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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한직업' 촬영지, 배다리인거 아셨나요?

    [인터뷰] ‘극한직업' 촬영지, 배다리인거 아셨나요?

    ​인천출신으로 ‘천만영화’ 연출한 이병헌 감독천만이 넘는 관객이 봤다는 요즘 핫한 영화 ‘극한직업’은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서 촬영됐다. 영화를 보면 화면 너머로 인천의 풍경이 보인다. 아벨서점, 큰길에서 배다리로 들어가는 터널, 유림서적 등. 촬영지가 어디인지 모르고 영화를 관람하던 인천사람들도 ‘아! 저기 배다리인데…’ 하게 될 정도로 배다리 전경이 잘 드러난다.사람들의 배꼽을 쥐락펴락 하며 웃음을 선사하는 영화 ‘극한직업’은 해체위기에 놓인 경찰 마약반 5인방이 범죄소탕을 위해 위장 취업한 ‘치킨’집이 일약 맛집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코믹 수사극이다.▲영화 ‘극한직업’ 연출한 이병헌 감독​​영화에 인천을 녹여낸  사람은 이병헌(39) 감독이다. 전작 ‘바람바람’ ‘스물’ 등을 통해 유쾌한 감성을 만들어 냈던 그는 인천에서 자라고 성장한 인천출신이다. 그가 ‘인천인’ 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이 감독이 ‘극한직업’의 촬영지로 인천의 구도심인 배다리를 선택한 것은 영화 촬영 콘셉트와 이곳 분위기가 잘 어울려서다. 그는 영화속 설정을 동네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골목에 위치한 정감있는 치킨 집과 마약단 일당이 은신해 있는 클래식한 느낌의 아지트 건물이 서로 마주보는 장소를 전국을 돌며 찾았다. 그 중 배다리가 가장 알맞은 장소였다. 또 배다리는 이 감독이 학창시절 자주 찾았던 추억의 공간이기에 더 끌렸다.“영화 로케이션 장소인 배다리 헌책방 거리는 학창시절 책을 읽으러 자주 드나들던 추억의 장소였습니다. 촬영기간 내내 어스름한 옛 일들이 떠올라 마음이 훈훈하고 설렜습니다.”​​▲영화 ‘극한직업’ 스틸 컷‘천만감독’으로 뉴스메이커가 된 이 감독에게 인천은 그 자체가 영화적 영감을 준다. 가물가물한 기억의 괭이부리마을, 여섯 살 때 살던 송월동 산동네, 그 옆 자유공원에서 내려다보던, 그땐 역할을 알지 못했던 부두와 공장 굴뚝, 수많은 선박들, 지금은 사라진 송현동 개천을 가로지르던 철길, 마을버스를 타고 시골 읍내 나가듯 했던 동인천 지하상가, 인천백화점, 양키시장, 그 길을 따라 들르던 배다리 헌책방 거리, 그 사이 시장골목에 있었던 태양 롤러스케이트장도 그가 어릴적 자주 찾았던 추억이 흠씬 배어있는 장소다.이 감독은 인천의 만석, 송월, 송현, 용현동 등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천만이 넘는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탁월한 연출력을 보여줬지만 그는 어린시절 영화에 푹 빠져 살던  ‘씨네마키즈’는 아니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애관극장, 동인천극장, 미림극장, 오성극장까지 나가는 버스비와 영화관 입장료는 당시 저에겐 너무 큰돈이라 1년에 한 두 번 밖에 영화관에 가지 못했습니다. 비디오도 신프로가 당시 2천원 정도였기에 용돈을 모아 일주일에 한 편 정도 봤습니다. 영화는 많이 볼 수 없었지만 대신 드라마는 더 자주 시청했지요.”​​▲영화 ‘극한직업’ 스틸 컷​그는 영화감독이 되고픈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무단히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중간 중간 좌절의 순간도 있었고 망막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자신을 믿고 꾸준히 노력해 오늘의 성취를 얻어냈다. 그에게도 20대는 자신의 꿈이 무언지도 모르던 방황의 시절이었다. 그가 제작한 독립영화 ‘힘내세요, 병헌씨’를 보면 영화감독의 꿈을 이루고자 노력했던 그의 고단한 노력이 담겨져 있다.이 감독은 ‘극한직업’을 촬영하면서 인천시민들이 보내준 응원과 관심에 감사하다. 인천에서 자라고 살고 있는 시민으로서 어느지역보다 활발히 영화촬영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큰 자부심이다.그는 앞으로도 잘 하는 일을 꾸준히 더 잘 해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다.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지금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영화 ‘극한직업’ 스틸 컷​​영화 ‘극한직업’은 지난 10일 현재 관객이 1천2백만을 넘어섰다. 그의 주특기인 말맛을 살린 코미디가 제대로 터졌다는 평가다. 이병헌 감독은 영화 연출 외에도 영화 ‘써니(2011)’, ‘과속스캔들(2008)’ 등의 시나리오 각색에 참여했고, 꾸준히 자신만의 웃음코드를 연구해  오늘의 성공을 만들었다.글 이용남 ‘i-View’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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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9.02.11 (월)
  • 개화기 의상 입고 중구로 시간여행!

    [인천 이야기] 개화기 의상 입고 중구로 시간여행!

    ​뉴트로 열풍타고 복고의상 대여 ‘장의상실’경기가 어려울수록 옛것이 유행한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일까. 침체된 경기와 고용불안 등 침체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최근 복고(Retro)를 새롭게(New) 즐긴다는 의미의 ‘뉴트로(New-tro)’가 유행이다. 뉴트로는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여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트렌드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지난해 인기리에 종영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1900년도 개화기를 배경으로 제작됐는데 인물들의 복식이 복고 열풍에 기폭제가 됐다.근대 문물의 유입 통로이자 국제외교의 중심지였던 인천 중구에도 개화기 시절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의상을 대여해주는 의상실이 새롭게 문을 열어 식(食)과 주(住)가 대부분이었던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인천의 모던보이, 모던걸 거리를 누비다 인천에서 태어나 한 번도 인천을 벗어난 적 없는 장은주, 장은숙 자매. 자매는 신포동에서 10여 년 간 여성복을 판매하다가 3년 동안 공백기를 가졌다. 공백기에 전주 한옥마을에 여행을 갔다가 한복을 대여하는 상점과 거리에 한복을 입고 다니는 수많은 인파를 보며 ‘인천에 개화기 의상을 대여해주는 의상실을 열어보면 어떨까’라는 영감을 떠올렸다. “인천에서 가장 적합한 곳이 어디일까 생각하다가 차이나타운을 떠올렸어요. 차이나타운 주변으로 개항로, 동화마을, 자유공원, 월미도 등 관광명소가 이어져 있잖아요. 중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이색적인 체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이템을 생각하게 됐어요. 한복이나 교복, 치파오를 콘셉트로 한 의상대여점은 많은데 저희는 독특하게 개화기 시대의 옷을 대여해보고 싶었어요. 특히 인천에 체험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일조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자매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제한된 시간에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사진과 옷을 좋아하는 공통된 취향을 살려 차이나타운 초입에 개화기 의상을 대여해주는 ‘장(張)의상실’을 개업했다.▲‘장(張)의상실’​ 외관​​▲앤티크 콘셉트의 ‘장(張)의상실’​ 내부인천에서는 최초로 생긴 개화기 의상 대여점이다. 진분홍색 외벽은 차이나타운을 방문한 관광객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차이나타운 입구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초입에서부터 개화기 의상을 입고 거리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지난 1월 중순에 오픈한 장의상실 1층은 의류와 각종 소품, 탈의실로 활용하고 2층은 손님들이 자유롭게 촬영할 수 있는 세 가지 앤티크 콘셉트의 셀프 스튜디오로 꾸몄다.여성 옷은 20여 종에 엑스스몰(XS)부터 엑스라지(XL)까지 5개의 사이즈로 나뉘어 약 100여 벌, 남성 옷은 3~4가지 종류로 20여 벌이 구비되어 있다. 유아동 의상은 따로 구비가 되어있지 않고 대신 무료로 소품으로 꾸며준다.▲다양한 개화기 의상과 소품이 마련된 ‘장(張)의상실’​개화기 의상은 소품 또한 스타일에 영향을 미치므로 모자, 가방, 목걸이, 코르사주, 장갑, 양산, 브로치, 베일, 멜빵, 나비넥타이, 중절모 등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단, 신발은 사이즈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본인이 직접 착용하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저희는 직접 개화기 의상을 입고 일을 해요. 그저 의상만 착용하고 있을 뿐인데 손님들이 1900년도로 시간여행을 온 것 같다며 너무 좋아하세요. 본인만 갑자기 의상을 착용하면 민망할 수 있는데 저희를 보면서 부담이나 거리감도 떨쳐버리시고요. 손님 대부분이 개화기 의상은 복고적인 영향이 크므로 사진이나 매스컴을 통해 봤던 것과 달리 어색할 줄 알았는데 나이에 상관없이 긍정적인 반응에 구매로까지 이어져요.”의상 대여는 단시간 및 종일, 1박 2일 가능하며 추가 대여를 원할 경우 협의 가능하다. “파티문화가 보편화되면서 콘셉트 사진 촬영도 유행을 하는데 드레스 코드로 개화기(복고) 의상을 많이 선호하는 추세예요. 어떤 손님은 지인들과 여행을 간다며 2박 3일 간 의상을 대여해 가기도 했어요. 손님들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문화가 많이 바뀌어가고 있구나.’ 느꼈어요. 인천이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는 시기에 좀 더딘 편인데 전주 한옥마을과 서울 익선동처럼 의상 체험문화를 활성화시키고 싶어요. 최근에 신포 청년몰이나 개항로에 젊은층의 유입이 상승하고 있는 추세인데, 차이나타운에도 젊은층이 많이 찾아와 즐겨주면 좋겠어요.”이색 체험으로 관광객에 즐거움 제공 장의상실을 오픈하고 방문객 거주지역을 파악한 결과 인천시민이 20퍼센트, 80퍼센트는 타 지역에서 많이 찾았다고 한다. 인천을 찾은 관광객들이 주로 영종도에 위치한 호텔에 많이 묵는데 월미도와 차이나타운을 방문하고 나면 더 이상 중구에서 즐길 거리가 없다는 불만에 개항 문화가 곳곳에 남아있는 중구에 역사를 보존하면서 체험문화를 발전시킬 ‘갈 곳’을 만들고 싶었다는 장 자매.▲개화기 의상을 입고 거리를 누비는 이용객들 ​(장의상실 제공)“이용객은 10대부터 70대까지 연령층이 분포되어 있고, 부부, 연인, 친구, 동료, 가족 등 찾는 부류도 다양해요. 젊은 층은 뉴트로 감성으로 좋아하고, 어른들은 옛 추억을 떠올리며 감격스러워 하세요. 많은 분들이 인천에 갈 곳, 할 것이 한정적이어서 단조로웠는데 개화기 의상을 체험하신 후 극찬을 하셨어요. 전주 한옥마을이나 서울 익선동에서 한복 또는 개화기 의상을 입고 거리를 누벼도 낯설지 않은 풍경처럼 중구도 개화기 의상을 입고 나들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일반화되길 바라요. 개항누리길, 동화마을, 차이나타운과 더불어 중구 관광코스의 일부로 자리 잡아 전주 한옥마을처럼 하나의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어요.”개화기 의상 콘셉트에 맞는 포토존을 제공하고 싶은 마음에 개항누리길에 의상실 2호점과 카페를 구상하고 있다는 장 자매는 한 곳의 레스토랑을 시작으로 현재는 테마형 관광지로 부상한 파주의 프로방스를 예로 들면서 중구 일원이 장의상실을 중심으로 주변에 관광 인프라가 조성되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길 바란다는 포부를 밝혔다.▲뉴트로 감성의 콘셉트 사진 (장의상실 제공)개화기 의상을 입고 중구를 거닐면 누구나 모던보이, 모던걸이 되어 세월을 거슬러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체험을 통해 중구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더욱 흥미롭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3월 말까지 오픈특가를 진행하고 매달 이벤트를 개최할 예정이니 장의상실 SNS를 참고하길 바란다. (사전예약을 하면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장의상실 인스타그램  http://instagram.com/jang_boutique 글·사진 이수인 I-View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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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9.02.13 (수)
  • 커피로 그리는 인천萬話 - 조은숙 시인

    [인터뷰] 커피로 그리는 인천萬話 - 조은숙 시인

    ​배다리 팔색조 미인, 조은숙 시인▲커피로 그린 조은숙 시인​‘죽으면 썩어질 육신 맘껏 사용해라’가 가훈이었단다. 군산시내버스 기사 노릇으로 평생 가족들을 건사하고도, 은퇴 후까지 한시도 쉴 틈 없이 공사장 살수차며 덤프 등을 운전하고 계시는, 팔순 아버지의 좌우명이기도 하단다.그런 아버지가 짠해 ‘제발 그만 좀 편히 지내시라’ 역정도 내보지만 피는 역시 못 속이는 법인가 보다, 그 딸 역시도 일이 없으면 집안을 발칵 뒤집어 청소라도 해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몸을 가만 두지 않으니 말이다. 배우, 동화구연가, 작가 등 팔색조 매력 가득중앙아메리카의 작은 나라 엘살바도르 이민에서 돌아와 배다리에 다시 뿌리를 내린 조은숙 시인(50세) 이야기다. 사실 시인이라는 이름만으로 그녀의 정체성을 모두 설명하기엔 불가능하다. 배우, 동화구연가, 작가, 문학강사, 객원기자, DJ, 리포터 등 그녀의 팔색조 매력은 까도 까도 한이 없는 양파껍질 같다. 작년 연말에는 엘살바도르에서 찍어 온 사진과 글을 엮어 ‘맹그로브 숲의 아이들’이라는 사진집을 출간하기도 했다.▲배다리 시다락방 시낭송회에서​“군산에서 2남1녀 중 맏딸로 태어났어요. 끼와 욕심이 남달랐던가 봐요. 풍문초등학교 시절부터 밴드부며 무용부, 합창단 등을 주름잡았거든요. 워낙 깔끔 떨고 다녀서인지 친구들은 제가 엄청 부잣집 딸인 줄 알았지만, 사실 우리 집 사정은 거의 고아원 수준이었어요. 폭탄사고로 사망하셨다는 큰아버지네 아들, 이혼으로 풍비박산이 되신 둘째 큰아버지의 다섯 아이들까지 총 9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우글우글 함께 살았으니까요. 논두렁에서 잡아온 개구리를 친구 필통 속에 몰래 넣어두어 교실을 아수라장으로 만들 정도로 소문난 장난꾸러기였지만, 혼자 있으면 까닭 모를 우울한 감정이 가슴속으로 스멀스멀 밀려들어 힘들어하곤 했어요. 너무 이른 나이에 삶의 고단함과 인생의 허무함을 눈치 채버린 탓이었을 거예요. 어쩌면 제 문학성의 8할은 그때 이미 싹튼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월명여중을 거쳐 군산여상 1학년 때는 꽃집에서 알바를 하면서도 학교방송부 아나운서를 했죠. 목소리가 예쁘다는 주위 칭찬을 자주 들었거든요. 매주 목요일 6시면 교내방송을 통해 ‘명상의 시간’을 진행했어요. 음악과 대본까지 직접 준비했죠. ‘청순한 옷 차림상’이란 걸 타기도 했어요. 언제나 바른 자세에 조용하면서도 자기의사 표현을 분명히 잘한다고 주는 상이래요.”고3때인 1985년 11월, 서울 성동구 화양동의 아남산업에 취업을 했단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 어린이 대공원을 방문해 엘리베이터를 처음 타보고 가슴 두근거렸던 그 서울에 입성한 것이다. 하지만 한창 서슬이 퍼렇던 5공화국의 위세 아래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초년생에게는 건대앞 화양시장을 둘러보는 게 거의 유일한 낙이었단다.▲연극 공연 후 응원 온 고교동창들과​입사 1년차에 사내 방송실직원을 공채한다는 광고를 보고, 이건 내가 적격이라는 자신감에 지원서를 냈다. 이론시험과 필기시험, 목소리 테스트에 오디션까지 치른 끝에, 무려 6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단다. 고등학교시절 교내방송을 진행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된 것이다. 그렇게 아남 사내방송 아나운서로 멋지게 변신했다.“총무부 소속으로 회사 내 각종 안내방송부터 안전관리비디오 제작, 아침 8시~ 8시25분에 아남그룹 전반에 걸친 소식을 전하는 ‘아남뉴스’를 진행하고, 회사직원들이 신청한 엽서사연과 노래를 주 1회 음악방송을 통해 내보내는 일을 했어요. 뉴스기사며 방송 대본도 직접 쓰고 LP판을 찾아 노래를 틀고 노래내용과 가수를 설명하는 등, PD와 작가역할까지 일인 4역을 한 거죠. 그렇게 10년을 아남 사내방송실에서 보냈어요. 아마도 제 인생 중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을 거예요. 건국대와 세종대 앞 학사주점 ‘타박네’와 음악다방 ‘갈채’에서 DJ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거의 연예인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죠. DJ 뮤직박스 안으로 꽃이며 주스도 넣어주고, 일이 끝날 때면 남자들이 집까지 줄줄이 따라오고, 러브레터도 보따리씩 받았거든요. 입영전야가 되면 단체석은 거의 난동 수준으로 변했죠. 계속하다간 큰 사고가 터질 것 같아 결국 DJ알바를 접었어요. ‘아남 문예동아리’에 들어 시낭송회와 시화전을 열기도하고 총무와 회장직을 맡기도 했어요. 그 와중에도 꾸준히 시 쓰기를 이어온 덕에 1992년 9월 월간문예지 ‘한국시’로 등단도 했죠. ‘사랑노래로’ 외 4편의 시로 시인이라는 황송한 이름을 얻었는데, 여태 그 이름에 걸맞게 살고 있나 부끄럽고 부담스러운 것이 솔직한 심정이에요.”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인천인으로 정착1990년 5월, 인하대 무역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부평남자와 연애를 시작해, 6개월만인 그해 11월 결혼에 골인했다. 맞벌이를 이어오다, 큰아이 돌잔치를 끝으로 1994년 아남에서 퇴사했다. 가로수 등의 신문에 수필이 당선되고, 베비라유아복 공모전에 시가 당선되기도 했다. 그녀의 시는 한때 라디오CM송으로 만들어져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FM전파를 타기도 했다. 그러던 그녀가 주말이면 내려오라는 인천의 시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아예 부평3동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 인천사람으로 인천에 뿌리를 내리게 된 배경이란다.▲엘살바도르 바닷가 마을 아이들과​​​“처음 인천생활은 너무 갑갑하고 외로웠어요. 하루하루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무기력증에 아이를 포대기에 둘러업고 무작정 집을 나와 거리를 배회하곤 했죠.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딱히 갈 곳도 몰라, 한번은 백운역 역전다방에 들어가 쌍화차를 시켰어요. 물도 고기도 없는 빈 수족관에 조화들이 꽂혀 있고, 할아버지 몇 분이서 벽에 걸린 TV만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쌍화차를 내온 마담이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눈이 왜 그래?’하고 묻는 거예요. 새파란 새댁이 아이를 업고 이른 시간부터 혼자 다방에 와 앉아있으니 필경 무슨 사연이 있는 거라 짐작한 거죠. 대답도 못하고 탁자위에 놓인 쌍화차를 내려다보는데, 차 위에 동동 띄운 계란 노른자위가 너무 이쁜 거예요. 마치 깜깜한 우주 위에 떠있는 에너지 덩어리가 노랗게 빛을 발하는 느낌이었어요. 수저로 그걸 조심스레 떠먹으면서 ‘나는 지금 우주의 에너지를 먹는다’, ‘나는 이제 힘을 얻는다’ 속으로 계속 되네었죠. 그래서일까요? 신기하게도 정말 마음 저 깊은 곳으로부터 미세하지만 뜨거운 기운이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르는 것 같더라고요.” 그날 이후 신기하게도 무기력증을 털어버린 그녀는 동장님 추천을 받아, ‘부평사람들’이라는 구정소식지 기자로 발탁되었다. 만 10년을 신나게 부평 구석구석을 누비며 사람들을 취재하고 기사를 썼다. 십정동 ‘작은 자 야학’에서 국어교사로 4년, 혜광학원 시각장애학교 교장선생님을 취재 갔다가 6년을 동화구연 특강강사로 봉사하기도 했다.“색동회 전국동화구연대회에 입상해, 색동회 소속 동화구연가로 20년간 활동 중이에요. 부평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문화센터 강사를 역임했고, 여러 복지관과 유치원, 학교에서도 강의를 해왔어요. 연극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3년이에요. ‘피어나 극단’의 이정환 대표 요청으로 연극공연 중간에 내레이션을 해주기로 했는데, 대본 리딩 도중 갑자기 내레이션을 날리고 연출자님이 아예 배우로 출연을 권하셨어요. 엉겁결에 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막을 올린 ‘아버지의 훈장(김학균극본)’이라는 연극에 어머니역으로 무대에 서게 된 거죠. 그 후 인천연극제 몇 작품을 더 하게 되었고, 2007년 3월에는 ‘울 밖에 핀 봉선화(오선근作)’라는 연극에서 신윤희라는 가수역할도 맡았어요.”아버지의 유산 ‘바지런DNA’로 지역활동가로 진화중그 작품을 끝으로, 2년 전 한국에서의 봉재사업을 접고 먼저 중미의 엘살바도르로 사업장을 옮긴 남편을 따라 중2, 초5학년인 아들 둘과 엘살바도르 이민을 떠났다. 낯설고 물 선 엘살바도르에서도 그녀의 탤런트 기질은 유감없이 빛을 발했다. 두 아이를 입학시키기 위해 방문한 교민학교에서 2주 만에 한글학교 교사로 발탁되었는가 하면, 6년 후에는 교감 직까지 떠맡게 되었단다. 엘살바도르 문화대학 ‘한국언어문화학과’에 입학해 학업도 병행했다.“300명 정도의 한국교민들이 사는데 현지인들과 다문화가정을 꾸린 경우가 많아요. 그런 까닭에 교민2세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전혀 몰라, 뿌리교육을 위해 교민학교의 역할은 아주 중요했죠. 엘살바도르는 우리나라 경상남북도를 합친 정도인데, 중미에서 제일 작은 나라예요. 커피와 화산의 나라죠. 이웃 온두라스와 축구 때문에 전쟁을 치른 것으로도 유명한데, 내전상태가 12년간이나 지속 돼 치안이 매우 불안정해요. 무장갱단들이 백주대낮에도 정부군과 총격전을 벌일 만큼 살벌한 나라죠. 코이카가 엘살바도르 국립대학교에 한국어 강좌를 한 학기 개설했다가,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되어 철수를 결정했을 정도예요. 총기류가 공공연히 유통되고 마약, 청소년 납치, 살해 등이 일상적인 곳이죠.”▲아들 고교졸업식그녀는 그 위험한 나라에서도 ‘이스랄 데 맨더스’라는 먼 바닷가 마을까지 찾아가, 썰물 때면 드러나는 맹그로브 숲에서 조개를 캐는 아이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펼치고 사진과 글을 언론에 기고해 지원을 호소하기도 했단다.2008년 7월 MBCW방송이 아동인권과 노동착취에 내몰린 ‘맹그로브 숲의 아이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내보내면서부터는, 네이버에 ‘엘살바도르 한글학교’라는 카페가 만들어지고 각지에서 독지가들의 후원을 이끌어내는 데에도 한 몫을 담당했단다. “후원이 늘어나 39명의 현지아이들을 지원할 수 있었고, 그 아이들 중 몇에게는 대학학비 보조를 제 개인적으로 해왔어요. 작년 8월까지 10년간의 지원이 모두 끝이 났죠. 저는 둘째 아이의 대학진학 때문에 2015년 7월 잠시 귀국했는데, 시어머니 병환이 심해지는 바람에 한국에 계속 남게 되었어요. 시어머니 병간호 틈틈이 숙명여대 대학원에 진학해 아동문화 콘텐츠학과를 마쳤죠. 2017년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에는 ‘엘살바도르 사정이 더욱 위험해졌으니 들어올 생각 말라’는 남편의 만류에 결국 이곳 배다리에 집을 장만해 정착하게 되었어요.”그녀는 이제 인천 배다리사람으로 다시 눈부시게 진화 중이다. 작년 말에는 자신의 시로 아벨다락방에서 시낭송회를 열었는가하면 사진첩을 발간했고, 올해부터는 동구 화도진문화원에서 문예창작교실을 진행한다. 각종 단체와 학교에서 동화구연가로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갈 뿐 아니라 몇 편의 연극무대에도 설 것이고 지역 활동가로도 보폭을 넓혀 갈 것이 자명하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바지런 DNA’가 그녀를 한시도 가만두지 않을 터이기에. 벌써부터 그녀의 팔색조 변신이 자못 기대된다.글. 커피그림  유사랑 i-View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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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9.02.13 (수)
  • 낙조가 아름다웠던 그 섬, 도로명으로만 남아

    [인천 이야기] 낙조가 아름다웠던 그 섬, 도로명으로만 남아

    ​이야기가 있는 인천 도로명⑧ 아암대로(Aam-daero)​인천 도로명 아암대로(兒岩大路)는 송도유원지로 소풍을 가면 꼭 들르는 코스였던 작은 섬, 한때 인천 시민들에게 ‘바다로 통하는 유일한 출구’였던 그곳 아암도 이름을 따서 지은 도로명이다. ▲시점: 능안삼거리(좌), 종점: 논현동 111-372​(우)​​아암대로는 시 관리 광역도로로써 미추홀구 숭의동 441-89번지인 능안삼거리에서 출발하여 연수구 동춘 지하차도를 지나 종점인 남동구 논현동 111-372번지까지 연결된 16,470m 길이의 ‘대로’급 도로이다.아암대로 구간에는 제2경인고속도로와 접속이 되어 있고, 송도해안도로에서 제3경인고속화도로 고잔 영업소와 연결된다.▲예전 아암도 모습​▲하늘에서 본 아암도와 아암대로​​​갯바위와 숲이 있어서 관광객이 많았던 옛 아암도는 송도유원지 후문에서 500미터 떨어져 있던 작은 섬이었다. 아암도는 물이 차오르면 섬이 되었다가 물이 빠지면 걸어서도 갈 수 있었던 섬, 그곳에서 바라보던 낙조가 무척 아름다웠던 곳이었다.아암도는 송도신도시 매립공사로 섬으로서의 생명은 사라졌지만 자연적으로 형성된 갯벌 풍경을 볼 수 있으며, 주변 교통량 증가로 도로확장공사가 진행 중에 있다. ▲소래역사관​남동구 아암대로 1605에는 남동구 최초 공립박물관인 소래역사관이 있다. 소래역사관은 도시개발사업으로 사라져가는 소래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아름다운 옛 모습을 보존하기 위하여 건립된 박물관으로 소래어촌의 생활모습, 소래염전의 유래 및 소금생산과정과 도구 등이 전시되어 추억과 낭만을 느낄 수 있는 박물관이다.아암대로는 인천광역시 남측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로써 갯벌과 낙조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도로이며 아암대로 주변 지역 역사와 아암도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도로가 되지 않을까 한다. <도로명주소 유용한 팁>* 도로구간 설정 방법 도로구간: 도로명을 부여하기 위하여 설정하는 도로의 시작지점부터 끝지점을 말하며 직진성∙연속성을 고려하여 설정 자료출처: KAIS, 네이버 나무위키, 굿모닝인천, 소래역사관 홈페이지, 연수구(공원녹지과), 다음지도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김기룡의 섬 이야기(인천일보)글  인천시 토지정보과, 남동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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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9.02.11 (월)
  • 강화해안순환도로 연결, 신규사업으로 확정

    [인천뉴스] 강화해안순환도로 연결, 신규사업으로 확정

    ​▲사업위치도인천시는 지난 7일 ‘접경지역 발전 종합계획’에 가장 큰 수확으로 기존 도로사업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영종~신도’ 평화도로(L=3.5㎞, 1천억 원)와 함께 ‘강화해안순환도로(4,5공구)’ 연결사업을 신규사업에 반영했다. 강화해안순환도로 중 유일하게 미개설 구간인 강화 북단 4공구(황청리~인화리), 5공구(인화리~철산리)구간을 금년 6월말 개통 예정인 2공구(대산리~당산리)구간과 연속성을 유지코자 이번 계획에 구간 연장(L=5.5→26.4㎞), 사업비 확대(426억원→1천400억 원) 및 국비확보(접경지사업 70% 국비)를 이끌어 내고자 박남춘 인천시장은 물론 인천시 관계자들이 중앙부처를 방문 적극적으로 협의 건의한 결과 큰 성과를 얻었다. 인천시는 그동안 설계과정에서 4공구(L=8.6㎞ 황청~인화) 사업비가 900여억 원이 소요되는 걸로 파악되어 이번 계획에 사업비 증액이 없었다면 대부분 구간을 인천시 자체예산으로 충당 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로써 총 사업비의 70%를 국비로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으로 강화지역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해안순환도로 건설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년 하반기부터 해안도로 4공구(L= 8.6㎞)중 북단 ‘창후리~인화리’ 구간(L= 1.9㎞)을 우선 착공하여 2024년까지 전체 구간을 완료할 계획으로 있으며, 전체 구간이 완료되면 현재 두 시간 정도소요 되어 순환 하는 시간이 30여분 정도 단축되는 효과가 있다. 전기버스 도입, 10년간 2천685억 연료비용 절감인천연구원은 2018년 기획연구과제로 수행한 ‘인천광역시 전기버스 운행체계 기초연구’ 결과보고서를 발표했다.인천 시내버스 준공영제 156개 노선, 1천861대를 기준으로 2019년부터 2028년까지 향후 10년간 CNG(압축천연가스)버스 1천678대, 경유버스 183대를 시내버스 대・폐차 시 전기버스로 전환하면, 이 기간 총 연료비용  2천685억6천만이 절감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인천 시내버스 실제 연비를 기준으로 연간 대당 연료비를 비교하면, CNG버스는 3천6백여만원(연), 경유버스는 4천9십3만5천원(연), 전기버스 2천9십9만6천원(연)이다. 전기버스 연료비 절감비율은 CNG버스의 41.7%, 경유버스의 48.7%수준이다. 전기버스 도입사업에 대한 준공영제 시내버스 업체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하였는데, 준공영제 시내버스 32개 업체 중 22개 업체(69%)에서 ‘긍정적’인 응답을 하였다. 전기버스 도입이 ‘회사 이익에 부합’한다는 의견도 20개 업체로  파악되었다. 전기버스 도입에 따른 업체들의 기대 편익은 유류비 절감이 1순위로 나타났다.극한직업 촬영지 배다리, 인천영화 콘텐츠에 활용을인천시는 지난 13일 오전 10시 30분 중구에 위치한 사단법인 인천광역시영상위원회 참석하여 영화계 주요 인사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번 간담회는 인천 문화콘텐츠 산업 내에서 인천의 현 위치를 조명하고 영상문화도시로서 인천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영화 ‘극한직업’ 스틸컷간담회에는 박남춘 인천시장과 이춘연 한국영화단체연대회의 이사장(‘여고괴담’등 제작), 임순례 감독(‘리틀 포레스트’등 연출), 권칠인 감독(‘관능의 법칙’등 연출), 연상호 감독(‘부산행’ 등 연출), 원동연 대표(‘신과 함께’등 제작), 김미혜 대표(‘극한직업’기획), 이동하 대표(‘염력’등 제작), 전노민 배우(‘선덕여왕’등 출연), 송인혁 회장(인천영화인협회) 등이 참석하여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이날 영화인들은 최근 10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극한직업’의 주요배경이 된 배다리 주변을 예로 들어 영상산업 측면에서 인천의 장‧단점을 들며, 이를 활용‧보완하는 영상콘텐츠를 최대한 활용할 것을 조언했다. 또한, 영상산업에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인프라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인천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관내에 야외 세트 및 실내 스튜디오와 같은 전문 촬영시설을 마련한다면 수도권 콘텐츠 생산의 주요 기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인천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 다양한 영화적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인천시가 적극적으로 보존 및 활용에 나서줄 것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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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9.02.13 (수)
  • 울동네 맛고수. 48화 - 화덕피자

    [웹툰 · 갤러리] 울동네 맛고수. 48화 - 화덕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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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9.02.13 (수)
  • 서민 삶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별천지'

    [외고 · 칼럼] 서민 삶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별천지'

    ​‘대중일보’ 다시 볼까? ⑥ 김차영 「용궁각」 ​‘대중일보’는 1945년 10월 7일 인천에서 창간되었고 한국전쟁의 발발로 1950년 6월 폐간된 신문으로 해방 직후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지역에서 가장 먼저 창간된 한국어신문이다. ‘대중일보’에 대한 인천과 학계의 관심은 지대하지만 이러한 관심이 일부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자료가 중요한 것은 가장 오래되었다거나 다른 곳에 없어서가 아니라 그 자체를 보고 읽고 참고하고 생각하는 근간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그 첫 걸음으로 그간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재미있고 인상적인 ‘대중일보’의 기사를 골라 다시 읽어보며 해방기의 시선으로 오늘의 인천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대중일보 1947.08.31(용궁각)’​​‘대중일보’, 1947.8.31. 만필순례⑤용궁각 文 김차영畵 김진태일정시대에 시외장거리 전화를 할 때 그냥 ‘진생(仁川)’하면 안 된다. 다른 ‘진생(仁川)’하고 헷갈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게이끼도노진생(京畿道の仁川)’이라고 하여야 하는데 그래도 ‘게쓰비도노진생(月尾島の仁川)’하면 상대편에서는 얼른 알아듣는다. 인천은 그만큼 월미도에 의존하여 있다. 또한 월미도는 이만큼 인천과는 불가분리의 관계가 있다. 그리고 월미도 하면 조탕을 연상함이 의당하고 또한 최근에는 용궁각(龍宮閣)도 유명하여졌다.그러나 해방후 햇수로 3년째 인천부민은 물론 다른 지방의 피서객이 운집하여야 할 곳이언만 이곳은 미두(米豆) 뒤끝처럼 한산하기 짝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 이 조탕과 용궁각은 이제 해안경비대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이다.언제 다시 그 찬란한 시절이 이곳을 다시 찾아올지 그림을 대할 때 부민들은 일층 더 더위를 느끼리라.​▲용궁각 전경, ‘매일신보’, 1937.6.17.​‘월미도 끝에 물에다 지어놓은, 용궁각인가 수궁각인가는 오늘도 운무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   - 이태준, 「밤길」에서상허 이태준의 소설 「밤길」의 첫머리이다. 이 묘사는 대단히 절묘하다. 김차영이 일컬은 대로 인천을 말할 때는 경기도 인천이라고 해야 하지만 월미도 인천이라고 해도 알아듣기 수월할 정도이다. 이 월미도를 대표하는 곳이 조탕이었고 여기에 이어 1937년 6월 준공 개장한 용궁각이었다. 그만큼 월미도는 인천을 대표하는 장소였다. 벚꽃이 난만하게 피는 4월이면 조수를 끌어들여 데운 따뜻한 목욕탕과 수영장이 개장하니 벚꽃 속에서 물놀이하는 선경과 다름없었을 터이다. 이태준이 인천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면서 바다 위에 떠있는 듯한 이 아름다움을 제외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천으로 막노동 일거리를 찾아 내려온 황 서방의 비참한 현실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이 화려한 누각을 선명한 배경으로 노출할 수는 없었다. 텍스트로는 화려한 용궁각과 비참한 황 서방의 처지를 대립적으로 배치할 수 있지만 이미지로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가난하고 허름한 황 서방이라고 해도 용궁각을 배경으로 삼아 사진이라도 한 장 찍은 듯 묘사하면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 듯 행복하고 화사하게 해석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작품 속에서도 황 서방은 임금을 받자, 가족은 까맣게 잊고 서울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냉면에 콩국, 순댓국, 호떡, 아이스크림까지 널름널름 사먹을 수 있었으니 당시 월미도는 현실을 완전히 잊게 만들 만큼 별천지였다.하여 이태준은 잠시 별천지에서 넋을 놓고 있던, 그러나 앓는 자식과 당장의 끼니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황서방의 처지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 용궁각을 지시하되 보여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산호빛으로 아름다운 용궁각을 아예 운무로 덮어 보이지 않도록 하고서야 비로소 제대로 황 서방의 현실을 다룰 수 있었다. 그만큼 용궁각의 정경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고 화려하고 호사스러운 풍치였던 것이다. ‘월미도’라고 하면 의당 연상되는 조탕은 1923년 철도국에서 건설하였다. 월미도 일대는 워낙 철도국 용지였고 인천부가 이를 20년간 무상 임대하여 유원지로 조성하고 이를 위해 1923년 월미도유원주식회사가 설립되었던 것인데 1924년에 들어와 조탕까지 월미도유원회사가 맡아 경영하게 되었다. 그리고 월미도유원회사는 1937년 ‘해상낙원의 극치’를 표방하는 용궁각의 건설을 결정하고 조탕 뒤쪽으로 120미터 떨어진 바다 위에 높이 9미터 되는 수중누각을 3월에 착공하여 6월 준공하였다. 6월 15일부터 일반에 개방하기 시작했으며 21일에는 관민 400여 명을 초대하여 건물 전부를 관람할 수 있게 하고 성대한 준공식을 가졌던 것이다.  이렇게 용궁각은 조탕과 이어진 곳에 있었지만 기존의 사진자료는 두 건물을 한 곳에 보여주는 경우가 드물다. ▲1928년 4월 15일 개장을 예고하는 월미도 조탕 전경 「봄빛을 따라」, ‘동아일보’, 1928.4.13.▲​일제강점기 사진엽서 ‘월미도유원지해변’그런데 김진태의 삽화에는 조탕과 용궁각이 함께 있으니 각 건물을 따로 보여주는 기존의 사진과는 다른 묘미가 있다. 왼쪽에 따로 그려진 기와지붕이 용궁각이고, 오른쪽 여러 층의 건물이 겹쳐 쌓인 듯이 보이는 쪽이 조탕이다. 인하대 명예교수 배경숙 선생께서는 탕 안에서 분수가 솟구치는 조탕에서 목욕하고 바깥 풀장에서 수영하며 놀다가 산호빛으로 대단히 아름다운 건물이었던 용궁각으로 가 일본식 튀김 등으로 식사를 했다고 회상하신 바 있다. 배 교수께서는 물 아래로 들어가 밥을 먹는 기분이었다고 하셨다.이 멋진 용궁각은 김차영의 언급대로 해방 후에는 해안경비대가 관할하게 된다. 그러나 전혀 돌보지 않아 곧 퇴락해 갔던 듯하다. 1947년 10월 9일 ‘독립신문’에는 이 용궁각을 전혀 사용치 않아 바다 속에 박혀 있던 기둥이 흔들리며 도괴되고 있어 유지책이 필요하다는 기사가 실린다. 조탕의 영업을 재개하기 위해 요로에서 노력하고 있다는 기사가 여러 신문에 간헐적으로 실리더니 드디어 1949면 6월 4일 조탕이 개방된다.▲​대중일보 1949.06.04 (조탕개시)인천의 자랑! 월미 조탕 마침내(遂) 개방 해방 후 처음으로 우리 재력, 우리 기술, 우리 손으로서 월미도는 완전한 개방을 보게 되었다!! 녹슬었던 굴뚝에는 조탕의 욕수를 끓이는 검은 연기가 힘차게 힘차게 하늘로 퍼진다. 어제 하오 1시경부터 월미도관광주식회사 2층 홀에서 문자 그대로의 난산을 거듭한 월미관광회사 개업 피로식이 거행되었다. 이날이 있기를 고대하던 부민 유지층은 물론 중앙에서도 교통부 차관 김석관 씨 등이 내인(來仁)하여 화기 넘치고 명랑한 분위기 속에 개방의 첫 걸음을 내디디었는데 오늘부터 일반에게 개장할 것이라 한다. - ‘대중일보’ 1949.6.4.​​이중네모 부호(▣)로 모서리를 장식한 점선으로 테두리를 쳐서 강조한 제목에서, “개방을 보게 되었다!!”라고 느낌표를 둘이나 연이어 쓴 서술어에서, 물을 끓이는 연기가 하늘로 ‘힘차게 힘차게’ 퍼져 나가고 있다는 수식에서 그날의 감격이 생생히 느껴진다. 일본자본으로 운영되던 월미도유원회사 대신 월미도관광회사를 설립하고 우리 재력, 우리 기술로 완전히 개방할 수 있게 된 것이 당시 인천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자긍심 넘치는 일이었는지 새삼 감회가 깊다.윤진현(문학박사,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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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9.02.13 (수)
  • GM, 신진차 부평공장 ‘오너’로 등장

    [외고 · 칼럼] GM, 신진차 부평공장 ‘오너’로 등장

    ​인천, 자동차의 시작 ③ GM과 인연 미군이 폐차한 자동차를 고쳐타던 우리나라가 세계 6위의 완성차 생산국이 되기까지, 그 시작은 인천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수 차례 주인이 바뀌긴 했지만, 인천에 본사를 두고 있는 자동차회사가 있고, 인천에서 만들어진 자동차와 부품들이 전세계로 수출되고 있는 인천은 명실상부한 자동차산업의 도시다.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천의 흔적들을 소개해본다.   <편집자주> ​한국 자동차산업 초창기, 대부분의 국내 회사들은 외국 자동차회사에 대한 기술의존이 상당했다.새나라자동차가 닛산 기술을 통해 국내 첫 현대식 자동차 회사를 설립한 뒤부터 대부분의 회사들이 외국 기술에 의존해 자동차산업을 시작했다.새나라의 뒤를 이은 신진이 토요타, 현대자동차가 포드, 아시아가 피아트의 기술을 통해 국내차 시장을 삼분하고 있었던 시절이다.그러던 중 중국시장 진출을 염두해 둔 토요타의 일방적 철수로 1971년, 신진과 토요타의 기술협력이 끝이 났다.국내 자동차시장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며 자동차제국을 꿈꿨던 신진의 몰락은 갑작스러웠고, 허무했다.​▲시보레1700의 출시를 알리는 경향신문 광고 (사진=네이버 옛날신문)인천, GM과의 첫 인연 그 시작신진과 토요타와의 기술협력이 일방적으로 끝이 났다. 토요타와의 기술협력이 끝났다는 것은 당장 생산할 수 있는 차량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국산화율이 40%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핵심부품의 자체 생산은 어불성설이었다. 외국회사의 기술에만 의존했던 결과는 참혹했다.당장 기술협력이 종료돼도 수입해 둔 부품들을 조립해 생산은 계속 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떨어진다면 신진은 존폐위기에 내몰릴 수 밖에 없었다.토요타와의 기술협력이 종료되면서 신진의 차량 판매가 중단되자 반사이익을 얻은 것은 현대자동차였다.포드와 기술계약을 맺은 현대차는 포드20M과 코티나로 신진이 갖고 있던 국내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빼앗아갔다.하루하루 점유율을 뺏기는 상황에서 신진은 새로운 기술협력 파트너를 하루 빨리 찾아야 했다. 그때 손을 내민 것은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 중 하나였던 제너럴모터스, GM이었다. 1972년, 인천과 GM의 첫 인연이 만들어졌다.대한민국 최초의 외국계 자동차 회사, GM코리아포드의 한국시장 진출을 눈 여겨봤던 GM은 토요타의 일방적 철수로 존폐위기에 몰린 신진에게 기술협력을 제안하며, 지분 50%와 경영권을 요구했다.당장 생산차종이 없어질 위기에 놓인 신진은 굴욕적이기까지 했던 GM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신진은 GM과 50:50의 지분율로 GM코리아로 회사 이름을 바꾼다.1962년 설립된 대한민국 최초 현대식 자동차공장은 10년 만에 외국 자동차회사의 국내공장으로 탈바꿈됐다.이로써 인천의 자동차 기업은 신진자동차에서 GM코리아로 바뀌게 된다.이는 대한민국 최초 외국계 자동차 회사이기도 했다.​▲시보레1700의 출시를 알리는 매일경제 1972년 9월6일자 기사(사진=네이버 옛날신문)쉐보레?! 아니죠. 시보레입니다새로 설립된 합작 외국계 회사였지만, 신진자동차의 김창원, 수석부사장에 H.W 벤지가 선임됐다.1972년 8월, 토요타 크라운과 코로나를 대체할 차종이 부평공장에서 생산되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GM코리아 시대를 시작했다.GM코리아는 핵심 계열사였던 독일 오펠로부터 중형세단 레코드를 도입했고, 호주 홀덴으로부터는 소형차량을 도입했다.소형차 시보레1700과 고급차 레코드1900이었다.GM코리아는 조선호텔에서 시보레1700과 레코드1900의 신차발표회를 열고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전례없던 신차발표회, 당시 신차발표회 같은 개념이 제대로 없었던 한국에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GM은 신차발표회에서 시보레1700에 대한 호응이 높자, 전국 33개 도시를 돌아가며 전국 순회 이벤트를 여는 등 치열한 홍보를 진행했다.여기에 최대 30개월 할부프로그램을 적용해 차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도 잊지 않았다.이는 코로나의 단종으로 빼앗긴 시장점유율을 다시 되찾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보레1700의 판매는 이전 신진자동차 시절과는 너무도 달랐다.시보레1700이 당시 경쟁모델이던 현대 코티나와 아시아자동차의 피아트124보다 출력 등은 앞섰지만, 경쟁차종에 비해 낮은 연비가 문제였다. 또 낮은 지상고로 인해 비포장도로가 상당했던 한국 사정에는 맞지 않았다.낮은 연비에 대한 지적에 GM코리아는 조립 공장에서 ‘Z-세이버’라는 연료 절약기를 달아 주기도 했다. 하지만, 한번 나빠진 이미지를 바꾸긴 쉽지 않았다.여기에 73년 4차 중동전쟁의 결과로 인한 오일쇼크가 닥치면서 연비가 낮은 시보레1700의 설자리는 더욱더 좁아져버린다.여기에 경쟁사들이 연비가 좋은 신차를 속속 투입했고, 1974년 대한민국 최초 국산 고유모델인 ‘포니’가 출시되면서 시보레1700은 결정타를 맞았다.시보레1700은 소형차를 휘어잡고 있던 코로나의 대체 차종이었지만, 판매량은 처참할 지경이었다. GM코리아는 시보레1700의 부품 등을 이용해 스페이스웨건과 ‘새마을트럭’이라는 변종 픽업차량까지 내놓으며 반전을 꿈꿨지만, 같은 엔진이 들어간 탓에 낮은 연비가 발목을 잡아 판매량은 신통치 않았다.수익을 책임질 소형차량 시보레1700이 실패하면서 GM코리아는 위기에 몰리게 된다. 1973년 57%였던 국내 시장점유율은 1974년 21%, 1975년 15.4%로 급격히 내리막으로 떨어져버렸다. 현대자동차가 ‘포니’에 대한 양산을 본격화한 1975년 말, GM코리아의 첫 모델 시보레1700이 단종된다. 1972년부터 1975년까지 4년을 채 넘기지 못한 생산기간동안 8천여 대만 생산된 채 시보레1700은 쓸쓸히 퇴장했다.글 김상우 자유지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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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9.02.11 (월)
  • 섬마을에 ‘100원 행복버스’ 다녀요

    [인천뉴스] 섬마을에 ‘100원 행복버스’ 다녀요

    ​▲옹진군 섬마을 ‘100원 행복버스’​​인천시는 버스와 택시가 다니지 않았던 옹진 섬마을의 교통여건 개선을 위한 ‘농촌형 교통모델 사업’의 시작으로 ‘옹진군 섬마을 100원 행복버스’ 운행을 본격 시작한다.​이에 따라 인천시와 옹진군청은 11일 오전 섬마을 주민행복버스 개통식을 자월면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자월면 이작1리 다목적회관에서 가졌다.섬마을 주민행복버스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교통취약 주민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사업으로 그동안 대중교통수단이 없었던 대이작리와 소청리 2곳에서 운영을 시작한다.주민이 직접 전화로 행복버스를 부르고 100원의 이용료만 지불하면 이용할 수 있는 공공형 콜버스 방식으로, 마을의 주요거점을 중심으로 하루 8시간씩 운행할 예정이다.우선 소청도의 3코스(소청선착장↔출장소, 출장소↔소청등대, 소청보건지소↔천연기념물)와 대이작도 3코스(선착장↔마을회관, 마을회관↔작은풀 마을, 해양생태관↔계남 마을) 총 6개 노선을 시범운영하고 주민 의견을 수렴해 노선을 확대할 계획이다.그간 대중교통 사각지대였던 도서지역에 마을 공동체 중심의 교통서비스를 제공하여 마을 중요거점 간 접근성을 개선하여 지역 활력이 창출되고, 주민들의 행복감과 복지에 대한 만족도가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2019 말레이시아 미용 박람회 참가 기업 모집​인천시는 계속되는 한류열풍에 힘입어 아시아 지역에서 인기가 많은 한국산 화장품의 해외 수출을 지원하고자 ‘2019말레이시아 의료·미용 박람회’와 ‘2019 중국 상하이 미용박람회’ 참가지원 계획을 확정하고 이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이번 계획은 아시아 지역의 경제성장에 따른 여성 직장인 증가와 한국 드라마와 K-Pop 등 한류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어 한국산 화장품 수요가 꾸준히 증가함에 따라, 인천 관내 유망 의료·미용 등 뷰티 관련 중소기업의 해외시장 판로개척과 수출시장 다변화를 적극 지원하기 위한 정책이다.우선, 5월 12일부터 15일까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 컨벤션세터에서 열리는 ‘2019. 말레이시아 의료·미용 박람회’에 인천지역 참가 희망기업을 2월 7일부터 22일까지 모집한다.또한, 지난 해 40개국 3,500여개 기업이 참가한 아시아 최대 규모의 ‘2019.중국 상하이 미용 박람회’는 5월 20일부터 22일 까지 중국 상하이 신국제전람 센터에서 개최되어 참가할 인천기업을 2월 11일부터 26일 까지 모집한다.해외 각국의 바이어가 대거 참가하고  수출 상담이 많이 이루어지는 박람회로 인천기업 제품의 우수성 홍보와 현지 바이어 발굴에 적극 나서 인천 뷰티산업의 해외 판로개척 및 수출확대에 도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한국의 제1위 교역국이자 인천의 최대 교역국으로 사드 문제 및 미-중 무역 분쟁 등이 있었으나 최근 해결의 기미가 보이고 있으며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지역인 만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며, 인천광역시는 박람회에 참가하는 관내 중소기업에게 부스비 및 장치비의 70%, 편도 운송비(1CBM 기준), 현지 수출상담 등 마케팅 활동전반에 대해 지원하게 된다.참가대상은 인천지역에 본사 또는 공장을 보유한 중소제조업체이며, 전시 품목은 화장품, 향수, 스파용품, 휘트니스 제품, 뷰티기기, 건강·다이어트 보조제, 유기농 식음료 등의 뷰티 및 의료관련 제품이다.참가를 희망하는 기업은 인천광역시 기업지원 포털비즈오케이 (bizok.incheon.go.kr)를 통해 신청가능하며 기타 자세한 사항은  인천경제산업정보테크노파크(전화032-260-0635), 인천상공회의소 (전화 032-810-2831) 또는 인천시청 산업진흥과 (전화 032-440-4283)로 문의하면 된다.※ 사업 개요​  ○ 사 업 명 : 2019. 제13회 말레이시아 의료·미용 박람회 참가지원○ ​전시기간 : 5월 12(일) ~ 15(수), 3일간○ ​전시장소 :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컨벤션센터(1~4홀)○ ​전시규모 : 7,465sqm, 140개사(한국 31개사), 17,163명 방문(‘18년 기준)○ ​전시분야 : 화장품, 향수, 스파용품, 휘트니스 제품, 뷰티기기, 건강 및 다이어트 보조재,               유기농 식음료 등 뷰티 및 의료관련 제품○ ​모집규모 : 관내 8개사○ ​모집대상 : 인천지역에 본사 또는 공장을 소재한 중소제조업체 (단, 전년도 수출실적 2천만 달러 이하 업체)○ ​지원사항 : 부스 임차비 및 장치비의 70%범위내, 운송비(편도, 1CBM)​ ​ ○ ​사 업 명 : 2019. 제24회 중국 상하이 미용 박람회 참가○ ​전시기간 : 5월 20(월) ~22(수), 3일간○ ​전시장소 : 중국 상하이 신국제전람센터○ ​전시규모 : 260,000sqm 이상, 32개국 참가, 3,017개사, 410,000명 참관○ ​전시분야 : 미용용품, 화장품, 향수, 메이크업, 헤어제품, 네일, 뷰티살롱제품, 설비, 원료,               액세서리 등 모든 미용관련 제품○ ​모집규모 : 관내 10개사 (종합품목)○ ​모집대상 : 인천지역에 본사 또는 공장을 소재한 중소제조업체 (단, 전년도 수출실적 2천만 달러 이하 업체)○ ​지원사항 : 부스 임차비 및 장치비의 70%범위내, 운송비(편도, 1CBM)​ 교통약자 시각장애인 음향신호기 확대인천시는 사업비 2억 6천만원을 투입하여 교통약자의 안전한 보행환경 조성과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대대적으로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의 확대설치와 보수를 추진한다.음향신호기는 시각장애인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횡단보도를 안전하게 건너는 것을 음향으로 안내하는 교통안전시설로 기능은 횡단보도의 위치를 알려주는 위치 안내 기능과 보행신호의 상태를 알려주는 신호안내 기능으로 구분된다.인천시는 연간계약을 체결해 기 설치된 시설물을 점검하고, 음향신호기 사용에 방해가 되는 주변 장애물, 고장 나거나 설치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음향신호기 등을 빠른 시일 안에 이전, 교체, 보수한다. 또한, 국민권익위원회 권고사항을 반영하여 리모콘 정상작동 여부, 버튼의 위치 및 정상작동 여부, 음향신호기 신호 안내음향, 음향신호기 점자안내표지 부착 여부 등을 세세히 살펴 보수한다.시각장애인협회 등 관련기관 의견수렴으로 시각장애인의 주요 동선을 파악하여 설치장소를 선정하고, 어린이보호구역 등 교통약자 이용시설 주변과 주요 교차로와 상가 밀집지역,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우선 확대 설치할 예정이다. ‘더불어 마을 희망지’ 주민 제안서 공모인천시는 원도심을 살아 숨쉬게 하는 인천형 도시재생 ‘더불어 마을 희망지 사업’ 대상구역 선정을 위해 3월 6일까지 주민제안서를 받는 공모를 진행하고 있다.더불어 마을 희망지 사업은 정비구역 해제지역과 노후저층주거지 밀집지역(5만㎡ 이내)을 대상으로 주민역량강화, 주민공동체 형성을 통하여 인천형 도시재생사업인 더불어 마을의 준비단계 사업이다. 주민 중심의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사업 초기부터 주민이 직접 참여하여 스스로 계획을 결정하는 과정을 통해 마을계획을 수립하고 지역 맞춤형 사업을 발굴하여 원도심의 노후 저층주거지에 희망을 불어 넣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다.  지난해 희망지 사업을 통해 5개 구역이 더불어 마을, 2개 구역이 도시재생뉴딜사업, 소규모 재생사업으로 선정되어 재생사업이 추진중이며, 올해에도 5개 내외 구역을 선정할 예정이다. 구역별로 최대 8,500만 원의 사업비가 지원되며, 주민들의 공동체 형성과 소통을 위한 현장거점공간과 전문가인 총괄계획가와 마을활동가를 지원할 예정이다.공모 신청은 인천광역시 홈페이지 고시/공고의 안내문을 확인하고 신청서류를 작성하여 다음달 6일까지 해당 자치군‧구의 사업 담당부서에 제출하면 되며, 3월중에 서면심사와 현장심사를 통해 최종 사업지를 선정할 계획이다.인천시는 지속적인 ‘희망지’와 ‘더불어 마을’ 사업 추진을 통해 주민역량을 강화하고 마을공동체를 활성화하여 주민과 함께 원도심 노후 저층주거지역에 대한 다양한 문제를 발굴하고, 적극적 해결방안을 모색하여 원도심 주민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시민 중심의 마을 재생에 역량을 집중 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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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9.02.11 (월)
  • ‘남한산성’ 작가 김훈 인천에 온다

    [무대와 객석] ‘남한산성’ 작가 김훈 인천에 온다

    ​ 인천 중구 ‘문화살롱 화요일’, 13일(수) 오후 7시<라면을 끓이며> <흑산> <남한산성> 등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역사적 감성과 흥미를 일으켰던 베스트셀러 작가 김훈(71) 씨가 인천에서 독자와의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인천 중구 개항장에 위치한 ‘문화살롱 화요일 카페’(대표 신계월)의 초청으로 이뤄진 인천독자들과 만남은 13일(수) 오후 7시에 시작한다. 김훈 작가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편하게 독자들과 만날 것으로 보인다.▲‘문화살롱 화요일 카페’ (대표 신계월)​▲김훈 작가의 저서 ‘라면을 끓이며’ (문학동네)​‘문화살롱 화요일’은 그간 꾸준히 인문학 강좌를 열어왔고 2개의 독서모임도 운영하고 있다. 인문학강좌는 김훈 작가 초청을 시작으로 분기마다 진행될 예정이다. 화요일에서 운영하는 독서모임은 1기는 14명, 2기 6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여 인문학 도서를 읽고 공유하고 있다.김훈 작가와의 만남행사는 선착순 예매가 끝난 상태다. 문의 032-762-1003

    2019.02.13 ~ 2019.02.13
    작성일 2019.02.1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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