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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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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그리는 인천萬畵
25년 미용외길, 헤어아티스트 원숙

▲커피로 그린 헤어아티스트 원숙

“전 아티스트예요. 뮤지션이 리듬 하나하나에 심취해 악기를 연주하듯, 심혈을 기울여 조각가가 예술작품을 깎아내듯, 저도 그렇게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디자인하죠. 전 단순히 머리를 자르는 게 아니에요. 두상의 형태와 이목구비, 두피의 상태, 고객의 직업과 성향, 즐겨 입는 패션스타일까지를 고려해 최적의 스타일을 조언하고,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머리를 디자인하는 디렉터인 거죠. 현대인의 헤어스타일은 그 사람만의 특별한 문장(紋章) 같은 거예요. 머리모양은 그 자체로 자신의 성격과 품성, 직업, 철학까지를 보여주는 지표거든요. 타고난 이목구비는 어쩔 수 없다 쳐도, 거기에 최적화된 자기만의 헤어스타일은 철저히 자기 몫이에요. 헤어스타일 하나가 그 사람의 분위기와 이미지를 바꾸고, 끝내는 인생까지 바꿀 수 있다고 전 믿어요.”
인천 남동구 간석동의 한 미용실에서 헤어디자이너 원숙(50세)씨를 만났다. 나이답지 않은 동안외모에 통통 튀는 패션과 코디감각, 한 눈에 평범한 디자이너들과는 결이 다르다.

방황하던 시절 가위질 소리와 부드러운 머릿결에 위안
“헤어한다고 하면 덮어놓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아요. 미용이 단순한 기능을 넘어 현대의 중요한 트렌드코드가 된지 오래인데도 말이죠. 미용은 이미 과학이고, 예술적 차원에서 향유되고 소비되는 현대인의 필수영역이에요.”
세상풍파를 잠재우는 만파식적처럼, 그녀의 마음속 들끓던 소요(騷擾)들이 머릿결을 매만지는 순간 잠잠해지더란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미용은 평생 그녀의 천직을 넘어, 그녀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되었다.



“서울에서 1남 5녀의 넷째 딸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평양고보를 다니다 전쟁 통에 교복을 입은 채로 피난 내려와 만석군집 맏딸인 엄마와 결혼하셨대요. 외갓집은 소문난 부잣집이었지만, 외할머니가 딸만 둘 낳고 아들을 못 낳아 외할아버지가 첩을 들일만큼 완고한 집안이었나 봐요. 딸은 시집이나 가면 그만이라며 책을 모두 불살라, 엄마가 대학 가는 걸 막기도 하셨죠. 그 영향으로 엄마도 아들콤플렉스가 심하셨어요. 넷째인 저까지 연달아 딸이 태어나는 바람에 실망이 너무 큰 나머지 사흘간 젖도 안줬는데, 제가 울지도 않고 너무 예쁘게 웃더래요. 제 이름이 외자인 것도, 외자로 딸 이름을 지으면 그 다음은 사내아이를 볼 수 있다는 속설 때문이에요.”
아버지는 건축업과 유리가게를 하시고, 엄마는 쌀집을 운영하셨는데 가난한 동네사람들에게 외상 쌀이며 수돗물을 그저 퍼주는 걸로 유명하셨다. 그런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난 그녀는, 여느 여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평범하고 꿈 많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문제는 공부 잘하는 언니들과는 달리 번번이 대학입시에서 낙방을 한 것. 상명여고 졸업 후 무려 3수를 했단다.



“그래도 부모님은 기어이 교대나 약대에 지원하기를 고집하셨어요, 하지만 더 이상 전 대학에 뜻이 없었죠. 오히려 뷰티나 패션 쪽에 꽂혔어요. 재수학원도 슬슬 싫증이 나던 차에, 한국일보라운지에서 대학생 아르바이트 웨이트리스를 모집한다는 신문광고를 보고는 대학재학생인척 지원해 합격했죠. 집에는 학원 간다고 속이고 날마다 출근을 했어요.”
겨우 15일간의 짧은 경험이었지만, 그곳에 드나들던 당당한 여성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커다란 도전을 받았단다. 아들 못 낳는다는 이유 하나로 평생 비참한 삶을 이어간 외할머니, 그 외할머니의 삶을 보면서 자신 역시 아들콤플렉스에 볼모잡힌 어머니, 그녀는 자기 대에서만큼은 결코 그 유전을 되풀이하지 않겠노라 그때 결심했단다.
“아버지와 함께 피난 내려와 대구에서 ‘강산면옥’이라는 큰 식당을 성공시켜 백화점도 짓고, 한때 대한민국 현금보유 서열 15위에 오른 고모가 한분 계셨어요. 여러 장신구와 한복옷감, 기모노옷감 등을 보내오곤 하셨죠. 엄마는 그걸로 고운 한복을 지어 입으셨어요. 어려서부터 그 화려한 색채감에 반해, 그 남은 천 조각을 걸치고 동네 아이들을 모아 패션쇼놀이를 하곤 했죠. 그러면서 막연히 패션디자이너를 동경했던가 봐요. 진짜 패션공부를 해볼 요량으로 영등포 반도패션 등지를 쏘다니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언제까지 곁에 계실 것으로 믿었던 엄마가 뇌출혈로 갑자기 돌아가신 것. 그녀 나이 24살 되던 해였다. 충격이었다. 실타래처럼 삶이 온통 뒤엉켜버린 기분이었다. 엄마의 부재는 여린 마음의 그녀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허무가 밀려왔어요. 사는 게 무의미하게만 생각되었죠. 그러면서도 문득 문득 까닭모를 갈증이 폭풍처럼 가슴을 휘저어놓곤 했어요. 매일 술과 담배에 절어 지냈죠. 그러다 우연히 친구를 따라 미용학원이라는 곳엘 놀러 갔다가, 엉겁결에 나도 다니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그저 시큰둥하게 시작했죠. 그런데 신기했어요. 서툰 솜씨로 머릿결을 매만지고 다듬는데 어느 순간 마음이 잔잔해지는 거예요. 사각거리는 가위질 소리와 부드러운 머릿결의 감촉이 너무도 편안하게 느껴져, 코끝이 찡해졌어요. 직감적으로 이 일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미용과의 운명적인 첫 만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대학로가 오픈한다기에 놀러나갔다가 한 남자를 알게 되었는데, 얼마 후 인천 월미도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만 것. 그녀는 화물차기사인 그 남자의 끈질긴 구애에 결국 결혼까지 골인했다.
“인천 독쟁이의 시댁은 너무 가난했어요. 게다가 지방출장이 잦은 남편은 얼굴조차 보기 힘들 때가 많았죠. 다시 우울증이 찾아왔어요. 안되겠다 싶어 동네에 미용실을 오픈했죠. 그나마 할 줄 아는 게 그것뿐이기도 했고, 들끓던 소요를 일시에 잠재워주던 그 날의 고요가 너무나 간절했거든요. 하지만 미용학원에서 몇 달 배운 솜씨만으로는 마음 속 고요는 고사하고 당장 운영도 불가능했어요.”
미용실을 접고 실력 있다는 미용사를 수소문해 찾아다니며 기술 익히는데 주력했다. 그 집 인턴으로 근무도 하고, 직원으로 들어가 일을 배우기도 했다. 그 시절 만난, 주안의 조그만 동네 미용실 원장님은 지금껏 그녀 마음속에  살아있는 참 스승이란다.
“전기 세팅기계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마샬고데기 하나만으로 올림머리를 해내는 실력자셨죠. 일본까지 소문이 나, 일본사람들이 올림머리를 하러 한국관광을 올 정도였어요. 8시 마감이후 10시까지 그분에게서 빗질부터, 각도, 텐션, 슬라이스까지 모조리 새로 배웠죠. 날마다 손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1년간 스파르타식 수련을 했어요. 평생 잊지 못할 고마운 스승이시죠. 수련을 마치고 떠나오면서, 제가 가장 아끼던 묵주반지를 빼드렸어요. 드릴 게 그거 밖에 없었거든요.”


프로 세계에선 살아남고자 혹독한 노력
그렇게 혹독하게 프로헤어디자이너의 세계에 본격 입문하고도 그녀의 미용에 대한 갈증은 끝날 줄을 몰랐다. 그녀의 두 번째 스승은 국가대표 헤어디자이너로 소문난 김지윤 동남대 평생교육원 주임교수다. 김교수와는 미용계 거물들의 요람이라는 경희대사회교육원 경영학과를 다니며 처음 만났다. 김지윤교수는 한국미용협회 이사면서 감사를 지낸 분이다.
“송부자 교수님, 전덕현 교수님, 최영희 선생님과도 거기서 만났죠. 김지영 교수님과의 인연은 동남대 평생교육원까지 이어졌어요. 그러다 또 한 번 인생최대의 시련과 마주했죠. 계속 엇박자를 내던 남편과 결국 협의이혼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구청에 이혼신고서를 제출하러 가다가 임신한 사실을 알았어요. 이혼은 해프닝이 되었고, 다시 재결합을 해야 했죠.”
하지만, 그 아이가 5살이 되던 해, 삐걱대던 두 사람은 결국 진짜 이혼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남편의 외도가 이혼사유였다. 새벽 5시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온 여자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남편에 대한 마지막 미움의 감정까지 털어버렸단다.





“그 뒤 앞뒤 안보고 일에만 미쳐 살았어요. 유명 프랜차이즈 매장에서부터 개인브랜드 샵까지 이름난 곳이라면 거의 다 섭렵했다고 자부해요. 미용교육강좌며 세미나가 열리는 곳이면 만사 제쳐놓고 찾아다녔죠. 그러다보니 눈 깜짝할 새에 25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렸네요. 하지만 갈증은 여전해요. 그런데도 바로 어제 처음 가위를 잡을 때처럼 매일매일 설레고 기대가 돼요. 이제 지금쯤이면 내 개인 샵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조심스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헤어디자이너들이 늘 명심해야할 3요소가 있단다. 바로 빗질과 각도, 그리고 텐션이다. 이것은 어쩌면 동어반복에 불과한 건지도 모른다. 두상의 곡선방향에 따라 빗질을 해야 하고, 그 빗질의 각도에 따라 모발의 길이가 달라지며, 텐션도 변화하리란 것은 상식이다. 다시 말해 각기 따로 떨어진 독립된 말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동일한 단어의 이음(異音)일 뿐이라는 얘기다.
세상살이라고 뭐가 다르겠는가? 어떤 직업에 천착하든, 자신의 일을 마주하는 자세와 시각, 그리고 사고근육의 신축성은 시작이자 끝이 아니겠는가?


글. 커피그림 : 유사랑 I-View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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