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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술잔 기울이며 인생 논했던 ‘우리들의 단골집’

    [외고 · 칼럼] 술잔 기울이며 인생 논했던 ‘우리들의 단골집’

    ​오래된 가게, 인천 노포(老鋪) ⑯ 신포주점인천도시역사관에서는 2017년부터 “인천의 오래된 가게”에 대해 조사를 실시해 오고 있습니다. 오래된 가게의 정의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한 곳에서 대를 이어 50년 이상 영업을 이어오고 있는 가게를 조사 대상으로 정했습니다. 70여 개 가까운 가게가 조사되었지만, 그 중 18개를 선별하여 연재합니다.프랜차이즈가 범람하고 상점이 빠르게 바뀌는 오늘날, 자연스럽게 발길이 닿는 단골 술집이 있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단골 술집은 고향을 상실한 현대인들에게 언제든 돌아가 참아온 숨을 뱉어내는 터전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신포동과 내동 사이에 위치한 신포주점​신포동은 1970, 80년대에 인천의 제일가는 번화가였지만, 점차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곳에 마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통로처럼, 신포동과 내동 사이의 비좁은 골목길 한 편에 신포주점이 자리하고 있었다.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신포싸롱1대 김영숙 사장은 인천 고잔동의 부잣집 딸로, 이북에서 넘어온 남편을 만나 주부로서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의 남편은 약주 대리점을 운영했는데, 술을 사러 와서 한 잔씩 들이켜고 가는 사람이 많았다. 신포주점의 시작은 소금이나 새우젓을 찍어 먹던 그들에게 김치와 북어찜을 웃돈 받고 판 것이었으나, 김영숙 사장은 가게에 큰 애착을 가지게 됐다. 가게 이름 역시 ‘주점’이라고 붙였다 신포동에 있는 ‘신포주점’으로 바꿨다.김영숙 사장은 술에 취하거나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을 가차 없이 쫓아냈으며, 대폿집이라고 하면 불같이 화를 냈다. 이러한 까닭에 손님들은 고급 술집을 일컫는 단어를 이용해 ‘신포싸롱’ 속칭 ‘신싸’라고 불렀단다.신포주점이 문을 연 1968년을 전후로, 53만 명이 살던 인천에는 소매점과 주점을 포함해 술가게가 불과 141곳이었다. 손님을 가려 받아도 문전성시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신포주점 내부​신포주점의 인기 메뉴는 단연 약주와 북어 요리였다. 모두가 어렵게 살던 시대여서 그런지 안주 없이 술만 팔던 주점이 대부분이었다.김영숙 사장은 가게 앞에서 살아있는 명태를 두드려 굽거나 쪄서 안주로 팔았는데, 그 냄새를 참기란 어려웠으리라. 손님이 너무 많아 안주를 접시에 미리 덜어놓고 빨간색 접시는 500원, 파란색 접시는 700원씩 받으며 돈 계산할 시간을 아끼기도 했다. 인천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은 모두 신포주점을 찾았다. 지금도 신포주점에는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이 걸려있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술값 대신 작품을 줬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김영숙 사장은 외상을 받지 않았을 뿐더러 예술가들도 신포주점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선물했다.5천원에 먹고 가라는 건 파격이었어요과거의 명성은 세월 속에 사라졌다. 하지만 신포주점은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다. 2대 장경희 사장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포동은 1987년까지만 하더라도 땅값이 구월동 신시가지의 3~5배였다. 그러나 시청과 관공서, 주요금융기관이 주안과 구월동으로 이동하며 1990년대에 급격히 쇠락했다. 장경희 사장이 처음으로 신포주점을 찾은 2008년에도 파리가 날리기는 마찬가지였다.장경희 사장은 인천 용동 근처에 살았는데 부천에서 옷 장사를 했었다. 그에게 신포주점은 사람이 적어 조용한 데다 모든 메뉴가 3~5천 원으로 저렴하여 고된 하루 끝에 만 원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장경희 사장은 손님이면서도 몸이 좋지 않은 김영숙 사장을 대신해 부족한 안주 재료를 시장에서 사다주고, 난로에서 물을 데워 설거지를 해줬다.▲신포주점 2대 장경희 사장​장경희 사장은 김영숙 사장을 살뜰한 원리원칙주의자로 회상한다. 야간 통행 금지로 술집 장사가 어려웠을 때도 쉬는 날 없이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장사를 했다. 셈에서도 철저했다.그런 김영숙 사장이 유독 장경희 사장에게만큼은 오천 원만 받을 테니 마음대로 먹다 가라고 했단다. 장경희 사장은 이를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다고 기억한다. 김영숙 사장은 두 번이나 쓰러졌어도 가게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세 번째 쓰러지고 나서야 장경희 사장에게 가게를 부탁했다. 장경희 사장은 고민 끝에 2년간의 단골 생활을 끝내고 8년째 신포주점의 주인으로 가게를 이끌고 있다. 어느덧 신포주점과 연을 맺은 지 10년이다. 김영숙 사장 때와 달리, 신포주점에는 정해진 메뉴가 없다.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계절에 따라 혹은 손님이 원하거나 가져오는 재료에 따라 가장 적합한 요리를 내어준다. 돼지찌개, 보리새우탕, 박대구이, 전어구이 등 즉흥적으로 내어오는 요리가 색다른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이번에 간판이 고장 났는데 그냥 고쳤어요.장경희 사장은 얼마 전 고장 난 간판을 고쳤다. 새로 간판을 만들면 13만 원, 기존 간판을 고치면 10만 원이었으나 망설임은 없었다. 장경희 사장은 한 중년 손님이 젊을 적 너무 가난해 이곳에서 안주를 많이 먹는 게 소원이었다며 혼자 펑펑 울다 간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 그는 일 년에 한 번씩 가게를 방문해 손님들의 술값을 홀로 다 내고 간다며 말한다.▲신포주점을 자주 찾던 고여 선생의 작품​장경희 사장은 과거를 추억하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과 둘러앉아 소주 한 잔에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최근에는 그분들도 연세가 지긋해져 발걸음이 뜸하다.그 빈자리를 젊고 가난한 연극인과 화가들이 채우고 있다. 장경희 사장은 몸이 성치 않지만 신포주점을 운영하며 용돈을 버는 것으로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가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속 고향으로 함께해 주길 바란다. 글 김유나 인천도시역사관 연구원, 사진 조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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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11.19 (월)
  • 청량산 자락에 ‘동화속 책방’ 있었네...

    [인천 이야기] 청량산 자락에 ‘동화속 책방’ 있었네...

    ​ 동심의 보물창고 ‘느티나무 아래’, 다양한 책읽기 행사청량산자락 동곡재로 160번 길. 지난 17일, 이 조용한 마을이 시끌벅적했다.  인천시와 연수구 주최로 ‘천개의 문화오아시스’문화 행사가 열렸기 때문이다. 천개의 문화오아시스 행사는 마을의 작은 문화공간이나 유휴공간을 시민중심의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단장 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를 공유하고 나누기 위해 마련한 작은 축제이다.▲작은 책방 ‘느티나무 아래’ 외관​이날 연수구 청량산 자락에 모여있는 여러 공방들이 합심해 가죽공예, 다도, 수제비누 만들기, 도자기 핸드페인팅, 한지공예 등 다채로운 체험 행사를 가졌고 작은 책방 ‘느티나무 아래’에도 축제가 열렸다. 연수구 문화예술인들은 천개의 문화오아시스 사업을 지역에 맞게 ‘청량산 문화예술체험’로 이름을 바꿨다.내 맘대로 책방찬바람이 옷깃을 더욱 여미게 하는 계절이 왔다. 흔히 가을은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말하지만, 찬바람이 쌩쌩 불고 강추위가 몰아치는 겨울만큼 책 읽기가 가장 편안한 계절도 없다.동곡재로 길 끄트머리에 세워진 책방 ‘느티나무 아래’는 동화 속에 나오는 빨간 망토 차차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올 것만 같은 작고 아담하다. 인적이 드문 이곳에 아침부터 손님들이 찾아온다. ‘천개의 문화오아시스’ 행사의 일환으로 선생님이 그림책을 읽어주고 나면, 아이들은 그 느낌을 낙엽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프로그램이다.실감나게 읽어주는 그림책을 눈으로 듣는 아이들의 눈빛이 동화나라에 푹 빠져있다. 독후활동으로 떠나가는 가을에게 전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하얀 도화지에 차곡차곡 녹아든다.이다원 양(10살)은 “너무 재미있어요. 그림책 속의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를 들으니 시간가는 줄 모르겠어요. 또 느낌을 도화지에 나뭇잎으로 부치면서 가을에게 마음으로 편지를 썼어요. 내년에도 잊지 말고 꼭 여기에 다시 오라고요.”라며 “책방에 자주 와서 그림책 구경을 하고 싶어요. 꼭 사고 싶은 책도 몇 권 있어요.”라고 말했다.책방 ‘느티나무 아래’는 7~8평 정도의 작은 책방에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그림책이 방안에 가득 차있다. 책읽기가 싫은 사람, 책에 관심이 없는 사람, 글씨 많은 책을 멀리하고픈 사람 등 책과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책과 인연을 맺고 책을 소장하고픈 마음이 저절로 생기게 하는 특별함을 담은 공간이다.▲우은선 대표​​​​▲우대표가 방문한 일본 미야자키 그림책마을 책방우은선 대표(48세)는 “예전에 이 공간은 농업마을 공동작업장이었어요. 이후 여러 주인을 거쳐 지금의 책방이 자리를 잡은 거지요. 3~4년 전 일본 미야자키 그림책 마을을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방문할 기회가 생겨서 지난 6월과 9월에 두 번 다녀왔는데 제가 꿈꾸던 책방이 그곳에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신기했지요.” 그녀는 이 공간을 ‘내 맘대로 책방’이라고 했다. “나랑 코드가 맞고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합니다.”일본 오지에 위치한 책방을 무작정 찾아가 ‘나랑 같은 생각을 하며 책방을 낸 사람이 일본에도 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출 수 없을 만큼 신기했다고 말했다.책에서 책으로 이어가는 마중물 그림책그녀가 그림책을 고집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해하기 쉬운 그림책이 마중물이 되어 주제 또는 내용에 따라 책을 계속 읽게 되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단다. 그래서 책이 책을 이어주고 또 그 책이 새로운 책을 이어 주는 마중물 책의 시작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림책으로 하고 싶었다.“책을 알아 가는 공간입니다. 책을 어떻게 재미있게 읽을까 배우는 공간이지요.”이곳은 유명하지 않은 작은 출판사의 책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쉽게 만날 수 없는 귀한 책들이 빛을 발하는 이야기보따리 보물창고이기도 하다.​​▲작은 책방 ‘느티나무 아래’ 내부책방 입구는 낡고 허름하지만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동심의 세계로 빠져 든다. 통나무 오두막집처럼 아기자기한 그림책속에서 뿜어 나오는 온기가 심신을 평온하게 한다. 마치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책꽂이에 질서 있게 꽂혀있는 그림책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말을 건네는 듯하다. 책표지만 보아도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고 싶은 그림들이 마음을 무지갯빛으로 물들인다.“책을 즐기는 책방이 되기를 바라고, 많은 사람들이 책으로 소통하는 문화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 문화 공간이 삶의 마중물이 되면 좋겠습니다.”우대표의 바램이다.​빛의 속도 만큼이나 빠름을 추구하는 편리한 세상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클릭 한번이면 발품을 팔지 않고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모든 것을 쉽게 사고 팔수 있다.하지만 작은 책방에서 책이 뿜어내는 향기로운 빛깔을 가슴으로 느끼며, 행복한 소비로 그림책과 함께 감성여행을 떠나면서 소확행을 즐겨 보는 건 어떨까? 책방 ‘느티나무아래’에서는 오는 12월5일 천개의 바람 출판사 대표의 무료특강이 열린다.(선착순12명) 책방운영시간은 월~토요일 오전10:30~오후5시이다.박영희 I-View기자 pyh6061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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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11.19 (월)
  • 세 가지 칼을 들고 온 ‘왕서방들’

    [그때 그 시절] 세 가지 칼을 들고 온 ‘왕서방들’

    ​이발소와 양복점 운영했던 인천화교들‘삼파도(三把刀)’라는 말이 있다. 삼파도는 무슨 무협영화에나 나오는 보도(寶刀)가 아니라 채도(菜刀·식칼), 전도(剪刀·가위), 체도(剃刀·면도칼)의 세 종류 칼과 가위로서 각각 요리, 재봉, 이발 기술을 의미한다.​​화교들은 천재지변과 전쟁으로 불가피하게 고향을 떠나면서도 이들 칼만 있으면 어디를 가든 먹고 살수 있다고 생각했다. 해외에 이주한 화교들은 ‘삼파도’ 기술을 활용하여 중화요리점, 이발소, 양복점에 종사한 사람들이 많았다. 인천에 온 화교들도 마찬가지였다.저렴한 이발요금에 귀 후비기 등 서비스 남달라 인기삼파도 중 가장 대표적인 업종이 이발소와 양복점이다. 화교이발소는 1900년대 들어 서울과 인천을 중심으로 생겨났으며 1920년대와 1940년대 급속히 증가했다. 이발소를 운영했던 사람들은 중국 호북성 및 산둥성 출신이 많았다. 화교들이 운영하는 이발관이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저렴한 이발요금에다 귀 후비기와 안마 등의 서비스가 남달라 조선인과 일본인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1930년 조선총독부의 국제조사에 의하면 삼파도 종사자 중 양복점과 중국옷 재봉점인 성의점(成衣店)은 598명, 이발사 534명, 중화요리점 5천534명으로 총 6천666명에 달했다. 당시 화교 가운데 직업을 가진 인원이 7만2천950명이기에 화교 직업인 10명 중 1명은 삼파도와 관련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었다.인천에도 화교들이 운영하는 이발관이 몇 곳 있었다. 화상(華商)이라는 간판을 달고 이발소를 운영했다. 인천에서 태어나 중산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한 부극정 선생(68)에 의하면 당시 차이나타운에서 이발업에 종사했던 중국이발사들의 성씨는 허(許), 서(徐), 오(吳)씨였다고 기억했다.▲1960년에 촬영한  화상 문명(文明)이발관​이중 가장 늦게까지 영업을 한 곳이 ‘문명(文明)이발관’이었다. 차이나타운 해안동성당 라인 끝 맞은편에 위치했다. 이발소가 있던 자리에는 2층 주택이 들어서 있다. 문명이발관은 1970년대까지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화교들이 이곳에서 이발을 했고, 손님도 많았다. 문명이발관은 유옥정(藰玉亭)이라는 화교가 운영했다.문명이발관 말고도 화청지(花淸池)라는 목욕탕에도 이발소가 있었다. 화청지의 위치는 지금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국성’ 자리이다. 중국성은 옛 화청지 건물을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다. 1960년에 촬영한 사진에서 화청지는 중국식으로 지어진 2층 건물이었다.2층은 발코니로 꾸며져 있어 이색적이다. 목욕탕은 남탕 여탕이 각각 있었고 명절이나 주말에는 목욕하러 오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화청지’는 중국 서안에 있었던 온천으로 양귀비가 목욕을 즐겼던 곳의 이름을 가져왔다.▲1960년에 촬영한 목욕탕 화청지. 화청지 안에도 이발소가 있었다.​인천대학교 이정희 교수의 논문 ‘이발소와 양복점으로 본 조선화교의 실태’(1890년대~1940년대) 에 따르면 1923년 인천에는 8개소의 화교 이발소가 있었다. 중요한 이발소로는 서회옥(徐懷玉), 오옥산(吳玉山), 부흥당(復興堂), 왕홍승(王鴻昇)이었다. 이발소 주인들은 중국 호북성 출신이 많았다.삼파도 중 하나인 가위로 대표되는 업종이 양복점이다. 당시 인천은 신문물이 처음 들어오는 장소였기에 화교가 운영했던 양복점이 있었다.우리나라 신문에 최초로 등장하는 양복점은 서울 정동에서 개업한 원태양복점(源泰洋服店)이었다. ‘독립신문’ 1897년 8월 17일자를 보면 이 양복점은 정동 86번지에 위치했다. 이 양복점의 경영주는 절강성 영파부(寧波府) 봉화현(奉化縣) 출신의 대익삼(戴益三)이었다. 그는 1858년 출생하여 37세 때인 1894년 한성으로 이주했다. 그의 출신지인 영화루 봉화현은 상해와 가까워 서양의 근대문물을 빨리 접할 수 있었다. 한국에 온 중국양복기술자들 대부분은 상해와 가까운 절강성 출신들이었다.화교양복점은 절강성 출신들이 많이 운영화교 양복점은 일본인들이나 다른 양복점과는 다른 다양한 서비스 전략을 펼쳤다. 1930년 경성에서 양복점 기사로 활동한 최준(崔俊)은 화교 양복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서울에 중국인 양복점으로 신문로의 원태창양복점(源泰昌洋服店), 남대문 1가에서 중국인 왕보장(王甫章)이 경영하던 복장양복점(福章洋服店), 서대문에서 중국인 왕복산(王福山)이 운영한 양복점이 대표적이었는데 이들은 중국인뿐만 아니라 한인들도 고객으로 많이 확보했다.​▲1906년에 촬영된 제물포중국인 양복기술자들 가운데는 상하이 출신들이 수준이 높았다. 이들은 봉제 솜씨가 뛰어났다. 미싱을 쓰지 않고 손바느질로 양복을 만들었으며, 양복을 만들 때 자리잡음과 착장감을 살려 기술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적고 있다.인천대 이정희 교수 논문에 따르면 1906년 인천에는 화교양복점이 두 곳 있었다. 신윤기(新倫記)는 종사자가 12명, 원태(源泰)는 12명이었다. 인천의 원태는 한성에서 오픈한 첫 화교 양복점인 원태와 상호가 같아 서울 원태양복점의 인천지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화교양복점은 1923년 경성에 23개소, 인천에 3개소가 있었다. 1942년 인천 순태 양복점의 점주인 고림여(高林如, 1876년생)도 절강성 진해현(鎭海縣) 출신이고, 직공인 범홍청(範鴻淸)은 절강성의 영파현 출신이었다.▲비단 천과 재단 가위인천에서 화교 양복점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화교들의 기억에 따르면 화교양복점은 지금 조계지 계단옆에 자리한 ‘파란색 중국집’의 주인인 진서경(86) 어르신의 친정아버지가 재단사였고 그 집이 한때는 양복점이었다고 전한다.진서경 어르신의 친정아버지도 상해 출신이었다. 인천의 오래된 사진에도 이 집이 그 당시 양복점이었음을 알려준다. 1904년에 찍은 차이나타운 사진에도 이 집 외벽에 붙은 간판에 ‘Tailor’라는 글씨를 볼 수 있다.이 집의 주인 할머니는 현재 대만에 살며 여름에 잠깐씩 나와서 집을 관리하고 있다. 이 집의 축조연도는 1890년대 후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창반점 장경란 어르신 시할아버지도 양복 기술자화교들이 기억하는 차이나타운내 또 다른 양복기술과 중국옷을 만든 사람은 대창반점의 며느리인 장경란(張景蘭, 68)어르신의 시할아버지다. 그녀의 시할아버지 성함은 유향융(劉香隆)이다. 시 할아버지는 산둥성 봉래 출신으로 양복과 중국옷을 만들었다. 산둥성 봉래는 영국의 조계지가 있어 서양문물을 일찍부터 접한 곳이었다.▲차이나타운 대창반점 장경란 어르신.그녀의 시할아버지는 화교 양복기술자였다.장경란 어르신에 따르면 시댁은 양복점 운영으로 풍요로웠다. 하지만 가업을 이어받은 시아버지가 남편의 나이 21살때 돌아가시자 양복일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대신 양복기술은 시아버지와 같이 일을 했던 녕가검(甯家儉)씨에게 전수됐고 그는 태화원 맞은편에서 중국옷과 양복점을 운영했다. 장경란 어르신의 시 할아버지는 아들, 손자의 옷을 모두 손수지어 입혔다고 한다.시 할아버지의 기술을 이어받은 녕가검씨는 손재주가 좋아 유명가수, 영화인 등 단골손님이 많았다고 한다. 양복장인 녕가검은 장경란 어르신의 결혼식때 결혼예복을 직접 만들어 선물했다. 고급스런 파란색 비단에 구슬로 공작을 수놓은 작품이다. 50년 전에 제작한 이 옷은 아직도 제작당시 빛깔과 자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화교들이 운영했던, 이발소와 양복점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인, 일본인과의 경쟁이 치열했고, 수적으로도 열세였다. 인천에서는 화교 장인들이 운영했던 이발소와 양복점이 70년대까지 있었다.​인천에서 이발소와 양복점을 운영했던 화교들은 중국 조계지에서 서양 기술을 배워 한국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이발업 출신들이 많았던 중국 호북성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영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의 조계지가 있었고 양복기술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절강성도 상해와 가까워 일찍부터 신기술을 접할 수 있었다.중국 조계지에서 서양사람들과 일찍부터 마주한 중국인들이 돈을 벌고자 한국 조계지로 이주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 지점이다. 당시만 해도 독보적이었던 양복, 이발 기술은 점차 한국인들에게 전수되면서 그들은 시대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후손들도 더 이상 부와 명예를 가져가 주지 않는 이 직업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화교 이발사와 양복장인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글 이용남 i-View 편집위원, 사진 장현선 자유사진가, 영종역사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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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11.19 (월)
  • 한 컷, 한 줄로 풀다

    [렌즈 속 인천] 한 컷, 한 줄로 풀다

    ​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표어.- 동구 화수동 (화수자유시장)     사진․글 유동현 (인천이야기발전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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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11.19 (월)
  • 친환경 전기버스 , 내년부터 운행

    [인천뉴스] 친환경 전기버스 , 내년부터 운행

    ​▲​충전중인 친환경 전기버스인천시는 2019년부터 정부의 미세먼지저감 지원정책 보조금을 확보하여 친환경 전기버스를 노선버스에 확대 도입할 계획이다. 이는 2012년부터 관용차 중 총 23대를 친환경 전기자동차로 구입하여 운행한 결과, 소음과 냄새가 없어 쾌적한데다 연료비 절감 효과도 큰 데에 따른 것이다. 시는 올해 전기버스 시범사업 10대를 제작을 완료하고, 내년 초 운행을 준비하고 있으며, 2019년 15대 도입과 더불어 매년 확대하여 2022년까지 총150대를 친환경 전기 및 수소 버스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전기버스는 일부 타시도 운영 사례에서 운행도중 멈춰서는 등 안정화되지 않아 도입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으나 ,예상되는 문제점을 보완하여 본격적으로 확대 도입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친환경 전기버스 내부​전기버스는 배터리 운행 효율이 가장 중요하므로 계절별 에너지소모량 차이에 따른 냉·난방시 배터리 효율문제 및 운행중 돌발상황 등에 대비하여 전기버스 전담정비소를 확보하는 등의 체계적인 사후관리 서비스 구축 방안이 주요 쟁점으로 논의 될 예정이다.친환경 전기버스가 본격 도입되면 미세먼지 저감으로 쾌적한 도시환경 조성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연료비가 적게 들고, 내연기관이 없어 수리비가 절약되므로 운영비 절감효과로 준공영제 경영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제활로 신남방정책에서 찾는다인천시는 국내·외로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인천 중소기업의 해외 판로개척을 지원하고자 신남방정책의 핵심 국가인 태국-베트남에 시장개척단을 파견해 총 135건, 914만 달러의 수출상담의 성과를 거뒀다.지난 11월 12일부터 16일 까지 4박 5일간 태국의 방콕과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화장품, 생활용품, 기계부품, 전기/전자 분야 총 10개 업체 13명이 세일즈단을 구성하여, 현지 유력 바이어와의 1:1 수출상담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태국은 아세안 중 가장 개방된 통상국가로 공산품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주변 국경무역이 활발해 동남아 시장진출 위한 교두보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베트남은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수출대상국 3위이며, 아세안 1위 교역 대상국인 만큼 동남아의 새로운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신(新)남방 핵심국가이다. 이번 시장개척단에 참가한 한 중소기업 대표는 “요즘 기업활동이 매우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동남아시장 진출을 위해 인천시 시장개척단이 제품 홍보 및 판로 개척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며, “앞으로도 이런 지원사업이 계속 되었으며 한다면서, 이번에 만난 바이어와 샘플제공 및 향후 오더 가능성을 보았고, 앞으로 매출 증가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2019년 인천시 생활임금 9천600원 결정인천시는 지난 6일 생활임금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2019년도 생활임금을 9천600원으로 결정했다.생활임금이란 근로자가 가족을 부양하고 교육·문화 등 각 분야에서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최저임금이상으로 지급하는 임금이다. 시는 2015년 11월 처음 생활임금제를 도입하여 올해 3년차에 걸쳐 생활임금을 결정하게 됐다.이날 생활임금위원회는 인천시 평균가구원(2.69명)의 평균 가계지출액에 지역 주거비용 및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여 2019년도 생활임금을 시급 9천600원으로 의결했다. 이는 올해 생활임금 8천600원보다 1천원(11.6%)이 인상된 금액이고, 정부가 고시한 내년 최저임금 8천350원보다 1,250원이 많은 금액이다. 아울러, 시는 그간 시에 직접 고용된 기간제근로자를 대상으로 적용하던 생활임금을 시 산하 공사·공단 및 출자·출연기관까지 확대할 예정이며, 이로써 생활임금 적용대상자는 총 1,270여 명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번 결정된 생활임금은 조례 개정, 고시 등을 통해 시 직접 고용 기간제 근로자들과 시 산하 공사·공단 및 출자·출연기관에 대해 2019년 1월 1일 자로 시행·적용될 예정이다. 이번 생활임금위원회는 보다 다양한 의견 수렴과 심도 있는 논의를 위해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와 인천소상공인연합회를 새로이 참여시키는 등 노사단체, 시의회 위원 등 10명으로 새로이 구성되었다. “걱정되는 라텍스 라돈(Rn) 가져와서 측정하세요”인천시가 환경단체, 기업과 함께 시민들의 라돈(Rn) 불안해소를 위해 라돈 간이측정기 대여와  ‘실내공기 라돈(Rn) 저감 캠페인’의 두 번째 현장 행사를 11월 21일부터 이틀간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실시한다.지난 5월 대진침대 사태를 시작으로 생활용품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라돈(Rn)에 대한 시민 불안이 사그러 들지 않고 오히려 확대되고 있는 상황 때문이다.인천시와 동구청은 현장 행사를 통해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라텍스 등 제품을 현장에 소형텐트를 설치해 밀폐된 상태에서 측정하여 제품의 이상 유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현장 측정서비스를 실시하고, 라돈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대응을 홍보하게 된다.​특히, 이번 행사는 동구청장이 직접 현장 라돈을 측정에 참여하여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지역 실정에 맞는 라돈 불안해소 대책을 강구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시는 기대하고 있다.빠르면 2019년 초부터 군·구 환경과나 동주민센터를 통해 라돈 간이측정기 무료대여가 가능할 것으로 보여 시민들의 불안 해소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문화누리카드 연말까지 사용하세요인천문화재단은 경제적·사회적 여건으로 문화를 향유하기 어려운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에게 문화예술, 여행, 체육 분야 프로그램을 구매할 수 있는 문화누리카드(연간 1인 7만 원)를 지원한다.▲문화누리카드문화누리카드는 지난 2월 1일부터 온・오프라인 통해 발급되었고, 카드 이용 기간은 2018년 12월 31일까지다. 사용하지 않은 지원금은 자동 소멸하며 이월이나 현금인출이 불가하니, 꼭 이용 기간 내에 이용해야 한다.자세한 이용방법 안내는 인천문화재단 생활문화팀(032-760-1035), 누리집(www.mnuri.kr), 문화누리카드 고객지원센터(1544-3412)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기간없음
    작성일 2018.11.19 (월)
  • 휴대폰보다 더 재밌는 음악회, 낭독극 가볼까?

    [무대와 객석] 휴대폰보다 더 재밌는 음악회, 낭독극 가볼까?

    ​청소년을 위한 명작무대 <얼리 윈터페스티벌>찬란한 가을을 마무리하고 초겨울을 맞이하는 시기다. 인천문화예술회관은 청소년을 위한 공연페스티벌을 준비했다. 매년 8월에 진행하는 청소년 음악회 <썸머페스티벌>에 이어 초겨울에 진행하는 <얼리 윈터페스티벌>은 11월 29일부터 12월 1일까지 3일간 진행한다. 현대무용, 낭독극, 음악회 등 여러 장르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청소년위한, 순수 예술장르 공연 모았다!클래식으로 구성된 <썸머페스티벌>에 이어 겨울 시즌에 준비한 <얼리 윈터페스티벌>은 순수예술장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다.또한 한해를 마무리하는 학년 말,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통해 더 성숙된 모습으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도록 기획된 프로그램이다.▲얼리 윈터 페스티벌 - LDP무용단TV, 인터넷, 휴대폰 등의 매체에 익숙한 청소년들에게 다소 어렵고,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순수예술장르지만 그중에서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 3일 동안 연이어 무대에 올리며 관객들의 선택의 폭을 높였다.다양한 공연 3일 동안 연이어 즐길 수 있는 무대!공연 첫날인 11월 29일에는 국내 현대무용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LDP무용단이 <해설이 있는 현대무용>을 공연한다. 끊임없는 노력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대중의 큰 신뢰를 얻은 LDP무용단의 무대인만큼 믿고 볼 수 있는 춤의 향연이 펼쳐진다.▲입체낭독극 <웃는 동안>​이어 30일에는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남겨진 이들의 삶을 특유의 유머로 담담하게 그려낸 입체낭독극 <웃는 동안>을 무대에 올린다. 등단한 이래 수많은 수상을 한 인기작가 윤성희와 자타공인 국내 최고 연출가 남인우의 만남 자체로 큰 주목을 받은 작품으로 실패와 상처를 넘어 인생을 긍정하며 위로를 건내고 있다.마지막 날인 12월 1일에는 ‘국민체조음악’, ‘젓가락 행진곡’, ‘슈퍼마리오’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을 자신만의 컬러로 편곡하여 들려주는 옐로우 스트링 보이즈의 <재즈 스트링 콘서트>을 만날 수 있다. 부드러운 현악기의 음색으로 전하는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옐로우 스트링 보이즈​○ 공연일정 : 11월 29일(목) ~ 12월 1일(토)○ 세부일정   - LDP 무용단 <해설이 있는 현대무용> / 11월 29일(목) 오후 2시, 7시30분   - 낭독극 <웃는 동안> / 11월 30일(금) 오후 3시, 7시30분   - 옐로우 스트링 보이즈 <재즈 스트링 콘서트> / 12월 1일(토) 오후 5시○ 공연장소 :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관 람 료 : 전석 1만원○ 관람연령 : 8세 이상○ 공연문의 : 인천문화예술회관 032-420-2737○ 예    매 : 인천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 http://art.incheon.go.kr                  상설예매처 032-420-2000, 인터파크 1544-1555○ 할     인 : 수능수험생 50%할인(본인만 / 공연당일 수험표 소지자에 한함)                수능수험생 동반자 30%할인(최대 4매 이하)                인처너카드 소지자 20%할인

    2018.11.29 ~ 2018.12.01
    작성일 2018.11.19 (월)
  • ‘진달래꽃’. ‘님의침묵’ ‘혈의 누’ 초판본 선보인다

    [전시 · 공연] ‘진달래꽃’. ‘님의침묵’ ‘혈의 누’ 초판본 선보인다

    ​한국근대문학관, 최초로 근대문학사 희귀본 전시한국 근대문학사를 대표하는 유명 작가들의 초판본을 한꺼번에 관람할 수 있는 전시회가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열린다. 한국근대문학관은 2018년 기획전시 <한 눈에 보는 한국근대문학사>를 11월 23일 금요일 오후 3시 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금수회의록(좌), 춘원단편소설(우)이번 전시에서는 2011년 등록문화재470-1호 및 470-4호로 지정된 『진달래꽃/ 진달래꽃』 을 포함한 총 50종(시 19종·소설 23종·수필 및 비평 8종)의 도서 초판본이 전시된다. 1925년 매문사에서 간행된 『진달래꽃』의 초판본은『진달내』과 『진달내꽃』으로 총 두 종이다.두 종 모두 등록문화재로 인정받았는데, 앞표지·속표지·판권지 등에서 차이가 난다. 이러한 『진달래꽃』 초판본 두 종이 동시에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더하여,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회동서관, 1926) 초판본과 한국 최초의 신소설인 이인직의 『혈의 누』(광학서포, 1908) 원본이 공개된다. 발간 당시에 100부 한정본으로 출판된 백석의 『사슴』(1936) 초판본도 전시될 예정이다. 『사슴』 초판본은 시인 윤동주가 생전에 구하지 못해 애태우며 필사할 정도로 희귀한 시집으로 유명하다.▲​건설기의 조선문학(좌), 무서록(우)​조선의 발렌티노이자 일제 강점기 최고의 비평가 중 한 명이었던 임화의 『문학의 논리』(학예사, 1940) 초판본도 공개된다. 한국 근대문학사의 주옥같은 작품으로 손꼽히는 도서들의 희귀본이 이와 같이 한꺼번에 전시되는 경우는 이번 기획전시가 최초라고 할 수 있다.한국근대문학관은 이번 전시를 기획한 취지가 흔히 교과서나 여러 매체를 통해서 접하는 한국 근대문학의 대표작들을 출간 당시의 모습 그대로 만나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에 있다고 밝혔다.소설평론집(좌), 청록집(우)​일반 시민은 교과서에서 쉽게 접했던 작품이지만 정작 출간 당시 그대로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으므로 이번 전시는 한국 근대문학사의 실체를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하다.아울러 이번 한국근대문학관의 기획전시는 기존 문학관 전시의 틀을 깼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책만 진열장 안에 배열하는 전시가 아닌 보고 듣고 체험하는 문학으로 한국 근대문학을 되살려 냈다는 데에 전시의 의미가 있다. 관람객들은 입체 안경을 쓰고 소설의 한 장면을 구경하고, 문인들의 서재처럼 꾸며진 공간에서 셀카를 찍고, 일제 강점기의 작가처럼 다른 사람들의 가슴에 길이 남을 만한 멋진 문장을 써볼 수도 있다. 한편 11월 23일 금요일 오후 3시에는 전시를 기념하는 행사도 열린다. 근대시를 노래하는 독립밴드 ‘빈티지 프랭키’의 축하 공연과 문학평론가 허희와 『달콤한 나의 도시』 의 작가 정이현이 오늘날의 한국문학을 주제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이날 기획전시 개막 행사는 아트플랫폼 H동 1층의 인천서점 오픈과 함께 진행된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2019년 상반기까지 전시가 지속될 예정이다.<전시안내>제목 : 한눈에 보는 한국근대문학사 기간 : 11월 23일 ~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 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시실 문의 : 032)773-3804 (http://lit.ifac.or.kr/)

    2018.11.23 ~ 2019.01.31
    작성일 2018.11.19 (월)
  • 10화. 아파트 상황에 맞는 전력 관리로 관리비를 절감!
  • 유유기지서 메이크업 받고, 취업 성공 할래!

    [탐방] 유유기지서 메이크업 받고, 취업 성공 할래!

    ​청년 취업 지원 뷰티, 이미지 메이킹 등 강좌 다양​우리시대 청년들의 최대 난제는 취업. 청년들이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학점관리, 스펙쌓기, 이력서·자소서 쓰기, 면접준비 등 해야 할 일도 한두 개가 아니다. 이런 청년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고자 최근 인천 내 각 청년시설에서는 청년콘서트, 취업특강, 채용설명회 등 다양한 강좌를 수시로 열어 청년들을 찾아가고 있다. 그중 면접 시 좋은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는 화장법을 개별적으로 알려주는 ‘유유기지’의 면접 메이크업 1:1코칭 강좌를 이용하면 유용하다.면접 메이크업 1:1코칭 강좌 첫회 현장지난해 10월에 개소한 유유기지는 청년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취업정보를 공유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청년전용 공간으로 청년들의 취업을 돕기 위한 다양한 취업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 있다.▲‘​유유기지’의 면접 메이크업 코칭 강좌​​얼마 전 유유기지에서는 새롭게 개설된 면접 메이크업 1:1코칭 강좌 첫 회가 진행됐다. 인천의 취업준비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번 강좌는 뷰티강사가 참석자 개개인의 이미지 특성에 맞는 면접 화장법을 코칭해주는 강좌로 첫 회부터 많은 청년들의 관심을 끌었다.유유기지 청년지원팀 송수연 담당자는 “평소 유유기지에서 취업특강이나 청년토크콘서트 같은 강좌는 자주 제공되는 편이다. 그러나 면접 화장법을 알려주는 강좌는 자주 제공되지 못했는데 청년분들이 면접 화장을 어렵게 느끼고 궁금해 해 이번 강좌를 개설하게 됐다.”며 개설취지를 밝혔다.▲이유나 강사​이번 강좌의 진행은 이유나 뷰티강사가 맡았다. 강좌에서 이유나 강사는 참석자들의 피부색과 피부타입을 진단해주고 얼굴형에 따른 화장법을 꼼꼼하게 짚어줬다. 더 나아가 퍼스널컬러에 대한 진단도 해주었다.이유나 강사는 “퍼스널컬러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신체색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색깔을 말한다. 자신의 퍼스널컬러를 잘 알고 색조화장을 하면 얼굴에 생기가 돌고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완성할 수 있다.”며 화장하기 전 개개인의 얼굴 특성을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면접 메이크업 어떻게 하면 좋은가 그렇다면 면접 메이크업은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이유나 강사는 과하지 않는 메이크업을 강조했다. 그녀는 “보는 이에게 자칫하면 강하고 부담스러운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진한 화장은 피해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연출된 피부에 생기를 줄 수 있는 약간의 블러셔를 입히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이어 특히 눈 화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녀는 “시선을 맞추는 눈 화장은 특히 중요하다. 무난한 색상의 아이섀도우와 마스카라만을 이용해 가볍게 연출하길 바란다. 지나치게 음영을 주거나 속눈썹을 붙이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이날 참석자들은 평소 본인이 사용하는 화장품을 지참해서 강좌에 참석했다. 이유나 강사에게 사용하고 있는 화장품 중에서 자신에게 적합한 화장품인지 아닌지 진단을 받기도 하고 자신의 화장품을 이용해서 면접 메이크업을 받기도 했다.취업준비생 장희주 씨(25)는 “평소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다. 막상 면접 화장을 해보려고 하니 막막하더라. 오늘 강좌에서 강사님이 저한테 맞는 화장법을 꼼꼼하게 알려주셔서 앞으로 면접준비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수강소감을 밝혔다.또 다른 참석자 류정은 씨(27)는 “그동안 유유기지에서 진행하는 이미지 메이킹 관련 강좌를 꾸준히 들으며 취업준비를 해왔다. 확실히 면접에 임할 때 자신감이 생기더라. 덕분에 면접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있어 주변 친구들에게도 유유기지의 이미지 강좌를 추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코칭 통해 자신감 쑥쑥  유유기지에서는 면접 메이크업 1:1코칭 강좌 외에도 다양한 이미지 메이킹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송수연 담당자는 “메이크업 외에도 표정, 자세, 의상, 말투 등 이미지를 완성할 수 있는 요소들은 많다. 유유기지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을 코칭해주는 강좌들을 수시로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오는 25일 유유기지에서는 9가지 유형을 통해 자신의 성격을 알아볼 수 있는 에니어그램 강좌가 열릴 예정이다. 또한 26일에는 전문가와 개별상담을 통해 자신의 총체적인 이미지에 대한 진단과 조언을 들어볼 수 있는 이미지 컨설팅이 진행된다. 참석을 희망하는 청년들은 유유기지 홈페이지를 방문해 회원가입 후 신청하면 된다.이제 막 첫 회를 진행한 유유기지의 면접 메이크업 1:1코칭 강좌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자신에게 꼭 맞는 메이크업을 통해 자신감도 얻고 면접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면 다음번 강좌를 꼭 체크해 두자. <유유기지>  인천시 남구 석정로229 제물포스마트타운 15층 032-725-3061 평일 오전 10시~ 오후 9시  토요일 오전 10시~ 오후 5시 일요일·공휴일 휴무  www.inuu.kr        정해랑 I-view객원기자 marinboy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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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11.21 (수)
  • 한복과 함께  웃고 운  '38년'

    [인천 이야기] 한복과 함께 웃고 운 '38년'

    ​강화중앙시장 테레사한복 이경희 사장 어린 시절, 명절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한복을 지어주셨다. 설, 추석은 물론 친척 결혼식 같은 집안의 경사가 있을 때마다 금박은박 한복을 입었다. 언제부터였을까. 한복은 불편하고 실용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일상에서 한복이 사라졌다.▲테레사한복 이경희 대표​강화중앙시장 한복집들 어디로 갔을까?가까운 일본만 해도 격식을 차리는 자리에서는 예복으로 기모노를 입는 문화가 있지만, 우리는 입고 벗기가 불편하고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전통한복을 점점 멀리하고 있다.강화는 80년대까지 직물산업이 발달했던 경기가 좋았다. 전성기의 강화읍에는 현금이 넘쳤고, 읍의 중심가였던 중앙시장은 활기가 넘쳐났다.▲포목골목이 사라진 중앙시장B동​중앙시장 B동 옆 골목은 강화에서 가장 유명한 포목골목이었다. 동화상회, 부인상회, 원앙상회, 금풍상회, 화풍상회 등. 강화사람들이 특별한 날을 앞두고 꼭 찾았던 유서 깊은 한복집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원래는 중앙시장 A동 옆 광신상회라는 큰 점포 안에 가게 한 칸을 세 얻어서 시작했죠. 10년쯤 있다가 포목골목에 자리가 나서 옮겼어요. 옛날에는 초등학교 운동회를 하면 행사복을 각자 맞춰야 했거든요. 학교에서 가게마다 한 종목씩 배분했기 때문에 운동회 시즌에는 정말 바빴어요. 명절 앞두고는 말할 것도 없고요.”1980년부터 한복집을 운영했던 ‘테레사한복’ 이경희 대표는  7남매 중 셋째였다. 고단했던 대가족 살림. 어머니 일손을 덜어드리기 위해 바늘을 잡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보다 어린 동생들 바지저고리 만드는 게 즐거웠다.▲한복 손질 중이신 이경희 대표성인이 되어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된 한복. 서울에서 직장생활 하며 모은 돈으로 종로에 있는 한복학원 수강생이 되었다.“한복연구가 이리자 선생님의 파티복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 때였어요. 그걸 배워서 강화로 내려왔죠. 젊어서 겁이 없었어요. 수중에 한 푼도 없었거든요. 차비 120원이 없어 걸어 다녔으니까요. 친척에게 당시로는 큰 금액이었던 10만원을 빌려서 가게를 냈어요. 이리자 선생님 한복은 공단치마 여섯 폭에 금박 넣고 달모양 수를 새긴 화려한 파티복이었죠. 강화에 처음 등장한 한복이다 보니 개업 하자마자 잘 팔렸어요. 덕분에 빚도 금방 갚고 자리도 잡을 수 있었죠.” 호황기였다. 밥먹을 시간조차 없을 만큼 바빴던 시절. 아침 8시에 가게 문을 열면 벌써 손님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명절 앞두고도 한 달 전부터는 주문을 안 받았어요. 그 정도로 일감이 쌓였죠. 설빔을 새해 첫날까지 마무리 못한 적도 있어요. 그러면 초이틀, 사흘에 가져가는 손님도 계셨어요. 그때는 남녀노소 모두 한복을 입었으니까. 새신랑들이 설빔입고 처갓집을 방문했거든요.”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보니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다.고객들 생각하면 힘닿는 데 까지 일할 생각“수원으로 임지를 옮긴 목사 사모님을 위해 신자들이 한복을 부탁했어요.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했던 때가 아니니까, 강화에서 수원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하잖아요. 아침 일찍 한복을 찾으러 왔더라고요. 그런데, 세상에나. 원단을 끊어다 놓고 까맣게 잊어버린 거죠. 하도 바빠서. 당황해서 연신 죄송하다고 하니까 지금이라도 빨리 해 달라면서 기다려주셨어요. 그때부터 치마 6폭을 겹으로 해서 12폭으로 재단한 후, 깨끼로 세 번씩 말았어요. 쉬지 않고 작업해서 저녁나절에 마무리를 했죠. 젊었을 때여서 가능했지,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죠.”1990년대 이후 직물산업이 쇠퇴 하면서 강화의 번영도 옛 이야기가 됐다. 설상가상 한복 수요도 줄어들면서 포목골목의 한복집도 하나 둘씩 떠났다. ‘테레사한복’도 건너편 중앙시장 A동으로 이전했다. 약 8년 전이다. “이제 강화에 한복 짓는 분도 몇 안 남았어요. 저도 남들이 꽃놀이, 단풍구경 갈 때는 일을 그만 두고 싶더라고요. 하지만 여전히 한복을 찾는 손님들이 계시니까, 바늘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요. 지난여름 몹시 더웠잖아요. 어르신들은 모시적삼이 있어야 여름을 잘 날 수 있는데, 그 바느질이 까다로워요. 서울에도 모시적삼을 다루는 분이 많지 않을 겁니다. 여름에 인천에서 모시적삼 지어달라고 찾아온 분이 계셨어요. 인천시장에서 강화읍 ‘테레사한복’으로 가라고 알려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고객들을 생각하면 힘이 닿는 한 이 일을 계속 해야겠다 싶어요.”이슈가 되었던 퓨전한복 열풍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다. “우리 옷은 몸을 구속하지 않아요. 한복은 틀이 없고 움직임이 자유롭죠. 한복을 ‘걸친다’고 하잖아요. 어지간하면 누구나 편하게 입을 수 있다는 뜻이에요. 체형과 무관하게 누구나 예쁘게 입을 수 있는 게 한복이죠. 한복이 불편하다고 하는 것은, 입는 습관이 안 되어 있어서 그래요. 그런 면에서 젊은이들이 한복을 가깝게 느끼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죠. 다만, 아무리 퓨전이라고 해도 최소한 한복의 곡선, 배래선, 도련선, 깃 같은 특성이 한 자락이라도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이제는 한복을 지으러 온 손님보다 마실 나온 어르신들의 휴식처로 더 많이 소용되는 한복집. 긴 세월 좋아하는 일 하며 살아 여한이 없으니 이웃들에게 여름에는 시원한 얼음물 한 사발, 겨울에는 따뜻한 차 한 잔 내어주며 보답하고 싶다는 한복집 사장님의 마음이 빛깔 고운 한복만큼 아름다웠다. ‘테레사한복’이 중앙시장의 터줏대감으로 오래오래 자리를 지켜주었으면 좋겠다.글 김세라 I-View 객원기자, 사진  나윤아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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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11.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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