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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서적 300권, 필름 400여 편 ‘시네마 천국’

    [인천 이야기] 영화 서적 300권, 필름 400여 편 ‘시네마 천국’

    영화보물창고 ‘인천영상위원회 한류콘텐츠관’ 영화 콘텐츠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인천영상위원회’는 일본식 창고를 개조해 만들었다. 과거 일제때 지어진 가와바타 철물점 건물을 시민들이 사무실로 만들어 쓰다가 인천영상위원회가 활용하고 있다. 낡았지만 단단하게 지어진 빨간색 건물에는 피천득의 ‘인연’서 나오는 아사꼬가 살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인천영상위원회는 직원들이 손수 페인트 칠해가며 사무실을 꾸몄단다. 옛 일본 건물을 그대로 살린 건물 구조가 호기심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하다. 이곳은 인천지역 세트장을 소개하거나, 인천지역 영상물 제작 유치 등의 일을 하는 곳이다. 특히 작년 12월에 한류영상콘텐츠관을 개방, 시민들에게 인천의 영화산업과 문화산업을 알리는데 일조하고 있다.    1층 커피를 파는 곳 옆 작은 공간에는 비밀요새처럼 아늑한 좌식 아지트가 있다.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드디어 다락방 같은 공간이 나온다. 이곳에선 누구든 비치된 DVD영화를 볼 수 있다. 컴퓨터 모니터가 작다면 스크린을 내려서 나만의 영화관을 만들 수도 있다. 삼삼오오 모여 영화를 보면서 서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서 영화를 봐도 시끄럽다고 눈치 주지 않는다. 물론 놓친 부분은 다시 되돌려볼 수 있어, 영화관에서는 할 수 없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인천과 관련된 영화부터 인지도 높은 외국영화 까지 400여 편의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다. 인천과 영화, 문화 전반적인 부분과 관련된 책도 300여 권이나 구비되어 있다. 어른들, 아지트 공간을 찾다“이런 공간이 있는 줄 몰랐어요. 우연히 지나가다 들렀는데 정말 좋네요. 저희는 커피숍인줄 알고 들어왔는데 영화도 볼 수 있고 조용해서 다음에 또 들를 예정입니다.” 박동철(인천 서구) 씨와 이용호(인천 서구) 씨는 커피 맛도 좋고 조용해서 마음에 든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화인 백승기(인천 남동구 만수동) 씨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영화관련 데이터베이스가 풍부해서 이곳에 자주 들릅니다.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와 영화인의 교류 장으로서 이용할 수 있어 소중한 공간이지요.”라고 말하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많이 모여서 영화에 대해 많은 교류를 하길 희망합니다.”라고 덧붙였다.인천, 영상 창작의 베이스캠프로 서다인천영상위원회 이지은 전략기획팀장은 “이곳은 시민들이 사부작사부작 걸어와 영화도 볼 수 있고 동아리활동이나 회의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입니다.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많이 이용되었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하고 “앞으로 인천영상위원회는 인천영상창작의 베이스캠프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입니다.”라고 말했다.사실 인천은 문화콘텐츠는 많지만 문화 인프라가 서울에 집약되어 있다 보니 영화인이 서울로 나가는 게 현실이란다. “창작은 사람을 키우고 지역을 담았을 때 빛을 발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인천이 사람을 키우는데 소흘했다면, 이제라도 인천영상위를 통해 인천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데 구심점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덧붙였다.인천영상위원회는 앞으로 ‘찾아가는 영화관’을 통해 섬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도 문화적 혜택을 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1층 공간은 시민들을 위해 개방해 동아리 활동이나 회의실 등으로도 빌려줄 생각이란다.  <인천영상위원회>인천 중구 제물량로 206번길 17032-435-7172  이현주 I-VIEW기자  o7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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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1.24 (수)
  • 커피로 그리는 인천萬畵

    [인터뷰] 커피로 그리는 인천萬畵

    ‘인천골목문화지킴이’ 이성진 대표  “큰 도로가 우리 몸의 동맥이라면 골목은 실핏줄 같은 거예요. 실핏줄이 사라지면 몸의 말단부(末端部)는 바로 괴사하고 말아요. 손가락 발가락 끝까지 영양공급이 안 돼 세포가 썩어드는 거죠. 심각한 성인병의 대부분은 실핏줄이 막히거나 터지면서 발생해요. 지역공동체도 마찬가지예요. 동네골목이 사라지면 공동체성이 단절되고, 끝내는 서서히 지역공동체가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오죠. 다들 넓고 큰 도로를 내는 데에만 정신이 쏠려, 작고 오래된 골목길 하나가 사라지는 것에는 관심조차 없어요. 골목을 통해 오가던 ‘사람과 사람사이의 끈끈했던 정(情)’도 그만큼 엷어지는 거죠. 골목이 필요 없는 아파트와 대형건물들의 개발이 생활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바꿔준 건 분명하지만, 이웃과의 소통은 반대로 소원해지고 개인주의화 되는 부작용도 많아요. 유럽 같은 나라들이 작은 골목 하나조차 오랜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 가꾸고 보존하려는 이유죠. ‘인천골목문화지킴이’는 동네골목의 역할과 의미를 홍보하고 지역공동체성 회복을 목적으로 2008년 결성된 협동조합이에요.” 골목, 그 길이 존속한 역사만큼 이야기가 쌓인 장소2012년부터 ‘인천골목문화지킴이’대표를 맡아 인천의 골목문화와 그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이성진 선생(59세)을 동인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희끗한 백발에 미소가 선한 인상이다. 잔잔한 어투에서 옹골진 선비의 고집이 느껴진다. 인천영화관광경영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현직 교사란다.“볕조차 들지 않을 것 같은, 낡고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일지라도 다 나름대로 이유와 필요가 있어서 오랜 세월 존재해온 거예요. 골목은 그 길이 존속한 역사만큼 누대에 걸쳐 켜켜이 사람의 이야기가 쌓여있는 장소죠. 누가 태어나거나 죽어 상여로 나가고, 동네로 휘감아 드는 바람결을 따라 온갖 소문들이 퍼지고, 배곯던 시절 소박한 음식들이 이집 저집 담을 넘던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들이 골목마다 빼곡해요. 골목은 그 지역민의 삶과 역사, 아이덴티티 같은 요소들이 고스란히 배여든 현장이죠.”학생들이나 일반인들로부터 답사요청이 올 때마다 만사 제쳐두고 구석구석 인천골목을 누비며 안내와 설명을 도맡을 뿐 아니라, 인천골목역사와 사료발굴에도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그의 인천사랑은 유별나다.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옛 인천지리와 역사지식에도 해박한 그가 인천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이 언뜻 믿기지 않을 정도다.“대전에서 태어나 초, 중,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도 대전에서 마쳤어요. 북한 미사일기지로 유명한, 평안북도 철산군 백량면에서 월남하신 부친께서는 양초공장을 운영하셨죠. 평범한 가정에 눈에 별로 띄지 않는 조용한 학생이었어요. 대전대신고등학교 1학년 때, 짝사랑하는 여학생에게 전하지도 못할 편지를 쓴답시고 시집을 뒤적여 시를 베껴 쓰다 문학이란 것에 설핏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2학년 올라가면서 그런 제 가슴에 기름을 끼얹어주신 분을 만났죠. 고대신문 편집장출신인 윤석달 선생님이 국어교사로 발령받아 오셨어요. 그 젊은 선생님은 교과서는 버려둔 채, ‘황석영의 객지’나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 같은 소설이야기며 ‘문학과 지성’, ‘창작과 비평’등의 문학지와 거기 실린 문학작품들로 수업을 이끌어 가곤 하셨죠. 입시를 목전에 둔 학생들의 불만과 항의로 1년 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가셨지만, 목표도 방향도 흐릿했던 제 인생을 난생 처음 들끓게 만들어준 사건이었어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하는 ‘키팅’선생이었던 셈이죠. 그분의 영향으로 닥치는 대로 문학책을 섭렵하기 시작했어요. 김수영시집 ‘거대한 뿌리’를 수학책 표지 속에 감추어 수업시간 내내 몰래 읽기도 했죠. 다 이해는 안 돼도 가슴 밑바닥부터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올라오곤 했어요.”     문학을 좋아했던 순수청년 국어교사 되면서 인천 상경 그렇게 한남대학교 국문과로 진학했단다. 대학은 온통 데모판이었다. 수업은 고사하고 강당을 점거해 밤샘하는 일도 허다했다. 순수시를 지향하는 ‘청림문학동인회’에 들어가 시를 쓰고 선배들과 문학토론에 열중하기도 했다.“학점 신경 안 쓰고 관심 가는 수업은 모조리 찾아다니며 들었어요. 특히 판소리에 꽂혀 최래옥 교수님의 ‘구비문학강의’에서부터 춘향전과 심청전 강독을 아침7시부터 쫓아가 듣곤 했죠. 도서관에 틀어박혀 방각본 춘향전과 심청전을 혼자 공부한 적도 있어요. 불문학에 끌려 당시 문학서클 지도교수 중 한분이었던 이가림 선생님의 불시강독수업도 신청해 듣는가 하면, 영시와 독일 표현주의 시에 푹 빠져들기도 했죠.”졸업 후 군대를 마치고 1988년 4월 ‘인천부평고등기술학교(현 인평자동차정보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발령 나 인천으로 왔으니, 올해로 30년째 인천사람으로 살고 있는 셈이다. 이제 인천은 편안한 옷처럼 그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그 학교에서 4년간 근무했는데 너무 힘이 들었어요. 당시는 학력인정만 되는 각종학교여서 학습 분위기가 엉망이었거든요. 학생들은 드세고 중도탈락 비율도 많은 데다가 주야간을 동시 운영했는데, 야간부학생들 직장알선까지 담당교사 몫이었죠. 빡빡한 주간부 수업에 야간부담임까지 맡아 처음에는 열정적으로 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힘에 부치더라고요. 무엇보다 학생들 수업료가 밀리기 쉬운 방학 때면, 교사봉급도 따라서 밀리는 일이 다반사였죠.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던 터라,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웠어요. 동료교사들조차 하나, 둘 정규학교로 떠나게 되면서 저도 결국 사표를 쓰고 말았죠.”마포구 서교동에서 참고서를 출판하는 ‘한샘출판사’에 문제출제위원 겸 직원으로 취직했다. 하지만 3개월 만에 다시 사표를 썼다. 교단에 서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간절했기 때문이다. 동암역 근처에 학원을 차렸다. ‘은진글샘배움터’라는 논술과 논리를 가르치는 글쓰기학원이었다. 수능 초창기 때라 아직 논술이 일반화되지 않은 탓에 학원생모집은 지지부진했다. 너무 시대를 앞서 간 것이다.“그러던 중 영화여상(현 영화관광경영고등학교)에 국어교사 자리가 났어요. 학원을 접고 교사로 부임해, 바로 ‘전교조’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했죠. 참교육을 실천하겠다는 순수한 열망으로 뛰어든 전교조활동은 인천지부 부지부장과 중앙본부정책위원까지 역임하면서 10년간 최선을 다해 할 만큼 했다고 자부해요. 하지만 점차 ‘노선차이’에 따른 대립이 격화되고 동료교사들과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오히려 참교육의 본질이 흐려졌다는 회의가 들더라고요. 그래서 전교조활동에서 손을 뗐어요. 대신 지역사회운동 쪽으로 방향을 틀었죠.”     몇 년째 ‘동일방직노동운동사’를 집필 중‘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 집행위원장도 맡고, 인천의 근현대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취재를 통해 ‘인천기독교사회주의’에 관한 논문 2편을 감리교신학대학 학술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인천 내리교회 핵심교인들인 박남칠과 이보운, 그리고 인천출신으로 동경대경제학과 최초유학생인 이보운의 매제, 김요한 등이 활동했던 해방 후 인천남로당 핵심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란다.“해방 후의 인천은 ‘제2의 모스크바’로 불릴 만큼 좌익세력이 활개를 치던 도시였어요. 특히 부처산 일대와 소위 송림동 똥고개 8번지로 불리던 지역은 요시찰대상 지역이었던 탓에 인천상륙작전 당시에도 미군의 집중포화를 당하기도 했어요. 전쟁이 끝난 뒤에는 또 황해도 연백, 장연, 해주 등지에서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우후죽순 이곳에 움막을 짓고 악착스레 삶을 뿌리내린 곳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아픈 상처를 지닌 비운의 도시 인천은 경제개발5개년 계획으로 대규모 공단이 조성되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모여들게 되면서 70~80년대 노동운동의 메카로 다시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되죠.”이런 인천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동일방직노동운동사’를 몇 년째 집필 중에 있단다. 계속해서 ‘인천근대기독청년운동사’와 ‘인천근대인물사전’도 펴낼 계획으로 틈나는 대로 자료를 모으고 관련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취재와 녹취를 따는 중이란다. 가방 속에서 손 글씨로 꾹꾹 눌러 쓴 낡은 집필노트를 꺼내 보여준다. 이순(耳順)을 목전에 두고도 끊임없이 공부하며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는 그의 열정이 아름답다.“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골목의 양상은 확연히 달라져요. 지형도 높낮이도 가옥의 형태도 다 다르죠. 서울 북촌이나 서촌골목은 너무 깔끔해요. 일제 강점기부터 일본인들이 드나드는 곳이라 우리의 치부를 보이기 싫은 민족의 자존심이 그렇게 가꾸어 온 거예요. 서울깍쟁이라는 별명이 그래서 붙은 거죠. 반면 우리 인천의 송현동이나 화수동골목은 지저분해요. 전혀 정리가 안 돼 있죠. 우리끼리 서로 빤한 생활이라 치부를 감출 필요가 없거든요. 그래서 좁고 다닥다닥 붙어있어도 괜찮아요. 여름이면 문도 활짝 열어놓고 골목에 나와 돗자리에 벌러덩 누워도 흉허물이 안돼요. 장작불 피워 음식도 나눠먹으며 니꺼 내꺼 없이 살아온 게 골목의 삶이고 역사예요. 아파트문화에서는 꿈도 못 꿀 얘기죠.”이렇듯 골목은 정이 살아 숨 쉬던 우리 지역공동체의 허파 같은 위치였다. 골목 밖 세상의 몰인정도, 밟고 밟히는 야멸찬 사회경쟁논리도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모두 무장해제 되고 마는 마법의 장소였다. 오랜 세월 우리네 공동체의 소도와 같던 그런 골목들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하나 둘 자취를 감추는 현실에 인터뷰 내내 기자 마음도 짠했다. 글, 커피그림  유사랑 I-View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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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1.24 (수)
  • 울동네 맛고수.4

    [웹툰 · 갤러리] 울동네 맛고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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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1.24 (수)
  • 회의청

    [인천 이야기] 100년이 넘는 시간 견디며 곰삭은 화교 유산

     청국영사관 회의청, 초대영사 가문연은 잘못된 기록   인천화교협회 뒷마당에는 청나라시대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고요하면서도 쓸쓸하게 자리하고 있다. 청국 영사관 회의청 건물이다. 청나라 시대에 지어 남아있는 유일한 공공기관 건물이다. 오랫동안 세월의 풍상을 이기고 100년 넘게 살아남았다. 회의청은 1910년에 청나라 영사로 부임한 가문연(賈文燕)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의청 건립연도도 현판에 1910년에 건립된 것으로 적혀있다. 청나라가 공화국으로 바뀐 시기가 1912년이기에 청나라 시대를 대표하는 유일한 공공건물이다.  청나라 시대 지어진 유일한 공공건물건물의 명칭이 회의청인데 정말 회의실 용도로 쓰였는지는 알 수 없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용도를 추측할 뿐이다. 회의청에 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이 있다. 화교협회 푯말에는 초대 영사를 가문연(賈文燕)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가문연은 초대영사가 아니다. 인천에는 1883년 중국 조계지가 생겼고 당시에는 화상지계(華商地界)라고 불렀다. 조계지 관리는 서울에 주둔하고 있는 총판(總辦) 조선상무위원회(朝鮮商務委員會) 소속 진수당(陳樹棠)이 직접 관리했지만 평상시에는 조계내에  화교상인이 추천한 상인회장이 책임을 맡아 운영했다. 당시 청나라는 인천, 부산, 원산 등 3곳에 조계를 두었다.   조계지는 1895년 중국이 청일전쟁에 패하자 조선에서의 모든 권리를 상실하면서 폐지된다. 그로인해 영사관 설치는 가능하지만 조약을 체결하거나 사신을 파견하는 일은 금지되었다. 이때 인천에 처음 파견된 영사는 당영호(唐榮浩)였다. 그는 1896년부터 1902년 1월 까지 근무했다. 이후 허인지(許引之), 주문봉(周文봉), 당은동(唐恩桐), 마영발(馬永發), 가문연(賈文燕)이 영사로 온다. 1909년에는 특이하게도 일 년 동안 3명의 영사가 교체된다. 당은동은 그해 4월 27일 승진하여 귀국길에 오르고 부영사격인 마영발이 그해 9월까지 영사 대리를 맡았고 그 후 부산 영사로 재직하고 있던 가문연이 인천, 목포, 군산의 영사로 온다.청국영사관은 1884년 4월 청국조계내에 세워졌다. 청국영사관의 당시 건물 구조는 본청, 순포청(경찰서), 전보국 등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현존하는 건물은 회의청이 유일하다. 청국영사관 위치도 현재 화교협회가 아닌 인천화교학교 유치원 자리로 알려져 있다.   회의청 출입문과 창문은 중국건축 양식100년이 넘은 회의청의 외관은 옛날 그대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건물은 기단위에 건물을 세우고 맞배지붕을 올린 벽돌건물이다. 기와는 건축당시의 것은 아니다. 건물을 개보수 하는 과정에서 교체한 것이다. 건물은 너무 낡아 비가 오면 물이 새고 곰팡이 피는 등 심각하게 노후된 상태다. 회의청은 중국과 한국식가옥이 절충된 구조다. 이 건물에서 중국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것은 출입문과 창문이다. 출입문은 양쪽으로 접을 수 있고 창문은 아래위로 들어 올릴 수 있는 구조다. 중국건축 양식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회의청 앞 두 개의 기둥은 1922년에 세웠고 조선중화총상회(朝鮮中華總商會)가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둥에는 정자로 한자들이 쓰여져 있다. 이 문구에 대해 화교들도 정확한 뜻을 잘 모르고 있다. 회의청앞에 있는 돌기둥은 옛 영사관에 있던 것을 가져다 이곳에 설치했다. 기둥이나 건물의 밑을 받치고 있는 돌에 문양이 들어가 있어 독특하다. 문양은 오랜 세월을 견디느라 마모된 상태다. ​ 회의청의 내부는 거실과 양쪽에 방이 있는 구조다. 거실에는 재물의 신인 관우상을 모신 제단이 모셔져 있었다. 제단에는 관우가 즐겨차고 다녔던 보검이 양쪽에 있고 제단에는 물병, 향초, 향로 등이 놓여져 있었다. 제단 앞에는 빨간 천으로 북궐(北闕)이라고 쓴 비문이 있었다. 아마도 북경의 자금성을 지칭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자금성은 청나라와 명나라때에 황제의 궁궐로 사용했다. 향로에는 천후성모(天后聖母)라고 적혀있다. 천후성모는 마조신의 다른 이름이다. 예전엔 배로 중국과 인천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바다의 여신 마조에게 배가 풍파당하지 않도록 기원했다. 지금은 회의청 리모델링 공사 때문에 제단이 치워진 상태다.회의청에는 인천화교의 오랜역사를 담은 제사용품이나 악기 등을 보관하고 있어 보물창고나 다름없었다. 구조는 거실을 중심으로 양쪽에 방이 하나씩 있다. 왼쪽 방은 화교들의 국적인 대만을 건국한 쑨원(孫文)을 기념하는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화교들의 지난 역사가 고스란히 이곳에 담겨 있다. 반대쪽 방은 오래전에 화교청년회 사무실로 사용했었다. 건물 리모델링 공사 뒤 전시공간으로 개방회의청 뒤편으로는 방공호가 있었다. 지금은 돌로 막아놓았다. 중산학교 손승종(孫承宗) 교장은 학교다닐 때 철문으로 만들어진 방공호 문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방공호는 일제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우리와 달리 화교들은 일본 제국주의 전쟁에 대해 매우 불안을 느꼈고 그래서 방공호를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이 방공호는 화교학교 복흥당과 연결된 것같다고 화교들은 추측했다.     화교들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으며 굳건히 어려운 세월을 견뎌온 회의청은 이제 시민과 함께 하는 공간으로 바뀐다. 우리의 이웃인 화교들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배우며 시민들이 공유하는 전시공간으로 활용한다. 회의청은 새로운 변신을 위해 건물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다.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는 방식이다. 인천대 중국학술원은 이 공간에 미팅룸과 전시공간을 만들어 시민강좌도 개최하고 기획전시도 열 계획이다.  ​ 새로 단장하는 회의청은 손문의 자료들이 있는 공간은 자료실로, 다른 방은 차이나타운의 옛 모습을 가상현실로 볼 수 있게 VR체험관으로 꾸며진다. 인천대 중국학술원이 제작한 청국조계의 옛 거리와 현재 차이나타운 모습을 한눈에 대비해 볼 수 있도록 만든 VR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100년 전 인천 차이나타운을 체험하고 즐기는 이색적인 경험이 가능하다.  회의청이 시민문화공간으로 바뀌면 화교사회의 문도 더욱 활짝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인천안의 독특한 문화를 보고 스치는 것에 머물지 않고 화교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고 함께하는 공간으로 변신을 기대한다.   글 이용남 ‘i-View’ 편집위원, 사진 서은미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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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1.22 (월)
  • 그녀가 만든 보자기 프란체스코 교황에게 선물

    [인천인의 삶] 그녀가 만든 보자기 프란체스코 교황에게 선물

    국가 자수기능장 이정숙 명인, 자수전 눈길 ‘2018년 올해의 관광도시 강화’ 선정을 기념하여 강화군청은 물론 민간에서도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 전통문화인 자수를 주제로 하는 전시회가 열려 눈길을 끈다. 국가자수기능장(수 자수 7811)보유자인 이정숙 명장의 자수전이다.   자수는 자기와의 싸움속에 꽃피는 예술자수전이 열리는 ‘갤러리 더 웨이’는 2011년 5월에 개관한 강화의 미술관이다. 최귀숙 관장은 역사와 문화의 고장 강화도야 말로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와 잘 어울린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난 7년 간 한국의 문화를 널리 알리는 전시회를 기획해 왔다. ‘2018강화관광의 해’를 맞이하여 특별한 기획을 준비하다가 이정숙 작가의 자수전을 결정 하였다.   “작품을 처음 보자마자 눈물이 났어요. 한 땀, 한 땀 명인의 숨결이 느껴졌거든요. 한국의 아름다움을 소개 하는 전시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습니다.”이정숙 명장은 40년 전에 자수를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께서 놓는 자수를 어깨너머로 익히다가, 동국대 사회교육원에 다니게 된다. 자수와 관련한 교육기관이 드물던 시절이었다. 이정숙 작가는 대한민국 자수명장 유희순 선생님과 인천지방 인간문화제 제 13호 자수장 낭간 김계순 선생님께 사사 받으며 30년 간 기본기를 갈고 닦는다. 세상에 결과물을 내놓은 것은 10년 전이라고 하니 지독한 완벽주의자다. 최고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할 수 없는 명장의 고집이 경이롭다. 이정숙 명인의 철저한 작업방식은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2014년 프랑스로부터 명장 작위를 받고, 2014년 8월 프란체스코 교황님 방한 당시 대통령 선물로 이정숙 작가의 보자기가 선정 되었다. 교황님께 전달된 자수 화문수(花紋繡) 보자기는 복을 쌓아 드린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백색 명주에 30여 개의 색실로 꽃과 나무, 새를 수놓은 이 작품은 현재 교황청 바티칸 미술관에서 소장 중이다. 2017년 한해만 파리, 일본, 터키, 독일을 비롯하여 11개국에서 전시회가 열렸다고 하니, 문화 선진국에서 더 열광하는 작가다.   우리의 전통자수가 서양인에게 어떻게 비춰지는지 궁금했다. 서양에도 자수는 있지만, 도안에만 수를 놓는 서양자수와 달리, 우리의 전통자수는 바탕까지 바느질을 하는 메꿈자수다. 서양인들은 그들의 퀼트 문화와 비교 하며, 크고 넓은 면에 다양하게 수를 놓는 명인들의 노고에 깊은 경외감을 느낀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명장 작위를 받게 된 ‘봉황 혼례용 자수 궁중 보자기’도 한 칸에 최소 한 달이 걸렸다고 하니, 자수는 자기와의 싸움 속에서 꽃피우는 예술이 아닐까 싶다.   전통자수 안에는 우주가 담겨한반도의 자수문화는 언제부터 시작 되었을까? 가장 오래된 유물은 고려시대다. 소재의 특성상 상하기 쉽고 보관도 어려워 고려시대 이전 자수품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고려불화를 중심으로 발달했던 전통자수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궁궐과 사대부는 물론 민가까지 퍼졌다. 지역마다 특징이 다른데, 개성 지방은 혼례 때 신부가 드리는 댕기인 고이댕기의 화려한 매듭처리가 독특하다. 강릉 수화문(樹花紋) 보자기와 주머니도 유명한데, 배를 타고 나가는 어부 남편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며 어촌마을 여인들은 바늘을 잡았다고 한다. 이정숙 명인은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고전을 복원 하고 있다.    길상문양, 십장생, 모란, 소나무, 운학, 봉황, 기러기, 원앙, 용, 박쥐, 나비, 복(福), 수(壽), 만다라. ‘나’가 아닌 ‘가족’의 번영과 건강을 바라며 바늘에 실을 꿰었던 조선의 여인들이다. 세련된 색상과 정교한 무늬를 자랑하는 전통자수의 예술적 성취에는 신앙에 가까운 사랑이 담겨있다. 남편, 자식, 부모님의 안녕을 위한 기도처럼 귀한 것이 또 있을까. 이런 간절함이라면 하늘도 모른 척 할 수 없을 것이다. 혼례를 앞둔 딸이 시집에서 사랑 받기를 바라며 친정어머님이 손수 지은 이불, 베개, 납폐함을 보고 있노라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눈이 침침하여 바늘귀에 실 넣기도 어려웠을 텐데, 호롱불 아래 수를 놓았던 이 땅의 어머니들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이정숙 명인의 작품은 단순히 과거 유물의 재현이 아니다. 되살아난 조상들의 얼과 정신은 큰 울림을 준다.    전통자수 안에는 우주가 담겨있다고 한다. 실용적인 서양자수와 다른 지점이다. 특히 이정숙 명인은 전통의 미를 지키면서 색과 형태에서는 독창적이고 현대적인 조형감각을 불어넣어 생활 공예의 한 장르였던 자수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이정숙 명인은 전통의 오방색만을 고집하지 않고 견사를 염색하며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돌아가실 때 까지도 손에서 매듭을 놓지 않으셨던 어머니의 자수를 향한 순수한 열망과 가르침을 평생 기억하는 이정숙 명인. 자연과 생명의 기운을 바늘 끝에 되살리는 명인의 모습은 수행자를 닮았다. 우리전통자수의 아름다움을 대한민국 너머로 전파하고 싶다는 명인의 바람대로 자수에 깃든 예술과 장인정신이 온 세계로 퍼질 때까지 이정숙 명장의 작업이 계속되길 기원한다.     <전시안내>기간: 1월13일 ~4월 28일장소: GALLERY THE WAY문의: 032-932-8112(월요일 휴관)글 김세라 ‘i-View’ 기자, 사진 나윤아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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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1.24 (수)
  • 강화도를노래한가수

    [외고 · 칼럼] 강화도를 노래한 가수 조미미 노래들

     인천, 노래, 그리고 음악인⑨ - 강화도, 그리고 석모도   인천광역시를 대표하는 명소들을 떠올리며 해당 장소의 간략한 역사와 그 곳을 소재로 탄생했던 여러 대중가요들, 그리고 관련된 인천 출신, 혹은 인천을 근거로 활약했던 뮤지션들의 알려진, 또는 숨은 이야기들을 함께 엮어본다. 한국인들에게 강화도는 학교 역사 시간에 배웠던 몇 가지 정보들로 기억되고 있다. 몽골 제국의 침략 당시 39년간 임시수도의 역할을 했었던 곳이란 사실이 가장 많이 기억에 남아 있을 테고,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참성단이 있는 곳이란 사실까지 기억한다면 학교 다닐 적 역사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한 분일 것이다.  ​ ​외세에 맞선 수많은 항쟁의 중심그러나 한국에서 4번째로 큰 섬인 이 곳은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확인할 유적들이 가득하며, 100여기 이상의 고인돌이 발견되어 2000년 이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많은 수의 고인돌 때문에 마한의 소국들 중 하나가 강화도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삼국시대에는 한강의 관문으로서 백제, 고구려, 그리고 신라가 모두 이곳을 노렸고, 그 결과 세 나라가 백제-고구려-신라의 순서로 한 번씩 영토로 차지했었다. 삼국사기에서 혈구도라고 불렸던 이 섬이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던 것은 고려시대부터였고, 목판 인새소와 소금 전매소 등이 설치되었다. 몽골의 침략으로 도읍을 옮긴 상황에선 강도(江都)라 불렸고, 개경 환도 후에는 배중손과 삼별초의 투쟁이 시작된 곳이기도 했다.    조선 시대 이후에는 한강 입구를 지키는 위치로서 진이 설치되면서 국방 요지의 구실을 확실히 하게 되었다. 특히 정묘호란과 병자호란때는 인조나 왕족들이 이곳으로 피신을 하였다. 이후 숙종 때는 해안 전역의 돌출부에 53개의 돈대를 설치하여 강화도의 전 지역을 요새화했으며, 조선 말기 외세의 군대가 조선 왕실에 무력시위를 벌였던 여러 사건들 –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 – 역시 이곳에서 일어났다. 앞선 두 전쟁에선 승리했지만, 결국 일본과는 강화도 조약을 채결하면서 외세의 힘은 더욱 거세게 밀려들어오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섬의 문화재는 약탈당했고, 많은 것들이 파괴되었지만 전쟁 후 1970년 강화대교 건설, 1976년 강화중요국방유적복원 정화사업으로 갑곶돈대, 외성, 광성돈대, 광성제단, 초지진, 덕진진 등이 복원, 관리되고 있다. 특히 381년(소수림왕 11)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한 절인 전등사는 이 곳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창건 당시에는 진종사(眞宗寺)라고 했으나 1282년(충렬왕 8) 충렬왕의 비인 정화공주가 승려 인기(印奇)를 중국 송나라에 보내 대장경을 가져오게 하고, 이 대장경과 함께 옥등(玉燈)을 이 절에 헌납한 후로 전등사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1678년(숙종 4)에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가 건립되면서 왕조실록을 지키는 사찰로 왕실의 보호를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편, 강화도 서쪽 바다 건너에는 석모도라는 섬이 있다. 강화도 외포항 근처에 위치한 이 섬은 서쪽으로는 서해안 및 서검도, 미법도, 주문도 등과 마주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서해안, 북쪽으로는 바다 건너 북한 및 교동도와 마주하고 있다. 지난 2017년 6월 28일 연육교가 건설되기 전까지는 외포리 선착장에서 여객선을 타야 이 섬에 갈 수 있었다. 이곳에는 전등사만큼 사람들에게 알려진 보문사가 있다. 마애관세음보살좌상이 유명하며 실제로 낙산사, 보리암과 더불어 3대 해상 관음기도 도량이기도 하다. 강화도 노래엔 애상과 낭만이 가득 담겨서울에서 김포를 거치면 일찍이 1970년대부터 자동차로도 빠르게 닿을 수 있었던 강화도이지만 어쩌면 서울이나 타지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섬으로 인식이 되었을 강화도이기에, 이곳을 소재로 삼은 노래들 역시 60~70년대 가요들의 경우 확실히 애상과 낭만이 강조된 노래들이 많다. 그 중 강화도와 관련된 노래를 두 곡이나 레퍼토리에 보유하고 있는 가수 조미미와 그녀가 부른 강화도에 대한 노래들은 주목해 볼 만하다. 조미미는 1947년 전라남도 영광군 출생이라 인천이 고향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 역시 바다와 가까운 곳에 살았기에 많은 레퍼토리가 ‘바다’나 ‘항구’, ‘섬’과 관련이 있는 곡들이었다. 실제로 그녀의 1965년 데뷔곡이 ‘떠나온 목포항’이었으며, 현재까지도 그녀의 대표곡으로 불리는 ‘바다가 육지라면’ 역시 바다를 건너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님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곡이다. 그 밖에도 ‘선생님’, ‘먼 데서 오신 손님’ 등이 그녀의 대표곡이다. 그 가운데 1968년 강포중 작곡집(해당 작곡가의 곡만 담은 옴니버스 앨범) [강화도처녀]의 타이틀곡 ‘강화도 처녀’와 1972년 또 하나의 옴니버스 앨범이자 그녀가 타이틀곡을 불러 히트한 [사랑은 장난이 아니랍니다]에서 불렀던 ‘강화도 갈매기’가 그녀가 노래한 강화도에 대한 곡들이다.   “굽이치는 물결 소리 바람 따라 울고 갈 때/전등사의 목탁 소리 구슬프게 들려만 오네/깊은 정만 새겨놓고 야속한 님 어디로 가서/이렇게도 안 온다고 한숨짓는 강화도 처녀” (조미미, ‘강화도 처녀’ 가사)“강화도 갈매기가 슬피 울때 떠나간/바닷가에 부는 바람 내 심정 전해다오/이기고 돌아와요 이기고 돌아와요/이 밤도 두 손 모아 님의 무운 비옵니다” (조미미, ‘강화도 갈매기’ 가사) 두 곡 모두 전형적인 애상 가득한 트로트 곡들이지만, 그녀가 들려주는 보컬의 깊은 울림은 노래 속 화자의 깊은 슬픔과 그리움을 진하게 전달한다. 그녀는 1980년대까지 꾸준히 가수 활동을 하다가 2000년에 재일교포 사업가인 남편과 일본으로 건너가 생활했고, 2010년 귀국하여 타계 전 까지 여러 무대에서 활동하다가 2012년 9월 자택에서 간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66세.   인천을 제2의 고향으로 삼은 가수가 만든 노래, ‘석모도에 노을지면’석모도를 다룬 노래는 사실 거의 찾기 힘들다. 그 가운데 유일하게 ‘석모도에 노을지면’이라는 곡이 인천의 음악 팬들에게는 꽤 알려져 있고, 인천 사람들이 아니어도 이 곡을 아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 곡을 만들고 노래한 주인공은 비록 밀양 태생이지만 현재는 인천에 터를 두고 제 2의 고향처럼 살고 있는 가수 김수곤이다. 그는 처음에는 부산 지역을 기반으로 노래를 하다가 서울로 올라와 1979년 하늘과 땅이라는 듀오로 활동하면서 대중에게 처음 알려졌다. 이 팀은 ‘님을 위해 핀 꽃’, ‘가을에 떠난 여인’ 등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2장의 앨범을 끝으로 해체했고, 그는 솔로 앨범 [가버린 철새]를 발표하면서 독자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 앨범 이후 한참을 가요계에서 멀어졌다가 우연히 인천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이 곳에 애정을 갖고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그는 강화도에 매우 애정을 갖게 되었는데, 외포리에서 배를 타고 석모도에 들어가 몇 주 동안 살면서 그 과정에서 얻은 감정들을 노래로 만든 곡이 ‘석모도에 노을지면’이었다.   ​ “석모도에 달이뜨면 바다에도 달이뜨고/눈썹달 보노라면 나는 니가 보고파라/여객선도 잠이들면 찾아오는 사람없어/보문사 풍경소리만 밤하늘에 퍼져가네/아~아~ 석모도 다시오면/지친몸 외로운맘 달빛에 띄워보내리” (김수곤, ‘석모도에 노을지면’ 2절 가사) 이 노래는 지난 2016년 10월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된 ‘애인(愛仁)’ 콘서트에서 관객들이 뽑은 ‘인천의 노래’에서 김트리오의 ‘연안부두’에 이어 2위를 차지했던 곡이기도 하다. (※ 이 행사에서는 시가 노래 제목이나 가사에 인천의 지명 등이 담긴 대중가요 190여곡을 선정해 추린 13곡을 관객들 앞에서 직접 노래하고 이후 투표로 가장 맘에 드는 3곡을 뽑았다.)    한편, 작년에 경인방송 주관으로 기획 발매된 인천의 노래를 담은 앨범 [Sound of Incheon] 속에서도 이 곡을 역시 인천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재즈 그룹 헬로재즈(Hello Jazz)가 재즈로 편곡해 연주하는 버전으로 감상할 수 있다. 보컬 김동욱, 피아노 채송아, 베이스 이건승, 그리고 프랑스인 드러머 기욤 데보(Guillaume Desbos)로 구성된 이 밴드는 2016년 첫 EP [뉴촌 New:村]을 통해 데뷔했고, 재즈라는 서양의 감성 위에 동양적인 감성을 함께 녹여내는 준수한 사운드로 재즈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인천의 로컬 재즈 밴드로서 성실하게 지역 무대에서 멋진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 이들의 앞으로의 활동에 더 기대를 가져본다.   글/ 김성환 음악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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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1.22 (월)
  • 오래된동네송림동

    [리뷰] 구도심의 보석 송림동의 모든 것 담다

    수도국산박물관, ‘오래된 동네 송림동’ 발간  인천을 대표하는 구도심 중의 하나인 동구. 조선시대 유명 성씨의 세거지에서 개항이후 군사요충지, 일제강점기의 산업터와 1960~1970년 생활터,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동구에 위치하고 있는 수도국산박물관은 달동네라 불렸던 송현동의 고달프고 소박했던 그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 지난 2005년 건립했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으로 가는, 아니 오르는 길, 차로는 조금 버겁다 느껴지는 이길을 수없이 오르내렸을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들을 추억하는 이들, 또 어쩌면 그들 중 하나였을지도 모를 이들이 오늘도 박물관을 찾아 그 시절의 흔적을 보고 듣고 매만진다.  수도국산박물관에서는 올해 동구 역사를 이해하는 데 첫 걸음이 될 ‘인천의 오래된 동네 송림동’을 발간했다. 이 책은 송림동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1년여 동안 진행하며 만들어졌기에 더욱 귀하다. 책에는 송림동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담고자 했다. 지리와 역사를 알아보고 일제강점기 이후 송림동 산업의 전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책은 송림동의 지리와 역사, 이십세기 인천의 산업터 송림동, 송림동 사람들의 삶과 공간, 도시속의 작은 고향 송림동으로 구성하고 있고 마지막장에는 송림동에 살았던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송림동의 모습을 다시금 추억하게 만든다. 책에는 옛 송림동의 가옥, 문 닫은 문방구의 모습을 사진으로 볼 수 있도록 구성해 추억에 잠기게 한다. 출간 : 인천광역시 동구,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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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1.22 (월)
  • 파이팅 ! 평창! ‘인천시민애인(愛仁)’응원단 모집 등

    [인천뉴스] 파이팅 ! 평창! ‘인천시민애인(愛仁)’응원단 모집 등

    인천시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지원하기 위해 인천 시민 애인(愛仁) 응원단을 모집, 경기를 참관하고 응원활동을 펼친다. 지난해 11월 1일과 금년 1월10일부터 12일까지 인천지역 성화봉송 행사를 성황리에 마친 인천시는 올림픽 입장권 구매와 인천 시민 애인(愛仁) 응원단 활동을 통해 30년 만에 개최되는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5인이상 단체를 대상으로 선착순으로 모집하는 2천여 명의 인천 시민 애인(愛仁) 응원단은 사회 저소득층, 소년소녀가장, 다문화가정 등 사전 모집된 시민들과 함께 응원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동계올림픽대회 기간인 2월 17일 알파인스키(정선)와 18일 강릉과 관동 하키센터에서 실시되는 하키경기를, 동계패럴림픽대회 기간인 3월 10일에는 휠체어 컬링(강릉)과 장애인아이스하키(강릉), 3월 17일에는 장애인아이스 하키(강릉) 경기를 관람하며 해당국 선수를 응원하고 인천시홍보 활동도 펼칠 계획이다.응원단 참가를 원하는 시민과 단체는 인천시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서를 접수하거나 시 체육진흥과(☎440-4953~6)를 통해 방문 접수하면 된다.한편, 인천 시민 애인(愛仁) 웅원단은 시를 통해 경기 입장권, 교통편, 중식을 제공받는다. 설 명절 앞두고 부정·불량 축산물 일제단속인천시는 2월 9일까지(3주간) 다가오는 설 명절을 앞두고 부정·불량 축산물 유통을 방지하고자 관내 축산물 관련 업체 일제 단속을 추진한다.  이번 단속은 축산물 최대 성수기인 설 명절을 맞아 보다 안전하고 위생적인 축산물 먹거리를 시민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원산지 허위표시, 유통기한 경과제품, 축산물 작업장 위생관리 실태 점검 등 부정·불량 축산물의 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시 및 10개 군·구가 일제 단속을 실시한다. 관내 도축장, 축산물가공업, 식육포장처리업, 축산물판매업 등 제조·가공·판매·유통업소 총 4,149개 영업장을 대상으로 갈비 선물세트, 햄 선물세트와 제수용품과 부적합한 식용란(계란)의 유통여부 등을 중점 점검한다.  수입 축산물의 원산지를 국내산으로 허위 표시하거나 젖소·육우고기를 한우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행위, 쇠고기 등급을 속여 부당이익을 챙기는 행위, 유통기한 경과제품 보관·판매 행위, 표시사항 위반, 불량 축산물 취급행위 및 성수기 단기채용 직원(아르바이트)의 건강진단 실시 여부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단속한다.또한, 각 군구에서는 금번 특별 위생감시에 직접소비자인‘명예축산물위생감시원’을 동원하여 시민이 부정불량 축산물이 유통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축산물의 위생 및 거래질서 유지를 위한 홍보·계몽 등의 역할을 할 예정이다.전자파일 정보공개 수수료 무료화 추진인천시는 전자파일의 정보공개 수수료 무료 범위를 확대하고, 화재증명원 발급 수수료의 무료화를 추진한다. 현행 전자파일의 경우 1MB 이하는 무료이나 1MB 초과시 1MB마다 100원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파일용량과 상관없이 이미 전자파일 형태로 보유·관리하는 정보(문서․도면․사진 등)는 모두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게 된다.전자파일의 정보공개 수수료 무료화는 정보 공개의 활성화를 가져와 시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복잡한 수수료 징수에 따른 행정낭비도 개선함으로써 행정비용의 절감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1건당 800원의 수수료를 징수하였던 화재증명원 발급 수수료가 무료화 된다. 화재증명원은 화재 피해를 당한 시민이 보험회사나 세금감면을 위한 관공서 등에 제출하는 증명서이다.올해부터 인천수산자원연구소가 해양수산부(국립수산과학원)로부터‘수산생물 병성감정 실시기관’으로 지정받아 양식장이나 갯벌생물의 전염병을 진단·확진할 수 있는 공인기관으로 각종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앞으로 인천시는 수산양식생물의 대량 폐사 예방 및 전염병 확산 방지 등의 긴급 대응이 가능해 지며, 어업인들은 수산 생물질병과 관련한 여러 검사 및 진단을 받아볼 수 있게 된다. 검사 및 진단 수수료는 시험항목에 따라 1만5천원에서 최대 5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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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1.24 (수)
  • 점박이물범친구들

    [뉴스 속 뉴스] 300만 인천 대표 할 신규 캐릭터 이름 뭘까?

    등대, 물범 '등대리, 애이니, 꼬미, 버미'로 네이밍  인천시는 300만 인천을 대표할 신규 캐릭터‘등대를 사랑하는 점박이물범 친구들’의 이름들로 등대리, 버미, 꼬미, 애이니로 확정했다.  세부 선정 절차는 1차 점박이물범 네이밍 후보군 6개와 등대 네이밍 후보군 6개를 선정하고, 2017년 12월 21일부터 22일까지 온·오프라인을 통해서 인천 시민 500명, 인천 제외 전국민 500명, 외국인 300명 등 총 1천300명을 대상으로 네이밍 선호도 조사를 거쳐 최종 점박이물범 선호도 1~3위 후보군 3개, 등대 선호도 1위 1개를 선정했다. 또한 2018년 1월8일 인천시민 500명을 대상으로 2차 네이밍 적합도 조사(온라인조사)를 통해 점박이물범의 각 캐릭터별 이름을 결정했다.확정된 각 캐릭터별 이름은 다음과 같다. ․ 등대는‘등대리’로 인천의 든든한 지킴이이자 인천을 위해 발벗고 뛴다는 의미에서 등대+대리의 조합으로 만들어졌다. ․ 점박이물범인‘버미’는 씩씩한 점박이물범을 친근하게 표현하기 위해 물범이에서 따왔다.․‘꼬미’는 인천에 빼꼼 나타난 꼬마 물범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애이니’는 인천을 사랑하자는 애인(愛仁)+ Incheon의 I를 조합한 것이다.  시는 새로운 캐릭터인 ‘등대를 사랑하는 점박이물범들’의 기본 디자인과 네이밍이 확정된 만큼, 앞으로 응용 디자인 개발과 캐릭터를 활용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활동 및 조형물 조성 작업에 착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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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1.22 (월)
  • 매월 14일, 이곳에선 음악이 넘쳐 흐른다

    [탐방] 매월 14일, 이곳에선 음악이 넘쳐 흐른다

    카페 팔리아치(Cafe Pagliacci), 특별한 공연에 관객 환호   지난해 여름, 학익동 518번 마을버스 종점 부근에 재미난 마실 공간이 생겼다. ‘카페 팔리아치(Cafe Pagliacci)’ 지난 14일 저녁, 카페는 60여명의 손님들로 꽉 찼다. 어르신과 어린 아이들이 함께 어울린 3대 가족, 단호박 빙수를 먹으며 얘기 나누고 있는 중년의 커플들, 치즈를 곁들여 와인을 마시는 젊은이들, 조각 케익과 커피를 마시며 웃고 떠드는 다양한 손님들, 남녀노소 모두 동네마실 나온 듯 편안해 보였다. 다양한 손님들이 카페에 모인 것은 도시 야경이 한가득 펼쳐지는 넓은 창문, 벽돌과 원목가구로 마감된 편안하고 시원한 실내 분위기, 맛있는 커피 때문만은 아니다.    ‘카페 팔리아치’는 이탈리아어로 광대들매월 14일 저녁 ‘카페 팔리아치’에서는 특별한 공연이 열린다. 올해의 첫 무대는 ‘클래식재즈트리오’가 장식해 주었다. 더블베이시스트 박동화 교수와 드러머 이강현 교수, 피아니스트 이윤선 교수가 함께 연주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재즈트리오 팀이다.   “앞 테이블에서 와인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보고 첫 곡으로 ‘와인’이라는 스윙 곡을 연주했습니다. 계획에 없던 거예요. 원래 재즈는 즉흥적인 거잖아요. 여기 분위기 너무 좋네요. 연령층도 다양하고 활기차고, 다음은 어떤 곡을 들려드릴까요, 펑키, 스윙, 삼바? ‘브라질리안 보사노바’를 연주할까요?.”연주자와 관객의 호흡이 하나가 된 하우스 콘서트는 밤과 함께 더 깊어졌다. 유명한 재즈 넘버 곡부터 클래식 곡의 재즈버전 연주까지 다양한 장르의 재즈곡들이 연주 되었다. 앵콜곡으로 마이클잭슨의 ‘빌리진’을 연주할 때는 관객들이 일어나서 함께 춤을 추었다. 어두운 라이브 재즈바에서 듣던 재즈와는 완전히 다른 무대였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의 요청에 의해 카페 주인장이 노래를 한 곡 불렀다. 주인장 테너 이헌(43)씨는 카운터에서 분주한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사랑하기 때문에’를 멋지게 들려주었다.“팔리아치(Pagliacci)는 이탈리아어로 광대들이란 뜻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온전한 ‘나’로 살기보다는 ‘누구 아빠, 직장의 누구’로 살아가잖아요. 가면을 쓰고 살고 있는 거죠. 이곳에서 만큼은 우리 예술가들이 가면을 쓴 광대가 될 테니, 손님들은 가면을 벗고 자기 자신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름을 ‘카페 팔리아치’로 지었어요.”성악전공하고 독일과 불가리에서 유학한 엘리트 주인장이헌씨는 가좌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인천 토막이다. 연세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독일과 불가리아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그 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극장에서 수석오페라가수로 8년을 보냈다. 역사의 굴곡이 심했던 세르비아는 민족주의가 강한 나라다. 그래서 외국인으로서 국립극장의 오페라 주인공 역할을 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차별도 심하고 소외감도 느꼈지만 실력으로 인정받은 그는 곧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영화 ‘서편제’에서 추운 겨울날 여자 주인공이 심청가를 부르는 장면이 있어요. 그걸 보고 미치는 줄 알았어요. 노래는 그런 거예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절절한. 유럽무대에서 그렇게 노래했더니 ‘마음으로 노래하는 가수’라고 하면서 인정해주었죠.”세르비아 문화부장관으로부터 국적을 세르비아로 바꾸라는 제안도 받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에서 살다보니 그도 민족주의자가 되어 고향이 늘 그리웠다. 아버지의 병환이 심해지면서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13년 만에 고향인 인천으로 돌아왔다. 고향에서도 가수로 살아가길 원하지만, 2년 정도 지내보니 이런 문화풍토 속에서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에 대한 소비도 공급도 세르비아와는 너무도 달랐다. 세르비아에서는 동네마다 아지트와 같은 식당이나 카페가 있어서 주인과 손님이 친구나 가족처럼 지내고 크고 작은 이벤트가 늘 벌어졌다. 일상이 축제 같은 세르비아의 문화를 고향에도 만들고 싶었다. “매월 14일마다 공연을 열고 있어요. 연주자분들께는 한 달 카페 수입 중에서 하루치를 드려요. 일종의 십일조 같은 거죠. 만약에 이 동네 식당이나 카페에서 이런 방식으로 공연을 갖는다면 연주자도 손님도 가게 주인도 모두 좋아지지 않을까요? 놀이문화가 풍성해져야 음악가도 더 많이 생기고 우리의 일상도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요?”주인과 손님이 모두 친구가 되는 공간 원해카페 팔리아치에서는 매월 14일 정기공연 외에도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 1월 첫 주에는 서울예술대학 실용음악과 학생들의 졸업공연이 있었다.     “공연할 장소가 필요한 연주팀에게 카페 팔리아치는 항상 열려있어요. 그리고 부부싸움을 해서 속상하거나, 외로운 분들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세요. 제가 노래 불러 드릴께요.”카페 팔리아치에서는 아메리카노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작은 에스프레소 잔과 함께 제공 한다. 건강에 좋은 파란색의 안찬차, 갱년기 여성들을 위한 다양한 빙수 등의 메뉴에서 손님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보인다. 이헌씨는 누구나 동네에 ‘내 가게’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영화 ‘패터슨’에 나오는 주인공이 매일 저녁 들러 맥주를 마시는 ‘쉐이즈 바(Shades Bar)’처럼 주인과 손님이 모두 친구가 되는 그런 가게 말이다. - 인천 남구 한나루로 353-1 2층 카페 팔리아치- 영업시간: 10:00~24:00- 080 880 7487 글· 사진 박수희 ‘i-View’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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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1.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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