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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7-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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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선생님, 국화 필때 불러주세요
전동 ‘축현피아노’ 운영했던, 김금순 어르신

“제가 신문에 나올 사람은 아닌데요….” 김금순(70)어르신은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의 인터뷰 요청에 사양의 뜻을 여러번 비쳤다. 평범하게 살아 할 얘기가 없다는 그를 몇 번의 설득 끝에 드디어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김금순 어르신(70)은 70년대부터 2000년대 까지 중구 전동에서 ‘축현피아노’를 운영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피아노학원이었다. 그 당시 축현초등학교를 다녔던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이 피아노의 유명세를 알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전설의 피아노 선생님 이었다.



1974년 전동에서 축현피아노 열고, 아이들 가르쳐
김 어르신은 1974년 정도부터 전동에서 ‘축현피아노’라는 학원을 운영했다. 당시 축현초등학교 아이들의 상당수가 이 학원을 다녔다. 혼자서 피아노를 운영하면서 야무지고 성실하게 아이들을 가르쳐서 아이들이 다니고 싶어하는 학원이었다.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 전에 학원에서 음악회를 열었어요. 당시 인천에서 유명했던 하얏트, 이집트경양식에서 학부모들을 초청해서 아이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보여주는 음악회를 열었어요. 지금도 당시 학부모들을 만나면 그때가 참 재미있었다고 말해요. 힘들었지만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좋은 추억을 심어줬던 것 같습니다.”




▲ 김금순 어르신이 젊은시절 사용했던 악보집




김 어르신이 운영했던 축현피아노는 지금 3,40대 들에게는 어린시절 추억의 공간으로 남아있다.
김 어르신은 창녕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금지옥엽으로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교육열이 상당했다. 당시로선 드물게 딸에게 피아노를 시켰고 고등학교때 일찍 연습을 하러가는 딸을 위해 새벽부터 난로에 돌을 데워 ‘불돌’을 천으로 싸서 만들어 줄 정도로 지극정성 이었다. 당시는 난방시설이 안 돼 있어 피아노를 치면 손이 얼고 상당히 추웠다. 지금 사람들의 가지고 다니는 휴대용 난로같은 것이었다. 어머니의 마음과 같은 불돌을 옆에 두고 피아노를 쳤다.  


30여 년 넘게 피아노학원 운영하며 교육에 열정
김 어르신은 인천여상을 거쳐 서라벌예대(현 중앙대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잠시 검단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시댁이 당시 동인천에서 ‘충북상회’라고 큰 철물점을 운영했어요. 시아버님이 아주 완고했어요. 여자가 직장 생활하는 것을 반대했어요.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게 된 거예요.”
직장생활을 그만 두고 시작한 것이 피아노학원이었다. 당시 그 동네에서 처음 연 피아노 학원이었다. 그는 30여 년 동안 피아노 학원을 열심히 운영했다. 학원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작고 알찬 학원으로 알려지면서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면서도 친정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딸들의 교육에도 열정을 다했다. 딸 셋 중 두 명은 엄마를 따라 음악을 전공했다.



현재 김 어르신은 학원에서 손을 뗀지 오래됐지만 요즘도  피아노를 치고, 친구와 이웃들과 차도 마시며 식사를 함께 하면서 즐거운 노년을 보낸다. 밝고 쾌활한 성격이 주위 사람들도 기분좋게 만든다.   
김 어르신은 매년 5월, 10월에 동네 주민들과 지인들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를 연다. 5월에는 장미축제, 10월에는 국화축제를 연다. 지금 살고 있는 주택에 이사 오면서 장미와 국화를 사다 심고 가꾸었다. 꽃나무 가지를 쳐주고 죽은 나뭇잎을 따주며 관리하며 물을 주는 일을 매일 매일 했고 그 결과 수 많은 국화와 장미가 때가 되면 화려한 자태를 드러낸다. 꽃이 필때면 꽃대궐로 변한다. 축제도 10여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꽃이 피면 사람들이 와서 동네에 예쁜 꽃길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세요,  크고 화려한 장미꽃과 야생국화 꽃들을 보면서 사람들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도 느껴요. 꽃 축제를 할때면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사람들이 마음껏 구경할 수 있게 합니다.”


5월엔 장미, 10월엔 국화축제 열고 사람들과 호흡 
올해도 10월말 쯤 국화축제를 열 예정이다. 국화축제를 아시는 분들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정말 아름다운 국화를 볼 수 있는 기회다. 
그는 장미축제나 국화축제가 되면 동네사람들과 지인들에게 떡을 돌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또 가까운 지인들을 초청해 그룹별로 식사를 대접하고 꽃구경을 하는 호사를 함께 즐긴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좋다. 꽃을 구경한 사람들은 꽃처럼 마음도 아름다워지고 자신도 마음을 힐링하게 된다.
김 어르신의 노년은 밝고 쾌활하고 명랑하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차도 마시고 운동도 하며, 손자소녀들을 만나러 다니며 분주하게 산다. 매일매일 장미와 국화를 가꾸는 일도 거르지 않는다. 김 어르신은 70여년의 인생 중 딸 셋을 잘 키운 것과 현명한 사위를 만난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겼다.



글· 사진 이용남 I-View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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