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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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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선당은 처음부터 북성동에 있었나?
인천 화교 일부, 1926년 화도진에서 이전 추정

인천 의선당은 처음부터 인천 중구 북성동에 있었을까? 의문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됐다. 의선당은 1893년에 세워졌고 처음부터 북성동에 있었던 것으로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러나 의선당의 처음 위치는 화도진이었다는 소문이 화교들 사이에 흘러 다닌다. 지금 60세 이상인 화교들 중 몇몇은 그런 기억을 갖고 있다.


중국집 곡가를 운영하고 있는 곡창신 사장도 그런 얘기를 오래전부터 들었다. 그는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의선당에 소원을 빌려 자주 다녔다. 그 당시 어머니는 어린 그에게 의선당이 처음부터 차이나타운에 있었던 게 아니고 화도진에 있었다고 들려주었다.

▲달마불교회역사연혁(達摩佛敎會歷史沿革)에 따르면 의선당은 1926년 증축을 위해 북성동으로 옮긴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만든 '인천의선당 문심처' 편액

곡가 곡창신 사장 말고도 무술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필서신 관장도 화도진 의선당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는 첫 의선당 자리를 화도진이 아닌 송월동 부근으로 추측했다. 그도 송월동 부근 의선당에 관한 근거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인천화교학교인 중산학교에서 체육을 가르쳤던 왕청덕 씨도 화도진 의선당에 대해 알고 있었다. 또 인천화교학교 교장을 지낸 부극정 씨(66)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기억했다. 

▲의선당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달마불교회역사연혁지

의선당에 걸려있는 편액중 ‘의선당 문심처’는 의선당이 1926년 북성동으로 이전한 것을 알리는 편액이다. 달마불교회역사연혁(達摩佛敎會歷史沿革)에 따르면 의선당은  1926년 증축을 위해 북성동으로 이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북성동에 증축하면서 동쪽방에 달마시조(달마시조)와 창시자(창시자)를 기리며 분향할 수 있는 곳을 세우고 정면 대웅전에는 여러 신들과 신선들을 모셨다고 쓰여있다.

▲1970년대 의선당 모습. 의선당은 1970년 이후부터 쇠락의 길을 걸었다.

글 이용남 'I-View' 편집위원, 사진 서은미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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