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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인장 수선 솜씨에  50년간 단골 줄이어

    [외고 · 칼럼] 주인장 수선 솜씨에 50년간 단골 줄이어

    ​오래된 가게, 인천 노포(老鋪) ⑩ 준컴퓨터세탁소인천도시역사관에서는 2017년부터 “인천의 오래된 가게”에 대해 조사를 실시해 오고 있습니다. 오래된 가게의 정의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한 곳에서 대를 이어 50년 이상 영업을 이어오고 있는 가게를 조사 대상으로 정했습니다. 70여 개 가까운 가게가 조사되었지만, 그 중 16개를 선별하여 연재합니다.어릴 적 세탁소는 동내의 친근한 장소였다. 다리미에서 나오는 하얀 스팀과 세탁소 특유의 냄새를 맡으면 저절로 깨끗해지는 것 같았다. 중·고등학교에 입학해 펑퍼짐한 교복을 구입하면 제일 먼저 동내 세탁소에 찾아가 수선을 맡겼다.그러면 며칠 지나지 않아 내가 원하는 디자인의 바지가 만들어졌다. 세탁소는 학생들의 감수성을 만족시켜주는 멋진 공간이었다.​운동장 앞 체육사중구 도원동과 미추홀구 숭의동의 경계에 위치한 곳, 지금 축구전용경기장이 자리 한 이곳에 인천 체육의 산실이었던 공설운동장이 있었다. 누런 들판이 펼쳐져 있다하여 황골(黃谷)이라 불리던 이곳은 개항 후 조선군 병영이 들어서 있었고, 러·일전쟁 때 일본군 수비대가 진을 쳤던 곳이기도 하다. 1935년 웃터골 운동장에 인천중학교(지금의 제물포 고등학교)를 건립하면서 공설운동장이 이곳으로 옮겨왔다. 그 후 이곳에서는 네 차례의 전국체전이 열렸고, 인천시에서 주관하는 크고 작은 행사가 펼쳐졌다.▲준컴퓨터세탁소 전경​축구장과 야구장, 정구장 등 각종 경기가 열렸던 운동장 주변으로 운동용품을 파는 체육사들이 하나둘 자리 잡기 시작했다. 준컴퓨터세탁소 한정자 사장도 그렇게 이곳에서 체육용품 장사를 시작했다.1960년대, 결혼 후 군인이었던 남편을 따라 인천에 온 한 사장은 남편의 전역 후 어떤 일을 해야 할 지 고민하던 중 서울에서 체육사를 운영하던 친척의 권유로 이곳에 제일운동구점을 열었다. 당시 인천에서 운동용품을 취급하던 체육사는 많지 않았다. 경동의 서울체육사와 아시아체육사 정도만 있었다고 한다. 공설운동장 앞이라 입지도 좋았다. 이곳을 중심으로 인천체육협회, 학교 등과 거래를 하면서 주로 축구부, 육상부 선수들의 운동복을 만들어 팔았다. 한 사장은 이곳에서 단체복을 제작하고 수선을 하며 기술을 배워나갔다.체육사 사장님은 왜 수선 일을 시작했을까?체육의 열기가 높아지면서 인천 공설운동장을 중심으로 체육사는 호황을 맞았다. 한 사장이 만든 운동복은 전국체전에서 인천 대표팀 유니폼이 될 정도로 잘 나가는 옷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스포츠 브랜드가 대중적 인기를 끌면서 체육사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사람들이 체육사에서 유니폼을 맞춰 입기보다 브랜드 제품을 선호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체육사의 매출은 점점 줄어들었다. 한정자 사장은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한정자 사장의 작업공간​매출 감소를 고민하던 한 사장 부부는 고민 끝에 체육사 옆에 세탁소를 차리기로 했다. 지금은 세탁소 영업이 허가제이기 때문에 영업을 위해서 일정 교육을 수료해야 하지만, 당시에는 신고만 하면 세탁소를 운영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한정자 사장은 단체복을 만들어 팔면서 익힌 수선기술이 있었다. 이들 부부에게 세탁소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제일운동구점 바로 옆에 가게를 차리고 체육사는 남편이, 세탁소는 아내가 운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체육사의 상호를 차용하여 제일세탁소라는 간판을 올렸지만, 이후 주고받는다는 의미로 ‘준’ 컴퓨터세탁소라고 이름을 바꿨다.수선을 전문으로 하는 세탁소세탁소와 체육사를 병행하던 한 사장 부부에게 IMF는 큰 시련이었다. 거래처가 부도가 나면서 대량으로 납품한 단체복 대금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받을 돈도 많았고 줘야할 돈도 많았다. 큰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한 사장 부부는 부도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2000년대 초 제일운동구점은 문을 닫았고 준컴퓨터세탁소 만 남게 되었다.▲수선을 하는 한정자 사장​그래도 세탁소는 한정자 사장의 소문난 수선실력으로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체육사를 운영할 때부터 다져온 그녀의 수선실력은 오랜 단골을 만들었다. 두 번이나 가게 위치를 옮겼지만 이곳을 떠나간 단골들은 그녀의 수선솜씨를 잊지 않고 세탁소를 찾았다.요즘 나오는 첨단세탁소들에 비해 시설은 조금 부족할지 모르지만, 그녀에게 수선실력만큼은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다.아쉽게도 준 컴퓨터 세탁소는 한정자 사장이 그만두고 나면 가게를 이을 사람이 없다. 한 사장은 가족에게 명의를 넘기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세탁소 일을 잇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한다. 겉보기에는 세탁소일이 쉬워보여도 조금만 잘못하면 한 순간에 손님의 신뢰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대로 물려주려면 한 사장과 함께 같이 일하며 가르쳐야 하는데 하나하나 배우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들기 때문에 뒤를 이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인터뷰를 하는 중간에도 손님들이 찾아와 한 사장에게 수선을 맡긴다. 그녀의 수선능력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수선작업을 하는 한 사장의 손놀림에서 장인의 모습이 느껴졌다.글 이동영 인천도시역사관 연구원, 사진 조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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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10.01 (월)
  • 백 년 고택에 움튼, 백 년 서점의 꿈

    [인천 이야기] 백 년 고택에 움튼, 백 년 서점의 꿈

    ​Retro? Newtro! ⑩ 강화도 남문한옥 ‘대명헌’ – 소금빛 서점때론 오래된 것이 더 새롭고 아름답다. 인천은 과거와 미래가 조화로운 도시, 최초와 최고가 공존하는 도시다. 시간의 흔적을 보듬어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시킨 공간으로 들어가 본다. 강화도 남문안길에는 100년 된 한옥 ‘대명헌’이 있다. 최근 젊은 부부가 그 집 한편에 작은 서점을 냈다. 오래된 집처럼 긴 시간 책방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꿈이다.​백두산 잣나무로 지은 집 느리게 걷고 깊이 파고들수록 아름답다. 수더분한 땅 빛,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100년이 훌쩍 넘은 고택, 마을을 감싸 도는 좁은 길에선 시간조차 가던 길을 멈춘다. 세상의 속도를 따르지 않고 긴긴 이야기를 간직해 온 땅. 강화도 남문 안길을 걷다가 고풍스러운 가옥 앞에서 발걸음이 멎는다. 강화도 천석꾼 황국현의 집이었던 ‘대명헌’이다. 강화읍에는 1900년대 초에 지은 근대 한옥들이 아직 건강한 숨결을 내뱉고 있다. 1928년에 지은 이 집은, 부잣집답게 당시 할 수 있는 호사를 다 누렸다. 백두산에서 잣나무를 베어와 대들보와 서까래를 올리고, 창틀과 문틀, 마루, 문간을 하나하나 다 짜 맞췄다. 산림을 벌채하는 권한이 일본에 있을 때였다. 머나먼 북쪽 땅의 나무를 베어 인천항을 거쳐 강화도로 들여오기까지,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해질녘의 ‘대명헌’.한 지붕 아래 ‘그 여자의 그릇 가게’와 ‘그 남자의 서점’을 품고 있다.​그로부터 10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 집은 새 주인 잘 만나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집도 한때는 높다란 담장 안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갔다. “40여 년 동안 비어 있었어요. 사람이 떠난 자리에 큰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온 집안에 넝쿨이 둘러쳐졌지요.” 도예가 최성숙 씨는 7년 전, 비어 있던 이 집을 발견했다. 그는 폐허 속에서도 빛나는 옛것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다. “햇살이 기와지붕을 뒤덮고 있었어요. 어찌나 견고하고 아름다운지 순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답니다.” 빛바래고 군데군데 기와가 깨져 나갔지만 그 자체로 멋스러웠다. 그 지붕이 뭐라고, 40여 년 동안 비어 있던 100여 년 된 집을 덜컥 샀다.“외국은 건물에 서점이 들어서면, 그 건물주가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한대요.”백 년 서점을 향한 부부의 꿈이, 백 년 고택에서 무르익고 있다.시간을 거스르는, 한국의 아름다움지붕만 온전하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니 안방과 사랑방 지붕이 무너져 흙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 정도야 손볼 수 있지 않겠느냐’ 용기를 냈다. 흙은 걷어내고 원래 있던 기와를 가져다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쌓아올렸다. 회복하는 데만 4년이 걸렸다. 이후로도 계속 쓸고 닦아 6년이 지난 이제야 겨우 모습을 갖췄다.▲동네 사람들에게 열려 있던, 황 부잣집 마당의 우물.비바람을 견뎌온 세월만 백여 년이다.(좌)​오래된 집에서 역사를 기억하고 내일을 열어가는집주인 황성숙 씨와 김혜지, 박서연 부부(우)“10년은 잡고 있어요. 처음엔 허물어져 가는 집이 안쓰러워 살려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공간에 새 숨결을 불어넣으면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잃어버린 역사의 페이지를 하나씩 찾는다는 생각으로 집을 매만지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 누가 와도 ‘이것이 바로, 한국의 아름다움’이라고 자신 있게 내보이고 싶다.삼 년 전, 강화도 남문한옥에서 사랑을 싹 틔운 연인.오늘 그 안에서, ‘그 남자의 서점’과 ‘그 여자의 그릇 가게’를 열고둘만의 이야기를 꽃피우고 있다.​겨울 한가운데, 연인을 품어주다2015년 달력이 한 장 남은 어느 날, 한 젊은 남녀가 이 집을 찾았다. 서울 아가씨 김혜지(32) 씨는 강화도 청년 박서연(34) 씨를 만나기 위해, 처음 강화 땅을 밟았다. 서울 한복판에서 버스를 타고 두 시간이나 달려왔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남자친구가 한겨울에 자전거를 타고 마중을 나왔다. 처음 하는 데이트였다. 서운한 마음을 감추고 그냥 걷자고 했다.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남문을 보는 순간, 꽁꽁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이렇게 고즈넉한 풍경이 도시 한가운데 펼쳐질지 몰랐어요.”둘은 남문안길을 걷다 한 오래된 가옥의 문을 두드렸다. 이 집을 세운 황 씨 집안은 방직공장을 운영하며 번 돈으로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와 함께 배재학당을 짓고 독립군을 지원했다. 1947년에 백범 김구 선생이 머물기도 했다. 마음씨 좋은 주인이 집 구경을 시켜주고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인심 좋게 안마당에 있는 나무에서 감을 따서 건네주었다. 쓰윽 문질러 베어 무니 달콤함이 입안에 가득 찼다. 이후 두 사람은 만난 지 1년 되는 때 결혼을 했다. 낭만적인 첫 만남을 이뤄준 이 집에서 기념 촬영을 해 추억의 책갈피에 가지런히 꽂아두었다.  그리고 오늘, ‘그 남자의 서점’과 ‘그 여자의 그릇 가게’를 열고 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부부가 100년 고택에 서점 문을 연 지, 이제 두 달이 됐다. 세상을 하얗게 밝히고 싶어 이름을 ‘소금빛’으로 지었다. 책 파는 걸로는 돈이 안 되니 먹고살기 위해 그릇 가게도 함께 냈다. 벌써 동네 사람은 물론이고 관광객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 아이는 책을 읽고, 엄마는 그릇을 고르고, 아빠는 잠깐 의자에 몸을 기대고 눈을 붙인다. 조금은 게을러도 되는 시간이다. 모처럼 마음이 여유롭다.​“사람들이 책장을 넘기며 삶의 가치를 발견하면 좋겠어요. 그래서 평범한 일상이 소중하게 느껴진다면, 그만큼 기쁜 일이 있을까요?” 남자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책방에서 책을 고르던 추억을 잊지 못해 서점을 열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합일초등학교 앞에서 ‘가망불망’이라는 서점을 꾸렸다. 그 이름은 ‘잊어도 될 것과 잊어서는 안 될 것’을 뜻한다. 살다 보면, 중요한 게 무엇인지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불안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책만큼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있을까.“처음 강화도로 와 서점을 열었을 때, 100년 넘게 지키는 게 꿈이었어요. 이 집으로 와 자연스럽게 100년 서점이 되었으니, 더 긴 시간을 이어가야죠.” 고택에 스민 종이 향이 그윽하다.​information소금빛 서점강화군 강화읍 남문안길 7Ⓣ 010-9845-5999 원고출처 : 인천시 시정소식지 <굿모닝인천> http://goodmorning.incheon.go.kr/index.do​굿모닝인천 모바일북 : http://www.mgoodmorningincheon.co.kr/​글 정경숙 굿모닝인천 편집장│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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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10.04 (목)
  • 천고마비 계절, 원시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인천 여행] 천고마비 계절, 원시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선사시대로 떠나는 ‘고인돌 밀당 체험여행’아주 먼 옛날. 수렵과 어로 활동을 하던 인류 최초의 삶터는 움집이었다. 우리가 캠핑을 즐기는 것은 혹시 수천, 수만 년 전 움집에 대한 DNA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에 가면 선사시대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개성만점의 캠핑여행이 있다. 움막 닮은 텐트치고 선사시대 생활체험을 하는, '고인돌 밀당 체험여행'이 그것이다. 캠핑하기 좋은 계절. 청명한 코발트빛 하늘 아해 선선한 바람을 즐기는 낭만 가득한 가을 캠핑을 떠나 보자.▲고인돌 끌기​​​​부근리 고인돌에서 체험마당 열려한반도 고인돌 중 가장 큰 것 중 하나인 부근리 고인돌 인근 넓은 공터. 주말마다 선사시대 체험마당이 열린다. 고인돌 밀당 체험여행을 알리는 고인돌 끌기 행사. 캠핑에 참석한 가족 중에서 먼저 부족장을 뽑은 후 모두가 힘을 모아 덮개돌을 밀고 당긴다. 큰 돌을 끌기 위해서는 50명 이상의 인원이 필요하다. 참가자들은 직접 고인돌 운반 재현에 참여함으로써 당시 사회적 구성과 권력의 크기를 몸소 느끼게 된다. 인류는 한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게 되자 하늘과 자연을 숭배했다. 하늘과 소통하는 제사장이자 부족의 우두머리인 족장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거대한 고인돌을 세웠다. 부족민의 힘과 마음을 모아 채석을 하고 받침돌을 세우면 덮개돌을 올려 완성한 돌무덤은 하늘과 땅을 사람이 이어주는 다리였다.산과 바다, 비옥한 토지가 있는 강화는 아득한 옛날부터 살기 좋은 땅이었다. 대형 판석을 운반하여 수백 명 이상의 인력이 동원되어야 하는 고인돌이 강화에 많이 발견되는 것은, 든든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는 강한 통치 세력이 있었다는 증거다. “덮개돌을 밀고 당기는 모습에서 착안하여 고인돌 밀당 체험여행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저희가 직접 제작한 원시시대 복장과 장신구를 착용하고 선사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직접 체험해보는 체험프로그램인데요, 백문이 불여일견, 활자로만 접했던 원시 인류의 삶을 상상해보는 살아있는 배움의 장입니다.”▲고인돌 끌기​행사를 주관하는 우리문화재보호회 윤용완 대표는 지난 20년간 인천시의 문화유산을 정성껏 살펴온 ‘문화재 돌보미’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부작용으로 역사의 자취를 찾기 어려운 시대. 선사시대부터 켜켜이 쌓인 강화의 역사를 널리겠다는 소신을 갖고 본 행사를 운영하고 있다.본격적으로 원시캠프 프로그램을 즐기기 위해 선사시대 복장을 장착했다. 원시인 옷에 타조뼈로 만든 장신구를 하고 인생샷을 찍었다. 유년시절 봤던 박수동 화백의 ‘고인돌’이 떠올랐다. 만화 캐릭터가 되어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타조뼈 장신구는 행사 주관단체에서 직접 제작한 것. 져 뼈는 다른 짐승 뼈와 달리 단단해서 도구로 사용하기 좋다. 선사시대 인류도 새뼈를 활용해 생활용품을 만들었다. 체험부스에서 타조뼈로 만든 뼈바늘로 가죽지갑을 지었다. 뼈바늘은 쇠처럼 날카롭지는 않지만 꽤 쓸모가 있다. 동물 털을 비롯하여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각종 섬유질로 실을 자아내던 인류 최초의 직물도구인 가락바퀴가 눈에 띈다. 역사교과서에서만 봤던 유물을 직접 실현해보니 ‘이게 실화냐?’소리가 절로 나왔다. 맨손 미꾸라지 잡기, 토기 빚기 등 오감체험아직은 따가운 한낮 햇볕. 원시인들의 어로생활을 직접 경험해보는 맨손 미꾸라지 잡기를 했다. 장갑이나 뜰채 등 도구 없이 오직 맨손만 사용했다. 머나먼 옛날, 배를 곯고 있을 가족들을 위해 어느 가장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물고기 한 마리와 씨름 했겠지. 활자로만 접했던 옛날이야기를 몸으로 겪어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잡힌 미꾸라지는 겨우 한 마리. 식재료로 쓸 수 있지만, 기분 좋게 놓아 주었다.▲맨손으로 미꾸라지 잡기​▲뼈바늘로 가죽옷 만들기선사시대 토기의 대명사, 민무늬 및 빗살무늬 토기를 만들었다. 문화해설 강사의 설명과 함께 직접 토기를 빚는 시간, 오물 조물 흙을 만지던 한 어린이가 질문을 던졌다.“옛날 그릇은 아래 부분이 왜 저렇게 뾰족해요? 저걸 어떻게 새웠을까요?”“사람은 며칠 굶을 수는 있어도 물이 없으면 하루도 못살아요. 석기시대 사람들은 물을 구하기 쉬운 곳인 강가나 바닷가에서 살았어요. 강화도에 선사시대 유적이 많이 발견되는 이유인데요, 강이나 바다 주변의 땅은 모래나 진흙이에요. 강가나 진흙 위에 안전하게 토기를 꽂아서 세울 수 있기 때문에 빗살무늬 토기의 끝이 뾰족하지요. 인류가 발전하고, 청동기시대가 되면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산지나 구릉지로 점차 주거지가 이동해요. 산지나 구릉지에서는 끝이 뾰족한 그릇이 깨질 위험이 있어요. 그래서 청동기 시대부터는 납작 토기로 변화하게 되지요.”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얻는 살아있는 교육이 이뤄지는 광경이 흐뭇하다. 오감을 활용한 체험학습이 중요한 까닭을 새삼 확인했다.▲불피우기 시합저녁 어스름 무렵, 여기저기에서 탄식이 들린다. 마찰 발화 방식으로 불 피우기 경쟁이 붙었다. 가장 먼저 발화에 성공하는 가족에게 강화 농산물이 제공되었다. 1등 상품을 획득한 가족들은 기뻐서 펄쩍 펄쩍 뛰었다.“용산에서 왔는데요, 평소에도 캠핑을 잘 다니거든요. 놀면서 배우는 특별한 캠프가 있다고 해서 왔는데, 아이들이 설명을 들으며 직접 체험하다 보니 학습에 도움이 되어서 정말 좋네요.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추천해줘야겠어요.”▲신나는 캠핑​바비큐 파티, 가족단위 레크레이션, 장기자랑 등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유쾌한 캠프파이어가 열렸다. 그 옛날 사람들도 사냥에 성공한 날이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모닥불을 피우고 축제의 밤을 즐겼겠지. 이 신나는 캠핑여행에 참여 하고 싶어도 장비가 없어서 주저하고 있다면, 캠핑 장비를 일체 대여해주는 서비스를 활용해보자.문의: 우리문화재보호회 032-934-1400글 김세라 I-View 기자, 사진 나윤아 자유사진가, 우리문화재보호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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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10.01 (월)
  • 가을 인천 페스티벌, 어디까지 즐길래?

    [무대와 객석] 가을 인천 페스티벌, 어디까지 즐길래?

    ​낭만시장, 개항장예술축제, 노을축제 등 10월 행사 풍성본격적인 가을 축제 시즌이 찾아왔다. 인천시는 축제의 계절 10월을 맞아 인천 곳곳에서 골목축제, 문화예술공연, 국제스포츠대회 등 다양한 축제와 행사를 연다.▲강화국악한마당​​추억체험 등 과거로의 여행 ‘낭만시장’10월 6일(토)부터 7일(일)까지 동인천 북광장과 중앙시장 일대에서는 인천의 가장 번성했던 동인천을 추억하는 축제 ‘낭만시장’이 시민들을 추억속으로 이끈다.낭만시장은 일제강점기 무렵부터 1990년대까지 시장과 극장, 상가가 밀집해 있던 인천의 최대 번화가 인천의 동구 일대를 추억하는 의미로 인천시가 시민과 시장 상인들과 함께 기획하고 만든 지역 밀착형 참여축제이다.   낭만시장 축제는 송현야시장 먹거리와 추억의 간식, 시장 음식 등을 맛볼 수 있는‘낭만상회’와 음악공연, 마임, 플래시몹 등이 펼쳐지는 ‘낭만무대’, 공예품 만들기, 한복〮․교복 체험, 레트로 포토존, 추억의 놀이로 꾸며진‘낭만 레트로(복고)’등 다양하고 풍성한 콘텐츠로 동인천 북광장 일대를 가득 채울 예정이다.  음악·춤·낭만이 함께하는 ‘인천개항장예술축제’근대 건축물이 몰려 있는 개항장문화지구에서는 음악, 무용, 퍼포먼스 공연을 선보이는 ‘2018 인천개항장예술축제’가 12일(금)부터 14일(일)까지 3일 동안 열린다.이번 행사는 인천아트플랫폼(야외무대, 공연장)과 신포동의 예술공간(재즈클럽 버텀라인, 흐르는 물, 다락 소극장 등 3곳) 등 2개 지역으로 나뉘어 열린다.인천아트플랫폼에서는 타악퍼포먼스 ‘아작’의 개막 공연과 뮤지컬 ‘성냥공장 아가씨’에 이어 재즈오케스트라, 힙합, 스윙댄스, 올스타빅밴드, 국악관현악, 발레단, 연극 등 30여 종의 공연이 진행되고, 동호회원들이 꾸미는 시민무대도 펼쳐진다. 신포동의 예술공간 3곳에서는 한국 최고의 하모니카 연주자로 인정받는 ‘전제덕 밴드’, 인기 여성 보컬리스트 강허달림,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티에리 마이야르, 3인조 보컬 트리오로 구성된 미국 뉴욕 출신의 빈티지 재즈팀 ‘뉴욕나이팅게일스’가 출연한다. 경인아라뱃길 따라 열리는 ‘노을 축제(Sunset River Festa)’10월 13일(토) 경인아라뱃길에서는 노을을 주제로 인천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노을 축제(Sunset River Festa)’가 열린다.▲경인아라뱃길-아라인천여객터미널​아라뱃길에서 처음 개최되는 노을축제는 일몰 시간에 강과 노을을 걷는 체험 프로그램과 메시지 볼, 유등, 종이배 만들기, 물풍선 이벤트 등 남녀노소 모두가 같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인천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의 버스킹 등 시민참여 공연이 다채롭게 진행된다.가을 들녘 향기 속으로 ‘국화꽃 축제’10월 6일(토)부터 21일(일)까지 16일 동안 아시아드주경기장 건너편에 위치한 연희공원에서는 ‘인천 국화꽃 축제’가 개최된다.국화꽃 축제에는 국화 11,000점을 포함하여 목화·금어초·페츄니아 등 각종 초화류 33,900점이 전시되고, 화분 분양·손수건 꽃물들이기, 압화 책갈피 만들기 등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행사도 함께 진행한다.책과 함께 하는 ‘多북多북 페스티벌’‘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에 참여한 인천의 공공도서관, 서점과 시민들이 함께 하는 ‘다북다북 페스티벌’이 10월 6일(토) 문화예술회관 야외광장에서 열린다.‘다북다북 페스티벌’은 초․중학생 시(詩) 백일장, 미추홀북 선포식, 다북다북 콘서트, 시화․도서전시회 등 문화와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역사 골든벨, 독서코칭, 동아리 발표회 등 26개 프로그램과 함께 캘리그라피 퍼포먼스, 금관 5중주, 오카리나 앙상블, 청소년 댄스 공연을 통해 가을 정취 속에 책을 느낄 수 있는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크루즈 타고 인문학과 재즈 즐기는 ‘리딩보트’올해 리딩보트는 10월 11일(목) 오후 2시 정서진아라터미널에서 출발해 김포아라터미널을 기점으로 왕복 운행한다.▲경인아라뱃길-시천가람터(인천시 제공)‘리딩 보트(Reading Boat)'는 배(보트)에서 책을 읽는 행사라는 뜻으로 ‘선상 유람'과 ‘인문학'을 결합시킨 것으로 책의 수도 인천을 알리기 위하여 지난 2015년부터 시작됐다.전체 소요 시간은 2시간 30분 가량으로 <알쓸신잡>에 출연했던 건축가 유현준 교수의 특강, 인천의 문학작가 양진채 작가와 함께하는 대담, 재즈 밴드 ‘헬로 재즈(Hello Jazz)’의 공연 등이 진행된다.청소년의 문화와 꿈 한마당 ‘인천 청소년 문화대축제’10월 27일(토) 송도 센트럴파크에서는 청소년들의 문화적 역량을 한 자리에 모아 건전한 여가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꿈과 비전을 나누는 ‘인천 청소년 문화대축제’가 열린다.​▲2017년 인천 청소년 문화대축제​‘청소년 체험문화마당’에서는 청소년들과 지도자가 함께 준비한 세대공감존, 세계테마여행존, 변화무쌍존, 동아리활동존, 정보활동존 등 예년에 비해 더욱 다채롭고 재미있는 체험부스가 무료로 운영되고, ‘청소년 슈퍼스타 경연대회’는 인천의 끼와 열정으로 가득찬 19세 이하 청소년들이 댄스, 전통, 노래 부문으로 나누어 멋진 공연무대를 펼치며, 초청공연팀의 축하공연도 진행된다.청년예술가들이 펼치는 ‘인천 청년문화대제전’청년예술가들이 직접 기획하고 참여하는 '인천 청년문화대제전'이 10월 27일(토)부터 28일(일)까지 송도 트라이보울에서 이틀 동안 펼쳐진다.올해 인천 청년문화대제전은 일반적으로 대중들에게 접근이 어려운 청년예술가들의 창작 작품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기획돼, 사전에 접수한 총 309개팀 중 심사를 거쳐 선정된 66개팀이 공연·영상·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청년예술가들의 열정과 재능이 담긴 작품 전시는 물론 아트마켓을 통해 청년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할 수 있어 실질적인 작품유통으로 청년예술가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2018 인천 청년 문화대제전 포스터​천년고도 강화서 열리는 ‘삼랑성 축제’강화의 대표적인 축제중 하나인 삼랑성 축제의 올해 주제는 ‘천년의 꿈’이다. 강화삼랑성축제는 10월 6일부터 14일까지 열린다. 고려개국 1,100주년을 기념하는 10월 6일 오전 10시 ‘삼랑성 미술 실기대회와 글쓰기 대회’와 오후 1시 고려의 정신과 꿈이라는 주제로 최태성 강사의 ‘역사 강좌’가 열린다. 이날 오후 7시부터 방송인 전제향의 사회로 가창력이 풍부한 이은미, 이정, 동물원, 안예은이 출연하는 ‘전등사 가을음악회’가 열린다. 7일(일) 오전 10시 30분에는 전등사를 창건한 아도화상과 사찰을 가꾸고 지켜 온 역대조사들에 대한 ‘다례재’를 진행한다. 이날 오후 1시에는 호국영령을 위한 ‘영산대재’를 갖는다. 해 마다 인천 강화지역의 호국영령을 발굴하여 위령제를 봉행하고 있는데, 올해는 강화출신 박계석 순국선열의 위령제를 치를 예정이다.13일(토) 오후 1시에는 풍물놀이, 버나, 땅재주, 줄타기 등을 선보일 ‘남사당놀이’가 준비되어 있고, 행사 마지막 날인 14일(일) 오후1시에는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마당극 ‘통화리 경로당’이 예정되어 있다. 

    2018.10.06 ~ 2018.10.28
    작성일 2018.10.01 (월)
  • 사라진 해변에 ‘군수공장’ 들어섰다

    [인천 이야기] 사라진 해변에 ‘군수공장’ 들어섰다

    ​일제시대 근로자 삶 엿보는 경성화학공업주식회사 사택용이 하늘로 날아올라갔다는 전설을 담은 용현동과, 학이 날개를 펼친 모습을 감추고 있다는 학익동. 이들 동네가 바다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곳에서 바다가 사라지기 시작한 때는 일제강점기에 매립를 하면서 부터다. '토지금고'라 부르는 인천광역시 남구 용현2동과 용현5동 그리고 숭의1동 일부는 과거 약 17만평의 염전지대를 매립한 땅이다. 그리고 용현5동과 학익1동 일원의 약 21만평에 달하는 매립지는 1930년대 말 부역 확장과 일제의 병참기지화 정책에 따라 공업지대로 형성되기 이전에는 염전으로 개발하려고 했다.당초 기획했던 염전축조 계획이 1937년 4월을 기점으로 공업지대로 변경됐다. 그 이유는 1929년에 준공해 17만평의 염전지대에서 소금을 생산하던 조선염업주식회사가 1930년대에 때마침 불어 닥친 대공황의 여파로 좀처럼 수익을 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이렇게 변경된 용현동. 학익동 일대의 해안 매립 사업은 1937년도부터 시작돼 1944년까지 이어졌다. 당시 일본은 조선병참기지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용현동과 학익동 일대에 경성화학공업주식회사나 히타치제작소, 제국제마주식회사 등 대공장들이 건설됐다.매립지에 들어선 ‘경성화학주식회사 인천공장’ ▲용현동·​헉익동 일대 공장 배치도 / 1947년도 항공사진A:경성화학공업주식회사    B:히타치제작소 인천공장    C:인천염공주식회사 공장D:조선중앙전기제작소    E:제국제마주식회사 인천공장    F:다나카공업주식회사​일제 강점기 당시 용현동과 학익동에 건설된 주요 공장들은 서측 해인지대로부터 경성화학공업주식회사 인천공장, 히타치제작소 인천공장, 인천염공주식회사 공장, 조선중앙전기주식회사, 다나카공업주식회사 인천공장, 제국제마주식회사 인천공장 등이다. 이들 공장들의 본격적인 건설은 1930년대 말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경성화학공업주식회사도 1939년 5만평 규모의 토지를 매입해 1941년에 공장을 완공했다. 경성화학공업주식회사는 일본의 관서페인트가 ‘조선 진출’을 위해 자본금 3백만 엔으로 설립한 회사로 중정석 등을 원료로 한 군수품 도료 생산을 목표로 삼았다. 공장이 늘면서 회사들은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매일신보>1940년 11월 19일자 지면에 따르면 경성화학공업주식회사 인천공장이 완공되기 이전에 ‘ 엔지니어 만만세’라는 제목으로 기획기사를 게재하면서 ‘기술자 전성시대’가 도래했다는 해설을 덧붙였다.하지만 이 시기는 중일전쟁이 지속되고 태평양전쟁을 목전에 둔 때이므로 일본 자본에 의한 대공장의 건설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 이상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경성화학공업주식회사 역시 회사 설립 목적이 군수품 생산이었다. 전쟁 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군수공장으로 지정됐다면 공장 근로자들은 직업 이전의 자유 없이 공장에 묶인 채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려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정은 용현동, 학익동 해안가에 형성된 대공장들이 모두 마찬가지였다. 공장과 함께 건설된 사택들은 이 시대 근로자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장소다.당시 사택은 현재 2호 연립 1동, 6호 연립 1동만 보존 ▲경성화학공업주식회사 부지 (현 용현초등학교, 동아아파트, SK스카이뷰 부근)​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나 용현초등학교와 동아아파트, SK스카이뷰 주변은 일제 강점기 경성화학공업주식회사 인천공장이 있던 곳이다. 당시 주소는 용현동 610번지로 되어있다.경성화학공업주식회사 역시 공장부지 내에 사택을 건설하였는데, 그 사택은 회사들에 비해 규모는 작았다. 공장 노동자들을 위해 공장 서쪽의 외곽지대에 1944년 사택이 건립되었다. 당시 인천부에 제출했던 사택신축허가신청서에는 2개의 블록에 18동의 건물을 세우는 것으로 계획되었는데 이중 6동은 단독 사택, 6동은 2호 연립, 나머지 6동은 6호 연립으로 추정된다. 사택을 건설하던 중에 해방을 맞아 계획과는 달리 2호 연립 5동과 6호 연립 2동만이 지어졌던 것으로 보인다.▲경성화학공업주식회사 사택 / 1947년도 항공사진  2호연립 5동과 6호연립 2동 중 현재 남아 있는 사택 두 동 A:2호연립 B:6호연립경성화학공업주식회사 인천공장은 광복 후 적산으로 분류되어 미군정 관할 하에 들어갔다. 유명환 등 3인이 공동 관리 형태로 운영을 이어가던 경성화학주식회사는 원료 부족으로 운영난을 겪다가 1946년 하순 공장 문을 닫은 것으로 전해진다.광복 이후 70여년 흐르면서 일제 강점기의 흔적들은 많이 사라져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힘들다. 경성화학주식회사 부지위엔 용현 초등학교와 아파트 또는 빌라들이 들어와 그 시간들의 기억을 잊은 채 각각의 삶들을 이어가고 있다. 사택이 있던 자리는 대부분 빌라촌으로 바뀌었고, 현재 사택은 2호 연립 1동과 6호 연립 사택 1동만 남아있다. 사택의 위치는 용현초등학교 옆 용현동 625번지 일대다.▲현재 남아있는 경성화학주식회사 사택 / 2호 연립(좌), 6호 연립​(우)​장옥순 어르신은 집에 대해 묻자 "일본인들이 지은 집"이라며 경성화학주식회사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곳으로 시집을 오셔서 40여년을 사셨다는 장옥순 어르신께(현재 6호 연립 사택 거주) 경성화학주식회사에 대해 여쭈어 보았지만 전혀 알길 없다고 하신다. 해방 후 70여년의 시간 속에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잊히고 묻혔다.▲현재 6호 연립에 거주하시는 분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고 계신 모습​역사학자 에드워드 헬리트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과거로부터 비롯된 연결고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고민할 것인가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과제가 아닐까.※ 이 기사는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연구원 손민환의 [도시마을의 형성과 변화]를 참고로 하여 작성하였습니다.글 최시연 ‘i-View'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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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10.01 (월)
  • 3화 에어컨, TV 전기절약 숨은 꿀팁

    [웹툰 · 갤러리] 3화 에어컨, TV 전기절약 숨은 꿀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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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10.01 (월)
  • 한 컷, 한 줄로 풀다

    [렌즈 속 인천] 한 컷, 한 줄로 풀다

    ​돌담 넘어 도망친 100세 노송- 연수구 연수동 원인재(源仁齋) 사진․글 유동현 (인천이야기발전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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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10.01 (월)
  • 인천서 열리는 세계 유일 국가대항 '여자 골프대회'

    [동네방네] 인천서 열리는 세계 유일 국가대항 '여자 골프대회'

    ​UL 인터내셔널 크라운, 한국 등 8개국 참가여자프로골프협회(LPGA)최고 이벤트는 '2018 UL 인터내셔널 크라운 골프대회'가 10월 4일~ 7일까지 인천 송도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코리아에서 펼쳐진다. 2014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처음 열린 이대회는 2016년 시카고 제2회 대회를 거쳐 미국 외 지역에서는 인천에서 최초로 열리는 빅 이벤트다.​2014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개최된 첫 대회를 시작으로 2016년 시카고 제2회 대회를 거쳐 미국 이외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제3회 대회가 대한민국 인천에서 개최된다.총상금은 160만 달러이며, LPGA 롤렉스 세계랭킹 순위에 따라 선정된 8개국의 대표선수 4명이 총 4일간 자국의 명예를 걸고 대결을 펼치게 되며, 최종라운드 결과 세계 최고의 골프 국가로 선정된 우승팀에게는 단 하나의‘크라운’이 주어진다.올해 참가국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잉글랜드, 호주, 태국, 스웨덴, 대만이다. 우리나라는 박성현 부터 유소연, 김인경, 전인지 까지 메이저 챔피언을 내세워 우승에 도전한다.‘톱시드’로 우승에 도전하는 한국 대표팀이 1회 우승국인 스페인과 2회 우승국 미국에 이어 크라운(왕관)을 획득할 수 있을지 골프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LPGA 국가별 순위에 따라 1위인 한국, 4위 잉글랜드, 5위 호주, 8위 대만이 한 조에서 경기를 펼치며, 2위 미국, 3위 일본, 6위 태국, 7위 스웨덴이 다른 조에서 경기를 하게 된다. 예선 3라운드 결과 각 조별 1, 2위와 와일드카드(각 조 3위 중 1개국) 총 5개국이 최종라운드에 진출하여 국가별 순위를 다투게 된다.​한편, 대회가 열리는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코리아는 ‘2015 프레지던츠컵’ 개최 등 국제대회 및 다수의 국내외 메이저급 골프대회 개최 경험이 있는 세계 100대 명문 골프장 중에 하나이다. 총 코스 총 길이 5,969m(6,528야드), Par72 규모로 국제경기 개최에 필요한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골프장으로 꼽히고 있다.인천시는 ‘2015 프레지던츠컵’에 이어 이번 대회를 통해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의 플레이를 직접 관전하려는 국내외 골프 관광객을 유치하여 인천을 전 세계에 널릴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그동안 홍보, 위생, 관광, 소방 등 9개 분야에 걸쳐 대회지원단을 구성해 대회 개최를 지원해 왔다.대회 조직위에서는 대중교통 이용을 당부하며, 81번, 82번, 91번 버스를 이용하면 대회장 입구에서 하차할 수 있고, 인천지하철 1호선 센트럴파크역(2번 출구)에서 대회장 입구로 가는 셔틀버스를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회개요  ○ 대회명칭 : 2018 UL 인터내셔널 크라운   ○ 대회기간 : 10월 1(월) ~ 7(일) * 경기일 : 10월 4(목) ~ 7(일)  ○ 장    소 :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인천 송도국제도시)  ○ 참가선수 : 32명 (1개국 4명, 총 8개 국가 참가)  ○ 대회방식 : 국가대항전 (34매치/포볼매치 24회, 싱글매치 10회)  ○ 총 상 금 : 미화 $1,600,000 (1위팀 선수당 미화$100,000)  ○ 관람예상인원 : 10만명 (국내 85,000명, 해외 15,000명)  ○ 주최/주관 : LPGA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     ※ 타이틀스폰서 : UL(Underwriters Laboratories, 美 글로벌 안전 인증회사)  ○ 후    원 : 인천광역시  ○ 방    송 : NBC, NBC Golf(미국), MBC, JTBC Golf(한국)  ○ 홈페이지 : http://www.ulcrown2018.com/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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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10.01 (월)
  • 짜장면이 살려낸, 인천 차이나타운, 6만 명의 거주지, 뉴욕 차이나타운

    [외고 · 칼럼] 짜장면이 살려낸, 인천 차이나타운, 6만 명의 거주지, 뉴욕 차이나타운

    ​인천 VS 세계 도시 ⑩ 인천 차이나타운 VS 뉴욕 차이나타운경인전철 1호선을 타고 인천역에 내리는 순간 바다 내음이 폐부를 파고든다. 역 밖으로 향하며 짠내에 익숙해질 즈음 길 건너편으로 시선을 돌리면 한자로 ‘중화가(中華街)’라고 쓰인 거대한 문이 보인다. 한국에서 찾기 힘든 중국식 대문인 ‘패루’가 인천 차이나타운엔 세 개나 있다. 그 패루들 사이로 1883년 개항 이후 부침과 부활의 역사를 견뎌낸 차이나타운이 펼쳐진다. 근대사와 악수하는 거리 1990년대 말만 해도 인천 차이나타운은 쇠락한 동네였다. 그 역사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오군란 이후 외국인 거주지로 지정된 이 지역에 청나라 상인들이 정착하면서 새로운 음식이 전파됐다. 일본인과 서양인도 함께 오갔기에 아시아와 서구 문화 양식이 혼재하는 공간으로 발전했다. 상업과 무역으로 번성하던 차이나타운은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으로 상처를 입었고, 1970년대 외국인 부동산 제한법 등 반이민자 정책으로 점차 커뮤니티의 힘을 잃어갔다. 그러다 2000년대부터 이 지역을 역사적 관광지로 여기는 새로운 시각이 대두되면서 관광 특구로 재생 과정을 거쳤다. 현재 이곳은 한국에서 유례없이 번성하는 차이나타운으로 역사의 새로운 챕터를 쓰는 중이다.▲인천 차이나타운​▲짜장면의 발생지인 인천 차이나타운의 짜장면​차이나타운 번성의 일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짜장면이다. 인천 거주 중국인들이 야채나 고기를 넣은 춘장에 면을 비벼 먹었던 방식이 짜장면의 시초이며, 당시 인기 식당이었던 ‘공화춘’에서 한국식 짜장면을 처음 선보였다. 지금도 남아 있는 ‘공화춘’ 건물은 그 의의에 맞춰 ‘짜장면박물관’으로 되살아났다. 물론 먹거리가 차이나타운 스토리의 전부는 아니다. 중국인과 일본인이 정착하면서 세운 석조 건물들이 복고적인 운치를 더한다. 맥아더 장군 동상이 서 있는 자유공원까지 올라가면 이 지역의 근대사를 걸어서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인천 차이나타운은 단순히 중국 음식점이 모여 있는 동네가 아니라 개항의 분위기를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는 테마파크에 가깝다.Incheon Chinatown인천 차이나타운위치 : 인천시 중구 북성동, 선린동 일대주요 먹거리 : 짜장면, 공갈빵, 홍두병, 화덕만두, 치빗코야키 등 한국식 중국 요리와 중국 길거리 음식 액티비티 : 짜장면박물관, 한중박물관, 인천아트플랫폼, 송월동동화마을, 자유공원, 개항장 일대 등New York Chinatown뉴욕 차이나타운위치 : 뉴욕 맨해튼 차이나타운 지역주요 먹거리 : 샤오롱바오, 딤섬, 북경오리, 우육면 및 쌀국수, 에그 타르트 등 중국, 대만, 홍콩, 베트남 요리 액티비티 : 미국의 중국인 박물관(MOCA), 마하야마 사원, 콜럼버스 공원, 아지 이치반 쇼핑, 차이니스 아이스크림 팩토리 등중국계 음식의 경연장뉴욕 차이나타운은 탄생부터 지금까지 이민자의 거주지로 살아남으며 주목받았다. 1860년대부터  대륙 횡단 철도 공사를 위해 일하러 온 중국인들이 뉴욕에 머무르면서 차이나타운이 형성됐다. 1968년 차별 철폐 정책으로 이민이 확대되자 홍콩과 광둥 지역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됐다. 베트남 전쟁 이후에는 베트남계 중국인들이 뉴욕으로 넘어왔고, 1980년대부터는 중국 푸젠성과 대만의 이민자들이 이주해 차이나타운 인구 구성은 더욱 복잡해졌다.▲다양한 중국 음식의 향연장 뉴욕 차이나타운에서 빠질 수 없는 북경오리 전문점​뉴욕 차이나타운의 자랑거리는 무엇보다 맛있고 다양한 중국 음식에 있다. 중국식 볶음 요리를 접목한 ‘찹수이’가 뉴욕 서민들의 인기를 끌면서 방문객이 다양해졌고 미국인들을 위한 투어가 성업하면서 차이나타운은 점차 빈민가에서 이색적인 관광지로 변모했다.1990년대부터 시작된 중식당의 고급화는 차이나타운을 맛집 거리로 승격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제는 인구 6만 명이 모여 사는 규모가 큰 차이나타운이자 뉴욕에서 꼭 방문해야 할 관광지로 거듭났다. 요즘에는 필리핀,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권 이민자들이 모여 살면서 음식의 종류가 더욱 다채로워졌다.▲뉴욕 차이나타운의 신년 축제 풍경​뉴욕 차이나타운의 또 다른 매력은 뉴욕인의 활력이 그대로 느껴지는 거리라는 점이다. 다국적 기업인 맥도날드나 하겐다즈의 간판조차 한자로 적혀 있는 이 붉은색 넘치는 거리에 다양한 인종이 활보하는 모습은 ‘코스모폴리탄’ 뉴욕의 한 단면으로,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다. 점심시간에는 근처 직장인과 관광객이 모여들어 시끌벅적하다.   안타까운 것은 뉴욕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다. 차이나타운 또한 재개발의 위기를 맞고 있어 이런 매력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알 수 없다.특별한 차이나타운인천 차이나타운은 거주지로서의 활력은 다소 부족하지만, 도시 재생의 아이디어가 빛난다. 인천만의 특별한 역사를 보존하고 유지하면서 현재에 접목시키려는 노력이 ‘인천아트플랫폼’이나 ‘구 제물포구락부’ 같은 매력적인 형태로 등장한다. 인천아트플랫폼은 110여 년 전 개항기 때 지은 창고를 리모델링해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또 1902년에 건축한 구 제물포구락부는 외국인들의 사교클럽으로, 현재 스토리텔링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다.▲도시 재생의 아이디어가 빛나는 인천아트플랫폼​도시의 역사·문화적 자산에서 영감을 얻은 아이디어가 인천만의 차이나타운을 만들어가고 있다. 앞으로 차이나타운의 진화에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가 더해질지 그 미래가 기대된다.원고출처 : 인천시 시정소식지 <굿모닝인천> http://goodmorning.incheon.go.kr/index.do​굿모닝인천 모바일북 : http://www.mgoodmorningincheon.co.kr/​글 홍수경 문화 칼럼니스트 │사진 류창현 포토디렉터,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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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10.04 (목)
  • 인천을 사랑한 바다

    [외고 · 칼럼] 인천을 사랑한 바다

    ​인천의 아침바다는 늘 인천을 향하고 있었다. 때론 블루나 카키의 무늬로, 때론 검붉은 빛깔로 밀려들었다. 비류왕이 미추홀(인천) 왕국을 건설한 이래 인천은 풍요의 바다를 개척해 나갔다. 사람들은 ‘능허대’(凌虛臺)에서 바다를 건너 대륙으로 향했고, 이국인들은 인천~산둥(山東)을 잇는 등주항로를 따라 능허대로 들어왔다. ‘산둥성의 개가 짖고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능허대는 삼국시대 번성한 국제무역항이었다. 능허대뿐만이 아니다. 자연도(영종도)엔 ‘경원정’이란 객관이 송나라 사신과 상인들을 접대하기도 했다. 그렇게, 바다를 통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교역이 인천에서 닻을 올렸다.인천의 바다가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때는 18세기 이후다. 중국과 일본을 정복한 서구 열강들이 조선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독일 등 열강들은 이양선을 보내 문호 개방을 강요하며 시위를 일삼았다. 설상가상으로 서구 열강의 으름장에 ‘개항을 당한’ 일본이 그들의 흉내를 내며 같은 방식으로 조선을 압박해 들어왔다.강화도 염하에 군함을 먼저 띄운 건 프랑스와 미국이었다.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는 그러나 조선의 문을 열지 못했다. 조선은 함포 몇 발에 개항을 한 중국, 일본과는 달리 쉽게 정복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관군은 물론이고 의병, 승병까지 합세한 조선인들은 최후의 순간에도 눈을 부릅뜬 채 적의 얼굴에 칵 하고 피를 내뱉으며 죽어갔다. 서서히 지쳐가던 조선에서 호기를 잡은 건 일본이었다. 운요호(雲揚號) 사건을 빌미로 일본은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1876)을 체결한다. 침탈의 기반을 마련한 일본은 조선을 점점 옥죄며 결국 굳게 닫혔던 쇄국의 자물쇠를 끊어버린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던 제물포는 그렇게 일본과 서구 열강의 희생양으로 세계를 만난다. ‘조선은 내 것’이라며 외국 군대들 간 벌인 전장도 인천 앞바다였다. 그들에겐 기회였지만 우리에겐 수난의 바다이던 시기였다. 1883년 개항은 인천에 ‘대한민국 최초’란 수식어를 단 유·무형의 역사·문화 유산을 남기기도 했다. 근대식 군함 양무호, 묘도해수욕장, 인천수족관, 주안염전에서부터 근대적 행정기관인 인천해관(1883), 해군사관학교인 조선수사해방학당(1893), 바다에 등불을 밝힌 팔미도등대(1903)에 이르기까지 인천엔 우리나라 최초의 역사가 즐비하다.  오랜 세월, 바다를 둘러싼 격랑의 시대를 의연하게 헤쳐온 인천은 지금, 새로운 도전의 항해를 시작했다. 지난해 컨테이너 물동량 300만TEU 시대를 열어젖힌 인천항은 이제 400만TEU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민선 7기 인천시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남북공동 어로수역을 조성하는 ‘서해평화협력시대’의 개막을 준비 중이다. 머잖아 인천의 바다에선 포탄과 불법 중국 어선 대신 우리 남북 어민들이 어우러져 꽃게를 잡는 풍경을 보게 될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국립인천해양박물관’ 건립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가 반드시 통과돼야 하는 당위성은 예나 지금이나, 위기였거나 기회였거나 인천이 ‘한반도의 인후’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개항기의 낯설고 딱딱한 서양문물을 먹기 좋게 씹어 전국으로 공급한 도시도 인천이었다. 한 예로 종교가 그랬고, 음악도 마찬가지다. 바다를 중심으로 흘러온 우리나라 역사의 중심축이었고, 남북통일과 해양 강국의 미래를 견인하고 있는 인천. 인구 300만의 도시임에도 국립문화시설이라곤 2015년 유치한 ‘세계문자박물관’이 전부라는 현실 또한 국립해양박물관이 하루속히 인천에 들어서야 하는 이유로 회자된다. 이 가을, 황해 위로 아침 햇살이 부서져 내린다. 바다가 출렁일 때마다 무수한 햇살의 조각들이 물비늘로 반짝인다. 저 무수한 태양의 편린들은 혹시 바다를 부둥켜안고 살다 간 인천 사람들의 영혼이 아닐까.원고출처 : 인천시 시정소식지 <굿모닝인천> http://goodmorning.incheon.go.kr/index.do​굿모닝인천 모바일북 : http://www.mgoodmorningincheon.co.kr/​글 김진국 굿모닝인천 총괄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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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10.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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