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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 정통만두

    [인천 맛] 강화읍내에 가면 꼭 이집 찐빵과 만두 먹어야 한다

     강화 정통만두, 정성들인 맛에 반해 손님들 '엄지척'​​2018년 새해. 연일 계속 되는 추위에 몸도 마음도 꽁꽁 얼 지경이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스치면’생각나는 국민간식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만두와 찐빵이다.1970~80년대 정취가 남아있는 강화읍에 지역 주민들이‘엄지척’하는 만두, 찐빵가게가 있다.‘강화정통만두’다.  30년간 기본부터 착실하게 익히고 배운 솜씨'강화정통만두’변영수 사장은 본디 서울사람이었다. 고등학생 때 제과점에 재료를 납품하던 옆집 아저씨 작업장을 자주 놀러갔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 졸업 후에는 본격적으로 제과점에서 근무 하게 되었다. 벌써 30년 전 이야기다. 고소하고 달콤한 팥소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팥을 삶고, 눌어붙지 않게 계속 저어 주는 노력을 요한다. 청년 제빵사 시절, 기본부터 착실하게 배우고 익혔던 원칙은 30년째 한결같다. 빵이 어느 정도 손에 익을 무렵, 지인들은 솜씨 좋은 변사장에게 만두도 함께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 한다. 손재주가 좋았던 변 사장은 만두도 금방 배웠다. 그는 80년대 중반에 강화도로 터전을 옮겨 찐빵과 만두를 만들었다. 최근에‘생활의 달인’에 출연하여 유명해진‘정통분식’사장과 인연 덕분이었다. 평생 식당을 운영하신‘정통분식’사장은 색다른 맛을 창조하는 남다른 능력의 소유자였다. 변 사장은‘정통분식’사장과 고로케 속 레시피를 개발했다. 용흥궁 담벼락에 위치했던 ‘정통분식’은 테이블 몇 개의 작은 분식점이었지만 맛이 좋아 손님들로 늘 붐볐다. 강화읍가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하면서 ‘정통분식’은 장소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전을 앞두고 변 사장은 독립을 결정했다. 서로의 미래를 축복하면서 쫄면, 김밥, 떡볶이를 주로 판매하는 ‘정통분식’은 용흥궁 근처 골목, 그는 찐빵, 만두를 주 품목으로 하여 ‘정통만두’라는 상호를 걸고 도로변에 개업을 했다. 사람의 손맛은 최고의 조미료다. 풍경이 달라지면 손맛도 변하기 마련이지만, 매사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변 사장의 음식철학은 그대로였다. ‘정통만두’는 ‘지역맘카페’와 인근 학교 학생들을 통해 대번에 입소문이 퍼졌다.    하루 3~4시간씩 팥 쑤고 만두 800개, 호빵 400개 빚어변 사장에게 맛의 비결을 물었다.“제가 사교적이질 못해요. 말주변도 다른 취미도 없고. 할 줄 아는 것은 빵이랑 만두 빚는 것 밖에 없어요. 요즘에는 대게 팥을 안 삶더라고요.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귀찮고 손이 많이 가니까요. 나도 먹고 손님도 드시는 건데. 사서 쓰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팥을 깨끗이 씻은 다음에 설탕, 소금 딱 그것만 넣어요. 보통 3시간쯤 젓고 난 후 팥을 거르는데, 어쩌다가 물 대중을 잘못하는 날에는 4시간씩 걸리기도 해요. 힘들죠. 그래도 기왕 하는 일이니까, 끝까지 원칙대로 하고 싶어요. 쉽게 만든 건 벌써 맛이 달라요.”오전 8시에 가게 문을 열고, 먼저 도넛을 튀긴 후 팥물을 올리는 변 사장. 매일 변함없이  밤 9시까지 만두 800개, 찐빵 400개를 빚는다. 고로케, 사라다빵, 찹쌀도넛도 인기다.  “얼마 전 도로변에 주차를 하고, 한 여성분이 만두를 사러 오셨어요. 포장해서 가지고 가셨는데, 잠시 후에 도로 돌아 오셨더라고요. 차 문이 열리자 심장이 쿵 내려앉더라고요. 뭐가 잘못됐나 싶어서. 그 여성분이 다가오더니, 만두를 더 사야겠다는 거여요. 운전석의 남편 입 속으로 만두를 넣어줬는데, 이런 만두는 더 사야 한다며, 굳이 차를 돌려서 또 오셨더라고요. 그럴 때 보람을 느끼죠.”소박한 살림이지만, 잘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만족한다는 그는 가끔 인근 노인 분들에게 찐빵과 만두를 대접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할 만큼 여유를 누리며 산다며 넉넉한 미소를 짓는다. ‘맛’은 주관적이다. 때로는 혀의 감각이 아니라 기억과 분위기로 맛을 느낀다. 순수한 마음으로 식재료를 다루는 수수한 맛집들이 감동을 주는 이유다. 모쪼록 반죽 속에 진심을 넣은‘정통만두’의 찐빵과 만두가 오래 오래 제 자리를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김세라 ‘i-View’ 기자, 사진 나윤아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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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1.10 (수)
  • 이승기, 송도에 나타난다고 하는데?

    [렌즈 속 인천] 이승기, 송도에 나타난다고 하는데?

    ​드라마 화유기, 소래습지공원, 시립박물관 등서 촬영 ​군복무를 마치고 오래간만에 TV에 모습을 비친 한류스타 이승기가 출연해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드라마 화유기(花遊記).이 드라마는 인천영상위원회가 로케이션과 제작비를 지원하고 있어 인천의 주요공간에서 촬영이 이뤄지고 있다.작품의 내용은 고대 소설 서유기를 모티브로 퇴폐적 악동요괴 손오공과 고상한 젠틀요괴 우마왕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절대 낭만 퇴마극이다.  인천시가 지원하는 드라마인 만큼 주요내용이나 임팩트가 강한 장면은 인천 배경이다.특히 손오공의 친구인 동장군이 운영하는 아이스크림 트럭은 센트럴파크에서 촬영했다. 이 신은 반복되어 나오면서 계속되는 노출로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센트럴파크를 알리고 있다.    남동구에 있는 소래습지생태공원은 손오공이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공간으로 설정되어 촬영했다.남동구 소래습지생태공원이 촬영지로 선정된 배경은 그간 드라마 촬영 공간이 중구, 동구에 몰려 있던 것을 탈피해 인천의 다양한 공간을 드라마에서 보여주기 위해서다.  남녀 주인공의 키스신이 진행된 곳은 송도센트럴파크다.송도센트럴파크에서 개최된 송도불빛축제를 배경으로 촬영했다.환상적이고 아름다운 하얀색의 LED조명에서 표출하는 송도국제도시의 아름다운 풍경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화유기 제작진은 이 장면의 촬영을 위해 LED 조명을 다시 설치해 찍을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다.   이외에도 드라마 ‘화유기’의 인천촬영지는 송도국제도시의 다양한 공간을 비롯해 수봉공원, 자유공원, 동인천중앙시장, 동춘터널 상부 억새밭 등이었고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촬영된 장면은  방영을 앞두고 있다.인천영상위원회는 사전협의를 통해 향후 매회 드라마 대본 집필시 주요배경지나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장면을 인천시로 설정하고 인천을 전국적으로 알리고 있다. 글 이용남 ‘i-View’ 편집위원, 사진 tvn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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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1.10 (수)
  • 화교결혼식

    [인천 이야기] ‘치파오, 사탕’ 등 결혼 상징하는 그들의 문화

    ​화교들의 색다른 결혼문화​ 지난 11월 12일 서울 명동 동보성(東寶城). 이곳은 한국에 살고 있는 화교들이 중국식으로 결혼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주말인 이날 한·중 커플의 결혼식이 진행됐다. 화교 신랑 李厚政(34)씨와 한국인 신부 趙恩彩씨는 사랑으로 국적을 뛰어넘었다. 동보성은 이후정군과 조은채양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하객들로 붐볐다. 화교사회의 영향력 있는 집안의 결혼식이기에 많은 화교들이 그들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하객으로 참석했다. 그들은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다.   주례, 총무, 혼주 등을 알리는 명찰 달아화교들의 결혼은 한국의 결혼식과는 사뭇 달랐다.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를 바탕으로 한 결혼식이었다. 우선 하객은 물론 결혼 주최측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명찰을 가슴 한 쪽에 달고 있었다. 주혼인(主婚人), 사의(司儀), 사장(司帳), 총무(總務), 총리(總理), 소개인(紹介人), 증혼인(證婚人), 초대인(招待人) 등.    주혼인(主婚人)는 양가 부모들, 사의(司儀)는 결혼식 사회자, 사장(司帳)은 결혼 축의금 담당, 총무(總務)는 결혼식을 총괄하는 사람들, 총리(總理)는 결혼식을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사람, 소개인(紹介人)은 신랑신부를 서로 소개한 사람, 증혼인(證婚人)은 결혼 주례자를 뜻했다. 일반 하객들은 초대인이라고 쓴 명찰을 달았다.   또 벽면 한쪽에는 이날 결혼식 진행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역할과 이름을 빨간색 종이에 적어놓아 이채로웠다.   축의금도 ‘희(囍)’자가 적힌 빨간색 봉투인 홍빠오(紅包)에 넣어 낸다. 한국처럼 흰색봉투에 담아서 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중국에서 흰색봉투는 조의금을 낼 때 사용한다. 붉은색은 경사의 상징인 반면 흰색은 슬프거나 힘든 상황을 의미한다. 빨간색으로 만들어진 청첩장에도 ‘희(囍)’자가 쓰여 있었다. 청첩장을 받아야 결혼식에 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화교들의 결혼식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이색적인 물건은 방명록이다. 종이로 된 방명록에 하객들의 이름을 쓰는 우리와 달리 화교들은 분홍색 천에다 하객들이 이름이나 결혼을 축하하는 글을 남겼다.   화교들의 결혼식에서는 증인제도가 있다. 이들의 결혼식에서만 볼 수 있는 풍습이다. 결혼식 단상에는 주례, 양가 아버지, 신랑신부 소개인 2명 등 총 5명이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서서 결혼식을 지켜본다. 이들은 신랑신부의 결혼을 증명하는 사람들이다. 화교들은 본격적인 결혼식이 진행되기 전에 주례, 양가 아버지, 소개인이 모인 자리에서 결혼서약서에 도장을 찍어 결혼을 보증한다. 오랫동안 진행해온 관례이자 풍속이다.   신랑·신부 피로연때 치파오입고 하객들에게 인사중국 전통 결혼식에서 신랑신부는 전통 복장인 치파오를 입는다. 옛날에는 남녀 모두 부와 복을 상징하는 빨간색 치파오를 착용했다. 그러나 한국에 거주하는 화교들의 경우 지금은 현지인들과 같이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결혼식을 올리는 게 일반적이다. 관례가 상당히 간편화된 상태다. 그러나 결혼피로연에서는 치파오로 갈아입고 하객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드린다. 하객들이 앉아 있는 원형 테이블을 일일이 돌며 하객들과 건배를 하며 술을 나눠마신다. 하객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다.    이날 결혼식을 올린 이후정, 조은채 커플도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결혼식을 한 뒤 신부는 빨간색 치파오, 신랑은 짙은 남색 치파오를 입고 손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한국에서도 신랑신부 가족이나 친인척들이 결혼 예복으로 한복을 입는 것과 같이 이날 신랑의 어머니나 친척들도 중국인들의 전통예복인 치파오를 입어 중국적인 분위기를 한껏 풍겼다.화교들의 결혼식은 한국과 달리 시간이 길었다. 결혼식보고 밥 먹으면 끝나는 우리의 결혼식과 달리 화교들은 피로연이 진행되는 가운데 가족, 친지들이 나와 노래하고 춤을 추며 결혼식의 여흥을 즐겼다.  화교들의 결혼식에서 음식은 결혼하는 사람들의 지위와 부를 말하는 중요한 요소다. 보통 결혼식에서는 보통 7가지 정도의 요리가 나오는데 이날 이후정·정은채 커플의 결혼식은 중국의 전통요리 코스를 제대로 보고 맛볼 수 있었다. 결혼식에서 나오는 요리 중 두 번째와 세 번째가 가장 고급이다. 이날 나온 요리들은 여덟가지 냉채, 삼선 삭스핀, 왕새우튀김, 해삼삼겹살찜, 딤섬, 송이전복, 관자소고기매운소스, 사희완자, 도미찜, 지미구, 초두면, 제철과일 등의 순으로 나왔다.    도미는 중국산둥 지방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 생기게 하는 생선이라는 의미에서 가길어(加吉魚)라고 부른다. 도미찜을 낼 때는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을 향하게 놓는다. 코스의 요리 마지막에는 국수가 제공된다. 국수는 한국과 같이 신랑·신부의 결혼 생활이 오래도록 평안하게 이뤄지고 백년해로 하라는 의미가 있다. 때문에 한 젓가락이라도 먹어주는 것이 예의다.  바구니에 사탕담아 제공… 신혼 행복과 달콤함 상징국수가 나오면 결혼식 피로연은 거의 끝난 거나 마찬가지다. 이쯤에 신랑, 신부는 사탕바구니를 들고 출입구에 서서 사탕을 하객들에게 나눠준다. 사탕은 결혼의 달콤함을 상징한다. 하객들은 바구니에서 사탕을 가져가고, 결혼축하의 말을 전하며 행복하게 오래살기를 기원한다. 전에는 사탕과 함께 담배도 하객들에 제공했다.담배 연기가 오랫동안 행복이 이어지는 것을 뜻했다. 지금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담배는 빠졌다.   결혼식 문화는 나라마다 다르다. 살아온 문화와 전통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우리와 가까운 나라이지만 결혼문화의 차이가 크다. 그래도 공통적인 것은 결혼은 공동체의 축제이자 커플의 행복과 축복, 그리고 밝은 미래를 담고 있다는 것이 공통적인 요소다.   글 이용남 ‘i-View’ 편집위원, 사진 서은미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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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1.08 (월)
  • 청라 7호선

    [뉴스 속 뉴스] 인천지하철 검단, 송도, 석남·청라로 뻗는다

    청라 7호선 연장사업 올해부터 본격 추진​​​ ​인천 지하철 연장사업이 올해 더욱 활발하게 진행된다. 인천시 도시철도건설본부에 따르면 올해 인천에서 벌이는 지하철 연장사업은 인천지하철 1호선 검단 연장, 1호선 송도 연장, 서울지하철 7호선 석남·청라 연장 등 크게 3가지다.  1호선 검단 연장은 계양역에서 검단신도시까지 6.9km 구간을 연장하고 정거장 3개를 추가 건설하는 사업이다. 올해 상반기 공사 수행방식을 결정하고 하반기에는 타당성 조사와 투자심사를 마무리한 뒤 기본·실시설계를 발주한다. 총사업비는 7천277억원으로 검단신도시 개발 기관인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인천도시공사가 각 6천557억원, 인천시는 720억원을 부담할 예정이다. 인천시는 2020년 착공, 2024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천지하철 1호선 검단 연장선인천지하철 1호선 송도 연장사업도 2020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순항하고 있다. 총사업비 1천347억원 규모의 이 사업은 국제업무지구역에서 송도랜드마크시티역까지 820m 구간을 연장하고 정거장 1개를 짓는 사업이다. 지난달 토목 공정률은 34.04%이며 계획 대비 공정률은 112.23%로 목표 공정률을 앞서 가고 있다. 서울지하철 7호선 석남 연장사업 역시 2020년 10월 개통을 앞두고 각종 공사가 쉼 없이 진행되고 있다.​ ▲ 인천지하철 1호선 송도 연장선공정률도 지난달 52.09%로 절반을 넘어섰고, 올해 상반기 전기·신호·통신 실시설계 용역 준공에 이어 11월에는 토목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총사업비 3천779억의 7호선 석남 연장사업은 부평구청역에서 인천지하철 2호선 석남역까지 4.165km 구간을 연장하고 정거장 2개를 짓는 사업이다. 이 사업과 연계해 석남에서 청라까지 7호선을 연장하는 사업도 올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인천시는 청라 7호선 연장사업이 지난달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함에 따라 올해 기본계획 수립용역을 수립하고 2021년 착공을 준비할 계획이다. 청라 7호선 연장사업은 석남역에서 청라국제도시까지 10.6km 구간을 연장하고 6개 정거장을 짓는 사업이다. 총사업비는 국비 7천827억원, 시비 5천218억원 등 1조3천45억원으로 2026년 개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천지하철 7호선 청라 연장선인천시는 검단·송도·청라지역 지하철 연장사업으로 지역 철도망이 대폭 확충돼 시민 교통편의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기용 본부장은 업무보고를 통해 “인천광역시 주요 정책인 ‘시민이 행복한 교통환경(주권) 실현’의 주요축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전 직원은 2018년 새롭게 시작하는 인천 1호선 검단연장 건설사업과 인천 1호선 송도연장 건설, 서울 7호선 석남연장 건설사업 등 시민중심의 안전하고 편리한 도시철도 건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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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1.08 (월)
  • 사하라그룹

    [외고 · 칼럼] 사하라, 알피엠이 주름잡던 '1990년대 관교동'

    인천, 노래, 그리고 음악인 – 관교동과 인천 헤비메탈 밴드들 인천광역시를 대표하는 명소들을 떠올리며 해당 장소의 간략한 역사와 그 곳을 소재로 탄생했던 여러 대중가요들, 그리고 관련된 인천 출신, 혹은 인천을 근거로 활약했던 뮤지션들의 알려진, 또는 숨은 이야기들을 함께 엮어본다. 지난 회의 후반부에 잠시 언급을 했지만, 관교동은 인천의 대중음악 역사에서 공통적 중요성을 갖는 장소들이다. 바로 ‘로컬 록 씬의 핵심 장소들’이 위치했던 곳이라는 사실이다. 국토 개발 이후 전국이 빠르게 1일 생활권이 형성된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문화적 인프라가 서울을 중심으로 집중되어있었던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지방에서 어떤 특별한 뮤직 씬이 형성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나마 일부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공연 문화의 흐름이 조금이나마 형성되고 있긴 하나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기엔 역부족이다.   그러나 지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대표 항구 도시인 인천과 부산에서는 한국에서 여전히 메이저 음악이기엔 힘겨운 상태인 록 음악, 특히 그 가운데 가장 강한 사운드를 가진 헤비메탈 음악이 하나의 ‘로컬 씬’에 근접할 만큼 구축되는 놀라운 시간도 있었다. 실제로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해외 록 음악 씬 역시 헤비메탈이 강세를 띄게 되었고, 그 영향을 받은 한국의 청춘들 가운데도 록커를 꿈꾸는 이들이 많이 나타났었던 상황에서 가장 다양한 밴드들이 지역 범위에서도 공연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친 곳들이 이 두 도시였기 때문이다. 그간에는 장소를 먼저 제시하고 그 속에서 관련된 음악과 음악인들을 알아보았다면, 이번 회에서는 바로 이 인천의 로컬 밴드들이 머물렀고 활동했던 그 장소들을 지역별로 나눠 재조명해보고, 그 속의 대표 밴드들의 음악을 알아보고자 한다.   록 밴드들의 연습실이 집결했던 관교동​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남구 관교동에는 ‘밴드들의 연습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실 관교동은 1980년대 초중반만 해도 순복음교회 건물 외에는 허허벌판에 가까웠지만, 1988년 재개발지구로 선정되면서 도로가 생기고, 원룸, 빌라, 저층의 상가 건물들이 하나씩 늘어났다. 그 결과 새 건물에 구축된 지하실 공간의 저렴한 임대료(이 지하 공간들은 월세가 겨우 10만원에서 20만원 사이에 불과했던 경우가 많았다)로 인해 연습을 하고 싶었던 밴드들에게 새로운 ‘생활의 터전’을 제공해주었다.    결국 1980년대 후반부터 이 지역에 몇몇 로컬 밴드들이 모여들더니, 1990년대에 들어와 관교동에 더 많은 신축 상가 건물들이 생겨나면서 먼저 들어왔던 밴드들의 추천으로 더 많은 밴드들이 이 곳에 연습실을 얻게 되었다. 당시 인천에서 활동했던 여러 뮤지션들과 인터뷰 내용을 종합해보면 (각자의 기억들은 조금씩 달랐지만) 대략 1991년부터 1996년까지를 관교동에 헤비메탈 밴드들의 연습실/합주실이 가장 많이 존재했던 시기로 정리할 수 있다. 사하라(Sahara)부터 알피엠(RPM), 스컨드렐(Scoundrel) 같은 인천에서 잘 알려진 로컬 밴드들이 그 곳에서 연습실을 두고 활동했다. 당시에 친구들끼리 모여 결성했다가 나중에 소리 없이 사라진 무명 아마추어 밴드들까지 포함한다면 이 시기동안 대략 수십 개의 밴드들이 이곳에서 지하실과 방을 얻어 연습을 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렇게 인천 밴드들의 ‘연습실 촌락’이 관교동에 세를 굳히자 공연을 하러 인천에 내려왔던 서울의 메탈 밴드들까지도 인천에 내려와 이곳에 방을 얻는 현상까지도 벌어졌다. 크래쉬(Crash), 터보(Turbo)/나티(Naty)의 멤버들, 제로지(Zero-G), 네크로파저스(Necrophagous), 훗날 노이즈가든을 결성하는 기타리스트 윤병주, 멍키헤드 등의 서울 뮤지션들이 이 지역을 자신들의 연습 터전으로 삼고 인천 뮤지션들과 함께 어울렸다. 한편, 관교동은 이런 밴드들에게 연습과 숙식의 공간도 제공했지만, 야외에서 팬들과 만날 기회도 제공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엄밀히 남동구 구월동이긴 하나, 1994년 개장한 인천광역시문화예술회관은 건물 바로 앞에 야외 공연장까지 확보하고 있었다. 이곳을 통해 인천의 록 밴드들은 이 장소에서 많은 대중 관객들과 소통할 기회까지 얻을 수 있다.    ▲대명라이브파크 인천 메탈 뮤지션들은 어디서 주로 활동했나 지난 회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주안과 동인천은 인천의 록 밴드들에게는 자신들의 음악을 대중에게 들려줄 수 있는 곳이자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곳, 그리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동네였다. 먼저 지난 회에 언급했던 동인천역 주변의 두 음악 학원들 - ‘현대 음악학원’(지금 신포동에서 악기몰 ‘스쿨뮤직’을 운영하는 티삼스의 전 멤버 안정모도 이 곳 원장이었다)과 ‘필 음악학원’(사하라의 멤버들이 설립) - 을 통해 인천의 기존 프로 뮤지션들은 강사로서 레슨을 통해 자기들의 기본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터전을 확보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사받은 어린 뮤지션들은 그 곳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함께 밴드를 결성하며 로커의 꿈을 키웠다.   ▲ 심지음악감상실 그리고 헤비메탈 음악을 뮤직비디오로 즐길 수 있었던 동인천의 심지 음악 감상실, 유진 음악 감상실, 그리고 주안의 성림 음악감상실 등에서는 비슷한 취향을 가진 당대 로컬 뮤지션들은 쉽게 교류의 장을 만들 수 있었다. (사하라의 보컬 우정주는 이 곳에서 DJ겸 음향 시스템 관리를 했다고 한다.) 한편, 공연할 수 있는 공간들을 보자면, 가장 먼저 관교동 인천광역시문화예술회관이 생기기 전까지 인천 시민회관을 말할 수 있다 1980년대에는 이곳은 록 밴드들에게 꿈의 공간과 같았다. 그 외에 동인천에 있었던 대명 라이브 파크나 유진 음악 감상실 분점, 그리고 인천우체국 옆에 위치했던 나이트클럽(국일관), 극장이지만 밴드에게도 문을 열어줬던 돌체 소극장에 이르기까지 공연을 열 수 있는 공간도 다양했다.   ▲현대음악학원 자리 인천 로컬 헤비메탈 역사의 자존심, 사하라1990년대 초반 인천에는 활동하는 팀들이 아마추어급까지 합치면 수십 개의 팀들이 존재할 만큼 헤비메탈을 추구한 밴드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 지금도 인천을 대표할 만한 최강의 팀을 꼽으라면 아마도 1987년 우정주(보컬), 인재홍(기타), 김범주(베이스), 오창록(키보드), 홍진규(드럼)으로 결성된 헤비메탈 밴드 사하라를 떠올릴 것이다. 이들은 데뷔 앨범을 내기 이전부터 이미 인천 로컬 헤비메탈 씬에서는 지역 록 매니아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멤버들의 군대 문제와 탈퇴 등 여러 문제가 얽혀 1990년대 초에 잠시 활동을 멈췄다가 1992년 참가한 음악 경연대회에서 ‘I Can’t Say’로 대상을 차지한 후 이 경연대회를 주관했던 황윤민이 이들의 매니지먼트를 맡게 되었다. 마침내 1993년 지구레코드를 통해 (앨범의 제목처럼) 결성 7년 만에 1집 [Seven Years of Draught]을 발매했으며, ‘Vagabond’, ‘내 작은 세상을 위하여’등 전체적으로는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의 클래식 헤비메탈의 영향권에 있었던 사운드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 앨범 이후 기타리스트 인재홍은 미국의 기타 전문학교 G.I.T.에 유학을 떠났고, 이후 나머지 멤버들은 기타리스트 이현석의 프로젝트 밴드에 참여했다.    이후 인재홍이 미국에서 돌아온 후 밴드는 재결합하여 새 앨범을 준비했지만, 앨범 레코딩을 2개월 앞두고 이재호로 보컬이 교체되면서 2집 [Self-Ego]를 발표했다. 전작과는 달리 당시 드림 씨어터(Dream Theater) 등이 연주하던 프로그레시브 헤비메탈 사운드가 강해진 이 음반은 처음에 국내에서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일본의 유명 록 매거진 ‘번(Burrn!)’에서 87점을 받으며 극찬을 받은 후 한국에서도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홍진규의 증언에 따르면, 이 시기에 일본 레이블에서는 이들에게 계약조건으로 6개월간 자비로 일본 전역을 돌면서 공연을 하면 일본에서 음반 데뷔를 한다고 내걸었으나, 당시 밴드의 여건상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글 김성환 음악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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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1.08 (월)
  • 울동네 맛고수.2

    [웹툰 · 갤러리] 울동네 맛고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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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1.10 (수)
  • 참외전 거리

    [그때 그 시절] 조봉암의 비강조합이 있었던 그 건물

    골목길 보물찾기 - 참외전 거리 용신상회 외​​동인천 청과물시장 길가에 있는 2, 3층 짜리 상점 건물들은 한눈에 봐도 오랜 세월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간판이 걸린 앞 쪽보다는 뒤편 주차장 쪽으로 돌아가서 보면 그것을 실감할 수 있다. 빨간 벽돌 건물의 뒤태는 마치 거대한 성벽같이 보인다. 이 건물들은 주로 1960년대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로서는 동인천 지역 경관을 바꿔 놓을 정도로 눈에 띠는 건물이었다.건축 초기에는 모든 상점이 비슷한 모양을 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점들이 앞쪽을 치장을 하거나 리모델링을 하면서 각각의 분위기를 자아내게 되었다. 지금도 뒤쪽은 거의 건축 초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참외전 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가게는 건어물을 파는 용신상회다. 대를 이어 67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인천의 대표적인 노포(老鋪)다. 이용기(74) 사장은 스물 두 살 때인 1962년부터 건어물을 팔았다. 그의 부친이 적산 가옥이었던 단층 목조집을 사서 장사를 하다가 1964년 3층짜리 현재의 빨간 벽돌집을 지어 올렸다. 그 당시에는 으리으리한‘빌딩’이었다. 1층과 2층은 가게로 쓰고 3층에는 신식으로 꾸민 살림집을 만들어 살았다. 현재는 1층만 장사를 하고, 2,3층은 창고로 쓰고 있는데 거의 비어있는 상태다.   동인천 상권이 위축되면서 시장 경기도 한풀 꺾여가던 중 1998년 9월 인천시가 주차장 마련을 위해 청과물시장 부지를 매입하면서 대다수 상인들이 송림동 동부시장과 숭의철교 인근 청과물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창일 때는 40여 개의 과일 도매가게와 10여 개의 제수용품을 파는 건어물 가게가 있었다. 현재는 청과물(과일) 도매업자 3개, 건어물 가게 4개만이 남아 있다. 참고로 참외전 거리는 한 때 우리나라 좌익 혹은 진보 세력의 본산 역할을 했다. 현재 동인천역 쪽 참외전 거리 초입에 있는 성환상회 자리에는 죽산 조봉암이 운영했던 비강조합이 있었다. 비강조합은 정미소에서 나오는 왕겨를 모아 연료로 공급하는 곳이었다. 그 옆에 인천 좌익의 핵심 박남칠이 운영하던 쌀가게가 있었고 현재의 농협 자리에는 인천미곡상조합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인천미곡상조합에서 사무장으로 일한 이승엽은 탁월한 조직 활동가였다. 일본경찰의 감시를 피해 이강국 등 서울의 좌익 핵심들이 인천으로 내려와 이곳에서 그들을 만나고 갔다. 이곳을 근간으로 광복 후 200여 명의 인천미곡상들이 좌익운동의 주동세력으로 급부상하였고, 후에 건준 인천지부를 신속하게 설립했다. ※참외전 거리 용신상회 외 ㆍ위치 : 인천시 중구 참외전로 148-1 (용동65-2)ㆍ건립년도 : 1964년ㆍ형태 : 벽돌  원고출처 : 골목길 숨은 보물찾기(2015년 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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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1.10 (수)
  •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여행] 현대예술과 과거 유산의 상큼한 조화

    인천개항장의 핫 플레이스 인천아트플랫폼, 근대문학관​ ​ 개항장은 동서양의 문화가 독특하게 블렌딩 되어 있다. 잠시 걷는 중에도 일본과 중국의 건축 문화가 한 눈에 들어온다. 개항 당시의 모습이 남아 있어 역사적 가치도 높다. 그 중 인천아트플랫폼과 한국근대문학관은 근대 건축물을 활용해 만들어졌다. 과거 유산에 현대의 예술과 문학이 덧입혀진 곳으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머문다. 인천아트플랫폼개항장을 걷다 보면 붉은 벽돌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건물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인천아트플랫폼은 개항기 낡은 창고건물을 예술창작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개항도시 인천의 역사성과 장소적 특성을 살려 시민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인천아트플랫폼에는 예술 활동을 하는 지역 작가들이 입주하여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때문에 매주 다양한 전시, 음악회 등 문화행사가 열린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차 없는 거리의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전시장, 공연장 등이 들어서 있다. 13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구경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전시장에 들려 작가들의 예술혼 가득한 작품을 관람하고,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나는 조형물들도 신기하고 재미있다. 피곤하면 아티스틱한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셔보라. 여기서 누릴 수 있는 색다른 즐거움이다.  주소 : 중구 제물량로 218번길 3전화번호 : 032-760-1000홈페이지 : www.inartplatform.kr한국근대문학관개항장 문화거리에 조성된 한국근대문학관은 한국 근대문학이 총망라되어 있다. 상설 전시장에는 한국 근대의 문학적 흐름을 살펴 볼 수 있다. 연대기 별로 전시되어 있어 시대를 갈등하고 고뇌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의 피땀 어린 원본과 복각본, 소장품 등 문학 자료만 3만 여점이 넘게 소장되어 있다. 윤동주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명이다. 일제강점기 때 나라를 잃은 슬픔을 그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들로 유명하다. 그가 일본 유학 중에 그리운 사람에게 직접 손 편지를 남긴 적이 있는데, 그것을 모티브로 한 ‘손글씨로 편지쓰기’는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의 시각으로 한국의 문학세계를 경험해 보기를 추천한다. 인천과 한국을 다르게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주소 : 중구 신포로 15번길 76전화번호 : 032-455-7165홈페이지 : lit.ifac.or.kr 원고출처 : 인천시 영문소식지 ‘인천나우’ 11,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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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1.08 (월)
  • 부평도호부청사

    [외고 · 칼럼] 부평도호부청사, 부평향교는 어디에 있나요?

    숨어 있는 부평 이야기①​  ▲ 부평도호부청사 세상 만물에는 제각기 이름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가족들에게 부여되는 첫 번째 고민은 아이의 이름을 짓는 일이다. 매스컴에서 귀가 아프도록 제4차 산업혁명시대가 강조되는 요즘이지만 아이의 이름을 짓기 위하여 작명소와 철학원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이름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이 크다. 이름이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도 이름을 지을 때에는 모두 신중을 기한다.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재에도 저마다 이름이 있다. 문화재의 이름은 문화재의 가치와 속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정해진다. 문화재가 소재한 지방자치단체, 소유자, 관계전문가, 문화재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문화재의 이름이 비로소 탄생한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문화재란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화재 중 보존과 활용을 위한 조치가 특별히 필요한 경우, 심의를 거쳐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어 가치가 더욱 중시된다. 그런데, 문화재의 이름을 보고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다. “부평도호부청사와 부평향교는 이름에 부평을 포함하지만 왜 부평구에 있지 않고 계양구에 있을까?” 실제로 두 문화재 이름에 ‘부평’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부평구에 위치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꽤 많다. 문화재로 등록할 때 옛 지명을 이름에 달아▲ 어사대 표지석 많은 사람들에게 혼동을 주고 있지만 부평도호부청사와 부평향교의 이름이 그대로 유지되는 이유는 바로 두 문화재가 내포하고 있는 역사성 때문이다. 부평도호부청사는 전통시대 관원들이 업무를 처리하던 옛 부평도호부의 관아건물로 임금이 활을 쏘았다고 전하는 어사대, 임금이 손을 씻었다고 전하는 욕은지 등이 함께 있다. 부평향교는 옛 성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자, 부평 지방민의 유학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다. 지금은 인천광역시 내에 부평구가 소속되어 있지만, 전통시대에는 부평도호부와 인천도호부가 각각 독자적인 행정 구역으로 존재하였다. 부평도호부는 지금의 부평구를 포함하여 계양구, 서구, 경기도 부천시와 서울 구로구 일부 지역 등 넓은 영역을 관할하였다. 인천도호부와 부평도호부에는 각각 관아와 향교가 설치되었다.부평도호부청사와 부평향교가 문화재로 등록된 것은 각각 1982년과 1990년의 일이었다. 당시 인천은 광역시로 도약하기 이전이었고, 두 문화재는 행정구역상 인천직할시 북구에 위치하고 있었다. 두 문화재를 등록할 때, 이 지역의 옛 지명을 좇아 ‘부평’이라는 이름을 앞머리에 달았다. ▲부평향교 외삼문▲ 부평향교 대성전과 서무  부평역에서 역사박물관 찾기도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혼동하는 일은 없었으나 1995년 북구가 부평구와 계양구로 나뉘면서 문제 아닌 문제가 발생하였다. 부평도호부청사와 부평향교는 계양구에 소속되었으나 이름은 여전히 ‘부평’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부평구에 있다고 혼동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부평도호부청사가 위치가 부평초등학교 교내이기 때문에 혼동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두 문화재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속성을 반영한 이름은 ‘부평’을 간직한 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이런 경우도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부평역사박물관은 부평구 삼산동에 있는 역사(歷史)박물관이다. 부평역이 유명한 까닭일까, 역사(驛舍)박물관으로 착각한 관람객이 삼산동이 아니라 부평역에 가서 박물관을 찾는 에피소드도 종종 있었다. 겨울이라는 이름에 맞게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 움츠려 있지만 말고 가까운 문화재와 박물관을 찾아 나서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글 손민환(부평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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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1.08 (월)
  • 근대가 찍어낸 인천풍경

    [전시 · 공연] 인쇄물과 사진으로 근대 건축 보다

    소중한 유산을 보는 근대 건축 전시  “우리는 건축 없이도 살 수 있고, 기도도 할 수 있지만, 그것 없이 기억을 할 수는 없다.”영국 사상가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은 “건축을 디자인으로만 이해하거나 소유와 투자의 대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삶의 터전이자 공동체의 역사적 기록으로 바라보자”라고 말한다. 건물은 우리가 머무는 공간에 대한 삶의 흔적이다. 사람은 떠나지만 건물은 남아 기억을 위한 매개체가 된다. 건물이 허물어지면 기억도 사라진다. 역사가 사라지는 것이다.최근 우리는 송월동 ‘애경 비누공장’과 답동 ‘인천 가톨릭회관’이 소멸되는 것을 경험했다. 일제 강점기부터 115년 동안 이어져 온 노동의 기억과 70~80년대 민주화 운동의 기억이 주차장 부지 확보라는 이름으로 사라졌다. ‘애관극장’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철거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애관극장의 소멸로 한국 근현대극장의 역사도, 어렸을 적부터 애관극장을 드나들던 내 기억도, 며칠 전 딸의 손을 잡고 애관극장을 찾아가 보았던 영화 ‘1987’의 추억도 모두 사라질지 모르겠다. 인천시민으로서 우리의 삶과 역사를 반추할 수 있는 건물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두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인천은 근대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아 더 합리적이고 더 정당한 방법으로 보존, 기억 할 수 있는 방안이 찾아지길 바래본다.​‘근대가 찍어 낸 인천 풍경’​인천시립박물관이 마련한 특별전시로 근대 인쇄물의 이미지를 통해 인천의 근대가 자리 잡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사진, 엽서, 잡지, 포스터, 간판 등 320여 점의 인쇄 매체에서 인천의 다양한 근대 이미지를 확인 할 수 있다. 근대기에 사용되던 시각매체 도구나 생활 물품들 또한 재미난 볼거리다. 오늘의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근대의 이미지 생산방식과 소비패턴에 대해서도 살펴 볼 수 있다. 근대에 생산된 이미지가 무엇을 추구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변해 왔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 전시기간: 2월18일까지○ 전시장소: 인천광역시립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인천 연수구 청량로160번길 26)○ 관람시간: 9:00~18:00(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인천 근현대건축물 사진전’도서출판 다인아트가 제작중인 ‘3仁3色30景 insight 仁川 고택가이드북' 자료 중 일부 사진과 영상을 미리 선보이는 전시이다. 인천에서 활발한 작업을 하고 있는 서은미, 민경찬, 유창호, 윤성원, 이동렬, 허정선, 전철원, 김윤지 등의 작가가 지난 6개월 동안 작업에 참여했다. 작가들은 ’기록되지 않는 역사는 기억 될 수 없고, 기억하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에 임했다. 인천 근대건축물들이 드론을 통한 새로운 각도와 작가들의 새로운 시선으로 기록되었다. 건축물의 가치를 새롭게 보여주는 사진 20여점과 3편의 영상을 만나 볼 수 있다. 전시 초입에는 근대 건축물의 특징 중 하나인 ‘청동 모임지붕’을 조형물로 만들어 벽에 붙여 놓았다. 세월의 색이 품어져 나오는 포토존에서 기념사진도 한 컷 찍어보자. ○ 전시기간: 1월15일까지○ 전시장소: 인천화교역사관 갤러리(인천 중구 제물량로 236)○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관람료 무료​글· 사진 박수희 ‘i-View’ 기자​​

    2018.01.08 ~ 2018.02.28
    작성일 2018.01.0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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