장은 판정의 부당함을 거칠게 호소하며 링을 점거하고 시합진행을 막았다.동남아에서 지도자로 한국복싱을 전수하는 게 꿈오직 자신의 날개를 꺾어버린 불행이 제자들에게만큼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일념뿐이었다. 결과는 ‘영구제명’이라는 징계로 되돌아왔다. MBC, KBS 등 공중파방송에서도 9시뉴스에 이 장면을 고스란히 내보냈지만, 결과는 번복되지 않았다.“배운 도둑질이 복싱뿐인 걸 어쩝니까? 이렇게 만수동에 ‘김태규복싱클럽’이라는 개인체육관을 열고 호구를 연명해오고 있죠. 후회는 안 해요. 오히려 불이익을 당한 제자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해 스승으로서 면목이 없을 뿐이죠. 여전히 징계는 진행 중이에요. 다만 ‘영구제명’에서 ‘자격정지 5년’으로 수위가 다소 완화됐어요. 그걸로 충분해요.”베트남에 한류축구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박항서 감독처럼, 자신도 어디 가난한 동남아선수들을 지도해보는 게 꿈이란다. 그들에게 한국복싱의 기술을 전수해주고, 복싱을 통해 미래를 열어주고 싶은 것이다. 홍성촌놈이었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글. 커피그림 유사랑 I-View 객원기자 

    기간없음
    작성일 2018.11.28 (수)
  • 아날로그 '지도' 판매의 대명사

    [외고 · 칼럼] 아날로그 '지도' 판매의 대명사

    ​오래된 가게, 인천 노포(老鋪)⑰​ 신생동 양지사인천도시역사관에서는 2017년부터 “인천의 오래된 가게”에 대해 조사를 실시해 오고 있습니다. 오래된 가게의 정의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한 곳에서 대를 이어 50년 이상 영업을 이어오고 있는 가게를 조사 대상으로 정했습니다. 70여 개 가까운 가게가 조사되었지만, 그 중 18개를 선별하여 연재합니다.​초짜 학예사 시절, 사무실의 무거운 분위기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던 나에게 현장 조사는 신입사원의 긴장감에서 풀려나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제때 끼니도 못 채우고 하루 종일 걸어 다녀야 했고 때로는 길을 잃고 산속을 헤매야 했지만, 사무실을 벗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즐겁기만 했다.▲양지사 전경​현장 조사에서 챙겨야 할 가장 중요한 물품은 지도였다. 지금 같아서야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겠지만, 당시는 지도 한 장 구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국립지리원에서 지역별로 지도판매 대행점을 지정해서 판매를 허가했기 때문이다. 지금 인천의 지도판매 대행점은 신생동의 양지사가 유일하다. 서양 종이를 판다해서 양지공사(洋紙公司)종이가 귀했던 시절이 있었다. 필기구가 붓에서 펜과 연필로 변화하면서 종이도 한지보다는 서양종이, 즉 양지의 수요가 늘어갔다. 양지사의 역사도 종이 팔던 지물포에서 시작한다. 화성 출신의 최용주 사장은 일제강점기 어느 운수회사에 취직하면서 인천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번화가였던 본정통(지금 중구 중앙동)에 자리 잡은 이 회사의 경리부에서 일을 배웠던 최 사장은 광복 후 적산이 된 회사 건물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지물포를 열었다. ‘서양 종이를 파는 회사’란 의미에서 가게 이름을 ‘양지공사’로 정했다. 종이 수요가 급증하던 당시 경제 상황에 경리 사원으로 일하며 익힌 꼼꼼함이 더해지면서 사업은 날로 번창해갔고, 취급하는 물품도 종이류에서 백묵, 주판, 필기구 등 일반 문구류로 확대되었다.▲공업신문 1948년 8월 26일자에 실린 양지공사 광고​최 사장은 장사 수완도 타고났다. 가게를 연지 6개월도 안되어 『​한성일보』​에 광고를 내기 시작하여 지역과 중앙 일간지를 가리지 않고 신문 광고란에 양지공사의 이름이 실렸다.광고 덕분인지 관공서, 학교, 신문사에서 종이를 사러 왔고, 시내 문구점에서는 문구류를 도매로 떼어 가기도 했다. 판매 물품의 종류가 늘어난 데다 도‧소매를 겸했기 때문에 일손이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고, 한때 종업원 수가 30명이 넘었던 적도 있었다. 가게가 번창하는 데에는 창업 때부터 최 사장이 지켜온 ‘양심과 정직, 성실과 정확’이라는 운영철학도 한몫을 했다. 장사가 잘되었던 만큼 다른 사업에 욕심을 내어 볼만도 했을 텐데 자신이 타고난 몫은 양지공사 차려서 장사 잘하는 것이라며 가게 운영에만 전념을 기울였다. 지도를 사려면 양지공사로 가라1899년 12월 15일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지도인 『​대한전도』​가 발행되었다. 그에 앞서 대한제국 정부는 측량을 전담하는 관서인 ‘양지아문(量地衙門)’을 설치하고 지도 제작을 맡겼다. 한자는 다르지만 한글 발음이 같다는 우연을 가장한 억지일 터이나 양지공사 최 사장은 1961년 국립건설연구소에서 민간용 1/50,000 지도를 발행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도판매 대행점 허가를 따냈다.▲1980년대 중앙동 시절의 양지공사​그로부터 7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인천에서 지도를 구입하려는 사람은 양지공사를 이용해야만 했다. 부평 지역에도 판매 대행점이 있긴 했지만, 종류와 수량에서 양지공사를 따라갈 수 없었다.최용주 사장의 사위 박창한 사장은 “지도가 많이 팔릴 때는 우리나라 건설경기가 잘 나갈 때”라 한다. 듣고 보니 일반인이 지도 볼 일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싶다. 외려 지도가 필요한 사람은 건설업자나 부동산 개발업자였을 테고 건설경기가 좋을수록 지도 수요가 늘어났을 것이다. 잘나가던 건설경기가 꺾인 탓만은 아니겠지만, 요즈음 지도를 찾는 손님은 거의 없다. 포털 사이트에서 지도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인터넷과 모바일로 지적(地籍)까지 확인할 수 있는데 누가 번거롭게 종이지도를 이용하겠는가? “이제 지도판매는 사양 산업이에요” 박 사장이 덧붙이는 한마디에 왜인지 모를 씁쓸함이 묻어난다. 그 아버지에 그 딸최용주 사장의 양지공사를 이어받은 사람은 그의 둘째 딸 최귀정 사장이다. 잘나가던 서울의 방송국 아나운서였던 그녀는 방송 일을 그만두고 인천으로 내려와 아버지 사업을 도우며 일을 배웠다. 1980년대 말 아버지가 중앙동 양지공사 점포를 정리하자 신포동 외환은행 뒤편에 가게를 얻고 양지사라는 간판을 걸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양지공사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지 못했지만, 가게 운영만큼은 아버지 못지않았다.▲양지사 최귀정 사장​신포동 시절을 2년 쯤 보낸 후 사동 인천여상 인근으로 가게를 옮겼다. 학교 근처라 학생 수요가 많을 것 같았지만, 그보다는 아버지 시절부터 단골이었던 관공서와의 거래가 끊이지 않았다.어떤 주문이라도 거래처의 요구가 있으면 손해를 보면서까지 어떻게든 구해서 납품했다. 화단의 비료로 사용할 닭똥을 주문하는가 하면 구치소 수감자들이 신을 고무신을 치수별로 납품해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문구와는 전혀 관계없는 물품이었지만, 최귀정 사장은 군소리 없이 구해주었다. 거래처와의 ‘믿음과 신뢰’가 장사의 기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창업주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길 건너 지금의 자리로 가게를 다시 옮겼다. 장사가 예전만 못했어도 문구류 납품으로 그럭저럭 버텨오던 최귀정 사장은 이제 양지사를 정리할 생각이다. 이미 사양길에 접어든 가업을 자식들에게 이으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넓은 매장을 종업원 없이 부부 둘이서만 운영하자니 힘에 부친 까닭이다. 지도 판매가 사양 산업이 되었듯이 팔순 노부부가 운영하는 양지사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인터뷰를 마치고 가게를 나서려는데 최귀정 사장이 무언가 가득한 상자 하나를 내밀며 말한다. “막상 가게를 정리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게 많아서... 박물관에서 온다고 하니까 잘되었다 싶어서 이것저것 넣었어요. 양지사는 없어지더라도 그 흔적은 박물관에 남아 있을 거 아녜요?” 양지공사부터 양지사까지 2대에 걸쳐 70년 세월을 지탱해 왔던 힘을 그녀에게서 느꼈다. 글 배성수 인천도시역사관 관장, 사진 조오다

    기간없음
    작성일 2018.11.26 (월)
  • ‘​진짜 인천’을 담은, 25년의 기록

    [인천 이야기] ‘​진짜 인천’을 담은, 25년의 기록

    ​<굿모닝인천> 300호 특집 - 창간부터 300호까지​“<굿모닝인천>을 읽으면서 인천 사람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졌다”라는 어느 독자의 말씀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굿모닝인천>은 단순한 시 홍보지가 아닌, ‘진짜 인천’이 담긴 진솔한 삶의 보고(寶庫)입니다. 이 안엔 시의 정책과 주요 사업은 물론이고 인천이 걸어온 길과 인천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굿모닝인천>이 1994년 1월 첫 호를 펴내고 오늘 300호를 맞이하기까지, 인천 시민의 한결같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앞으로도 진심을 담은 깊이 있는 내용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인천 시민과 전국의 애독자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며, <굿모닝인천> 25년의 시간을 돌아봅니다.▲<굿모닝인천>의 뿌리인, 1953년 1월 발행한 <인천공보>1994.01<내고장인천>으로 시작인천시 종합 매거진 <굿모닝인천>은 1994년 1월, <내고장인천>으로 처음 세상의 빛을 봅니다. 첫 발행 부수는 월 1만5,000부. 잡지 이전에는 1953년 1월 <인천공보>를 시작으로 1961년 5월 <재건인천>, 1962년 <약진인천>·<약동하는 도시 인천>, 1970년 <시보>, 1989년 <월간시정> 등의 인천시 시정홍보 매체가 있었습니다.​▲<내고장인천> 1996년 1월호 표지와 뒷면.​그해, 인천시의 심벌 마크가 변경되고 두루미, 장미, 목백합으로 시의 상징 요소가 결정됐다.​​​​한세원 인천시 비서실장은 1996년부터 1997년까지 <내고장인천>의 편집을 담당했습니다. 그는 혼자서 잡지를 기획하고, 인천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직접 글까지 썼습니다. ‘인천을 빛낸 인물들’은 그가 애정을 갖고 연재한 고정 기사입니다. 독립운동가 조봉암, 정치가 장면, 교육가 박창례 등 역사 속 기억해야 할 위인들을 이 세대에 전했습니다. “책을 만들다 보면 한 달이 금방 지나갔어요. 서툴지만 인천을 알린다는 사명감으로 즐겁게 일했습니다.” 매달 집에서 책을 받아볼 만큼 <굿모닝인천>에 애정이 있는 그는, 지금도 편집진에게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1997.04‘잡지장이’들이 뭉치다 1997년 4월, <내고장인천>은 더욱 책다운 책으로 거듭납니다. 공모를 통해 출판 잡지 전문가들이 의기투합한 것입니다. 월간 리크루트 편집장 출신의 유동현 <굿모닝인천> 전 편집장을 비롯한 편집진은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는 사실을 결과물로 입증합니다.▲유동현 <굿모닝인천> 전 편집장의 첫 작품인 <내고장인천> 1997년 4월호.표지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표지부터 낯설고 신선했습니다. 시립무용단 오디션을 앞둔 무용수의 옆모습은, 시 공무원들 사이에 널리 회자될 만큼 파격적이었습니다. 액자처럼 잡지를 책상 위에 세워두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내고장인천>은 1997년에 월 7만 부로 확대 발간했는데, 이는 당시 인천의 총 세대인 70만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이는 당시 종이 매체의 힘이 얼마나 막강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2001.03<굿모닝인천>의 이름으로2001년 3월, <내고장인천>은 <굿모닝인천>이라는 새 이름을 얻습니다. 시민 공모를 했지만 마땅한 제목이 없던 차에, 유동현 전 편집장이 <굿모닝인천>이라는 제호를 떠올렸습니다.​▲인천(仁川) 정명 600년을 기념한 <굿모닝인천> 2013년 4월호 표지(김기충 作).2013년은 인천이란 이름을 얻은 지 꼭 600년 되는 해이다.당시 인천은 경제자유구역청이 생기고 송도국제도시 개발이 한창이었습니다. 고 최기선 민선 초대 인천시장을 모델로 처음 인천을 알리는 TV 광고를 했습니다. 그때 광고 문안이 ‘이제, 서쪽에서 해가 뜹니다’입니다. 동쪽이 아닌 서쪽에서 해가 뜬다는 참신한 발상. 떠오르는 태양처럼 희망이 솟구치는 도시 인천, <굿모닝인천> 만큼 꼭 알맞은 이름이 또 있을까요.2000년대인천을 알리는, 새로운 기준이 되다<굿모닝인천>은 단순히 시정과 주요 사업을 알리는 소식지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인천의 역사, 문화, 관광을 아우르며 인천의 정체성을 기록하고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신발이 닳도록 인천 곳곳을 누비고 다녔습니다.​​​​▲2014년 한 해 <굿모닝인천>은, 인천 아시안게임을 기념해북인북(Book in Book) 형태의<굿모닝아시아>를 발행했다. <굿모닝인천> 페이지를 넘기면, 인천이 걸어온 역사가 보인다.인천 사람들조차 차이나타운의 존재를 모르던 시절, <굿모닝인천>은 인천을 알리는 하나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지면에 소개한 장소가 관광 상품으로 개발되고, 인천을 찾는 손님들의 손에는 꼭 <굿모닝인천>이 쥐어졌습니다. 지금도 <굿모닝인천>의 콘텐츠는 인터넷 작가, 블로거들의 좋은 참고 자료가 되어 디지털 공간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2018. 오늘종이책에서 전자책까지시대의 흐름에 따라 <굿모닝인천>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2008년부터 월 10만 부를 찍어내던 종이책은 2018년 월 3만7,000부로 줄었습니다. 대신 전자책과 모바일북(www.mgoodmorningincheon.co.kr) 등 온라인으로 서비스를 확대했습니다. 하지만 2018년도 독자 설문조사 결과, 종이책에 대한 선호도가 59.4%로 온라인 선호도 2.0%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손끝으로 종이의 촉감을 느끼며 마음으로 두고두고 간직하는 것. 이는 분명 디지털은 대신할 수 없는 아날로그의 영역이 아닐까요. <굿모닝인천>이 1994년 1월 첫 호를 펴내고 오늘 300호를 맞이하기까지, 인천 시민의 한결같은 사랑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앞으로도 진심을 담은 깊이 있는 내용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마음 다해, 감사합니다.​<굿모닝인천> 300호까지1994. 1.  <내고장인천> 발행(월 1만5,000부)2000. 1.  영어·일본어·중국어판 발행2001. 3.  <굿모닝인천>으로 제호 변경2008. 2. 확대 발간(월 10만 부)2009. 8. 인천세계도시축전 가이드북 특별 발간2014. 1. 인천 아시안게임 북인북 특별 발간, 외국어판 폐간(2010. 1. 영문지 <인천나우>, 2015. 3. 중문지 <인천지창> 창간)2018. 1. 종이 잡지 축소 발간(월 3만7,000부) 모바일북(www.mgoodmorningincheon.co.kr) 구축원고출처 : 인천시 시정소식지 <굿모닝인천> http://goodmorning.incheon.go.kr/index.do굿모닝인천 모바일북 http://www.mgoodmorningincheon.co.kr/글 정경숙 굿모닝인천 편집장 

    기간없음
    작성일 2018.11.29 (목)
  • ‘인천 책'이 이렇게 많았어?

    [인천 이야기] ‘인천 책'이 이렇게 많았어?

    ​독립책방이자 복합문화공간 '인천서점' 오픈인천에 관한 책을 모아놓은 책방은 없을까. 인천시민들은 인천의 옛 이야기부터 현재까지 인천을 소재로 한 책을 모아 놓은 책방이 있기를 오랫동안 고대했다. 인천서점은 이런 바람 아래 탄생했다. 지난 11월 23일 인천아트플랫폼에 독립책방이자 색다른 공간인 ‘인천서점’이 오픈했다.▲인천서점​ 내부오픈된 인천서점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책도 보고 커피도 마실 수 있다. 전시공간은  모로코의 아틀라스산맥의 요새도시 아이트벤히두를 크사르(Ksar)를 본땄다. 모래사막에 세워진 흑벽도시이자 성곽도시에 위치한 크사르는 통로도 많고 다양한 방향으로 들어오고 이야기가 흘러나가는 허브도시 인천의 이미지와도 잘 맞는다.인천서점 공간을 인테리어 한 이의중 작가는 “크사르와 같이 인천서점은 개방되어 있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햇빛을 피해 아득한 공간에서 편안하게 책을 볼 수 있도록 꾸몄다” 며 “개방성과 수용성이 크사르와 인천이 닮아 있어 모티브가 됐다”고 설명했다.인천서점에는 인천과 관련된 다양한 책들을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오면 인천의 역사, 문화, 사람들, 핫 플레이스, 음식 등을 담은 인천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인천관련 서적은 기존 문화재단이나 인천시청 등 공공기관에서 발행한 비매품 도서가 부정기적으로 발행되어 책을 보려면 각 기관을 방문해야 하는 불편이 있어왔다. 인천서점의 오픈으로 이곳에 오면 인천을 볼 수 있게 됐다.인천서점은 민간에서 운영하지만 독서커뮤니티, 예술가들이 교류하는 공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지난 23일 오픈기념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김윤식 시인은 ‘인천의 옛 서점들’을 이야기 하면서 대한서림, 동광서적, 분수사, 박문서관 등 당시 인천에 있었던 주요 서점들과 추억을 설명했고 1950년대말 인천의 인구가 30~40만이었지만 서점은 14군데가 있었다고 밝혔다. 인천의 명동이었던 경동 번화가에 책방이 많이 있었다고 회고했다.​북콘서트에 참석한 유명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저자 정이현 작가는 문학평론가 허희씨와 인천과 인연을 얘기하고 새로 출간한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천서점은 인천에 관한 자료와 책을 볼 수 있는 허브공간으로 앞으로도 인천과 관련된 책들이 쌓여 인천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플랫폼의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개항장과 연결하는 인천의 또 다른 문화공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글 이용남 ‘i-View’ 편집위원, 사진 서은미 자유사진가 

    기간없음
    작성일 2018.11.26 (월)
  • 몽골에 인천의료관광 안내센터 3호점 개소

    [인천뉴스] 몽골에 인천의료관광 안내센터 3호점 개소

    ​‘의료 협력 및 환자연계에 관한 MOU’ 체결인천시와 인천관광공사가 몽골 울란바토르 지역에 인천의료관광 안내센터 3호점을 개소하는 등 몽골환자 인천 유치를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시와 관광공사는 외국인환자 유치 증대를 위해 SnC시카고치과병원,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한길안과병원, 서울여성병원, 오라클피부과의원과 함께 20일부터 24일까지 몽골 울란바토르와 에르데네트를 방문했다.21일 시는 몽골 울란바토르 에어맨 몽골지사 사무실 내에‘인천의료관광 상담센터 3호점’을 개소하고,‘의료 협력 및 환자 연계에 관한 MOU’를 체결했다.지난 7월 개소한 러시아 이르쿠츠크 1호점, 9월에 개소한 카자흐스탄 알마티 2호점에 이어 새롭게 문을 여는 3호점에서도 의료관광객 상담 및 유치, 현지 에이전시와 상생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등 현지 마케팅 거점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같은 날 오후 시와 관광공사, 5개 의료기관은 몽골 울란바토르 The Blue Sky Hotel에서  현지 에이전시, 미디어 종사자 등 의료관광 관계자 50여 명을 대상으로 인천의료관광 설명회를 개최하고 인천 의료기관과 현지 에이전시 간 B2B 미팅을 진행했다.이날 B2B미팅은 시와, 5개의 의료기관이 6개의 별도 부스로 나누어 진행하였으며, 인천시의 외국인환자 유치 지원정책과 인천의료관광 전반에 대한 안내, 각각의 참여 의료기관들이 가진 강점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인천의료관광 설명회에서 SnC시카고치과병원은 인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치과병원으로 5개 진료과 협업시스템과 차별화된 국제진료센터 운영을, 메디플렉스세종병원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심뇌혈관전문의 24시간 상주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실시간 환자 위험징후 감시 시스템을 최초 개발한 국내 최고 심장전문병원이다.우리동네 우수미용·목욕 I-Premium 업소 어딜까인천시는 수준 높은 위생서비스를 제공하는 미용․목욕업소 58개소를 I-Premium 업소로 선정하고, 인천을 방문하는 관광객과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이중 정보제공에 동의한 미용 34개소와 목욕 7개소 총 41개소 업소를 대상으로 디렉터리북을 제작·배포 한다.I-Premium 업소는 시설과 공중위생서비스 관련 평가 결과 최우수 등급을 받은 미용·목욕 업소로서 동일 장소에서 2년 이상 영업을 하고, 최근 2년간 행정처분 내역이 없는 업소를 대상으로 선정했다.​디렉터리북 내용에는 ▷업소별 분위기를 짐작하게 하는 개성있는 소개 글 ▷전경 사진, 위치와 연락처 ▷영업시간과 휴무일 등 이용에 필요한 정보가 담겨 있다.또한 인천 방문객을 위한 인천의 중저가 우수숙박업소(I-Stay)와 특색음식거리도 함께 실려있다.이밖에도 시는 시와 군·구 홈페이지에 게재하여 우리지역 우수 미용·목욕업소 알리기에 적극 앞장서 인천 미용과 목욕업소 서비스 수준 향상을 위한 모멘텀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겨울 먹이가 부족한 야생조류에 ‘먹이대’ 설치인천대공원사업소는 26일부터 인천대공원 습지원에 겨울동안 먹이가 부족해 배고픈 야생조류를 위해 먹이대를 설치했다.▲인천대공원 겨울철새 먹이대 설치도심의 허파이자 생태계의 보고인 인천대공원 습지원은 다양한 크기의 연못과 둠벙 그리고 반디논으로 이루어진 장수천의 배후습지로 인천의환경단체와 봉사단체가 생물서식지 보호에 노력하고 있는 곳이다.그동안의 노력으로 농악대 상모를 쓴 모습의 아기 주먹만큼 작은 상모솔새와 멸종위기종인 말똥가리를 비롯한 크고 작은 새들이 94종류나 관찰되고 있다. 이번 인천대공원 겨울새 먹거리 챙기기는 이듬해 2월까지 계속해서 먹이를 공급할 계획으로 먹이대 뿐만 아니라 반디논에도 수확한 벼의 일부를 겨울새들의 먹거리로 공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기간없음
    작성일 2018.11.26 (월)
  • 연평 ‘꽃게 찹쌀구이탕’,  자월 ‘섬마을 비빔밥’ 대표음식으로

    [인천뉴스] 연평 ‘꽃게 찹쌀구이탕’, 자월 ‘섬마을 비빔밥’ 대표음식으로

    ​섬음식 품평회서 시민·​전문평가단 선정인천시가 추진하는 ‘그 섬에 가면, 그 맛 있다’(I(섬) FOOD 프로젝트)에서 옹진군 연평도 <꽃게 찹쌀구이탕>과 자월도 <섬마을 비빔밥>음식이 섬 대표음식으로 선정됐다.​ ▲자월도 ‘​섬마을 비빔밥’​​​인천시는 음식문화개선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I(섬) FOOD 프로젝트 사업’​(“그 섬에 가면, 그 맛 있다”)에 따라 2018년 개발된 옹진군 연평도 및 자월도 개발 메뉴 품평회를 지난 26일(월) 오후 3시에 샤펠드미앙(남동구 정각로 10, 파크에비뉴 빌딩) 3층에서 시민평가단 및 전문평가단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했다.올해 3년째 추진하는 행사로 2016년에는 강화군 볼음도 상합죽과 옹진군 장봉도, 신도·시도·모도에 소라비빔밥, 해산물찜밥을 선정하고, 2017년에는 덕적도 간재미찜과 백령도 해초비빔밥을 대표음식으로 선정했다. 이러한 섬지역 대표음식 메뉴 상품화를 통해 섬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고 매출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연평도 ‘​​꽃게 찹쌀구이탕’​올해에도 섬 지역 가치 창출의 기반을 마련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해당지역 영업주와의 간담회 및 시식회 등을 통해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12개 품목의 섬 음식을 개발해 메뉴개발에 따른 품평회를 개최하고 섬별 대표메뉴 각 1개 품목을 선정했다.대표음식은 각 지역별 참여 영업주 평가단30명, 전문평가단 7명, 시민평가단 70명이 이 날 시식을 통하여 평가하고 대표메뉴를 선정했다. 인천시는 선정된 대표음식에 대하여 해당 지역별 일반음식점을 대상으로 메뉴 컨설팅, 조리 및 친절서비스 교육 등을 실시하여 빠른 시일 내에 음식업소에서 상품화하여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시는 2016년부터 청운대학교 산학협력단과 협력하여 섬의 음식문화를 특화하여 섬의 가치를 재창조하고 도서지역의 경제․문화․관광을 활성화하고자 섬 특색 음식을 개발하고, 상품화과정을 거쳐 차별화된 먹거리 환경을 조성하는 ‘​I(섬) FOOD’​​ 메뉴 개발을 시작했다.청원 3천명 넘으면 시장이 답변, 온라인 시민청원 운영인천시는 오는 12월 3일부터 온라인 시민청원 창구를 본격적으로 운영한다.인천시 온라인 시민청원은 지난해 8월에 개설된 청와대 국민청원을 모티브로 하여 인천시정에 시민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시민과 소통하기 위해 마련됐다.인천시 온라인 청원은 시 홈페이지 내 ‘인천은 소통e가득(http://cool.incheon.go.kr/)’​ 사이트에 계설될 예정이다. 시 홈페이지 회원이면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며, 공익을 저해하거나 게시판 운영 취지에 맞지 않은 사항 외에는 시 주요정책이나 지역현안에 대해 시민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명할 수 있다.등록된 청원이 30일간 3천명 이상의 시민 동의를 받은 경우에는 인천시의 종합적인 검토를 거친 후 시장 등이 영상을 통해 직접 답하고, 시정에 최대한 반영할 계획이다. 답변 기준인 3천명은 인천시 인구의 0.1%로, 온라인 청원을 시행 중인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평균 수치이며, 시 소관 외의 청원사항은 답변을 거부할 수 있다.또한, 1만 명 이상의 시민 지지를 받은 청원에 대해서는 공론화위원회 안건으로 상정 가능토록 할 예정이다.시는 ‘인천은 소통e가득’ 내에 온라인 시민청원 외에도 시민의 시정참여가 가능한 공론화 및 시민제안 창구를 개설하여 모든 진행과정을 공개를 원칙으로 운영하고, 다양한 시민참여 이벤트를 준비 중이다.2019년에는 인천시 웹사이트 전면 개편과 연계하여 모바일 웹서비스를 개선하고, 시민의 시정참여 접근성을 높여 양방향 소통기능을 강화하는 M-Voting 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소외된 이웃에 따듯한 온정 ‘연탄나눔 행사’인천시는 지난 28일 서구 석남동 절골마을을 포함하여 관내 취약계층 50세대에 사랑의 연탄나눔 봉사활동 가졌다.이번 나눔행사는 인천시와 인천도시가스(주)가 참여해 공공기관과 기업의 에너지 나눔의 사회적 책무 실천을 위해 준비됐다.특히, 이날 서구 절골마을 연탄나눔 행사에는 인천시와 인천도시가스㈜ 직원 50여명이 참여하여 직접 배달하는 봉사활동을 하며, 지역의 소외된 이웃들과 따뜻한 온정도 함께 나누는 훈훈하고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이날 행사 후 연말까지 남동구, 부평구, 계양구 취약계층 50세대에 1만장의 연탄을 순차적으로 전달할 예정이다.한편, 인천시는 연탄나눔 사업 외에도 취약계층 보일러 무상점검, 에너지효율개선, 가스사고 예방을 위한 가스 타이머콕 보급, LED 보급, 노후 전기 및 가스설비 점검 등 기관과 기업들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다양한 나눔 활동을 실천해오고 있다.

    기간없음
    작성일 2018.11.28 (수)
  • 인천 섬의 속살  ‘그리우니 섬이다’

    [전시 · 공연] 인천 섬의 속살 ‘그리우니 섬이다’

    ​OBS 창사 기념 특별사진전, 12월 3일까지OBS가 지난 여름부터 가을까지 방영했던 로드다큐 ‘그리우니 섬이다’에서 선보였던 아름답고 풍광좋은 인천의 섬을 다시 아날로그 사진으로 볼 수 있게 됐다. 로드다큐 ‘그리우니 섬이다’ TV프로그램은 인천섬이 가진 다양한 매력, 그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해 화제를 모았다.​​이 프로그램은 섬을 그저 관광지, 여행지로만 보여줬던 기존의 프로그램과 달리 섬사람들의 이야기, 지금은 사라진 흔적, 섬의 역사성, 관광객들은 보지 못하는 섬의 명소 등을 담아낸 색다른 기획물이었다.​OBS가 창사 11주년 기념 특별사진전으로 열고 있는 ‘그리우니 섬이다’는 프로그램에 함께했던 인천 사진작가들의 섬 사진과 방송에서 공개하지 않은 개별 작품도 공개한다. 프로그램 촬영에는 인천 사진작가인 서은미, 노기훈, 류재형, 유창호, 이영옥 작가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인천의 주요섬인 덕적도, 백령도, 연평도, 대이작도, 장봉도 등 15개 섬을 촬영했다.전시에는 방송에 출연했던 사진작가 5명의 작품 1백 점과 인천 섬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500점의 사진과 방송 영상을 감상 할 수 있다. 사진전은 12월 3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에서 볼 수 있다.1급 시각 장애인, 사진으로 세상을 보다이혜성 사진전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작가 이혜성은 장애 등급이 1급인 시각장애인이다. 그러나 몇 해 전, 안과 수술 후 이제 꽤 많은 세상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가족과 본인의 건강문제로 꽤 오랫동안 힘든 과정을 겪어왔다. 이혜성이 오래전부터 꿈꾸는 세상은 큰 세상이 아니었다. 본인의 곁에 소중히 여기며 가까이하는 작은 인형과 같이 소품스러운 모습의 세상을 바라보고 그리고 있었다.그래서 그가 만들어낸 세상은 멀리까지 가서 아름다운 자연을 찾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내 근처에 있는 것에서 소중한 것들을 보았다.​그는 폐차된 빨간 자동차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내고, 깨어진 장독대에서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았다. 들꽃에서 새로운 시작점을 찾았고 파란 하늘과 구름에서 자유로움을 찾았다.그는 잘 찍으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이 볼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평범하게 셔터를 누른 사진들이다. 잘리기도 하고 넘치는 모습도 있다. 그러나 하나하나가 모두 그에게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고 그 숨은 이야기는 글로 다듬어 놓았다. 그 글은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기원의 글이다.<나는 풀꽃이고 너는 하늘이야> ‘나는 땅이고 너는 별이야네가 저 높고 까만 밤하늘 위에서 떨어지는 어느 날 내가 너를 꼭 받아줄게’ <깜깜한 밤>‘곧게 뻗은 나무 사이로 깜깜한 어둠만이 아닌 달빛 한 줌만 내려와도 우린 걸어갈 수 있다.’<내가 숲을 좋아하는 이유>내가 숲을 좋아하는 이유는나무들이 함께 숲을 만들었기 때문이다.이혜성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진과 연을 맺어 6년여 간 사진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사진 전문갤러리인 ‘북성동갤러리’ 소속으로 시각장애인 사진모임 ‘잠상’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그는 전업작가인 김정아와 함께 작업을 하면서 사진 지도를 받았으며 기획전, 프로젝트 등 다양한 사진 작업에 참여해 왔다. 이러한 작업은 그에게 여러 사진 세계를 경험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자신의 사진 작업을 준비할 수 있는 기본이 됐다. 특히 크리스마스를 맞아 세상에 따스함을 전하자는 기획전 'Dear Marry Christmas', 에서 발표한 '사진과 그림'시리즈는 장기 작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작업은 사진을 촬영하고 그 사진에 덧붙여 크레파스로 완성하는 작업으로 시간과 상관없이 천천이 진행하고 있다.

    2018.11.26 ~ 2018.12.03
    작성일 2018.11.28 (수)

Main News

Main News더보기 +

많이 본 뉴스

주간 TOP 클릭
많이 본 뉴스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