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인정하면 '함께'할 수 있어요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 희망공동체 ‘큰나무 캠프힐’ 첼리스트가 주인공인 일본 영화 ‘굿바이’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다양한 사연이 소개된다. 주인공인 장례지도사가 된다. 주인공이 죽은 트랜스젠더에게 남자 옷을 입혀야 한다며 가족끼리 실랑이가 벌어지자, 고인의 아버지가 울며 고백한다. 자식이 여자가 된 순간부터 얼굴을 똑바로 본 적이 없다고.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회 통념상 ‘정상’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불편해진다. 특수학교 설립 찬반 논란이 여전한 가운데, ‘다른’사람을 배척하지 않고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진정 어려운 것일까?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성년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일, 배움, 생산을 나누고 있는 삶터 ‘큰나무 캠프힐’을 방문했다. ▲ 농장 업무중인 모습 20~25세 발달장애인 청년 6명과 자원봉사자 함께 활동
강화군 양도면 도장리에 위치한 ‘큰나무 캠프힐’의 모델은 발도로프 교육철학을 토대로 한 발달장애인 마을 ‘캠프힐’이다. 독일, 아일랜드, 영국 등 100여 곳에서 운영되고 있는 ‘캠프힐’은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장애인 공동체다.
“목회자가 된 후 첫 소임이 장애인 사역이었습니다. 장애인 복지관도 드물었던 시절이죠. 1996년에 장애인 어린이를 위한 특수교육센터를 열었는데, 10년 쯤 지나 교육방식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교육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면서 ‘큰나무 장애학교’를 설립했습니다. 발달장애인의 진로는 선택의 폭이 좁아요. 어쩔 수 없이 가정에 머물거나, 수용시설로 들어가게 되죠. 졸업생들이 그렇게 폐쇄적인 공간 안에서 격리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 수는 없을까 고민하다가, 독일 캠프힐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마음의 벽이 없는 꿈의 공간이더라고요.” ▲ 카페근무‘큰나무 캠프힐’ 대표인 문연상 목사는 유럽의 캠프힐을 다녀온 후, 지금까지 누구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개척한다. 사회보장이 잘된 선진국과 달리, 장애인 복지에 대한 인식이 낮은 우리사회의 실정에 맞는 방식을 설계하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발달장애인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장소를 구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전국 구석구석 안다녀 본 곳이 없었다.
“발달장애인들에게는 화려한 도시보다 소박한 농촌 환경이 좋아요. 사람의 생체리듬은 자연의 순환을 따르는 게 자연스럽거든요. 농촌은 인간 본연의 자정능력을 활성화시키기 용이해서 장애인에게 잘 맞는 생활터전입니다. 인연이 닿아서 강화도 정착을 결정하고 제가 4년 전에 먼저 들어왔어요. 마을 어르신들에게 앞으로 이런 공동체를 짓겠다고 말씀 드리고 농사를 지었죠. 동네 분들이 농사 노하우도 많이 알려주셨어요. 그러다 보니 저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주셨죠. 카페는 작년 11월에 오픈했는데, 개업식 날 마을 분들이 많이 오셨어요. 어르신들께 달달한 다방커피 타드렸더니 맛있어 하셨어요.” ▲ 카페근무
현재 ‘큰나무 캠프힐’에는 학교를 졸업한 후 성인기에 접어든 20~25세 발달장애인 청년 6명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살고 있다. 또한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세 가정이 이웃으로 이사를 왔다. 6명의 청년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인 1실에서 생활 하며 직업 활동을 한다. A, B조가 오전, 오후로 나눠 농장과 카페에서 근무를 한다.
“농사는 작업 공정이 다양해 발달장애인 직업으로 딱 입니다. 파고, 운반하고, 꽂고, 밀고, 당기고, 끌고, 뽑고, 해야 할 일이 무궁 무진 하잖아요. 발달장애인들이 취직할 수 있는 직업은 정해져 있어요. 단순한 반복 업무만 주어지죠. 상상해보셔요. 한 인간이 그 오랜 시간을 오직 한 가지 일만 해야 하잖아요. 정해진 시간 안에 업무 프로세스를 따라가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면 효율성이 떨어지니 자격이 안 된다고 못을 박거든요. ‘장애가 있으니까 이 일에 적합하지 않다’고. 발달장애인도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농사짓기는 해야 할 일이 많다보니 그 중에서 하나라도 잘 하는 게 생기더라고요. 저희 청년 중에, 잡초 뽑기 달인이 있어요. 그 일을 정말 좋아해요. 농사를 짓다 보면, 저마다 가치와 창조성이 발견 되는 순간이 있어요.” 장애인들이 구운 건강빵도 인기
사회는 적은 시간에 큰 업적을 내는 사람만 칭송한다. 인간을 피폐하게 만드는 시스템 안에서는 누구도 행복을 보장받을 수 없다. 완벽하지 않아도 머뭇거림 없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찾고 있는 ‘큰나무 캠프힐’사람들. 이곳에는 장애와 비 장애의 경계가 없다.
“지난달에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는데요, 강화는 물론 타 지역의 발달장애인 부모님들도 참석하셨어요. 처음 한국에 캠프힐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관심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20년 동안 한 우물을 팠더니 조금씩 성과가 보이더라고요. 어깨가 무겁기도 해요. 부산, 안동에서도 견학을 왔거든요.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면서 영감을 얻은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작은 것부터 시도하다보면 형편에 맞는 모델을 찾을 수 있잖아요.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 발효빵과 수제 레모네이드▲ 천연 발효종빵
공기 좋고 물 깨끗한 곳에 영혼이 맑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기 때문일까? 카페에서 판매하는 빵이 유난히 맛있다. 유기농 밀에 설탕, 버터, 우유, 계란 일절 넣지 않고, 이스트 대신 천연 발효종으로 구운 건강빵이다.
“장애인이 만든 빵이라는 것도 의미가 깊지만, 몸에 좋은 맛있는 빵으로 사랑 받고 싶거든요. 한국에서 천연 발효종으로 많은 제자를 양성하신 교수님께 사사를 받았습니다. 자칭 수제자입니다. 도장리 기운이 좋은 건지,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효소보다 월등하게 우수합니다. 저희 빵 맛에 반해 멀리서 일부러 발걸음 하는 손님이 늘고 있어요. 앞으로는 직접 재배한 작물과 강화 특산물인 약쑥, 속노랑 고구마, 강화인삼을 활용한 건강빵도 개발할 예정입니다. 많이 기대해주셔요.” ▲ 큰나무 캠프힐 사람들
‘큰나무 캠프힐’은 진화 중이다. 5살 어린이가 25살이 되었다. 청년들이 장년을 지나 노인이 될 때까지,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큰나무 캠프힐’ 사람들은 지치지 않고 뚜벅뚜벅 갈 것이다. ‘큰나무 캠프힐’에서 ‘다른’이들과도 가족이 될 수 있는 희망을 보았다.
글 김세라 ‘i-View’기자, seilork@korea.kr, 사진 나윤아 자유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