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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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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그리는 인천萬畵
기자인생 35년, 퇴임한 한겨레신문 김영환 국장

▲커피로 그린 김영환 국장

“기자여서 행복했고, 한겨레신문기자여서 더욱 행복했어요. 어떤 기사든 기사를 쓰면 쓰는 대로 킬(kill)되는 법 없이 고스란히 싣는 한겨레신문의 보도원칙 덕분에, 이쪽저쪽 눈치 안보고 거리낌 없이 소신대로 보도할 수 있었죠. 단 한 번도 기자양심이 꺾이지 않도록, 자존심을 지켜준 한겨레신문에 무한한 고마움과 자부심을 느껴요.”  


공부하는 기자로 '주경야독' 박사학위 2개 취득
‘팩트(fact)’를 쫓는 것이 기자의 일이다. 여기서 팩트란 그냥 사실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을 의미한다. ‘명백한 사실’이란 분석되어 진실로 밝혀진 사실이다. 기자는 바로 그 ‘사실의 본질’을 캐는 자인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항상 눈에 보이는 곧이곧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물 컵에 담긴 스푼이 꺾여 보이듯, 사실이란 보는 이의 주장과 논리, 이익의 잣대에 따라 비틀리고 굴절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기자도 종종 길을 잃곤 한다. 얽히고설킨 사회관계망과 친소관계, 직간접적인 압박과 압력 앞에서 ‘햄릿의 독백’을 토로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난마처럼 뒤엉킨 ‘사실’의 실타래를 한방에 명쾌하게 끊어낼 ‘오컴의 면도날’ 따위는, 실제 현실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소위 기자쓰레기라는 ‘기레기’로 조롱당하기도 하고, 속이는 놈이라는 뜻의 ‘기자(欺者)’로 비아냥거림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길 잃은 여행자가 ‘장대별’에 의지하듯, 기자란 본질적으로 자신의 양심과 시대정신에 오롯이 복무해야 할 책무를 지닌 자들이다. 저물어가는 어느 세상하늘 밑에서 희미한 별똥별로 스러질지라도, ‘생 날 것의 진실’을 위해 때론 자기 피흘림을 무릅써야하는 엄정한 순교자의 자세를 견지해야하는 것이다.



그런 기자로 무려 35년 6개월을 보내고, 추석연휴 직전, 정년퇴임하는 백전노장과 만났다. 바로 한겨레신문 사회부 김영환 국장이다. 송도의 ‘인천경제자유구역청’ 로비, 그는 기자라기보다는 젠틀한 학자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실제로도 그는 보통사람은 하나 취득하기도 힘들다는 박사학위를 2개나 가진 것으로 유명한 학자기자다.
“본분인 기사작성은 소홀히 하고 공부만 했냐는 주위 핀잔이 신경 쓰이는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공부하지 않는 기자는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것이 이 바닥 생리죠. 기자는 매사에 부지런해야 해요. 아는 만큼 보이고, 그래야 제대로 된 보도가 가능하거든요. 부지런히 발로 뛰고 틈나는 대로 공부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죠.”
인천대 물류대학원과 인하대 대학원에서 그가 취득한, 전혀 상반된 2개의 박사학위는 사실 모두 그의 취재담당지역인 인천과 관련된 연구결과물들이다. 항만과 공항을 품은 물류도시 인천의 특성과,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의 복간보다도 이른 시기에 창간된 인천의 향토일간지 ‘대중일보’에 관한 연구가 그것이다. 사실 인천은 최초민간신문이라는 ‘독립신문’보다 6년이나 앞서 신문을 발행한, 한국 신문의 발상지다. 
 "청주에서 태어났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1982년 4월 공채로 경인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하면서 인천사람이 됐죠. 맨 처음 사회부로 발령받아 경찰서, 교육청, 시청을 출입한 게 끝까지 사회부 전문기자로 굳어졌어요.”
이듬해 참하고 아리따운 인일여고 국어선생님과 결혼도 했다. 그리고 1988년 5월,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자 경력기자로 자리를 옮겼다.



현대사의 생생한 한복판을 헤집고 다닌 산증인

“6개월도 못 가 망할 회사엘 왜 가려고 하느냐며 주위에서 모두 말렸어요. 하지만 집사람은 달랐죠. 이왕 기자를 할 거면 제대로 해보라며, 제 선택을 지지해줬어요. 창간 당시의 양평동 한겨레사옥은 한숨이 절로 나올 정도로 열악했죠. 허름한 창고건물에 1층은 차고지고 2층이 편집국이었어요. 화장실도 재래식이었으니까 말 다했죠.”
하지만 1980년 군사정권의 언론 통폐합조치로 강제해직 당한 기자들이 주축이 되고, 2만여 명의 국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50억원의 국민주를 창간자금으로 출발한 한겨레신문은 기자정신만큼은 시퍼렇게 살아있는 진보언론이었다.
“반 토막 난 봉급 같은 건 문제가 안됐어요. 뒤틀린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성역 없이 취재하고 거침없이 기사를 써댈 수 있어서 오히려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죠. 물론 그에 상응하는 달콤한 회유와 살벌한 협박도 동시에 따라다니곤 했죠.”
5.3 인천항쟁 수배자의 소재지를 캐낸다는 명분으로 자행된, 부천경찰서 문귀동 경사의 성고문사건에서부터, 인천노동사건, 교육민주화운동, 백범암살범 안두희 살해사건 등 그가 취재해 세상에 내보낸 기사들은 고스란히 대한민국과 인천의 현대사를 장식해온 것들이었다. 굵직한 현대사의 현장 한복판을 생생하게 헤집고 다닌 산증인인 셈이다.
“안두희가 피살되기 직전, 안영준이라는 가명으로 이리저리 숨어살던 안두희를 직접 인터뷰하고 취재한 적이 있어요. 민족정기구현회장인 권중희씨 등 몇 사람과 함께 갔었죠. 한때 권력의 비호를 받고 호의호식했던 안두희의 말로는 너무나 비참했어요. 첫 번째 부인은 도망 간지 오래였고, 인천 신흥동의 허름한 집에서 두 번째 부인의 옷수선으로 겨우 목숨을 연명하고 있더라고요. 주려 죽을지언정 정의의 편에 서야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안두희 사건이 반면교사로 보여준 것이죠.”


인하대부정입학사건, 사학족벌경영 폐단으로 불거진 명신여고사건, 재단 돈 28억 원을 임의로 빼내가면서 촉발된 선인학원사태 등 그가 취재해 기사화한 사건들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숨이 가쁠 지경이었다. 
“대우자동차 파업투쟁 때는 노동자들이 한겨레신문 기자에게만 취재를 허락했어요. 한밤중에 노조집행부의 안내를 받아 담을 넘어 공장으로 들어갔는데 3천명이 모여 있는 거예요. 한겨레 기자가 왔다는 소개말에 떠나갈 듯 박수가 터져 나오더라고요. 가슴이 뭉클했죠. 내 생애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뜨거운 환대를 받아보긴 처음이에요.”
노동자대학의 교장이던 백기완 선생이 석바위 당시 법원근처 식당에서 강연회를 열자, 안기부가 이적단체로 규정해 탄압했던 사건을 취재해 사회면 톱기사로 내보내기도 했다. 당시는 인천동산고 출신의 악랄한 노조파괴전문가 ‘제임스리’라는 인물의 실체에 대한 소문이 노동계에 흉흉한 때였다. 현대중공업 식칼테러사건의 배후인물로 알려진 그를 직접 인터뷰까지 했지만, 끝내 기사를 쓰는 데는 실패한 적도 있었다.


기자로 살며 얻은 지식 나누면서 제2인생 시작
“인천지역 유지 7~8명이 꼴망파 두목, 최태준의 석방탄원서를 넣었다는 한줄기사가 경기일보에 실린 걸 보고, 제가 다시 정밀 취재해 한겨레 사회면 톱으로 터뜨렸어요. 지역의 조직폭력배와 밀착된, 정치권력과 검찰의 커넥션을 폭로한 내용이었죠. 중앙지들도 일제히 제 기사를 받아쓰기 시작하면서 단숨에 뜨거운 사회이슈로 확대되었어요. 사실 그 기사의 근거는 검찰청 마우리(출입처를 순회하는 일)를 돌다, 인천지검 막내검사 하나가 슬며시 빼내준 20페이지 분량의 자료였어요. 검찰이 전과5범이었던 최태준의 전과기록을 의도적으로 삭제해 기소했다는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었죠. 위에서 막는 바람에 수사가 진행되지 못하자, 젊은 혈기에 수사하던 내용을 제게 흘린 거예요. 검찰청이 뒤집어지고, 저에게는 죽인다는 협박전화가 수도 없이 걸려 왔어요.”
이처럼 시시각각 출렁대던 사건의 바다에서 ‘생 날것의 진실’을 길어 올리기 위해 평생을 분투해오던 그의 역할은 이제 그의 은퇴와 함께 현장에 남은 다른 동료기자들의 몫으로 넘겨졌다. 그러나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듯, 한번 기자도 영원히 기자일 수밖에 없다. 현장을 떠난다 해서 평생에 걸쳐 벼려온 날카로운 시대정신이, 기자적 안목으로 세상을 분석하는 습성이 하루아침에 소멸될 리 만무한 까닭이다.



“취재현장이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대학 강단도 좋고, 시민대학 강좌도 좋겠죠. 어떤 식으로든 기자인생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과 지식들을 나눌 겁니다. 물론 제가 공부한 물류와 인천언론의 역사적 가치의 재창조에 대한 강의도 여력이 닿는 한 계속할 거구요. 제가 취재했던 사건과 기사들을 재정리해 책으로 만드는 작업도 해야겠죠. 무엇보다 이제부터는 내 마음껏 공부하고 연구에 몰두할 충분한 시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짜릿해요.”


글. 커피그림 : 유사랑 I – View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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